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 식물과 책에 기대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을 어루만지다
제님 저자 / 헤르츠나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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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키워드를 꼽자면우선 식물’, ‘’, 그리고 경이이다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상을 담아내는 에세이인데그림책을 좋아해서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작가의 이력답게책에 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일부러 그런 일상들을 모은 것이겠지만삶의 순간 곳곳마다 거기에 맞는 책의 한 구절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그 순간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누군가와 매번 공유하고 있다는 거니까. C. S.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친구란 같은 것을 보면서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인데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멋진 저자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 작가의 식물 사랑도 눈길을 끈다사실 식물은 어디에나 있다대개는 너무 작고 흔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버리거나그저 관심이 없어서 무시할 뿐이다작가는 그렇게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치는 다양한 식물들의 이름을 불러주고(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얼마나 멋진가그것들과 교감을 한다한 에피소드에는 작가의 고등학생 딸도 그런 엄마의 취향을 알고 풀꽃을 뽑아 작은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그냥 편안하게 살면서 취미생활로 책을 보는 삶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책의 3부인 비정규의 시간을 읽어보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란 얼마나 힘든지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많은 엄마들이 그렇듯딸 학원비라도 벌어보려고 물류창고에서의 일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차분하게 털어놓는 그 부분은 이즈음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출근 전 책 한 구절을 마음에 품고 나간다는 작가의 도전이 인상적이다그래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우리는 좀 더 씩씩해질 필요가 있다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그리고 나와는 조금 다른 장르의 책들을 섭렵하고 있는 작가지만 멀리서나마 작은 소리로 박수를 치며 응원하고 싶다.

 


책 제목이 예쁘다.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서는 무슨 큰돈을 들여서 해외로 여행을 하거나유명하다는 핫플레이스를 찾아 이미 나보다 먼저 소문을 듣고 온 바글거리는 인파 속 소음으로 괴롭힘을 당할 필요가 없다시선을 바꾸고마음을 바꾸면 우린 얼마든지 아름다운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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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약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독서는 지금 그 정도로 강한 약이 되지 못한다.


- C. S. 루이스, 『헤아려 본 슬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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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이다. 1919년 3월 1일 벌어졌던 독립운동을 기억하기 위한 날이고, 일부에서 빈정거리듯 "우리 민족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되찾은 게 아니"라는 말이 허무맹랑한 소리임을 증명하는 날이기도 하다.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그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가 없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독립된 나라들의 운명이 어떠한지 쉽게 알 수 있다. 독립은 남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종종 나오는 이야기가 기독교의 공헌 부분이다. 한 편에서는 기독교가 별로 한 일이 없다고 평가절하 하고, 그 증거 중 하나로 신사참배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일제의 강압에 따른 것이었다고는 하나,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를 한 것도 사실이고, 그 결과로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이에 참여하며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동참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 반발하다 살해 당한 목사들도 있었고, 신사참배의 압박을 거부하고 자진해서 학교를 폐쇄했던 기독교 학교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소수의 산발적인 거부였고, 해방 이후의 행적을 봐도 참배 찬성, 독려 측 인사들이 주류를 이룬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의 공헌을 강조하는 쪽은 기독교를 믿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제시하곤 한다. 안중근(가톨릭), 안창호(개신교), 김구(개신교), 유관순(개신교) 등이 자주 언급되는 케이스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는 데 참여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점도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기독교의 공헌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는 건 확실히 지나쳐 보인다.

하지만 뭔가 좀 아쉽다. 교회는 신사참배에 찬동하고 독려하며 나섰는데,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요컨대 기독교인 개인으로서는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교회는, 교회로서는 한 일이 별로 없다고 하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 같다. 일부 개별 교회들이나 YMCA 같은 기독교 계열 단체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교단과 조직체로서의 교회는 비겁했다. 뭐 어느 쪽에 무게를 더 두느냐는 선택의 문제에 가까울 거고.

요컨대 문제는 기독교에 우호적인 시선을 가지고 그 상황을 바라보느냐, 그렇지 않으냐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 큰 영향을 주는 건, 그 때 그 사람들이 어떻게 행했는지보다는 오늘 우리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다. 오늘의 교회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준다면, 우리의 과거도 그렇게 느껴지게 만들 수 있을 게다.

오늘도 사랑제일교회의 전모씨가 대규모 종교/정치집회를 진행했다고 한다. 벌써 하루이틀 된 문제도 아니고, 수백 개의 교단으로 분열되어서 남의 교단 일에는 뭐라 개입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게 한국 교회의 현실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인물들과 제대로 손을 끊지 못하는 게 우리의 수준이다. 우리는 그나마 나라를 위해 애썼던 선배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도 남는 부끄러운 후예들이다.



https://news.v.daum.net/v/20220301204503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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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손에 책만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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