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과 탐욕의 중국사 - 중국 관료 열전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 / 돌베개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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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탐관오리청백리 하는 명칭은 왕조 시대 왕을 섬기던 관리들을 부르는 이름이다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가진 지위를 사용해 불법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탐관오리이고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재화와 권위마저도 사양하면서 백성을 위해 헌신했던 인물이 청백리다이 책은 중국 역대 왕조에서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중 유명한 사람들을 골라 정리한 책이다.


그런데 책의 구조가 조금 아쉽다청백리와 탐관오리가 교대로 설명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숫자가 맞는 것도 아니다아마도 연대 순서에 따라서 인물들을 배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한나라 때의 대표적인 탐관오리인 양기 부부에 이어서 당대의 이름난 청백리인 송경이 설명되고이어 5호 16국 시대의 어지러운 시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애썼던 풍도송나라 시기의 범중엄과 포청천 등이 등장하고명나라의 탐관오리 엄숭 부자와 반대로 목숨을 걸고 간언을 했던 해서청나라의 청백리 우성룡정판교와 역대급 탐욕을 보여준 화신아편전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강직한 임칙서 등으로 이어진다.


보면 알겠지만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그 중 탐관은 3개 장 밖에 되지 않고나머지는 강직한 관리들에 관한 이야기다드라마를 통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포청천도 포함되어 있는 게 흥미롭다, 1/3인 4개의 장이 청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단순히 인물들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내용이라도 충분히 읽을거리가 되겠지만책에는 저자가 왜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관해 분석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이 부분이 또 귀를 기울일 만하다.


저자가 보기에 탐관오리들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그들을 제어해야 할 군주의 무능 때문이다최고 권력자인 군주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그 아래 있는 권신들이 날뛸 수밖에 없고 그들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탐관오리화 될 가능성이 높다.


이건 탐관의 발생 빈도가 다른 왕조에 비해 많이 낮았던 송나라를 보면 알 수 있는데송나라를 세운 조광윤은 관리들에게 높은 보수를 주면서 가욋돈에 대한 유혹에 흔들릴 가능성을 낮췄으며반대로 부정부패사범은 사형도 불사할 정도로 강하게 처벌함으로써(그래서 드라마에서 포청천이 그렇게 작두질을 즐겨 했나 보다엄히 경계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최소한 황제가 이 문제에 제대로 된 관심을 두고 있다면 탐관오리는 줄일 수 있다는 것.


물론 여기에는 시스템의 문제도 있었다구중궁궐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황태자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었고지근거리에서 모시는 환관들과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대신들은 언제나 아니되옵니다만을 외치고 있으니 기분을 맞춰주는 환관들에게 더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었고자연히 그들이 권력을 가지면서 정치가 혼란해지고이 가운데 부정부패사범들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명나라의 독특한 직제가 하나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는 부분이다우리가 보기엔 역대 중국 왕조들이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명을 세운 주원장은 이전 왕조들에서 이어져 오던 재상이라는 자리를 없애버리고각 부서가 황제에게 직접 보고하는 형태의 정부구조 개편을 단행한다.(비슷한 시기 조선의 태종도 육조직계제를 도입했다)

 

이건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는 조치이기도 했지만그를 견제할 수 있는 존재가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황제의 비호를 받아 사리사욕을 채우는 탐관오리는 이제 무서울 것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말나아가 황제 자신이 그걸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적당히 자신의 이익까지 취하려고 한다면 더 말 할 게 없어진다.


