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소호 지음 / 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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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흥미로워서 집어 든 책이다. 그리고 제목처럼 내용 역시 흥미로웠다. 책 표지에는 ‘에세이’라는 문구가 써있지만, 내용은 마치 잘 짜인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물론 모든 에세이가 100% 있었던 일만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리 두껍지 않기도 했지만, 온갖 표정을 마스크 속으로 지으면서, 지하철 안에서 금세 다 읽어버렸다.


책은 작가 자신이 겪었던 연애담이다. 다른 사람 이야기, 그 중에서도 연애 이야기만큼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도 없으니까. 문제는 보통 그런 이야기를 지면으로 옮길 때, 꽤 많은 각색과 과장이 섞이기도 한다는 점인데(그리고 그게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경우 좀 더 윤색이 더해지기도 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리얼’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연애에 있어서 호구라고 부를 정도로, 일방적인 포지션에 자주 선다.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상대와 사랑에 빠지고, 분명 좋지 않은 표지가 보이는데도 관계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물론 사랑의 감정에 빠졌을 때 그걸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때로는 좀 안쓰럽기도 하고, 또 다른 데서는 어이가 없어 나오는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응원을 하기도 했다가, 거리를 두게도 만든다. 한 사람의 연애 이야기에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것도 재능이다.


나보다 겨우 몇 살 어린 작가인데도, 연애관이나 방식에 있어서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하는 느낌도 준다. 분명 같은 세대니 세대차이까지는 아닐텐데, 정말 이렇게도 한다고? 하진 내가 보통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약간 고립되어 있긴 하지만서도.



무슨 대단한 ‘주의’를 내세우는 대신 담담하게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오히려 씩씩해 보인다. 실제 작가가 어떤 모습일지 살짝 궁금해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시인이자 작가인 저자와 도무지 시에 대한 감수성이라고는 메마른 논바닥 같은 나 사이에는 그리 많은 공통점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한 번 대화를 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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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고전의 숲 두란노 머스트북 2
블레즈 파스칼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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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물리학에 특별한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던 파스칼은 기독교 신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대 교회가 지니고 있던 문제에 대해 제법 깊은 사고를 했지만, 오늘날 그를 종교적 개혁과 연결시켜 떠올리지 못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결국 어느 정도 당시 교회구조에 대한 순응으로 돌아섰던 인물이다.


팡세는 그런 파스칼이 남긴 아포리즘이다. 수백 개의 그리 길지 않은 경구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복잡한 전승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 애초에 어떤 순서로 쓰여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판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나 같은 일반 독자들이야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연구자의 경우에는 의사소통을 위한 기본적인 장절 배치에 대한 합의가 안 되는 건 조금 난감할 듯도 싶다.


책의 전체적인 볼륨이 꽤나 크다. 그만큼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인데, 각각의 항목이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서, 아무 데나 펴놓고 읽기 시작해도 상관이 없다. 애초에 이 경구들의 정확한 순서가 확정이 안 되어 있으니, 전체 구조에서 뭔가를 얻으려 해봤자 소용이 없다. 주제별로 모아놓은 이 책의 구분에 따라 읽어갔다.



종교, 정확히는 기독교에 관한 내용이 참 많다. 당시의 철학이란 곧 기독교에 관한 내용이기도 했을 테니까. 뭔가를 깊이 사고하려면 교회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떠나기 쉽지 않았으리라. 그 외에는 귀족과 같은 지체 높은 이들이 보여주는 모순적 행태 등이 또 자주 발견된다.


파스칼은 가장 비판적으로는 건 허위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건 교회 안에서도 왕궁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이다. 본질을 놓치고 껍데기에 집중하면서 벌어지는 모순은 우스울 지경이지만, 정작 그 안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보지 못한다. 물론 이런 문제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약하고, 흔들리기 쉽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인간 본성에 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인간이 언제 자주 실수를 하는지, 어떤 착각을 하고, 무슨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놓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인간의 특별함을 믿고 있었다. 인간은 너무 많은 곳에서 약점을 지니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특별한 자질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위로가 되는 부분.



책의 상당부분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단편적인 단어와 문구들로 채워져 있다. 모든 부분을 꼭 다 읽어 내려가지 않더라도, 우연히 책장을 넘기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만나기만 해도 좋을 듯하다. 두껍지만 너무 겁 먹지 말고 조금은 마음 편히 들춰봐도 괜찮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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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웅 2022-09-02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칼에 대한 더 깊은 연구요망
 
공감병 - 공감 중독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나가이 요스케 지음, 박재현 옮김 / 마인드빌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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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공감’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필수적인 덕목으로 꼽힌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거나, 동정심이 일어나 그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첫 단계가 바로 공감이다. 누군가가 ‘공감할 줄 안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그건 칭찬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공감에 대해 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의 공감이란 ‘우리와 비슷한 사람’, 혹은 ‘우리 편’, ‘우리보다 약한 사람’ 등 특정한 범위와 기준에 맞는 사람들만을 향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반감을 표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공감의 이런 속성 때문에, 그건 자주 오용되기도 한다. 내 편에 대한 공감은 적에 대한 미움으로 쉽게 바뀐다. 예컨대 테러리즘은 종종 우리 편의 존재와 목적에 대한 과도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적들은 악마화 되고, 자신이 벌이는 끔찍한 범죄는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멋대로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지나친 공감의 폐해는 그 뿐이 아니다. SNS에서는 다른 사람의 ‘좋아요’를 구걸하기 위해 온갖 자극적인 게시물을 작성해 올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불안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단지 개인의 불안 수준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게 한 사회의 문제가 되면 좀 더 심각해진다. 집단 학살이나 흑백논리에 기초한 극심한 정치적 대립 등은 많은 손실을 가져온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문제에 대한 지적은 여러 차례, 여러 모양으로 반복되고 있는데, 그 해결책, 대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이성적으로 사고하면서, 전략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뉘앙스에, 전략적 대화를 위해서 필요한 대화기법이 몇 개 소개되는 게 전부다. 그리고 위에 정리해 놓은, 공감의 위험성에 관한 짧은 글들이 책 전체 여기저기에 퍼져있다.


