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신보 아키유키 감독, 스다 마사키 외 목소리 / 알스컴퍼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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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하는 후회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좀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생각보다 오래 남아 우리를 괴롭히곤 한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그 후회를 하게 만든 결정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될까.

 

     ​이 작품에서 주인공 노리미치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마을의 불꽃 축제를 앞둔 어느 날, 엄마의 재혼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나즈나는 심란한 마음에 충동적으로 노리미치에게 그날 저녁 축제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려 한다. 그러나 수영시합에서 노리미치가 아닌 유스케가 이기면서 유스케에게 신청을 하게 되고, 유스케가 그런 나즈나를 바람맞히면서 일은 어긋난다. 가출을 감행하려던 나즈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끌려가고, 그 순간 노리미치는 나즈나가 떨어뜨린 신비한 구슬을 던지면서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번엔 수영에서 이기고 나즈나에게 축제에 가자는 말을 듣게 된 노리미치.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주저주저 하는 사이 몇 번이나 나즈나는 집으로 끌려가고, 노리미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나즈나와 함께 있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고백하는 노리미치.

 

 

 

 

     어떻게 보면 첫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순한 학원물로 보인다.(실제로 영화 포스터 중 하나의 문구도 그런 식이다. ‘첫사랑은 타이밍이다같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위에서도 말했던 후회라는 키워드가 좀 더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 노리미치는 나즈나와의 관계를 진행시키면서 수많은 후회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얻었지만 좀처럼 후회의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또 다른 후회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야 상영시간이라는 제한 속에서 이런 후회의 사슬이 어느 시점에서 멈춰야했지만, 실제의 삶으로 돌아간다면 노리미치는 또다시 수없는 후회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으로 그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어쩌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과거 어느 한 순간에 내린 결정에 온전히 메여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실은 수많은 선택과 행동이 조금씩 쌓여서 오늘 우리의 현실을 구축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단지 어느 한 가지 선택을 바꾼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다

 

     ​과거의 후회되는 선택을 바꾸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굳이 타임 패러독스와 같은 것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재를 바꾸기 위한 그 목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정말 그걸 바란다면, 몇 번의 선택이 아니라 그런 선택을 내리는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바꿔낸 현실은 결국 뭔가 조금씩 비틀린 모습일 듯도 싶고. 어쩌면 영화 속 노리미치가 마주한 세상 속 불꽃의 독특한 모습들(평평하게 터지거나, 꽃잎 모양이 되거나)은 그런 생각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결말이 좀 아쉽다. 이야기가 충분히 마무리되지 못한 느낌인데, 감독의 고민이 충분치 못했다고 할 수도 있고, 이 정도의 동화 같은 마무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쪽이라고 하더라도 보는 사람을 충분히 만족시키지는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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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을 펼칠 작정이었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스파르타인을 포함해서 인간이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단계에서 정론을 들으면

반드시 거기서 불평을 터뜨릴 요소를 찾아낸다.

그러나 현실앞에 두고 정론을 들으면

진심으로는 납득하지 못해도 그 정도에서 마무리하려는 마음이 들고

대응 또한 부드럽게 바뀌는 경우가 많다.

 

- 시오노 나나미, 그리스인 이야기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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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일반판
웨스 앤더슨 감독, 에드워드 노튼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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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20세기 초반, 주브로브카라는 가상의 국가(배경으로 볼 때 알프스 근방이 아닐까 싶은)의 유명한 호텔인 그랜드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벌어진 소동을 코믹하게 그려낸 영화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비주얼적인 부분인데, 온통 분홍빛으로 장식된 호화 호텔과 호텔 직원들의 보랏빛 목장들, 그리고 하얀색 눈으로 가득 한 세상 등 눈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심지어 영화 후반부 파시즘군대에 징발당해 새롭게 장식된 호텔에는 치명적인 검은색과 핑크색으로 디자인 된 ZZ(아마 나치의 SS기를 패러디한)가 장식되어 있다. 과장된 색인 핑크(와 그 어두운 버전인 보라)를 사용해 이야기의 분위를 붕 띄우는 느낌이랄까.

