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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 - 종교와 과학에 관한 질문들 ㅣ 비아 시선들
존 폴킹혼 지음, 우종학 옮김 / 비아 / 2021년 8월
평점 :
저자인 존 폴킹혼은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비슷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맥그래스가 옥스퍼드에서 분자생물학과 신학을 공부해 과학과 신학의 조화를 시도했다면, 폴킹혼은 케임브릿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후 신학을 공부해 성공회 사제로 몇 달 전 생을 마친 인물이다. 역히 과학과 신학 사이의 대립을 완화시키고 대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 책도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쓰였다. 저자는 과학은 사실을, 종교는 의견을 다룬다는 일반적인 생각이 오해임을 밝히면서, 둘 모두 사실이 무엇인지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다만 두 학문은 서로 묻는 내용이 다를 뿐이다. 과학은 ‘어떻게’를 묻고, 신학은 ‘왜’를 묻는다. 과학은 신학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수단이 없고, 신학은 과학의 대답을 검증할 도구가 없다.
폴킹혼은 우주가 수학적으로 이해가능하다는, 즉 우주의 합리성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한다. 우주가 오늘날의 형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조건들이 정교하게 조율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 점이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걸 가정한다면 그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단순히 화학물질의 조합이 아니다(이런 ‘저급한 환원주의’는 그걸 주장하는 사람 자신도 설득하지 못한다). 전체는 부분으로 구성되지만, 부분의 합을 넘어선다. 인간은 훨씬 더 깊은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저자는 창조주의 의지와 본성에 관한 종교의 설명이 그런 다양한 인간 경험들의 이면을 통합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의 후반에는 기도와 기적, 종말에 관한 합리적(과학자로서의)인 관점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물리적 세계의 ‘열려 있음’을 통해 기도의 효과를 설명하거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자연법칙과 기적의 이론적 조화 가능성을 검토하는 등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으니 읽어볼 만하다.
작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제대로 집중해 쓰인 책이라 집중력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종종 C. S. 루이스의 글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특히 기적을 다루는 부분이라든지 기도에 관한 설명, 우주적 차원에서 신의 존재를 검토하는 방식 등은 루이스의 몇몇 책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저자의 우주 이해는 보수적인 신학과는 차이가 있다. 140억년의 진화과정을 인정하는 일보다, 6일 동안의 창조를 믿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더 쉽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때문에 대화를 포기하려 한다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충분히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는 일일 테니까.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도 몇 권 나와 있지만, 이쪽이 훨씬 짧고 간결하다. 물론 맥그래스의 책은 또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으니까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모두 찾아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