.

 

 

 

      케이블 텔레비전용 드라마였던 나쁜 녀석들을 영화화 한 작품. 경찰이 쉽게 해결하지 못한 미제사건들을, 수감되어 있던 범죄자들과 과격한 수사 및 진압으로 징계를 받은 경찰들로 구성된 팀이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꽤나 흥미로운 설정을 보여주었었다.

 

     영화화 되면서 달라진 점도 몇 가지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드라마에서도 이 팀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견제하는 역할이었던 강예원이 얼굴만 등장했다가 입원으로 처리되며 빠졌다는 점이다. 대신 그 자리에는 여성 캐릭터로 김아중이 대체되었다. 강예원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드라마에서도 가장 약한 연기력으로 이질감을 주었던지라 이 조정 덕분에 영화는 좀 더 안정적인 연기로 채워졌다.

 

     또 영화 초반에 대규모 차량 폭발신 같은 것도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일 텐데, 문제는 비주얼 측면에서는 그 첫 번째 장면 이후에 딱히 특별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없었다는 점.(처음에 돈을 다 쓴 거냐...) 

 

     단지 비주얼만 볼품없었던 게 아니고, 내용도 얼개가 엉성하다.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범죄자를 탈출시키기 위해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그 뒤에는 일본 폭력조직이 있고 하는 식으로 판은 크게 벌였는데, 막상 추적은 한심할 정도로 쉬웠고(경찰은 이것도 못했던 거야?) 해결 방식도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물론 실제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설정이지만, 덕분에 선을 왔다 갔다 하며 범죄자들을 추적하고 제압하는 모습을 보는 통쾌함이 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그냥 가둬두고 정해진 밥만 먹는 벌을 주는 게 전부인 현 상황에서, 드라마로나마 나쁜 놈들에게 (문자적으로도) 한 방 크게 먹여주고 싶은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낀 달까

 

     사실 이건 소위 마동석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동석표 영화들을 즐거워하는 건,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일 게다. 온갖 종류의 이유들(술을 마셔서, 나이가 어려서, 처음이라서, 심지어 반성하고 있으니..)로 형을 감경하고, 덕분에 피해자들은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는데도 금세 밖으로 나와 보복하게 만드는 일까지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차라리 흠씬 두들겨 패는 영화 속 주인공에 열광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당장 보기엔 통쾌할 지도 모르지만,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훨씬 더 허술해졌고 딱히 인상에 남는 내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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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수 있는 힘이다.

은행의 권력자를 만나려면 기다려야 한다. 15, 20분 혹은 30분 정도.

권력자는 중요한 일이 너무나 많고,

사람들은 그를 알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기 때문이다.

당사자 역시 사람들이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기어 들어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권력자는 사람들에게 접근할 때 거리를 두고 관망한다.

그것이 권력이다.

- 미하엘 하르트만, 엘리트 제국의 몰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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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11-2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권력에 집착하나 봅니다.

노란가방 2019-11-27 21:41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는 느낌을 즐기는 거... 으.....
 
내가 정말 중독일까? - 청소년 중독, 제대로 알고 해결하기
김상철 외 지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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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류의 청소년 중독에 관한 책이다. 저자들은 도박, 에너지 음료, 게임, 흡연, 자위, 망상, 스마트폰, , 자해, 종교(이단, 사이비) 등을 중독의 대상으로 꼽으면서, 어떻게 청소년들이 중독에 이르게 되는지를 통계와 실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저자들은 중독을 단순한 이상행동으로 취급하지 않고,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에너지 음료 중독(이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같은 경우, 서열화 된 대학과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새롭게 생겨난 중독이고, 상대를 누르고 올라서라고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게임에 대한 중독을 보다 손쉽게 만드는 한 가지 원인이다. 물론 중독을 온전히 사회 구조적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겠지만, 한 편으로 이를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할 일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지는 청소년의 비율이 40% 이상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올해 초 휴대폰을 새로 개통한 후, 번호를 사용하던 이전 사용자의 명의로 매일 열 개가 넘는 도박사이트 홍보성 문자가 1년 째 날아오고 있다. 아무리 스팸 처리를 하고 번호를 차단해도 다른 번호로 끊임없이 보내오는 걸 보고 있으면, 청소년들이 호기심으로라도 한 번쯤 눌러보고 싶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한 책은 각각의 중독들이 왜 위험한지, 특히 청소년 시기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설명을 더한다. 불법 스포츠 도박(현행법상 미성년자는 스포츠복권도 살 수 없다)에 빠져 건강과 대인관계에 손상을 입고, 도박자금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 도둑질 같은 또 다른 범죄에 빠져들어 간다거나, 고카페인 음료에 중독되었을 때 나타나는 신체적인 부작용들을 설명하는 식.

