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래전부터 그림자병

외로움을 먹고 자란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사랑과 친절의 관계로 거기에 맞서고 있지.

- 윌리엄 폴 영, 이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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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에 반대하는 영화에 출연했다가 향후 활동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출연 요청을 받은 일본 배우들이 연달아 고사해서 결국 우리 배우인 심은경이 주연을 맡게 되었다는 영화 신문기자. 덕분에 주인공 캐릭터의 배경까지 바뀌었다고 한다.(일본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정권에 미운 털이 바뀌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매장시켜버리는 일본의 분위기가 짙게 묻어나는 부분.

 

     영화는 몇 년 전 일본 아베 정권에서 벌어진 사학 스캔들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여기에 단순히 인허가와 부지매입상의 특혜에 더해 비밀스러운 대학 설립 목적 문제까지 덧붙여지면서 문제는 좀 더 심각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에 부담이 되는 이 모든 사건들이 밝혀지는 것을 막고, 혹여나 드러나게 될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묻어버리기 위해 내각정보조사실을 동원한 여론조작이었다.

 

     분명 일본의 이야기지만,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권과 기무사를 동원한 여론조작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루어졌는데, 일본은 그나마 어영부영 다 묻혀버리는 듯. 우리나라였다면 진작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을 텐데, 어지간히 여론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일당독재 국가인 일본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게 진행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계들처럼 각자의 일(여론 동향 파악 및 조작)만을 하고 있는 내각정보조사실 사무실의 모습과 이 기구를 이끌고 있는 전직 경찰간부 출신의 실장의 냉철한 모습이 그 분위기를 묘사하는 주요 이미지다. 그 반대편에는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부당한 일들에 분노하는 여기자(심은경)가 있고, 조사실의 일원으로 여론조작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는 외무성 출신의 조사원의 갈등이 있다

 

     ​최근 다양한 문제로 거리가 시끄럽다. 수많은 사람들을 그 거리로 이끌어낸 것은 단연 어떤 것에 대한 분노다.(그 분노가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편견에 근거한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어떤 이들은 그런 상황을 보고 국론 분열이니, 극한 대치니 하면서 금세 큰일이라도 날 듯 놀라기도 하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명백히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그리고 현 정부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가 뒤섞여있음을 인정하고, 그 욕구를 합법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으니, 조금은 시끄럽더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     실제로 민주주의일 필요는 없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만 하면 될 뿐이라는, 영화 속 정보기관 수장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민주주의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연약한 꽃이다.(이건 우리나라의 예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거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여간 한숨이 나오는 일이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몸에 좋은 것들은 대개 조심히 다뤄야 하는 것을.

 

     문제는 우리 사회에도 영화 속 그 대사를 진심을 담아 하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 여전히 설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음침한 음모를 꾸미는 이들은, 마치 곰팡이가 햇볕에 살균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을 공개하는 것만큼 강력한 무기도 없다. 그들이 정보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요체다. 적들과 싸워야 하니 너희들은 알 것 없다고 말하는 이들을 주의하자. 그런 이들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주범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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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10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대착오적인 삶의 주인공들에게
삶의 지평을 넓혀 주는 카를로 로벨리
선생의 책을 추천해 주고 싶군요.

뭐 그들이 책을 읽을 리도 없지만요.

노란가방 2019-12-12 15:14   좋아요 1 | URL
음.. 물리학자이신가요?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ㅎ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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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봤던 같은 이름을 가진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공유와 정유미가 연기했던 영화와 큰 틀에서는 비슷한 내용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의 매체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구성도 약간 다르다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건 남편’(영화에서는 공유가 연기했다)의 비중이다. 영화에서는 남편의 비중이 소설보다는 커서, 그는 자신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의 문제에 끊임없이 공감을 시도하면서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감독의 의도는 짐작이 간다. 영화가 단지 남녀의 대립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림을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닐까 싶다. 다만 덕분에 남편이 그렇게 잘해주는 데 복에 겨워 그런다는 의도치 않은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했지만.(그런 빈정거림은 저열한 태도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극의 느낌이다. 소설이라고 해서 좀 더 극적인 구성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책 뒷표지에 실린 소개글처럼 한편으로는 보고서의 느낌이 들 정도로 작가는 담담하게 서술을 이어나간다. 여기에는 자주 인용되는 통계자료와 연구 보고서 등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도 한 듯. 물론 이건 영화와 소설이 다르다는 말이지, 어느 한쪽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둘 다 나름 장점이 있는 작업이었다.

