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 성경적 남녀 관계와 여성 리더십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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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우리나라의 바울신학에 관한 권위자인 김세윤 교수의 책을 두 권 읽었다. 모두 바울 신학에 관한 책들이었는데 두 권 다 두툼하고 가볍지 않은 내용이었던 데 반해, 그것이 담고 있는 주제는 분명하게 보였다. 이후에도 구원에 관한 짧은 책을 한 권 쓰셨는데, 그 책 역시 주제에 관한 분명하고 간결한 언명들이 기억에 남았다. 이 책에도 저자의 그런 글쓰기 특성이 잘 드러난다.

 

     ​책은 한국의 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워낙 오랫동안 쌓여온 문제인지라 간단하게 결론내리기 어려운 부분이지지만, 저자의 성격상, 또 한국을 떠나 있는 상황상(미국 풀러신학대학원 교수로 계신다) 조금은 과감하게 문제에 접근하고 제안한다.

 

 

     저자는 우선 구약도 여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며, 흔히 말하는 창세기 2장의 돕는 베필은 열등성을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단언한다.(같은 히브리어 단어는 하나님을 설명할 때도 자주 사용된다.) 신약으로 넘어가면, 우선 예수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메시지를 하지 않으셨고, 도리어 여성들을 복음(부활)의 첫 증언자로 세우셨다. 물론 그분 역시 문화적 적용을 완전히 도외시하지는 않으셨다.(예컨대 열두 제자 중 여성이 포함되지 않았던 점)

 

     ​저자의 전문영역인 바울서신들에 관한 내용에서는 보다 진일보한 주장을 이어간다.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기본적으로 전제하면서 그가 마주한 현실에 적용한다. 특별히 저자는 교회생활 안에서 여성의 지위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데, 바울의 신학 안에서 여성은 공예배 가운데 기도하고 설교(예언)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흔히 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한 제한구절들로 여기는 것들은, 실은 여성의 교회 사역을 원활하게 보장하기 위한 주의를 담고 있는 내용이었다는 주장이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교회 내 여성 지위가 낮은 것은 성경적인 이유라기보다는 관행, 혹은 인습적인 부분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 가정에로도 옮겨가면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해버린다. 저자는 우리가 교회 내 여성의 리더십을 좀 더 계발해야 한다는 말로 책을 맺는다.

 

 

     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관한 대표적인 문제로 여성 목사 안수건이 떠오른다. 내가 속한 교단은 여전히 이 문제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그래도 최근 총회들에서는 조금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려는 듯하다. 사실 애초에 이 문제를 성별로 구분 지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시기의 문제이지 점차 열려 가리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성별이 또 다른 성별을 차별할 수 있는 권한과 근거, 권위는 적어도 성경에 의해서는 지지받을 수 없으니까.

 

     짧은 책이고, 워낙에 명료한 문장들이라 금세 읽힌다. 그리고 책 속에 실려 있는 내용들은, 적어도 내게는 크게 무리하거나 위협적인 내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이런 주장이 급진적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당연한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게 되면 이제 그 사람이 문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 노예 12속에는 자신이 부리는 노예들 앞에서 복음서를 읽어주며 그 불합리한 체제를 성경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조금은 인자한) 주인이 등장한다. 아무 것에나 성경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누군가를 억압하는 못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인지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다.

 

     ​교단과 교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계단을 올라가기 위한 안전장치(난간)에 불과하다는 C. S. 루이스의 주장도 곱씹어 볼 만하다. 우리는 난간을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지를 고민하는 대신, 저 계단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교회의 리더십과 관련된 일을 남성이 더 잘할 것이라는 말은 분명 틀리다. 그러나 그 반대로,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다는 말 역시 틀리다. ‘어떤남성은 어떤여성보다 그 일을 잘 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어떤여성은 어떤남성보다 그 일에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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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 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정서진 옮김 / 이상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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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제목부터 설명해보자. 인류세란 인류에게 부과된 세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류로 인해 시작된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를 말한다. 학창시절 생물학에서 ------라는 이름으로 생물들을 분류하는 기준을 외웠듯이, 지질학에서도 그 규모에 따라 ----누대의 순서로 지질학적 시대를 구분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 Epoch)'는 절보다는 조금 더 큰 지질학적 변화를 가리킨다.

