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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자비
쉘던 베너컨 지음, 김동완 옮김 / 복있는사람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는 C. S. 루이스의 편지가 실려 있다고 해서, 그리고 어느 책에선가 루이스와 관련되어 있다는 언급을 본 적이 있어서 구입한 책이다. 나의 루이스 컬렉션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수 있으니까. 작가는 C. S. 루이스와 교류를 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고, 무엇보다 기독교인이 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책은 20대에 아내를 만나 열렬한 사랑을 했던 한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쓴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겨우 10여 년에 불과했다. 책의 초반은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으로 강력한 ‘빛의 성채’를 쌓았는지를 서술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그렇게 견고해 보이는 “성채”에 생긴 균열은 데이비에게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강렬한 죄의식을 깨닫게 된 그녀는, 두 사람이 완강히 거부하던 기독교로 한 발 내딛게 된다. 물론 이후에도 오랫동안의 여전히 필요했고, 결국 데이비가 먼저, 그리고 그런 데이비를 따라 작가인 쉘던도 기독교인이 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작가는 이 전에 두 사람이 함께 세웠던 “빛의 성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데이비가 지나치게 기독교에 빠지는 것을 염려하기도 하고, ‘물론 기독교는 좋지만 너무 빠지지는 말자’ 같은 얄팍한 이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한다.
그리고 결국 그 날이 다가오기 시작했고, 극심한 슬픔과 괴로움, 정신적 방황 끝에 작가는 아내의 죽음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조금씩 더듬어 발견한다. 여기엔 C. S. 루이스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는데, 루이스는 쉘던이 “데이비를 빼앗아간 하나님에 대한 질투”에 빠져 있었으며, 데이비의 죽음이 한편으로는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두 사람 사이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조언한다.(이런 조언은 충분한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할 수 없다) 이 책의 제목인 ‘잔인한 자비’는 여기에서 나온 것.
우선 작가가 영문학 교수였기 때문인지, 책 전체에 걸쳐서 세밀한 묘사나 장식적인 표현들, 그리고 직접 쓴 시가 자주 보인다. 사실 영문학이나 영시에 대한 조예가 별로 없는 나로서는 읽을 때 조금 덜컹거리는 부분이긴 했다.(애초에 번역을 해버리면 운율이라든지 그런 게 사라져 버리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영문학자였던 루이스와는 좋은 교류의 고리가 되었던 듯.
책을 읽고 난 후 조심해야 할 것은, 루이스가 쉘던에게 해 주었던 조언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제안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루이스의 편지는 일반 대중에게 쓴 것이 아니라, 쉘던이라는 한 개인에게 보낸 것이니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깊은 신뢰와 쉘던이 처해 있던 특수한 상황을 배제하면 이 조언은 조언으로서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심정이 참 아프게 다가온다. 이 점에서 C. S. 루이스가 쓴 『헤아려 본 슬픔』이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루이스는 쉘던이 아내를 잃은 후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몇 년 후 쉘던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헤아려 본 슬픔』을 보면 루이스가 쉘던에게 해 주었던 조언은 정확히 그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는 데도 적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훨씬 더 극렬한 감정적 동요와 함께.
배우자와의 사별이라는 경험을 신앙적으로 해석한 에세이. 이 모든 것이 실제 작가가 경험한 일이기에, 가볍게 읽을 수는 없었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