 

     ​여기에 두 주인공인 호텔 총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스)와 갓 로비 보이로 들어온 제로(토니 레볼로리)의 조합도 흥미롭다. 호텔과 마찬가지로 과장된 성격의 그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연극처럼 만드는 효과를 준다. 여기에 나이는 어리지만 구스타브에 비해 훨씬 침착한 조제가 따라다니며 살짝 가벼운 무게추처럼 분위기를 잡아준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서구식 다크 코미디가 짬뽕되어 있다. 문득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포인트들인데, 박장대소를 하게 만드는 유쾌함과는 살짝 거리가 있어서 호불호가 좀 갈릴 듯. 살인사건과 킬러의 등장으로 좀 잔인한 장면도 있고

 

     가장의 배경에서 가상의 인물들이 조합해 나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판타지에 가까운 영화인 데다가 처음부터 과장된 진지함으로, 도리어 너무 진지하게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냥 가볍게 보고 즐기면 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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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나사렛 예수와 관련해

정말로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틀을 찾는 것이었다.

신비를 보존하기 위해서,

즉 교회가 진리로 발견한 것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지적 뼈대를 세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앨리스터 맥그래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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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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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는 블랙 기업이라는 용어가 있다. 직원들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착취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회사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식의 사례는 크게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간호사들 사이의 태움이라는 악랄한 관습으로 수많은 저 연차 간호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모 회사에서는 여직원들을 성적 도구로 보는 듯한 인습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대한항공 창업주의 후손들이(그리고 여기에 회장의 부인까지 가세한) 하나같이 보여주는 수준 이하의 갑질들을 보며 사람들은 경악을 했었다. 재벌 3, 4세들이 보여주는 일탈을 넘어선 범죄들과 대기업들이 경영차원에서 저지르는 온갖 엉터리 행태들을 보면, 기업의 총수가 구속되었더니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는 우스운 뉴스도 이해가 된다.

 

     ​저자는 이 문제가 군대식 문화가 이식된 비민주적 기업운영 행태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건 단지 개인의 행복을 줄이는 정도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수준에까지 왔다(83)고 말한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에서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이유도, 단지 연봉과 복지수준만 낮은 것이 아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직장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최소한 직장 내에서 불합리한 일이 일어났을 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갖춰져야 한다.

 

     책에는 이를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담겨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역시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다. 특별한 법령을 제정할 필요도 없이 의지만 있다면 간단히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단다. 민간 기업에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정부와 공기업에서부터 시작하고, 정부와 거래가 이루어질 때 이 인증에 일종의 가산점을 부여하면 어느 정도 확산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본다

 

     ​물론 이뿐 아니라 직장 민주주의를 위한 매뉴얼을 보급하고, 사실상 경영주에게 껄끄러운 직원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감사기능을 정상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기금들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의 제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과연 대한민국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로비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느릿한 변화의 속도를 우리가 얼마큼이나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변화와 개혁의 기회를 외면하고 지금 이대로만을 고수한다면 결국엔 우리 모두가 공멸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열정 페이니 인턴이니, 비정규직이니, 파견직이니 하는 괴상한 명칭으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너무 많아졌고, 그런 대우를 받는 이들이 온갖 것들을 포기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와 인건비 쥐어짜기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기득권층들은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최소한 일하러 간 곳에서 일만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간단한 요구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이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직전에 읽었던 저자의 또 다른 책(“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세상을 관조하는 듯했던 그 책의 논조와는 달리, 이 책에서는 다시 한 번 뭔가를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같은 해에 반 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낸 책답지 않게(물론 이 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요청을 받아 썼다고 한다). 다만 반년 먼저 나온 그 책을 보고 이 책을 보니, 저자의 목소리에서 약간 힘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이런 책은 고용인보다는 사용주, 경영자들이 읽어야겠지만, 늘 그렇듯 들어야 할 사람들은 자리에 없고, 안 들어도 되는 사람들만 앉아있지 않을까 싶다. 뭐 우리가 시작하는 일에서부터 바꿔나갈 수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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