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환자의 머릿속에 이런 질문만 떠오르지 못하게 하면 돼

나 같은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옆에 앉은 저들의 다른 결점만 보고 

그들의 종교가 위선이자 인습에 불과하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C. S. 루이스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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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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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지만 괜찮은 통찰을 담고 있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비평서다개인적으로는 피로사회”, “아름다움의 구원에 이어 세 번째 손에 든 책이다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는 진통사회이다우리말로는 고통 없는 사회로 번역되었는데삶의 모든 부분에서 고통이라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미덕이 된아니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된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책의 시작부터 진통사회의 문제점이 날카롭게 지적된다고통에 대한 공포가 만성적인 마취상태를 초래하게 되고이는 사회적으로는 대결을 초래할 수 있는 갈등이나 논쟁을 제거하고정치적으로는 일치와 동의를 강제하고 압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갈등과 논쟁이 사라지고 일치와 동의만 남은 세상은 완전히 경직된끔찍한 전체주의적 사회일 것이다.


이런 진통의 기능은 다양한 요소를 통해 이루어진다삼성전자의 이재용도 빠져들었다는 프로포폴 같은 마약성 진통제가 남용되고마약 사건도 이전에 비해 그 발생빈도가 훨씬 늘어나고 있다저자는 그 이외에도 소셜미디어나컴퓨터 게임 역시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지적한다그 역시 인식과 성찰을 가로막고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렇게 아주 작은 고통조차도 제거해 버리려 애쓰더라도우리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동화 속 공주처럼두꺼운 매트리스 아래의 완두콩으로 인한 고통을 제거하면이제 매트리스 자체로 인한 고통을 느끼게 될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우리에게서 고통이 사라진다면 인간다움 또한 함께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고통에 대한 과도한 회피의식은 생존의 히스테리와도 같다오직 생존만이 전부가 되어버린 상태는 좀비와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

 


문장 하나하나가 현실을 날카롭게 베어내면서 그 안에 담긴 고름을 짜내 드러낸다중립중도가 선()인 양 가장되는 사회에서는 치열한 토론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양비론과 양시론밖에 남지 않은 언론의 뉴스에 볼 것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처음부터 진영논리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키클롭스 언론들은 애초에 버리면 그만이지만그저 모두 까기에나 열을 올리는 자칭 중립적 언론들도 쓸 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고통이 사라지면서 삶과 세상의 좀 더 깊은 의미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곱씹어 볼만한 부분이다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여행 사진음식 사진에서 인생의 좀 더 깊은 의미는 쉬이 발견할 수가 없다단지 현재를 즐기라는 지긋지긋한 메시지만 반복될 뿐사람이 달라지고장소가 달라지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고통과의 싸움고통을 제대로 직면하는 과정에서 사고는 깊어진다그러나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오래된 진리는 오늘날 어느 샌가 사라져버렸다모두가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에 쫓기고 있는 느낌이다대화를 해도 좀처럼 깊은 데까지 나아가기가 힘들고겉도는 경우가 태반인 이유다.

 


다만이렇게 고통을 제거하려는 과도한 시도가 일으킨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넘어가고통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와 닿아있다는 데까지 나아가는 게 과연 적절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통의 과도한 회피가 문제라면고통에 대한 과도한 집착 역시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사디즘 같아 보이기도).


좋든 싫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을 마주한다그건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재난이다(고통 그 자체는 선이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할 건 어떻게 그 고통을 잘 받아들이고 극복해 성장할 수 있을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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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간 나니아 - 나니아 연대기를 제대로 읽는 방법의 모든 것
샤나 코히 엮음, 김지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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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가 쓴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연구서혹은 해설서를 그간 여러 권 읽었다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책만 여섯 권이고우리나라 저자들이 쓴 책도 한 권 있었다그러니까 이번 책이나니아 연대기 해설서로는 여덟 번째 책이었다.


사실 그 동안 읽어왔던 나니아 연대기 해설서들은 대체로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었다책의 순서를 따라가거나 책의 주제를 따라가면서작품 안에 있는 성경적혹은 기독교적 의미를 풀어내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었고일부 문학적 가치와 기법을 설명하는 내용도 있었다.