 

저자는 청백리에 관해서도 조금은 다른 관점을 비춘다물론 그들의 존재는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구원자 같은 역할이었다평생을 자리나 재물을 탐하지 않고맡겨진 자리에서 백성들을 위해 애쓰는 인물상은 전제군주국가에서 왕이 아닌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청백리가 두드러지는 상황에 대한 쓴소리를 잊지 않는다청백리들이 그토록 빛나는 이유는 그만큼 세상이 어지러웠기 때문이고그런 상황에서 청백리들의 공적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와 조직의 어두운 부분이 적당히 감춰지기를(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를바랐던 심리도 깔려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영웅이 필요한 시대는 결코 살기 좋은 시대는 아니니까세상은 한두 명의 사람으로 바뀌는 게 아닌데민주주의 시대가 된지 오래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영웅을 뽑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정치인들에 대한 팬클럽 문화는 그런 착각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전제군주가 다스리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고이전 시대 관리라고 불리던 이들은 이제 공무원으로 바뀌었지만자신이 가진 힘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널려 있다이들이 저지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고민에 조금은 도움이 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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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1-2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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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에 붙은 유토피아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그런데 여기에 리얼리스트라는 단어가 붙으니 의미상 모순되는 한 쌍이 탄생해 버렸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이라는 제목은 그렇게 뭔가를 풍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그렇다면 그 풍자의 대상은 누구일까리얼리스트일까아니면 유토피아일까?


만약 전자라면 이 책은 유토피아(존재하지 않는 곳)를 만들려고 실제로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의 헛됨을 지적하는 것일 테고후자라면 그들의 노력을 비웃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그건 불가능 할 거야’)을 깨뜨리려는 의미일 것이다. “너희들은 이게 안 될라고 생각하지만아니야 할 수 있어” 같은.

다행이 책은 두 번째 의미였다전자였다면 그저 시니컬한 비판서 수준으로 전락했겠지만이 책은 오히려 상상력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읽는 맛은 이 쪽이 훨씬 더 크다.

 


책은 빈곤층에 대한 현금 지급이라는 아이디어로 시작한다오늘날 전 세계를 짓누르고 있는 빈곤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현금의 직접 지급이라는 정책이 꽤나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다반대파가 입만 열면 되뇌는 우려그렇게 했다간 아무도 일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는 적어도 지금까지의 실제 나타난 결과만 보면 근거 없는 비난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받은 현금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자를 한다물론 일부는 직장을 찾는 일을 그만둘지도 모르지만(하지만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전반적인 추세는 달랐다그들의 수익은 몇 배로 뛰어 올랐고오랫동안 천문학적인 원조금액을 쏟아 부어 시도했던 프로그램으로도 해결하지 못한(여기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빈곤의 늪을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빈곤선 근처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은 사람들에게도 현금 지급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삶의 질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다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취미나 관심사에 돈과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생기고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낸다.(대체로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자연스럽게 기본 소득이라는 아이디어로 나아간다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런 정책적 논의가 조금씩 오고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논의는 부족해 보인다구체적인 실험이나 사례 분석 없이자기가 속한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 비난만 퍼붓는 한심한 수구정당 정치인들 때문이다흥미로운 건 자칭 진보정당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본소득을 부정하려 한다는 점인데이쪽은 편 가르기를 바탕으로 한 정체성 정치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역시 재원마련이 아닐까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국가 재정으로 효과적인 기본소득을 국민들에게 배분하는 건 무리로 보인다(대충 계산해도 5천 만 국민들에게 한 달에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려면 한 해 국가예산 전체를 털어 넣어도 모자라다). 하지만 문제는 좀 더 깊고 다양한 고민을 통해 풀어나갈 방법을 찾는 식이어야지, “모르겠으니까 하던 대로라고 해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또 다른 송파 세 모녀는 굶어죽을 것이고길을 찾지 못한 자살자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가기만 할 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책에는 주당 노동시간의 감축부의 재분배국경 통제의 완화 등 다양한 진보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그것들이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그런 아이디어가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다양한 자료로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한다진보적 대안 언론사를 만들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이런 제도들이 도입된다고 해서 어떤 사회가 당장 유토피아로 변하진 않을 것이다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실패나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도 있고이에 대한 반대파의 정치적 비난과 공격도 엄청날 것이다그렇게 시끄러워지면또 누군가는 나서서 케케묵은 옛 방식을 새로운 해결책인 양 내세울 수도 있고.


