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러 영화제에서 여러 상들을 받기도 하면서 제법 유명해진 영화다작품은 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는데가장으로서 뭔가 제대로 성공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버지 제이콥(스티븐 연)과 그런 남편을 보며 조금씩 지쳐가는 아내 모니카(한예리), 두 사람이 일을 하러 가는 동안 아이들을 맡아주기 위해 한국에서 온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주요 인물들이다. (여기에 맏이인 딸과 둘째인 아들이 함께 산다)

 





     이야기 자체는 잔잔한 드라마처럼 진행된다. 80년대가 어떤 시대던가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군부독재정부가 장악하고 있었고해외여행 자체가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였다그런 상황에서 이민까지 왔다면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영화 속에서 그들은 일종의 탈출을 감행한 것으로 묘사된다각자의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던.


     하지만 무일푼으로 온 이민생활이 편할 리 없었다병아리 감별사로 수년 간 일하면서 겨우 가족을 건사하고는 있지만제이콥은 넓은 농장을 경영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는 모니카는 그런 제이콥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고사실 둘 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생각들이었다.


     진짜 문제는 이럴 때 생긴다어느 한 쪽이 완전히 옳고다른 쪽이 완전히 틀리다면 시간이 가면 자연히 해결이 될 테지만이런 경우는 결국 충돌을 하고 만다영화 속 부부는 그래서 위태위태해 보인다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다들 이렇게 어느 정도 옳은 면을 지니고(또 어느 정도는 틀린 면을 품은 채다른 사람들과 만난다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다.




 


     이런 부부 사이에 나타난 할머니’ 순자는 어떤 역할을 할까부부 사이를 접합시키는 접착제가 될까갈등을 유발시키는 문제가 될까영화 초반 순자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자식과 손주들을 위해서라면 힘들다는 말 한 마지 하지 않고 뒤치다꺼리를 감당하는그러면서도 매사를 자기 식대로 처리하는 그런 모습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그런 할머니를 처음부터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에 따라 조금씩 가족 안으로 녹아들어 간다그건 비단 순자가 뭔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감당(탁아)했기 때문만이 아니라후에 그녀가 병을 앓게 된 후에도 여전히 진행되는 현상이었다다시 말하면 그녀의 존재 자체가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것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미나리처럼 강한 생존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평생을 한국의 시골에서 살아왔던 듯한 순자가 갑자기 미국 땅에 발을 내딛는 것이 결코 쉬웠을 리 없었겠지만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족의 일원으로 뚜벅뚜벅 들어간다삶이 전쟁 같았을 그녀는 새로운 문제도 그저 겪어냄으로 풀고자 했던 것 같다.

 





     순자가 보여준그리고 미나리를 통해 깨달은 교훈을 제대로 새긴다면영화의 종반부에 일어난 사건도 아마 이 가족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아무데서나 잘 자라고여기저기 쓰임새가 많은 미나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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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 역사를 걷다 - 사회사로 읽는 공의회 그리스도교 낯선 전통
최종원 지음 / 비아토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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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자주 하는 말이지만좋은 책은 최소한 둘 중 하나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아주 창의적인 생각을 담고 있거나(루이스의 책들이 보통 여기에 속한다),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정리했거나이 책은 그 중 두 번째 요건을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고 있다이런 책을 낼 정도면저자의 다른 책들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

 


     개신교회에서는 공의회라는 것의 존재도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우선은 이게 가톨릭적인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듯하고개신교 특유의 얕은 역사의식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예컨대 우리는 근래에도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라는 식의 실현 불가능한 몰역사적 구호를 자주 들을 수 있다.(어떤 식으로 초기 기독교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것인지그에 앞서 그 시대에 관한 정확한 역사적 정리는 하고 있는 건지)


     그나마 조금 나은 상황이라고 해도흔히 초기 7개 공의회라고 불리는가톨릭과 동방교회그리고 개신교회에서 공통적으로 수용하는 결의를 도출한 공의회에 대해서만 조금 알 뿐이다사실 이 책도 아마 그 정도의 범위를 다루지 않을까 싶었지만책장을 몇 장 넘기면서 애초의 기대가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책은 그 일곱 번의 공의회가 끝난 후여덟 번째 공의회부터 20세기에 있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를 다룬다.


     책 제목에도 나와 있듯 이 책은 단순히 공의회의 결의를 신학의 변천사로 정리하지 않는다저자는 각각의 공의회가 열리게 된 원인을 역사적 배경 속에서 찾고자 했고자연히 책은 일종의 역사책처럼 되어버렸다물론 공의회를 중심으로 책이 구성되기에책 속의 역사가 균일한 속도로 흘러가지는 않는데예를 들면 종교개혁에 대항해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부터 제1차 바티칸 공의회까지는 수백 년의 시간이 갑자기 흘러간다.

 


     공의회들의 역사를 보면서 자연히 교회의 흥망성쇠를 따라갈 수 있다초기(여덟 번째)의 공의회들은 게르만족의 침입 앞에서 교회의 권위와 리더십을 지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이후에는 점차 교회의 세속권력을 확장하는 쪽으로 결의들이 이루어진다그러나 중세 후반 새롭게 등장한 민족국가들의 대두로 교회는 방어적으로 변해갔고종교개혁과 이어지는 종교전쟁기를 거치면서 점차 잃어가는 영향력에 대한 반발로 완고한 보수주의로 고착되어 나간다이성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현대에 와서는 신비적 교회를 천명하며 반동적으로 변해가던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와서 완전히 새로운 방향의 전환을 보여준다.