이들 책들과 이번 책의 가장 큰 차이는이 책의 경우 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스물세 명의 필자가 자신의 경험과 느낌그리고 생각에 관해 하나씩 글을 내서 만들어진 일종의 모음집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스물세 명이든서른세 명이든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쓴 글들이라면 결과적으로는 별반 다를 바가 없어질 터그러나 이 책의 필자들은 정말 다양한 관점에서 나니아 연대기를 보고 있다심지어 그간의 해설서들과는 다르게 어떤 필자의 경우는 시종일관 루이스와 나니아 연대기에 대해 적대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런 특징 덕분에실려 있는 글의 수준도 제각각이다하나의 글의 길이 자체가 책 한 권이 아니라 한 장에 불과하기 때문에 충분히 설명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일부 필자들의 글은 끝까지 집중해서 읽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그리고 역시 그런 얕은’ 글은 대개 무신론을 강하게 피력하는 이들의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루이스가 회심을 할 어간에 강하게 느꼈다는 바로 그 생각그러니까 왜 이토록 무신론자들의 글은 삶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는 데 반해 훌륭한 기독교인들의 글은 세상을 이토록 잘 비춰주는가를 실감했다루이스나 그의 작품에 대한 비판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최소한 그 비판은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맹렬한 동물보호단체 출신으로 보이는 한 필자는루이스가 충분히 동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나니아 연대기” 안에서도 동물과 인간 사이의 위계질서를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투덜댄다그러면서 글의 나머지 부분은 루이스가 하지도 않은 말과 자신이 보기에 부당한 동물에 대한 학대의 사례를 잔뜩 싣는 데 할애하는데우선은 동물의 지위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왜 옳은지를 말하지도 못하면서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제한적 이해만을 드러낸다.


루이스의 여성관을 비판하는 필자도 보인다. “나니아 연대기” 속 여성에 관한 묘사가 20세기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게 그 주요 이유였다아마 같은 이유로 세종대왕의 내각에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이유로 그를 여성에 대한 심각한 반감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글만 있는 건 아니다짧지만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훌륭한 통찰을 담은 그들도 여럿 보인다신화가 가진 특별한 힘에 관한 설명(‘신화와 동화그리고 영화’)은 이미 다른 데서도 자주 봤던 내용이지만 훌륭한 요약이었고루이스가 그의 작품 안에 먹고 마시는 이야기를 자주 묘사함으로써 신비한 일과 평범한 일을 섞어내고 있다는 지적은 꽤 흥미로웠다루이스가 공간과 장소에 대한 묘사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도 다시 한 번 볼만한 부분이었고.


루이스나 톨킨 같은(그리고 그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조지 맥도널드도 포함해서공상과학소설의 선구자들의 글과 오늘날 작가들의 결정적인 차이를 지적하는 글은 탁월한 식견이 느껴진다그에 따르면 비종교적 관점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교조적인 믿음을 고수하느라오늘날 공상과학소설가들은 자기들만의 게토에 갇혀있다심지어 왕권신수설에 입각한 왕권이 존재하는 세계를 그리면서그 안 어디에서도 성당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허술한 성을 쌓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앞서도 언급했지만이 책은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가장 다양한 관점과 설명들을 담고 있는 해설서다이제야 읽었구나 싶은 느낌까지 주었던 책일부 따분한 내용도 있었지만, “나니아 연대기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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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5학년 4학년 남자형제 아이들에게 나니아 연대기 읽어주고 있어요.
장난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잘듣고 있네요
5권 새벽출정호의 항해 읽고 있어요
당선작 축하드려요~

노란가방 2021-11-05 17:58   좋아요 1 | URL
오..세상에.. 이런 (허접한) 리뷰가 당선이 되다니...ㅋ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전혀 뜻밖의 당선이라 훨씬 좋네요. ㅎ
아드님들과의 나니아 연대가 독서가 계속 좋은 시간이 되시기를

