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


영화는 죽은 사람들을 주술의 힘으로 다시 살려낸다는 설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되살아난 존재들은 엄청난 힘과 운동능력으로 목표가 된 대상을 살해하는 데 집중하고는목적을 이룬 후에는 흙 인형처럼 부서져 버린다.

 

꼭 좀비를 떠올리게 하는 이 존재는 영화 속에서 재차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요새 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좀비와 다른 점이 있다면재차의는 그것을 만든 주술사에 의해 전적으로 조종된다는 것하지만 뭐 좀비의 원형이 되는 전설에도 부두교의 주술사가 등장하니 비슷한 걸까.


보이는 인간은 모두 공격하는 좀비와 달리 이쪽은 공격하는 이유가 존재하기에 단순히 쫓고 쫓기는 경주보다는 사연을 추적해 나가는 맛이 있다때문에 영화는 레지던트 이블보다는 전설의 고향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다우리의 옛 전설 속 귀신들이 그러하듯이 재차의에도 슬픈 사연이 존재했으니...




 


사과.


재차의를 만든 주술사는 한 제약회사의 회장과 임원들에게 사과를 요구한다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관련자들을 하나씩 살해하겠다는 협박과 함께영화가 진행되면서 사건의 원인에 제약회사의 불법적인 인체실험이 있었음이 드러난다처음에는 노숙자들을나중엔 불법체류자들을 동원했고실험에 끌려간 이들이 모두 사망했다는 이야기.


하지만 현실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그러하듯영화 속 기업의 회장도 좀처럼 사과를 하려 하지 않는다그리고 이 때부터 우리는 누구를 응원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진다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이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기업과 죽은 백 명을 살려내서 그 기업에 복수를 하겠다는 주술사 중 누가 더 나쁜 놈일까.


기업범죄의 상당수가 경영행위로 판단되어 관대하게 넘어가는 우리나라에서이런 질문은 더욱 와 닿는 것 같다자기가 일을 시켜서 사람이 죽어도 경영자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는(현장 관리자만 처벌받는상황에서비용감축을 위해 사람을 갈아 넣는 일이 발생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그들이 늘 언제나처럼 사과를 건너뛰고, ‘몰랐다’, ‘안타깝다’,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뻔뻔한 립 서비스만 하고 넘어가는 건, 7할은 책상물림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법부 책임이다.

 






짜임새.


영화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드라마로 제작된 전작을 이어받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드라마를 직접 보지는 못하고유튜브에 올라온 요약 홍보 영상만 봤다). 주인공인 독립언론 기자 진희(엄지원)와 방법사(주술사와 비슷한 의미소진(정지소)의 관계는 영화에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전작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가 충분히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사실 이런 영화가 캐릭터 쇼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데방법사 역의 소진이 이번 영화에서 보여주는 부분이 매우 적어 보인다오히려 기자로 이리저리 사건을 따라가기만 하는 진희의 분량에도 못 미치니까... 사건을 시원하게 해결하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해버리면이 캐릭터 쇼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영화는 앞서 언급했던 전설의 고향’ 식의 권선징악으로 결말을 내려고 했던 것 같지만이 부분도 그리 시원치는 않다최종 흑막을 처리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가볍고그에 앞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 샌가 잊혀버렸다사실 이런 내용들을 충분히 풀어내는 데는 영화보면 드라마가 좀 더 적합한 플랫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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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룩스 크리스티
박지훈 지음 / 좋은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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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보기 드문 기독교 소설이다기독교 분야에서도 제법 많은 책들이 매일 쏟아지고 있지만유독 소설이라는 분야서는 그리 많은 작품들이 보이지 않는다물론 서양 작가들의 책은 조금 보이지만(예를 들면 윌리엄 폴 영이 쓴 오두막』 같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은 더더욱 적다이 책은 그런 출판 상황 가운데서 기독교 소설을 표방하고 나왔다시도 자체는 고무할 만한 일이다.


     왜 기독교 소설이라는 장르는 적을까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꼭 판타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소설을 쓴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과 같다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세계는 대부분 온전치 못하기에 버려지고 만다물론 특정한 주장을 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옷을 입은 글을 쓸 수도 있다그러나 그런 세계에는 독자가 들어갈 수 없기에먹음직스럽게 만든 플라스틱 전시물처럼 느껴질 뿐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기독교 소설이 갖는 주제의 한정됨 때문일 것이다많은 기독교 작가들은 자신의 신앙을 독자에게 전하고 설득하기 위해 작품을 쓴다물론 이 목적이 틀린 것은 아니다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으니까하지만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이 시종일관 전도일 뿐이라면그 사람과의 대화는 쉽게 피곤해질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 속 세계가 그리 실감나지도 않고그 안에 들어가서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기도 어려웠다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물들의 대화 말고 다른 부분에 관한 묘사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인물들은 서점으로강의실로왔다 갔다 하지만 독자로서는 전혀 그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이들이 어디 잠수함 속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두 가지 주제가 개인적으로 썩 잘 조화된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주인공은 서양문화사 수업 과제를 위해 십자가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동시에주인공이 꾸는 꿈을 통해 복음서의 십자가 처형 장소와 이어지는 경험을 한다.


