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책] 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

6일 [책] 공정하다는 착각

7일 [영화] 자산어보

10일 [책] 현안: 시대 논평

14일 [영화]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15일 [책]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나니아 여행

18일 [책] 초록지붕집의 마릴라

19일 [영화] 승리호

20일 [책] 완전한 풍요

23일 [책]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25일 [책] 백인의 취약성

26일 [책] 아무래도, 고양이

28일 [책] 동물들의 장례식

30일 [영화] 49일의 레시피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이 몇 권 끼어있어서

읽은 권수는 조금 늘어났던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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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동양에서 사람이 죽으면 바로 저승으로 떠나지 않고이 세계에 49일 동안 머문다는 이야기가 있다그래서 소위 49제라는 의식을 치르기도 하는데죽은 이가 편안하게 떠나기를 비는 의식이다아마 그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유족들도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가 될 수 있을 테고일종의 종결의식을 치렀던 것 같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바로 그 의식이 있다그러나 흔히 떠올리는 것처럼 검은 상복을 입고 죽은 이를 추모하는 엄숙한 의식이 아니라, ‘파티로 그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남은 가족들이 그 날을 준비하는 이야기다조금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죽음을 꼭 우울하고 괴롭게만 마주하라는 법이 어디 있던가.


개인적으로 내가 죽으면 천편일률적인 장례식 같은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특히나 오늘날 기독교인의 장례식에 가보면이건 기독교적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솔직히 말하면 이것저것 적당히 섞어서 만들어 놓은 짬뽕 같다.)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장례식이 왜 이렇게 음울할까


한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내용 중 하나는내 장례식에는 카레우동을 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싶긴 하지만조금은 더 유쾌하게 마지막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이 영화를 보면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

 





발자국 책.

영화의 제목에도 나오는 레시피는 죽은 오토미가 남긴 카드형태의 책을 말한다오토미는 오래 전부터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는데아이들이 시설을 졸업해야 하는 때가 되면그 아이들에게 발자국 책이라는 걸 만들어 주었다여러 이유로 시설에 보내진 아이들에게 좋은 과거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속 파티도 그런 시설에서 나온 청년 이모(니카이도 후미)가 나타나면서 준비가 시작된다무거운 집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소위 갸루 느낌)과 경쾌한 목소리로 등장한 그녀는환대하지 않는 가족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오토미로부터 받은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 꿋꿋이 일을 해 나간다.

 

사실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그녀도 나름의 상처가 있었다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그녀에게 과거는 지워버리고만 싶은 시간들이었을 것이다.(이건 시설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그런 아이들에게 오토미가 만들어준 발자국 책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우리는 누구나 과거라는 흙에 뿌리를 박고 거기서 양분을 얻으며 자라니까.

 





발구름판.

영화 속 이모의 출신 시설은 리본하우스라고 불린다장식으로서의 리본(ribbon)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의 리본(reborn)일 듯하다오토미의 49일 파티에 그녀가 돌봐주었던 시설의 청년들을 초청하려는 계획을 밝히자오토미와 함께 봉사를 해 온 노부인은 그 아이들을 초청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아이들은 시설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지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곳은 아이들에게 발구름판 같은 곳이니일단 뛰어 오르면 돌아올 필요가 없다는 말과 함께.


넘어져 있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고마침내는 높이 뛸 수 있도록 해 주면서 정작 자신은 발구름판처럼 남아 잊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런 발구름판들이 많은 사회는 얼마나 건강해질까다음세대가 누려야 할 것까지 악착같이 약탈해 오늘 재물을 축적하는 기성세대들만 보던 눈이 신선해지는 느낌.


우리는 누군가에게 발구름판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새엄마.

영화 속 오토미는 유리코(나가사쿠 히로미)의 새엄마였다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소개시켜준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는 일이 어디 쉬웠을까함께 가족끼리 공원을 갔던 그 날유리코가 일부러 오토미가 싸온 도시락을 바닥에 떨어뜨린 건어린 아이의 반항이었을 것이다하지만 뻔히 보이는 그런 행동에 화대신 미소로 대응해준 오토미는 엄마였다.


영화 속 유리코는 남편의 외도로 친정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 10년 가까이 아이를 갖지 못했던 유리코는남편의 아이를 가졌다는 불륜녀의 전화에 버틸 수 없었다그런 유리코는 친자식도 아닌 자신을 정성껏 키워준 오토미의 모습을 돌이켜 보며꼭 배 아파 아이를 낳아야만 엄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와 관련해서 한국 사회는 모순적인 사회다한쪽에서는 전근대적인 핏줄 운운하며 집착을 하는가 하면또 한 편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버려진다인연은 꼭 맺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맺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인연을 만들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을 정성을 다해 대하는 것그러면 되지 않을까.