그레이스 2021-11-05 18:15   좋아요 0 | URL
제 아들은 아니구요^^
그냥 지인의 아들들^^

노란가방 2021-11-05 18:30   좋아요 1 | URL
아하? ㅋ

서니데이 2021-11-05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노란가방 2021-11-05 18: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변변찮은 글이 또 당선이 되어버렸네요. ^^;

초딩 2021-11-07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노란가방 2021-11-07 19:54   좋아요 0 | URL
에고.. 감사합니다 ^^
 


팬데믹에 빗대어 말하자면

본령상 백신까지는 아니어도 치료제 정도는 되어야 할 제도권 언론이 

인포데믹에서는 변이한 바이러스처럼 기능하는 것이 

오늘날 정보사회의 문제점이다

가짜 정보 중에서도 제도권 언론에서 생산한 

가짜 뉴스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예외적인 오보에 유의하며 이를 바로잡기보다는

 평소에 뉴스 자체의 진위를 검증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안치용코로나 인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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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0-19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란가방님 짧은 인용 읽다가 저도 이 책 꺼내와봅니다. ˝사회적 면연력˝에 대해 막상 질문받으면 아무 대답 못할 것 같아서요^^;;

노란가방 2021-10-19 23:25   좋아요 2 | URL
조금은 산만하고, 끝 부분에서는 ‘응?‘ 하는 느낌도 있었지만,
이 즈음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들은 제법 담고 있는 책이더라구요. ^^
즐거운 독서 시간 되시기를.
 
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 해시태그 아트북
알릭스 파레 지음, 박아르마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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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펴 본 미술책이다도서관에 드나들면서 경험할 수 있는 기쁨 중 하나는이렇게 평소라면 구입까지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책들도 손에 들어와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온통 컬러풀한 도판들이 매 페이지마다 배치된 이런 책은말 그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이 책은 그림의 기법보다는 주제에 집중한다제목처럼 마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작품들을 실으면서 설명을 덧붙인다다만 어떤 식으로든 가치판단은 미루면서이런 그림이 그려질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는 식으로 해설만 하고 있다여기에 박스로 관련된 역사적 정보까지 더해지니일종의 큐레이션으로는 괜찮았다.

 


사실 마녀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고대에 마술은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니 애초에 그런 행위 자체가 제재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으니까기록에 따르면 마녀집회를 언급한 최초의 시도는 1330년 프랑스의 카르카손에서였다고 한다.


이후 유럽에서 마녀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건 1400년대 초였고그 절정은 1600년을 전후한 100여 년 간이었다근래에 와서는 뭐든지 과거의 것을 거꾸로 설명하는 게 힙하다는 생각 때문인지오히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페미니스트의 상징으로 마녀를 사용한다고 하니 그 대우가 크게 달라진 셈이다.

 


몇 백 년 동안 마녀에 대한 편견과 핍박이 이어져 오면서 일종의 정형화된 이미지들도 생성되었다. '젊고 관능적인 여성'이나 '늙고 추한 모습의 노파'가 그것인데꽤나 상반된 이 두 이미지가 동시에 공존했다는 걸 보면 애초에 그 기준이라는 게 얼마나 임의적이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주로 혼자 사는 가난한 시골 출신 여성들이 희생되었다는 걸 보면이 선동이 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덧붙여진 빗자루니고양이니두꺼비니솥이니 하는 주변적 이미지들은 그 시절의 조금은 빈곤했던 상상력의 산물들이다물론 그 시절 기술과 지식의 발전 속도가 꽤나 느렸다고 해도이렇게 발전이 없어서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전면 컬러도판으로 눈이 즐거우면서도 가벼운 교양까지 쌓을 수 있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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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9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란가방 2021-10-19 07:52   좋아요 1 | URL
즐겁게 읽어볼 수 있을 만한 책입니다. ^^
마녀로 희생된 사람들이 대개 많이 배우지 못한 시골 여성들이라니.. 언뜻 시기질투의 대상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물론 실제 상황 속에서는 정망 다양한 일들이 있었겠죠?
표지는 오디세우스 신화에 나오는 키르케를 그린 거라고 하네요. 팜 파탈을 마녀의 특성으로 여기는 시대였다면, 어쩌면 앞서 말씀하신 ‘질투‘도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해지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