 

 

     소설이 여성중심이고, 여성들이 겪었던 부당한 대우와 시선들을 모아놓은지라, 자칫 시대착오적인 주장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예컨대 50년 전 어떤 이들이 겪었던 일을 오늘 내가 겪은 일로 여기면서 어떤 주장을 하는 경우다. 작품 속 지영의 어머니 미숙이 겪었던 일은 지영이 겪은 일과는 분명 다르다이런 상황에서 (책 뒤 비평가의 글처럼) ‘딸 김지영의 삶은 어머니 오미숙의 삶에서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것은 그저 감상적 반응일 뿐이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황정민)를 보고, 그 나이 대 사람들(혹은 남성들)이 모두 자신이 덕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게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사회는 변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 아니 인간에 대한 관점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미숙이 겪은 일은 분명 지영과는 다르다. 그리고 지영의 딸 지원이 겪을 일은 분명 지영과는 또 다를 것이다. 미진한 부분들이 많이 보이겠지만 분명 그래왔고, 그럴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어떤 이들이 겪은 문제를 그들의 문제로만 여기고 외면하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과 연대할 수 있고,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나 다양한 희생자들에게 힘을 더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감상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에 근거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공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오히려 소설을 넘어서는 힘이 느껴진다. 3자의 시선으로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담담하게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서술해나가는 방식은, 영화 속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면들과는 또 다른 설득력이 있다.

 

 

     조만간 내가 있는 교회에서 이 책을 함께 읽는 남성들의 독서모임을 준비해 볼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도 그랬지만, 문제는 관련된 사람들이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입장에 서볼 때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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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당사자에게 능력과 의지를 최대한 발휘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해도 실패할 수 있고 부족함이 드러날 수 있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살균되고,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하고,

고통도 위험도 모르는 전자공학의 산물들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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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 성경적 남녀 관계와 여성 리더십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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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우리나라의 바울신학에 관한 권위자인 김세윤 교수의 책을 두 권 읽었다. 모두 바울 신학에 관한 책들이었는데 두 권 다 두툼하고 가볍지 않은 내용이었던 데 반해, 그것이 담고 있는 주제는 분명하게 보였다. 이후에도 구원에 관한 짧은 책을 한 권 쓰셨는데, 그 책 역시 주제에 관한 분명하고 간결한 언명들이 기억에 남았다. 이 책에도 저자의 그런 글쓰기 특성이 잘 드러난다.

 

     ​책은 한국의 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워낙 오랫동안 쌓여온 문제인지라 간단하게 결론내리기 어려운 부분이지지만, 저자의 성격상, 또 한국을 떠나 있는 상황상(미국 풀러신학대학원 교수로 계신다) 조금은 과감하게 문제에 접근하고 제안한다.

 

 

     저자는 우선 구약도 여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며, 흔히 말하는 창세기 2장의 돕는 베필은 열등성을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단언한다.(같은 히브리어 단어는 하나님을 설명할 때도 자주 사용된다.) 신약으로 넘어가면, 우선 예수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메시지를 하지 않으셨고, 도리어 여성들을 복음(부활)의 첫 증언자로 세우셨다. 물론 그분 역시 문화적 적용을 완전히 도외시하지는 않으셨다.(예컨대 열두 제자 중 여성이 포함되지 않았던 점)

 

     ​저자의 전문영역인 바울서신들에 관한 내용에서는 보다 진일보한 주장을 이어간다.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기본적으로 전제하면서 그가 마주한 현실에 적용한다. 특별히 저자는 교회생활 안에서 여성의 지위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데, 바울의 신학 안에서 여성은 공예배 가운데 기도하고 설교(예언)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흔히 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한 제한구절들로 여기는 것들은, 실은 여성의 교회 사역을 원활하게 보장하기 위한 주의를 담고 있는 내용이었다는 주장이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교회 내 여성 지위가 낮은 것은 성경적인 이유라기보다는 관행, 혹은 인습적인 부분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 가정에로도 옮겨가면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해버린다. 저자는 우리가 교회 내 여성의 리더십을 좀 더 계발해야 한다는 말로 책을 맺는다.

 

 

     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관한 대표적인 문제로 여성 목사 안수건이 떠오른다. 내가 속한 교단은 여전히 이 문제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그래도 최근 총회들에서는 조금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려는 듯하다. 사실 애초에 이 문제를 성별로 구분 지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시기의 문제이지 점차 열려 가리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성별이 또 다른 성별을 차별할 수 있는 권한과 근거, 권위는 적어도 성경에 의해서는 지지받을 수 없으니까.

 

     짧은 책이고, 워낙에 명료한 문장들이라 금세 읽힌다. 그리고 책 속에 실려 있는 내용들은, 적어도 내게는 크게 무리하거나 위협적인 내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이런 주장이 급진적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당연한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게 되면 이제 그 사람이 문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 노예 12속에는 자신이 부리는 노예들 앞에서 복음서를 읽어주며 그 불합리한 체제를 성경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조금은 인자한) 주인이 등장한다. 아무 것에나 성경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누군가를 억압하는 못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인지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다.

 

     ​교단과 교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계단을 올라가기 위한 안전장치(난간)에 불과하다는 C. S. 루이스의 주장도 곱씹어 볼 만하다. 우리는 난간을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지를 고민하는 대신, 저 계단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교회의 리더십과 관련된 일을 남성이 더 잘할 것이라는 말은 분명 틀리다. 그러나 그 반대로,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다는 말 역시 틀리다. ‘어떤남성은 어떤여성보다 그 일을 잘 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어떤여성은 어떤남성보다 그 일에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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