 

일본영화 특유의 일상 속 감동이 잘 느껴지는 영화다추천하고 싶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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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장례식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치축 지음 / 고래뱃속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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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큼직하고 시원한 유화 느낌의 그림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미술 작품 도록을 보는 느낌의 동화책이다글씨는 한두 문장 정도로 최소화해서 구석 쪽에 배치했다그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짠한 느낌.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책의 주제로 적절할까 싶기도 하겠지만죽음이라는 게 어디 시간표에 맞춰 찾아오던 일인가개인적으로 주변인의 첫 죽음을 마지한 건 초등학생 때였다큰 아버지가 돌아가셨었는데교통사고였다이후로 친가외가 쪽의 할아버지할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셨고작은 아버지도 한 분그리고 아버지도 돌아가셨다.(첫 죽음과 마지막 죽음 사이에 20년 이상이 흘렀다)


     알고 모르는 여러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했지만죽음이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인 것 같다그건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하지만 그렇게 죽음을 멀리 떨어뜨려놓는 건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고려해 볼 기회가 사라진다는 말이기도 하다곳곳에서 나타나는 생명경시풍조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책에는 동물들이 어떻게 죽음을 마주하는지가 묘사된다죽어가는 친구가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따라가는 돌고래들이별의 순간 한 데 모이는 까마귀들죽어가는 친구를 끝까지 쓰다듬으며 함께 해 주는 코끼리들 등등그리고 마지막엔 사람들이 어떻게 죽은 이를 기리는지를 한 컷의 그림과 함께 묘사한다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사람의 죽음이었던 것 같다.


     작가는 그래도 다시 우리의 삶은 또 시작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어쨌든 산 사람들은 또 살기 위해 나서야 하니까괴롭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괴로움들을 견뎌내면서 조금씩 성숙해져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이런 어려운 이야기까지 가르치기는 힘들겠지만그래도 함께 읽어주다 보면 뭔가 와 닿는 부분도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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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들은 가장 낮은 등급의 독자들이 가장 즐겨 읽습니다

등급이 가장 낮은 이유는

독서가 그들을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도록 거의 돕지 않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이미 너무 많이 하고 있는 도락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책과 삶에서 얻을 가치가 있는 것 대부분을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C. S. 루이스오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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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고양이 - 닿을 듯 말 듯 무심한 듯 다정한 너에게
백수진 지음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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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에 사는 길냥이 나무를 입양해 5년 간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에세이로 엮어 낸 책원래는 한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이라고 한다매체에 맞게 각각의 이야기의 분량은 그리 길지 않고한 눈에 읽기에 좋을 만한 정도다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무를 처음 만나고입양하는 과정그리고 함께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소동들고양이와 함께 살 때 느낄 수 있는 만족감 등대체로 가볍고 포근한 이야기들이지만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의 일종의 소회를 담고 있는 마지막 4장의 경우는 아주 조금 주변의 시선에 대한 진지한 반응이 담겨 있다.

 


     최근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보인다유튜브만 봐도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채널이 몇 개씩이나 존재하는 걸 보면(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왜 자꾸 나에게 고양이 영상들만 추천하는가...), 확실히 이야기가 되는 주제인 듯하다다만 그 중에서도 내가 계속 찾아보게 되는 이야기는고양이를 고양이로 인정하는 채널들이다.


     무슨 말이냐면종종 어떤 이야기들에서는 고양이를 지나치게 의인화해서 마치 사람인 양(대개 이 경우 어린 아이로 치부된다인위적인 구도를 만들려고 하는 경우들이 보인다일부에서는 카메라 앞에서 고양이가 좀 더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촬영을 앞두고 밥을 굶기기까지 한다는 소문도 있으니...(생명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들은 지옥에 떨어지길)




     사실 도시라는 공간은 고양이에게 자연스러울 수 없는 자리다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 구조물들 속에서 고양이들의 건강과 생명은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다특히나 길에서 사는 길냥이들은 원래 수명의 1/3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이 외로운 생명들을 위해 먹이를 챙겨주고 쉴 곳을 마련해 주는 일은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다만 그 녀석들의 에 우리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건 조심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물론 자연스럽게 녀석들과 교감을 하게 되는 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이 책에서도 살짝 언급되듯인간의 시간과 고양이의 시간은 다르다우리가 보기에는 귀엽고아기 같다고 하더라도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된 경우가 많다어느 정도 인공적 환경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가능하면 녀석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책 전체에 묻어있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잘 와 닿는 내용이다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킥킥대면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도 많고개인적으로는 즐겁게 읽었다. 그리고 문장의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작가의 섬세함도 마음에 든다. 이런 집사와 함께 사는 고양이라면 그래도 행복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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