     1,500년 가까운 역사를 공의회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효과적으로 요약해 내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그리고 그 과정이 재미있기도 하니 금상첨화다특히 대부분의 공의회가 열렸던 중세 기간의 교회사에 대해서는 꼭 참고할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이미 저자가 쓴 다른 책 두 권을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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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너에게 알려 주는 게 

자기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할 땐

기분 나쁜 말을 들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왜 사람들은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건 

도리로 여기지 않는 걸까?


- 루시 모드 몽고메리에이번리의 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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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간 세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부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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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작가 아사다 지로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앞서 언젠가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리뷰에서도 썼던 것 같지만아사다 지로의 작품 속 인물들에게는 따뜻함이 묻어 있고삶에 대한 깊은 통찰도 짙게 배어 있다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읽는 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고향과 추억 같은 단어들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작품은 정년퇴임을 맞고 송별연에 참여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쓰러진 다케와키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있다수많은 튜브에 감긴 채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를 찾아온 가족과 친구들의 사연으로 시작된 1장을 넘어서면이제 이야기는 조금 환상적인 단계로 넘어간다그를 찾아온 묘한 인물들과 함께 병원 밖으로 나가는 다케와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다케와키 자신도 이런 만남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문을 끊임없이 품지만병원 침대에 누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채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심정으로 함께 외출을 하는데그렇게 환상 속에서 만난 세 명의 여자들은 사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음이 작품의 결말부에서 드러난다개인적으로는 거의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어서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이런 구성을 떠올린 작가에게 박수를.

 


     이야기는 결국 가족을 주제로 한다정년을 맞을 때까지 성실하게만 일해 왔던 다케와키에게는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다바로 비어 있는 호적이다언제인지도 모르는 어느 날그는 버려졌고시설에서 자랐다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이제 손녀들까지 본 상황이었음에도 그에게 이 빈 호적이라는 부분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 상처였다사회적으로는 안정적인 위치에 올랐지만자신의 뿌리에 관한 질문은 좀처럼 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가끔 해외로 입양되었던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부모를 찾고 싶다고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어떤 이유로든 자신을 생면부지의 외국인들에게 보내버린 부모임에도 다시 찾고 싶고만나고 싶다는 그 심리는 무엇일까어쩌면 나무가 뿌리가 없이 설 수 없는 것처럼우리도 뿌리를 확인해야만 바로 설 수 있는 걸까.

 


     읽을 때마다 만족을 주는 작가다다시 한 번 기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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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우리나라는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인 야당 정치인을 가택연금하고 도청하는 일이 공공연한 비밀이던 시절이었다그보다 10여년 전 미국에서는 도청을 이유로 대통령까지 하야하는 일이 벌어졌건만정치적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여전히 수십 년째 군부독재가 이어지면서독재정권의 부역자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애국이라고 정신승리를 계속하며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영화는 좌천된 도청팀원인 대권(정우)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오마주한 듯한 정치인 의식(오달수)의 옆집으로 이사가 도청하는 과정이 중심이 되는데그의 도청팀은 하나같이 어리숙해서 이야기가 지나치게 무겁게 흘러가지 않게 만든다도청을 하는 사람과 도청을 당하는 사람이 결국 이웃으로 발전한다는 이야기는 분명 환타지이지만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상상은 충분히 든다.


     영화 속에서는 의식이 딸이 살해되는 아픔 속에서도 결국 대선에 출마해 당선이 되었지만우리의 실제 역사에서는 야권이 분열되며 다시 한 번 반란수괴 중 하나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씁쓸한 결과를 맞았었다.(물론 그 이전에도 박정희가 영구독재를 꿈꿀 정도로 이 나라 국민들은 그를 뽑아주고 또 뽑아주었지만.) 부끄러운 일이다역사는 꿈꾸는 것처럼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

 





     정치인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영화 자체는 정치 영화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하다뭐 사실 정치가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의식이 우유만 먹으면 배탈이 나면서도 매일 아침 우유를 시켜 먹는 장면이다


     의식과 꼭 같은 증상(아마도 유당분해효소가 없나보다)을 가진 대권이 그 이유를 묻자의식은 낙농업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마시면 자신의 동료들이 마시고그러면 더 많은 국민들이 우유를 마셔 그들을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한다무릇 정치 지도자라면 이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재보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이 즈음유력한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당선되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장미빛 그림을 사람들의 눈앞에 그려주기 바쁘다과연 그 모든 일들을 일개 시장이그것도 절반의 임기 동안 다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지만 말이다. C. S. 루이스는 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비전을 사라고비전을 판다고 사방에서 난리입니다하지만 저는 하루하루 정당한 소득을 위해 일할 사람뇌물을 거절할 사람없는 사실을 지어 내지 않을 사람자기 일에 숙달한 사람이 아쉽습니다.

 

     우리가 봐야 하는 건 그들이 보여주는 일어나지 않은 그림이 아니라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 왔는지다내게 이익을 챙겨주고또는 내 이익을 위해 일할 수하들을 챙기는 조폭 두목 같은 것들이 아니라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꾼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었는지비전팔이를 하고 있는 수많은 정치꾼들 가운데서우리는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가려낼 정치적 식견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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