     문제는 이야기의 핵심에 십자가에 관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인데그 핵심에는 십자가를 기복주의적 상징물로 변질시키는 작업이 있었다는 것이다하지만 기독교의 기복주의화가 십자가의 의미 전환이라는 작업을 통해 일어난 것일 리 만무하고(그런 불필요한 작업 없이도 일어났을 것이다), 이게 주인공이 꾸는 꿈그리고 회심과 직접적인 연계가 되는 부분도 별개의 사건처럼 느껴진다.

 


     물론 소설의 주제의식은 쉽게 동의할 수 있다하지만 충분히 좋은 이야기소설로서의 문학으로는 조금 아쉬운 점이 많았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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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기억상실은 근본주의의 가장 큰 결점 중 하나였다

근본주의 운동은 종종 진짜’ 교회의 역사가 

초대교회에서 뛰어올라 마틴 루터에 잠깐 착지한 다음 

이십 세기 초의 근본주의자-근대주의자 논쟁으로 

건너뛴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처드 J. 마우톱밥 향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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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문장들 - 삶의 마지막 공부를 위하여
김이경 지음 / 서해문집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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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죽음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접했던 건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큰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는데사촌형들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왜인지 나더러 상주가 되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장례 절차 내내 함께 했었다병원의 시신안치실에도 처음 들어가봤고아마도 시신을 직접 마주한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마음과 머리를 어지럽혔던 기억이었다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고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의무만 가득한그러면서도 죽음이라는 무거운 상대를 아무런 준비 없이 대해야 했던 경험의 여파였다.

 


     오래 전부터 죽음을 공부해 온 이 책의 작가는 우리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죽음을 공부한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건가 싶었는데아마도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여러 책들을 읽으며 생각의 깊이를 늘려온 것을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은 그런 작가가 공부한 내용을 짧은 글들로 풀어내 모은 에세이집이다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아버지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떠올랐던 단상들을 담았고, 2부와 3부는 죽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매 이야기의 첫 머리마다 죽음에 관한 다양한 작품들에서 발췌한 문장들이 실려 있다그것만 읽어도 꽤 흥미로울 듯하다그리고 책 마지막에 실려 있는아마도 작가가 그동안 읽어왔던죽음에 관한 많은 책의 제목들을 보면저자가 죽음을 공부해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게 와 닿는다무슨 대학에서 학위과정을 진행한 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공부를 제대로 해 온 듯하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주제가 자연과학처럼 실험으로 검증하거나 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것그렇다고 인문학이나 사회학처럼 경험들을 모아서 일종의 추정을 할 수도 없다는 점은 결국 공부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결국 유물론적 관점을 지니고 있는 작가에게서 나올 수 있는 죽음의 교훈은그것이 현재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주로 심리적인 부분에서의영향을 준다는 생각에 기초한 내용에 한정된다.


     물론 작가의 통찰 중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데 곱씹어 볼 만한 내용들이 여럿 보이기도 하고특히 죽음과 관련된 제도라든지 관습 등에 관한 내용은 여러 모로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그리고 유물론자라고 해서 모두가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 않다는 것도 편견이다어차피 우리가 살을 맞대고발을 딛고 사는 세상은 현실이니까.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좋다죽음이라는 주제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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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21-09-1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가방님^^ 당선을 축하드려요~~

노란가방 2021-09-10 16:13   좋아요 1 | URL
오홋.. 감사합니다. 알라딘 메일보다 하양물감님 댓글을 먼저 보고 알게 됐네요! ^^

서니데이 2021-09-10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노란가방 2021-09-10 21:10   좋아요 1 | URL
에고 감사합니다. ^^

stella.K 2021-09-10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합니다.
참 성실히 쓰시는데 이렇게 간만에 한번씩 되니 제가 다 기쁘네요.ㅎㅎ

노란가방 2021-09-10 21:11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저는 그냥 습관형 리뷰어(?)인지라 글 잘 쓰시는 분들이 받으시는게...
그래도 이렇게 한 번씩 적립금을 받으니 좋네요.
물론 바로 5만원어치 구입을 해버렸지만요.

그레이스 2021-09-10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노란가방 2021-09-10 21:11   좋아요 1 | URL
축하 감사합니다. 다들 어떻게 아시고 이렇게 축하를.. ^^

초딩 2021-09-1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노란가방 2021-09-11 15: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쓴 리뷰도 아니었는데 용케 눈에 띄었나 봅니다. ^^
 



책을 읽는다고 꼭 기분이 좋아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아

때로는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면서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거나 머리를 껴안으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며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시야가 탁 펼쳐지는 거란다

기나긴 등산길을 다 올라가면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야.”


- 나쓰카와 소스케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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