목차만 보면, 그리고 장의 제목만 보면 뭔가 내용이 발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3장과 4장은 약간 생뚱맞게 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테러리즘과 제노사이드가 언급되는 마당에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조언이 등장하는 건 이야기의 규모가 어울리지 않는다.


책 자체가 애초에 한 권의 책으로 쓰인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칼럼 형식의 짧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보니, 정작 모아놨을 때 통일성이나 내용의 논리적 전개가 허술해진 게 아닌가 싶다. 나름 편집자가 어떻게든 이걸 꿰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나 보다. 중간에 삽입된 두 개의 인터뷰 내용도 지면 늘리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본문의 내용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고.


그리고 사실 문제에 대한 지적도 위에 요약을 해 놓으니 분명해 보이지만, 책 전체에 흩어져서 짧게 던져지고 있을 뿐이다. 사회과학 서적이라면 적어도 어떤 통계라든지, 정확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든지 하는 게 필요할 텐데, 그런 것보다는 일종의 인상비평이 대다수고.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로서의 저자가 가진 이력은 독특하지만, 그게 또 실감나게 풀려나오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앞뒤 표지에 실린 홍보문구는 꽤나 흥미로웠는데 말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이다.



그러나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공감의 역기능에 대한 경고는 분명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게 작은 SNS 중독 같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아가 더 큰 규모의, 이를 테면 국가 간 분쟁이나 테러리즘에 오용되는 일 같은 경우 분명히 문제가 있으니까. 다만 좀 더 체계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남의 말에 지나치게 쉽게 빠져들고, 넘어가는 건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충동적이서’, 혹은 ‘합리적 사고를 못해서’이다. 본인은 아무런 악의가 없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런 이들이 일으킨 문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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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집가들은 그것을 금박 세팅에서 

떼어내기 전에는 사려고 하지 않으며, 

떼어낸 뒤에도 거래전문가가 진짜 보석이라고 보장하는 

보증서를 주지 않으면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혹시 그들의 눈이 

가짜 돌에 속아 넘어가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눈으로 보아서 진짜 보석인지 구별할 수 없다면, 

가짜가 진짜보다 쾌락을 덜 가져다줄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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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매혹이 될 때 - 빛의 물리학은 어떻게 예술과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켰나
서민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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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책을 빙자(?)한 기초 물리학책, 이 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이렇다. 저자는 물리학자이면서 쉬는 날을 이용해 직접 그림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다. 그런 독특한 이력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아이디어부터가 흥미롭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로 다루고 있는 소재는 ‘빛’이다. 조금 더 학문적으로 표현하면 ‘광학’ 정도가 될까? 사실 빛은 물리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빛이 무엇인가(입자인가 파동인가), 빛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속도라든지, 운동의 경향이라든지) 하는 질문은 물리학 발전의 중요 지점마다 새로운 발전의 실마리가 되어 왔다.


그런데 이 빛은 또한 미술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근대 미술은 빛을 어떻게 화폭 안으로 담아내는가 하는 주제에 천착했던 것 같다. 물론 그에 앞선 중세에도 빛은 신적 속성을 드러내는 주요한 요소로 사용되긴 했지만, 근대 이후 빛은 좀 더 지상 가까이 내려와서 세상을 비춰주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이 두 분야를 적절히 엮어내면서 내용을 진행하고 있는데, 일단 목차를 봐도 알 수 있듯 그 순서는 역사적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빛에 관한 물리학적 탐구 주제를 중심으로 관련된 미술 이야기를 덧붙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리학이라고 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여기에 소개되는 내용은 매우 기초적인 내용들이라서,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금세 알 수 있는 것들이니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도입 정도로 언급되는 수준이다.(물론 아예 이 쪽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면 무슨 말인가 싶을지도)


책 전체에 여러 장 삽입되어 있는 컬러 도판이 마음에 든다. 물론 그 때문에 책값이 17,500원으로 뛰기는 했지만, 미술을 다루면서 컬러도판이 없는 건 아무래도 허전하니까. 책의 설명이 어떻게 실제 그림 속에서 구현되어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한 가지 재미이다.


저자는 반복적으로 과학적 발견이 당대의 미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과학이란 건 세상을 관찰하는 안경 중 하나이고, 그렇게 새로운 안경이 나오면 그로 인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영역이 보이게 되고, 예술가들은 그 영역을 누구보다 빨리 그려내는 사람들이니까.



과학과 예술이라는, 어떻게 보면 가장 멀리 있을 것 같은 두 분야를 재미있게 조합해 놓은 책. 미술을 조금 색다른 관점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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