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에는 블랙 기업이라는 용어가 있다. 직원들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착취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회사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식의 사례는 크게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간호사들 사이의 태움이라는 악랄한 관습으로 수많은 저 연차 간호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모 회사에서는 여직원들을 성적 도구로 보는 듯한 인습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대한항공 창업주의 후손들이(그리고 여기에 회장의 부인까지 가세한) 하나같이 보여주는 수준 이하의 갑질들을 보며 사람들은 경악을 했었다. 재벌 3, 4세들이 보여주는 일탈을 넘어선 범죄들과 대기업들이 경영차원에서 저지르는 온갖 엉터리 행태들을 보면, 기업의 총수가 구속되었더니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는 우스운 뉴스도 이해가 된다.

 

     ​저자는 이 문제가 군대식 문화가 이식된 비민주적 기업운영 행태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건 단지 개인의 행복을 줄이는 정도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수준에까지 왔다(83)고 말한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에서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이유도, 단지 연봉과 복지수준만 낮은 것이 아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직장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최소한 직장 내에서 불합리한 일이 일어났을 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갖춰져야 한다.

 

     책에는 이를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담겨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역시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다. 특별한 법령을 제정할 필요도 없이 의지만 있다면 간단히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단다. 민간 기업에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정부와 공기업에서부터 시작하고, 정부와 거래가 이루어질 때 이 인증에 일종의 가산점을 부여하면 어느 정도 확산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본다

 

     ​물론 이뿐 아니라 직장 민주주의를 위한 매뉴얼을 보급하고, 사실상 경영주에게 껄끄러운 직원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감사기능을 정상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기금들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의 제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과연 대한민국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로비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느릿한 변화의 속도를 우리가 얼마큼이나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변화와 개혁의 기회를 외면하고 지금 이대로만을 고수한다면 결국엔 우리 모두가 공멸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열정 페이니 인턴이니, 비정규직이니, 파견직이니 하는 괴상한 명칭으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너무 많아졌고, 그런 대우를 받는 이들이 온갖 것들을 포기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와 인건비 쥐어짜기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기득권층들은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최소한 일하러 간 곳에서 일만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간단한 요구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이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직전에 읽었던 저자의 또 다른 책(“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세상을 관조하는 듯했던 그 책의 논조와는 달리, 이 책에서는 다시 한 번 뭔가를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같은 해에 반 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낸 책답지 않게(물론 이 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요청을 받아 썼다고 한다). 다만 반년 먼저 나온 그 책을 보고 이 책을 보니, 저자의 목소리에서 약간 힘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이런 책은 고용인보다는 사용주, 경영자들이 읽어야겠지만, 늘 그렇듯 들어야 할 사람들은 자리에 없고, 안 들어도 되는 사람들만 앉아있지 않을까 싶다. 뭐 우리가 시작하는 일에서부터 바꿔나갈 수도 있는 거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존재는 만남을 통해 변화하게 마련이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고양이』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질학과 기독교 신앙 스펙트럼 : 과학과 신앙 4
한국교회탐구센터 지음 / IVP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몇 년 동안 IVP에서 이런 식의, 교회와 교회 밖 사람들의 인식 차이 부분을 탐구하는 책을 자주 내는 듯하다. 교회탐구포럼 시리즈도 나름 훌륭한 주제를 담고 있고, 한국교회탐구센터라는 조직에서 낸 이 책도 그 일환이다. 한국 교계에 의미 있는 도전을 던져주는 기획이라고 본다.

 

 

     이번 책에서는 약간은 이례적일 정도로 다시 불타오르고 있는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논쟁을 지질학적 관점에서 다시 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이런 시리즈에 속한 책들이 다 그런 건지,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여러 입장들을 종합하는 선에 그치고 있고, 그래서 저자들 사이에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장면들도 여럿 보인다

 

     ​예컨대 가장 첫 번째 글인 양승훈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안으로 다중격변론을 채택한다. 그리고 이런 전제 아래 대진화는 불가능하다(소진화는 어느 정도 수용가능하다는 뉘앙스)고 말하지만, ‘지구는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나?’라는 글에서 이문원 교수는 유물론에 기초한 진화론적 설명을 별다른 코멘트 없이 서술하고 있다.

 

     ​(적어도 교회 내에서는) 여전히 딱 부러지는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독자가 스스로 결론을 내일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라면 또 이해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인터뷰와 (지구의 연대와 지질학 발전의) 역사서술, (진화론적 지구 역사에 관한) 교과서적 연대기 제시,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이라는) 특정한 기술 소개, 설문조사, 그리고 서평들이라는, 좀처럼 접점을 찾기 어려운 너무 많은 유형의 글들이 모아져 있어서 좀 산만하다는 느낌도 준다.(얼마 전 비슷한 구성의 책을 봤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싶은)

 

 

     책에 실린 다양한 글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창조과학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구의 역사가 수천 년에 불과하다는 젊은 지구론을 중심에 두고, 성경의 문자주의적 해석을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과학으로 성경을 입증하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창조과학은 그 시작부터 문제가 적지 않았다. 의아스러운 것은 그것이 가지는 논리적 허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교회의 적잖은 사람들이 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

 

     ​과학주의와 유물론을 경계하되 과학 자체에 대해서 좀 더 열려 있을 필요가 있다는 양승훈 교수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귀를 막으면, 결국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이 될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 오늘부터 행복해지는 내려놓기의 기술
우석훈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경제학자 하면 떠오르는 선입관이 있다. 숫자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각종 지수들을 끄집어 내 세상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 하는 거시적 문제를 다루거나, 현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돈을 벌 수 있을지 하는 지극히 지갑론적 이야기들을 떠드는 사람들.