당장 자신의 눈앞에 직접적인 이익이 없으면좀처럼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대중이라는 벽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개혁이 어려운 건 그게 당장 눈앞에 이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인데그 개혁의 수혜자들 또한 그런 이유로 미온적인 지지만 보내는 게 보통이다하지만 바꾸고자 하는 게 사람이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라면그들은 단지 수혜자만이 아니라 함께 일을 해야 할 동반자이기도 하니까어떻게 그들을 설득할지도 유토피아 계획의 일부여야 할 것이다.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던 철지난 계몽주의의 자취를 뒤따르자는 건 아니다계속 진보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인간들이 모든 문제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적 진보주의도 내 취향은 아니다(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동료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리고 이 대안은 단순히 당위만이 아니라 현실에 근거한 대안이어야 한다이리저리 방법을 모색해보는 이 책의 시도가 사뭇 와 닿는 이유 중 하나이다젊은 저자다운 과감한 제안이 인상적이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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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연암서가 인문교실
미리 루빈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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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전반에 관한 간략한 그림을 그려주는 일종의 스케치다원서는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한 아주 짧은 입문서라는 기획의 일환으로 쓰였다고 하는데우리나라에서는 그 중 세 권을 출판한 것 같다입문서개론서답게 아주 자세한 설명을 다 담아낸 건 아니지만그래도 이 정도라면 나머지 두 권도 찾아볼 것 같은 느낌.

 


중세는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중세가 암흑의 시대거나 퇴보의 시대가 아니다이렇게 주장한 중세 말 출현한 자칭 휴머니스트들인데그들은 자신들이 고대 그리스-로마로 이어지는 화려한 번영을 바로 이어받아 부활(르네상스)시켰다고 착각했던 이들이다하지만 실제로는 고대의 빛나는 그림들은 조금 퇴색하긴 했으나 또 다른 차원의 안정감과 견고함을 가지고 중세로 이어졌고중세 기간 동안 이뤄낸 여러 발전상들을 그대로 이어받은 게 근대였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일종의 자아도취에 빠진 신세대들에게는 스스로를 영웅시하는 유치한 습관이 내재되어 있기 마련인가 보다어느 시대든 새로운 세대들은 앞선 이들의 생각을 비웃으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그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거의 모든 자양분이 선배들에게서 나왔다는 걸 까먹고서.


책은 중세 전반의 생활상을 설명하는 2장과중세 유럽을 떠올리면서 빼먹을 수 없는 요소인 기독교를 다루는 3왕과 영주들이 갖고 있던 권력의 발전상을 그리는 4그리고 교역환경과 같은 배경적 요소를 설명하는 5장으로 이어진다처음에 말했듯이 아주 자세하게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전반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는 유용할 만한 스케치다.


“‘타자의 중세’”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6장은 다른 장들에 비해 매우 짧은데여기에는 무슬림집시유대인 등 중세 유럽에서 일종의 외부인으로 여겨졌던 이들에 관한 간략한 소개가 담겨 있다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이 부분에 관한 책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


마지막 장인 7장은 오늘날에게까지 그 자취가 남아있는 중세의 발명품들에 관한 이야기다발명품이라고 해서 무슨 작은 물건만 가리키는 건 아니고대학 제도인쇄술다양한 노래들(이쪽은 꼭 중세의 유물만은 아니지만)이 그 대상이렇게 보면 중세를 부정하려 했던 이들은 중세의 유물을 가지고 그 작업을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교양으로 읽어볼 만한 책이지만워낙에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있어서 이쪽에 원래부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손은 안 갈지도 모르겠다하지만 뭔가를 제대로 보려면 우선 전체적인 윤곽을 살펴보는 게 꽤나 중요한 일이니까그런 차원에서는 도움이 될 만한 책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한다면그와 관련된 또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게 참 독서인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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