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이야기하기보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나 시편은 이러한 토론을 거부합니다

시편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있습니다.


- 유진 피터슨물총새에 불이 붙듯』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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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인
김성수 감독, 니시지마 히데토시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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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건축회사에 다니던 주인공 타케토(니시지마 히데토시)이 집에 돌아왔을 때 죽은 아내를 만나게 된다. 곧 이어 집으로 닥쳐온 수상한 사람들은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하고, 가까스로 탈출한 그는 우연히 취재 차 일본에 와 있던 한국인 기자 지원(김효진)을 만나 함께 움직이기 된다.

 

     곧이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타케토가 아내의 집이라고 찾아간 곳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가 기억하던 것들은 모두 엉뚱한 내용들뿐이었다. 트루먼 쇼 같은 거대한 음모가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된다. 개봉한지도 오래된 영화인 데다 그리 유명하지도 않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감독은 이 스릴을 잘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물론 여기엔 주연을 맡은 두 배우의 열연도 한 몫을 하고.(특히 김효진의 일본어 연기는..)

 

 

 

 

     영화는 치매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를 중심에 두고 있다. 바이러스를 통해 인간의 기억을 흡수하고, 그렇게 기억을 흡수한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가면 흡수되었던 기억을 갖게 된다는 설정은 살짝 기괴했지만, 비슷한 내용의 영화적 스토리는 여러 곳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다. 그만큼 치매라는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깊은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일 것이다. 현대 의학 기술이 여전히 정복하지 못한 영역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사실 의학이 정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

 

      치매가 인간을 두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것이 우리의 기억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 기억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분명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걸 부정할 수 없으니까. 점점 자신의 기억이 사라져간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마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지켜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도 사고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주인공이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과정을 느릿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다. 온몸을 떨어가며 자신의 아내 앞에 털썩 쓰려져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누구이지를 묻는 장면은 살짝 전율도 느껴졌다. 영화 전체에서 비극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 (다만 이 감동이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쓱 사라져버리는 게 좀 허무한데..)

 

 

 

 

     ​영화의 중심 소재를 둘러싼 주변부 이야기가 조금 헐겁다. 이경영이 나선 다국적 제약회사 세력은 무슨 전문 용병회사나 첩보기관처럼 움직이고, 주인공이 곤란에 빠진 원인은 헛웃음이 날 정도로 단순한 동기였다.(뭔가 엄청난 음모 따위는 없었다.) 뭔가 영화에 다양한 요소를 더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썩 잘 어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좀 더 치밀하고 교묘한 음모가 있었더라면, 또는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변화에 아예 몰두해버렸다면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주인공의 명연기만으로도 볼 만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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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모든 것 - 위기의 자본주의, 가치 논의로 다시 시작하는 경제학
마리아나 마추카토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책의 원제를 보고 살짝 갸우뚱했다원래 이 책의 제목은 “The Value of Everything”인데번역하면 모든 것의 가치일텐데출판사에선 주어와 수식어를 서로 바꿔서 가치의 모든 것이라고 만들어 놨다이 정도 출판사가 번역의 실수를 한 건 아니었을 테고무슨 이유였을까.


     책을 읽어 나가며 조금씩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원제인 모든 것의 가치는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싶어 하는 중심 소재인 ‘(경제학에서의가치’ 자체에 좀 더 중심을 두고 있다면번역한 제목인 가치의 모든 것은 그 가치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론과 관행적 사고 등을 두루 가리키는 듯하다이렇게 보면 책 전체의 내용을 잘 설명하는 번역 제목일지도...



     책은 경제학에서의 가치이론을 다루고 있다이것이 중요한 이유는어떤 것에 진짜 가치가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그것에 제대로 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저자는 경제학의 간단한 역사를 반추하면서초기 경제학자들은 가치를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로 보았으나현대에 와서는 단지 사람들의 선호가 가격과 가치를 결정한다는 이상한 교조주의가 나타났다고 본다.


     이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기준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제 누가 더 말을 잘 하느냐이름을 잘 갖다 붙이느냐가 중요해지게 된다말 몇 마디로 별 가치도 없는 것들이 대단히 중요해지게 되거나실제보다 그 가치가 훨씬 더 부풀려질 수도 있다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금융을 꼽는다.


     오늘날에는 경제 전반의 금융화가 이루어지면서각종 복잡한 금융기법이 마치 가치를 창조하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키고 있다애초에 부의 부드러운 이전과 중개 등을 담당할 뿐이었던 금융이이제 온갖 투기소요를 일으켜서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 과정에서 가치의 왜곡이 일어나고부가 소수의 투기세력에게 몰리게 된다.


     여기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가치생산의 차원에서 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어왔다는 점이다오늘날 경제학에서는 시장에 대한 맹목적 신앙이 점점 강화되면서경제에 정부가 실제로 끼치는 영향을 무시하고 왜곡하게 되었다저자는 정부가 실제로 가치를 창조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도 유튜브와 공중파를 가리지 않고소위 금융전문가들이 출연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주요국의 주가가 어떻게 되는지를 스포츠 중계하듯 보고하는 일들이 넘쳐난다물론 증시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지표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하지만 오늘날 이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정말로 그 기업 가치를 반영하는 투자일까?(그렇게 매일처럼 기업가치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정상일까?) 이미 주식은 상당 수준 실제 가치와는 상관없는 투기판으로 변한지 오래다그들만의 온갖 논리와 원칙을 갖다 붙이지만말잔치를 걷어내고 나면결국 사람들의 기대감을 두고 벌이는 도박처럼 보인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주가를 부양하는 것이 경제당국의 유일한 지상목표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전문가들이 많이 보인다물론 이들은 거기에 자신들의 밥줄이 달려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인정한다그런데 이 말은 이들이 결코 중립적인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그들도 이해당사자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말이다갈수록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도박의 판을 키우는 것 이상의 특별한 효과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 실물경제의 금융화가 문제인 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생각과 다르게이들이 가치 자체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금융 분야의 발달이 자본조달을 용이하게 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불러왔던복잡한 파생상품 같은 사기성 상품들을 말장난으로 만들어 낸 것도 분명 사실이다애초부터 말과 계산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리스크를 줄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세계적 추세는 물론우리나라의 상황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인터넷 은행 분야부터 시작해 금산분리 원칙은 점점 무너져 내리는 것 같고금융에 관한 규제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사기의 영역도 함께 넓어지고 있다물론 불필요한 규제야 정비되어야겠지만모든 규제가 악이라는 식의시장만능론은 입증된 적이 없는 상상과 믿음의 산물일 뿐이다.