 

     그런데 우석훈의 책은 조금 다르다.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젊었을 때는 달랐다고 하는데 여튼 지금은 그렇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경제적 상황이 그리 녹록치 못하다는 것을 간단히 인정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신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일을 차근차근 해 나가며, 버텨내라고 말한다. 적은 돈이라도 정기적으로 저축하고, 비록 계산이 나오지 않더라도 사랑의 힘을 믿어보고 뭐 그런 식의.

 

 

     이 책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은 늦게 얻은 두 아이를 집에서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는(본인이 평가하기에 가사분담률이 40% 쯤 된단다) 50대가 된 한 경제학자가, 이제 조금 덜 치열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소박한 행복론을 담아 쓴 에세이다. 사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경제학과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대한민국의 50대가 처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는 건,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들을 알 수 있으리라.

 

     육체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정점을 지난 50대가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면 결국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경차를 타고 다니면서 누가 난폭운전을 하면 바쁜 일이 있나보다생각하며 넘어가고, 도저히 보기 싫은 미운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휴대폰 주소록을 열어 이름을 지워버리면 된다. 욕하며 아등바등 살면 뭐가 조금 나아지겠는가 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힘이 빠진, 체념 섞인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조언이야말로 실제적인 조언이 아닐까. 클릭만 하면 당장 이번 주 당첨될 로또 번호를 알려주겠다고 우리를 유혹하는 팝업광고처럼 가벼운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보다야 얼마나 나은가

 

 

     오늘도 소위 경제를 다룬다는 사람들은 온갖 정보들에 수십 가지 이유를 붙여가며 숫자 놀이에 여념이 없다. 한참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서는 그렇겠구나 싶다가도, 문득 정말 그게 의미가 있는 건가 싶을 때가 많다. 어쩌면 경제라는 건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움직이는 건 아닐까. ,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그 논리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믿는 동안에만 유효한 건 아닐까 하는 말이다.

 

     만약 그런 거라면, 우리의 생각을 다 같이 바꾼다면, 조금 다른 세상을 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무슨 대단한 세상까지는 아니라도, 우리의 삶을 그렇게 바꿔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는 하기 싫고, 엄마의 잔소리도 듣기 싫어 무작정 집을 나와 버린 택일(박정민), 우연히 군산의 한 작은 중국집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일견 조금 무겁게 진행될 것 같은 분위기지만, 택일이 중국집에서 만난 주방장 거석이 형(마동석)이 등장하는 순간 확 바뀐다. 그 우람한 덩치에 곱게 단발머리를 하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가 어떤 분위기로 진행될 지가 딱 보인다. 이건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코미디다.

 

     덩치답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왠지 쪼잔한 모습을 풀풀 풍기는 거석에게는 뭔가 숨겨진 과거가 있어 보였고, 거의 예상했던 그대로의 그림이 풀려 나온다. 거석과 택일, 그리고 중국집 식구들이 투덕거리는 게 영화에 웃음을 주는 주요 요소인데, 그 핵심은 우람한 덩치에 소녀 머리를 하고 있는 마동석 캐릭터에 있다. 그러니까 비주얼로 끌어내는 매우 단순한 웃음이란 거.

 

 

 

 

     문제는 이 캐릭터가 워낙에 강력해서, 정작 주인공 격인 택일이 오히려 묻혀버린다는 점이다. 택일이 겪고 있는 고민은 물론 작은 고민은 아니지만, 또 따지고 보면 그냥 엄마랑 싸우고 집 나온 철부지 수준인데다, 하는 짓도 그리 귀엽지도 않다. 애초에 공감이나 몰입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캐릭터였고, 더 강력한 캐릭터도 바로 옆에 있으니....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니, 생긴 것 가지고 웃기려는 모습이 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심지어 영화에는 또 다른 상투적 코드인, “착한 조폭 해결사 법칙도 등장한다. 엄마가 사채업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택일은 간절히 거석이 형의 도움을 요청하고, 처음에는 퉁명스럽게 반응하던 그도 서둘러 와서 해결해 주는 것. 도대체 우리나라 조직폭력배는 경찰보다 우수한 정의구현의식을 가지고 있는 건지.

 

     ​영화가 전반적으로 산만한 감이 있다. 택일의 친구인 상필(정해인)이 아는 형의 소개로 사채업 말단으로 들어갔다가 벌어지는 사고들, 갑자기 나타난 빨간 머리 소녀의 이야기 등은 약간 갑작스럽고, 다른 이야기들과 따로 도는 느낌이다.

 

 

 

 

     유쾌한 소동 정도를 기대하고 보기 시작했다면, 예상보다 작은 소동과, 어디선가 봤던 듯한 뻔 한 장면들의 연속, 마동석 캐릭터 하나에만 기대고 있는 허술한 구성 등으로 살짝 실망할 것 같은 영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