 

     현재 우리는 홀로세(Holocene), 혹은 현세(Recent)를 살고 있는데, 저자를 비롯한 한 무리의 학자들은 우리가 이미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책의 상당 부분은 이 인류세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제법 학식이 있는 학자들 가운데서도 이 용어의 정의에 대해 혼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는 그런 잘못된 인식들과의 대조를 통해 좀 더 정확한 정의를 내린다.

 

     언뜻 최근 많이 언급되는 기상이변이나, 자연파괴 같은 용어들이 떠오르지만, 인류세란 단지 인간이 지구의 자연환경에 미친 큰 영향력 정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산업혁명 즈음의 급격한 화석연료 사용증가로 초래되었고, 지구 시스템 전반에 걸친 지대한 충격과 이로 인한 급격한 변화(책에는 균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를 가리키는 말이다.(‘인류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서구중심적이라고 바꾸려는 사람도 있고, 그냥 인간의 등장 자체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보는 관점이나 아예 인간 자체에 별다른 중요성을 두지 않는 학파들이쪽은 운동이라고 불러야겠지만도 있다. 누가 뭐 하나 주장하면 거기에서 틈을 찾아 자기 생각을 끼워 넣으려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듯)

 

 

     책의 나머지 부분은 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어떤 인문학적, 세계관적 함의를 지니는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된다. 이 관점은 인류가 지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 나아가 중심임을 주장함으로써, 인간의 행위성을 축소하려는 신유물론자 등의 주장의 반대편에 선다. , 인류세라는 거대한 이야기 안에 국지적인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포함된다는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파편성을 되돌린다. 물론 이 개념은 인간이 지구를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사실 이 부분은 약간 지루하게 이어지는데다가, 앞서 나왔던 내용들도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다. 학계에 새로운 개념 하나를 도입하는 것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내용과는 좀 다른 방향이었던지라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책을 읽기 전 내 기대는, 인류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나타났는지를 묘사하면서, 그 전망을 예측하는 식의 구성이었다)

 

 

     인류의 발자국이 지구의 시스템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주장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온다. 핵융합으로 인공태양을 만들고, 인공강우 실험까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은 과연 발전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인류에게 지구 차원의 변화를 일으킬 힘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고(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것이라는 식의 베리에이션도 꽤나 인기를 끄는 듯하다), 변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까지 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우리는 대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이렇게 (전 지구적으로) 커지면 그 대처방식도 달라져야 할 텐데, 이게 쉽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성서의 진단(8:22)이 문득 떠오른다. 온갖 이해관계가 뒤섞인 상황에서 인류는 과연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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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 지휘자가 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1920년대 미국에서 최초로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가 되었던 실존 인물인 안토니아 브리코(크리스탄 드 브루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최근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그리고 이런 영화는 대개 여성 감독이 연출을 한다)이 자주 보이는데, 이 영화도 그 중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비슷한 종류의 성장영화들처럼, 주인공은 초반부터 주변의 무시와 거절을 당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그런 장애를 극복하고 마침내 바라던 목표를 이룬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가로막는 장애는 우선 여자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편견과 지긋지긋한 성적 접근들, 그리고 애인이 꿈을 이루는 것보다 자신의 곁에 있기를 원하는 남주인공의 소견, 깨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관례들이다.