     경제 영역에서정부의 역할에 대한 재발견도 중요한 부분이다단지 규제나 지원제도를 통해서만이 아니라정부는 실제로도 가치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오늘날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들은(예컨대, GPS나 인터넷 같은애초에 정부 주도로 개발이 이루어진 것들이었고막대한 세금이 투입되어 만들어낸 기술이 어느 정도 전망을 보인 후에야 민간 기업들이 뛰어들어 그 열매를 독차지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곱씹어 볼만한 부분이다.


     정부의 경제에서의 역할은 부실한 기업을 떠맡는 식의 패시브 스킬만 발휘하는 것이라는 편견어린 시선은 분명 잘못되었다사실 많은 정부가 이런 시각에 살짝 주눅 들어 있는 것 같다세금을 투입해서 만든 기술은 어느 정도 그 세금을 낸 국민들에게 이익으로 돌아가야만 한다소수의 기업가들이실제로 가치창출에 그 정도의 기여를 했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지나치게 많은 열매를 독점하도록 두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좋은 경제기여한 만큼의 보답을 받을 수 있는 경제일 것이다죽을 만큼 힘들게 애쓰는 데도 먹고사는 것이 힘든 상황이라면 어딘가 고장이 난 것이다이 책의 저자는 이런 상황이 가치의 기준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상당히 흥미로운 지적이고오늘 우리들의 경제구조는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게 만드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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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버려라)

못 버리면 쓰레기를 보관하는 데 집세를 내게 된다.

버리면 과거의 사건이 긍정적인 힘으로 바뀐다.


고도 도키오나쁜 습관 정리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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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20-08-11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추억은 우리에게 힘이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추억은 우리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겸손한 칼빈주의 -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칼빈주의자의 모든 것
제프 A. 메더스 지음, 김태형 옮김 / 좋은씨앗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겸손한 칼빈주의라는 독특한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일종의 반어법으로, 소위 칼빈주의를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의 고집스러움, 그리고 종종 과도한 엄격한 모습을 가리키는 제목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단어는 진정한 칼빈주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목표를 담고 있는 표현이다

 

     이 두 가지 의미는 책 전체의 구조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저자는 우선 소위 칼빈주의자들의 부적절한 처신들비타협적인 모습들, 분열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자세, 특정한 교리에 대한 과도한 헌신 같은(칼빈주의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적절치 않음을, 유쾌하지만 통렬하게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빈주의를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저자도 칼빈주의자다) 대신 저자는 칼빈주의가 본래 무엇인지를 풀어냄으로써, 앞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것은 도르트 총회에서 결의된 그 유명한 다섯 가지 칼빈주의자들의 선언인 튤립 교리다.

 

 

     솔직히 말하면, 튤립 교리에 담겨 있는 다섯 가지 선언은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교리였다. 아르미니우스와 그 후예들에 의한 교리적 혼란으로부터 정통적인 교리를 지켜내기 위해 신중하게 구성된 단어와 문장들이었다. 당연히 이 교리를 굳게 붙잡으면, 애초에 그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결기 같은 것에 물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 전투적으로 정리된 교리를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으로 새롭게 조명해 준다. 저자의 이 흥미로운 작업을 따라가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고, 그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도르트 총회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거기에 담겨 있는 교리는 이 책의 저자의 말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이 맞다.(비단 튤립 교리만이 아니라 모든 바른 교리는 결국 그런 목적지에 이를 수밖에 없다.)

 

     전적인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 속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으로 이어지는 이 다섯 가지 교리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그 과정을 묘사한 내용이다. 애초에 도르트의 선진들은 이 다섯 가지 교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려고 했었고, 여기에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상정된 아르미니우스의 주장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소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이 교리를 붙잡고, 원한이나 분노, 분열을 일으킨다면, 그건 정말로 은혜의 교리라고 할 수 있을까.(이런 차원에서 저자의 주장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글을 재미있게 쓰는 재주를 가진 저자다. 다만 지나치게 현대적인 (그리고 미국적인) 농담에 살짝 거리감이 생길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칼빈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개의 영문자는 튤립TULIP이 아니라 예수님Jesus이다.”, “튤립TULIP 교리는 본래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는 망원경이다.”처럼 눈에 쏙 들어오는 문구를 떠올릴 수 있는 재능까지 있다.

 

     저자는 교리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는 교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복음적 관점에서 교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의 시선을 환기시켜주고자 한다. 특별히 수없이 분열되어 있는 한국 장로교(이 중 상당수가 칼빈주의자들을 자처한다)에 필요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물론 애초에 그 사람들이 칼빈주의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더라면 이런 일들도 없었겠지만)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특히 이제 갓 신학교를 마치고 목회 사역에 나온 젊은 사역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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