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의 이름들 - 대림절에 알아보는
월터 브루그만 지음, 이옥용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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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력에는 대림절이라는 기간이 있다. 크리스마스 이전의 한 달(4)를 가리키는데, advent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예수의 출현 또는 오심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교회력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대부분의 개신교단들에서는 거의 잊히긴 했지만, 일부 교단들에서는 여전히 이 날을 기념한다.

 

     그 이름에서부터 이 기간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기다리며, 그분을 묵상하는 절기다.(사실 기독교회는 모든 날을 그분과 연결지어 생각해야 하지만) 이 작은 책은 대림절의 4주간 한 주에 하나씩 묵상할 수 있도록, 이사야 96절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네 가지 별명을 분석하고 설명한다.

 

     기묘한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는 네 가지 칭호는, 각각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그 각각의 칭호가 어떻게 예수의 사역과 연결되는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드문 듯하다. 저자는 이 작업을 수행하면서, 우리가 너무 금방 지나쳐버린 그 칭호와 예수의 사역 사이의 연결고리를 깊이 묵상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개인적으로는 예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이 얼마나 (신학적으로) 어색한 일인지, 그리고 평강의 왕이라는 용어 또한 이사야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기대와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를 지적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 짧은 구절(9:6)이 탁월한 저자의 손에 들리면 얼마나 아름답게 풀려나오는지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아쉬운 건 그리 분량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번역과 편집 과정에서 오타가 몇 개나 나오고 있다는 점.(세 개는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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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자밀라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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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국가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한성례 옮김 / 북스코리아(북리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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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다 말고 내던졌다.(물론 정말로 책을 던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빌린 책은 소중하게 보고 반납해야 한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해진 작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그녀의 국가관에 관한 이야기를 편하게 듣는 식으로 편집된 책인데, 실은 이 책을 위해 새로 쓴 글도 아니고, 일본의 어느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 형식의 칼럼들을 로마인 이야기의 일부 내용과 우리나라의 어느 잡지(신동아)와 했던 인터뷰 내용,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속의 인용구들과 더해서 엮어낸 책. 이쯤 되면 사실상 창조된 수준이고,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그냥 앉아서 돈을 버는 셈이다.

 

 

     뭐 로마인 이야기에 관해 여러 말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로마사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니, 또 나 역시 그 책들로 로마사에 대한 윤곽을 잡았으니 그 공은 인정해야 할 듯. 물론 종교 쪽(특히 기독교)만 넘어가면 갑자기 균형감을 잃고 욕을 퍼붓는 수준의 부족한 이해를 드러낸다는 점과, 태생이 일본인인지라 군국주의에 묘한 친화감을 드러내는 식의 불편함 등이 보이긴 했는데, 뭐 일단 당장은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었던 먼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를 다루는지라 그럭저럭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 딱 그런 국가관 부분만을 떼어서, 그것도 현대의 현실정치와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그 체감이 훨씬 강해져버린다. 그래도 일본인답게, 일본의 정치현실에 대해서는 나름 옳은 인식을 보여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엘리트들은 예측 가능한 일에는 잘 대처하지만, 돌발 사태에 임기응변을 하는 데에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진단 같은 것들(83) 말이다

 

     그러나 물론 일본중심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감안하더라도, “아베는 너무 성실해서 문제라는 어이없는 안목이라든지(21), 정국 안정을 위해 아베 정권이 연임을 계속하는 것이 옳다는 태도라든지(25), 지도자는 인격에 문제가 있어도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나이브한 입장은 전형적인 수구파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모습이다.(평화헌법개정과 군대보유 찬동은 덤이다)

 

     일견 마키아벨리즘에 입각한 현실주의적 정치관, 국가관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냥 지식 좀 쌓은 고집쟁이의 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우구스투스의 예를 들며, ‘도덕과 인품보다 사람들을 속이더라도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이 정치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처럼 운운하지만, 사람들의 과연 도덕적 파산에 이른 지도자가 유능하다는 이유로 지지할 수 있을까? , 물론 아베의 장기집권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을 보면 그게 가능한 듯 싶기도 하지만, 그건 특별히 정치적 후진성을 벗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지난 세기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했고,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그건 침략이라고 불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까지 넘어가면(131), 이 사람이 익힌 역사는 철저하게 힘의 원리만을 숭배하는 우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2천 년 전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을 그대로 빗대 연결 짓는 것은 시대착오적 관점에 다름 아니다.