 

     하지만 이런 주제라면 역시 어떻게 그런 중독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필수적이다. 저자들은 각각의 중독 증상별로 필요한 조치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있고, 또 기독교적 배경에서 나온 책인 만큼, 그리스도를 의지하라든지 기도가 필요하다는 내용 등도 보인다.

 

 

     청소년 중독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실 뭐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방식으로의 중독은 성인들에게도 큰 위협이 되는 일인지라, 청소년들은 얼마나 취약할지... 가정과 학교, 혹은 교회 등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겠다.

 

     얇은 책이긴 하지만 충분히 위기의식을 전달하고, 해결책의 첫 걸음을 제안하는 데 필요한 내용들을 두루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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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11-2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청소년 중독이래야 게임,술,담배,혹은 심하면 신나같은 물질 정도만 생각했는데 청소년들이 중독되는 것이 무척 많아져서 깜놀했습니다.

노란가방 2019-11-27 21:13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게 말이에요.
특히 스포츠 도박에 빠진 수치가 높아서 깜짝 놀랐어요.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를 자처하는 주장들을 사회적 구성물로 축소시킨다.

그리고 개인을 사회적 힘에 조종 받는 꼭두각시로 축소시킨다.

여기에 담긴 의미는,

람이 어떤 관념을 갖는 까닭은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흑인 혹은 백인이기 때문에, 남자 혹은 여자이기 때문에,

동양인 혹은 남미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낸시 피어시, 완전한 확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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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년생이면 올해를 기준으로 서른일곱(만으로). 딱 내 나이다. 영화는 그 나이 대의 이 시대 여성들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다양한 종류의 차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에는 막내 남동생에게만 집중되는 할머니의 사랑에 서운해지고,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좋아하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다시 손녀가 아닌 손자를 보게 해 달라는 시어머니의 압박과 너보다 더 잘 버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면 안 된다는 힐난이 켜켜이 쌓여 올라간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여기에 그런 주인공의 어머니가 겪었던, 한 세대 이전의 차별들까지 비춰줌으로써, 이런 문제가 단지 지금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영화 속 지영이 종종 다른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굴레 같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장치로 보였다.(마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주요사건에 참여했던 것처럼.) 때문에 이 영화가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지나치게 과장했다는 비판은 이런 문학적 기법이라는 대답 아래 묻힌다.

 

     사실 같은 시절을 살았던 내 경우만 봐도, 여동생보다는 모든 면에서 내가 더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는 분명 더 많은 자원의 할애가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가장 우려했던 것은, 영화가 과연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제대로 된 방법을 준비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자칫 이런 논의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의 수인 남녀 대결과 같은 텅 빈 깡통 수준의 이야기로 전개되면 어떻게 하나 싶은 우려. 그런데 다행이 감독은 그런 대립에 대한 우려를 보기 좋게 피해간다.

 

     ​여기엔 부분적으로 소위 좀 쎈 여자의 캐릭터를 지영의 언니가 가져가고, 남동생과 남편의 성격이 또 여기에 대놓고 맞서 싸우지 않았던 데 기인하지 않나 싶다. 덕분에 지영은 자신이 진 무게를 충분히 힘들어하면서도 분노가 아닌 또 다른 해답을 찾아나가는 데 온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사실 이 문제는 누가 누구와 싸움으로써 해결될 일은 아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자신과 같은 성별을 가졌던 인류 전체를 대표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으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책망 받을 이유도 없고, 우리가 하지 않은 업적을 두고 어깨를 으쓱할 자리에 있지도 않다. 진영논리, 정체성의 정치 따위가 개입되면서 문제가 한없이 노답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부부가 조금씩 힘을 합쳐 문제를 고민해 나가는 이 영화 속 그림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대립이 아니라 협력이다. 태생적으로 지니는 특징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힙을 합쳐야 한다. 자기 입장만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건 기껏 백분토론 식의 (상대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주장만 반복하다 어떤 접점도 찾지 못하고 끝나는) 시끄러움만 생산해 낼 뿐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이 영화에서 여성 피해자론만 읽고 (사실이 과장되었다며) 불쾌해 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남성 가해자론을 읽고 앞선 분노에 집어넣을 장작만 얻을 지도 모르겠다. 어딜 가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 해버리는 관점들이 문제다. 상대성이론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문제 또한 그런 식으로 한 쪽 면만 보고 간단히 적과 원수를 만든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우리에겐 더 많은 대화와 이해가 필요하다. 이 영화는 그런 차원에서도 괜찮은 시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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