     사실 이건 100년 전이나 오늘이나 크게 다르지 않는 요소들이고, 이 말은 오늘날의 많은 청년들도 (비단 여성만이 아니라) 여전히 악전고투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해보지 않았던 것, 누구도 올라보지 못했던 자리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늘 이런 식의 방해를 극복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를 어찌어찌 자신의 의지와 주변의 도움으로 극복해 나가는데, 솔직히 그 과정이 비슷한 다른 영화들과 큰 차별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물론 실존 인물의 성취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고, 영화의 서사가 그렇다는 것. 주인공의 공부를 후원했던 진짜 인물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부분이 살짝 반전 비슷한 것이긴 했지만 큰 임팩트는 없었고, 사실 독일에서 작은 성공을 거두고 돌아온 후에도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성공했다기보다는 또 다른 도움들이 있었기도 했다.

      대신 영화에서 눈에 띄는 건 시대극이라는 특성을 잘 살려 낸 배경들과 복식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진짜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여기에 지휘라는 독특한 소재가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영상이 끝나고 올라가는 자막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갖은 고생을 다하며 마침내 뉴욕 필 하모닉의 지휘자가 되고 이후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지만, 평생 동안 상임지휘자가 되지는 못했다는 내용. 최근까지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적지 않았던(예컨대 유명한 오케스트라에는 여성이 제1주자가 되거나 심지어 단원이 되는 것도 어려웠다고 한다) 음악계의 현실이 이렇게 드러난다.

     물론 연주의 실력이 객관적으로 떨어진다거나 한다면 모르겠는데, 카라얀 같은 유명한 지휘자가 선택한 연주자가 실력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도전자들은 단단한 장벽을 마주해야 하지만, (특히 음악계의) 여성들은 그들의 성별로 인한 차별이라는 조금 더 높은 벽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인 듯하다. 이건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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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심상 속에

설교들이 뿌리를 내리도록 묵상으로 찾지 않는다.

그래서 설교들로 배가 부를지라도

은혜 안에서 그렇게 메마른 것이다.

설교는 고약과 같다 하겠다.

한 사람이 몸에 상처가 있을 때 상처에 고약이 붙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그를 낫게 하지 못할 것이다.

 

- 에드먼드 칼러미, 이것이 기독교인의 묵상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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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구원
레슬리 뉴비긴 지음, 홍병룡 옮김 / 복있는사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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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치고 필리핀에 계시는 한 선교사님 댁에서 반 년 가량 머문 적이 있었다. 특별히 뭐 대단한 계획을 가지고 갔던 것은 아니어서, 먹고, 뒹굴고, 책 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었다. 그 때 현지인 목사님과 대화 중에 이런 말을 들었었다. “여러분들은 세미너리(Seminary)를 나와 목회자가 되지만, 우리는 세미나(Seminar) 목사들입니다.”

 

     그만큼 현지인들의 신학교육 기회가 충분치 않음을 보여주는 표현인데, 사실 선교지라는 곳이 대체로 그렇다. 저명한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수십 년 동안 인도에서 선교를 했던 이 책의 저자 레슬리 뉴비긴은 그런 선교적 상황에서 사용하기 위해 이 작은 책을 썼다

 

     서문에도 나와 있듯 인도 남부지방에서 사용하는 타밀어로 번역하기 쉽게 가능한 쉬운 표현들을 사용해 개념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애쓴 책이고, 덕분에 제3자인 우리도 그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출장 중에, 참고문헌도 없이 이 정도의 책을 쓸 수 있는 실력자라니...)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제공해주기 위해 쓴 작은 책.

 

 

     책은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들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온전케 된다는 구원의 개념,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된 죄와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그 사역이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되는지(여기에서 교회와 성령이 중요하게 제시된다)가 차분히 풀어져 나온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각각의 설명은 매우 간결하고, 명료하다.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며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익히 아는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구원에 관한 구속사적 이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지는 다양한 함의들, 그리고 그 효력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과정에 대한 깊은 통찰은 이 책의 가치를 높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영양소까지 고려해 잘 차려진 밥상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거나, 기초를 차분히 쌓기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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