 

 

     그냥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라. 거기도 부족한 이해가 적지 않지만, 적어도 다른 괜찮은 이야기들이랑 섞여 좀 희석되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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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24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 이후로 우경화되는
모습에 그의 책을 끊게 되었습니다.

노란가방 2019-12-24 22:1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제 끊어야 할듯합니다 ㅎ
 
나니아 연대기의 모든 것 -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 만나는 C.S. 루이스의 세계
캐스린 린즈쿡 지음, 김의경 옮김 / 크림슨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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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C. S. 루이스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나니아 연대기. “순전한 기독교쪽도 아주 잘 알려지긴 했지만, “나니아쪽은 어린 아이들까지 즐겨 읽었으니 독자의 연령 폭이 훨씬 넓다.

 

     인기가 있는 책은, 자연히 그 책을 분석하는 책도 나오기 마련. 내 경우만 하더라도 벌써 네 권의 나니아 연대기 분석서를 읽었지만, 이 책을 제외하고도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몇 권이 더 책장에 꽂혀 있다. 이 정도로 읽다보면 어느 정도 책들 사이에 비교가 가능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책의 주요 홍보 포인트이기도 했던, C. S. 루이스가 직접 이 책을 칭찬했다는 부분일 것이다. 루이스는 이 책의 저자에게, 그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며, 이 책이 자신의 책(나니아 연대기)의 중요한 함의들을 잘 밝혀냈다는 편지를 보냈다. 이 정도라면 루이스 애호가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찬사다.

 

     루이스의 말처럼 이 책의 저자는 그 두꺼운 일곱 권의 책들을 성실하게 분석해 낸다. 1부에서는 전체 주제 중심으로, 2부에서는 각 권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고, 단지 설명만이 아니라 책을 가지고 다양한 질문들을 만들거나 일종의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여기에 각 권에서 저자가 뽑은 명구나, 이 책의 내용에서 파생된 노래나 음악, 연구/동호회 모임 등의 다양한 부가적 정보까지 담아낸다.

 

     물론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인 20세기 중반이라면, 루이스의 인정을 받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좀 더 흘렀고, 그 사이 루이스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을 훨씬 더 깊게 읽었던 여러 저자들이 또 다른 분석서들을 냈다. 뒤에 나온 책의 저자가 가진 유리함은, 역시 앞서 나온 책들을 충분히 읽고 소화시킨 다음, 그 위에 자신의 생각을 더 높이 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이 책에 실린 내용 못지않게,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충실하게 분석하는 책들이 더 있다는 것이다.

 

     사실 위에서 말했던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다양한 부가적인 정보들은 또 한 편으로 생각하면 책을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일 수도 있다.(물론 순수한 애호가의 입장에선 이런 정보들이 너무 달콤하지만) 그리고 루이스의 찬사와는 달리, 저자는 나니아 연대기를 너무 직접적으로 기독교 신학과 매칭시키려 하고 있기도 하다. (루이스는 다른 곳에서 나니아 연대기가 단지 기독교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분명 좋은 책이다. 루이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그런. 다만 비슷한 수준의 분석과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 많이 나와 있는 현 상황에서, 대체재가 충분히 있다는 점은 살짝 평점을 깎는 부분.

 

     책 제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 정보에는 나니아 연대기의 모든 것이라는 상당히 자신만만한 제목이 붙어있지만, 내 손에 들려 있는 책의 표지에는 나니아 연대기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살짝 위트 있는 제목이다. 저자와 역자, 출판사까지 동일하니 같은 책인 건 분명한데, 금세 제목을 바꾸었나보다. 두 글자를 빼고. 문제는 원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목이라는 것. "Journey into Narnia"이면 그냥 나니아로의 여행정도일 텐데, 바꾼 제목이 지나치게 기대감을 높여 놓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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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 문화에는 내재 가치를 지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대신 제품이나 사람, 종교의 가치는 효용성에 따라 결정된다.

자동차나 배우자, 신이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미련 없이 새 모델로 바꿔 치우라.

하다못해 개조라도 하라.

이런 소비주의적인 윤리가 통용되는 것은

우리 문화에서는 자신과 자신의 바람이 우주의 절대적인 중심이기 때문이다.

 

- 스카이 제서니,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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