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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위한 예술 - 크리스천 아티스트의 사명
필립 그레이엄 라이큰 지음, 곽수광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21년 5월
평점 :
교회는 오랜 시간 예술과 함께 해왔다. 초기부터 다양한 상징적인 그림들, 예를 들면 물고기라든지, 십자가 같은 간단한 기호는 기독교 자체를 나타내는 표지로 사용되었다. 물론 이 시절에는 기독교가 박해의 표적이 되고 있었기에 드러내놓고 ‘작품’을 만들기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곧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상황은 바뀐다. 곧 성경 속 다양한 장면들을 회화로, 그리고 조각 등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중세에 이르러서는 아주 화려하고 정교한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로마에서 잠시 ‘성상파괴운동’ 같은 것이 있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달랐다.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중세는 기독교 예술의 최전성기였다.
중세의 예술가들은 신성의 빛을 자신들의 작품에 담아내는 이들로 여겨졌다. 수많은 건축물들에는 예술품들이 반드시 장식되어 있었고, 때로 그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영감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기를 거치면서 예술의 이런 지위는 퍽 달라졌다. 개혁자들은 예술 작품들에 대한 지나친 고양이 우상화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했고, 아직 제대로 된 신학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 예술에 대한 과격한 행동을 저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예술의 문제라기보다는 평신도들에게(때로는 성직자들에게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했던 교회의 책임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필립 그레이엄 라이큰 역시 바로 이 부분을 가장 먼저 지적한다. 예술의 이미지가 얼마나 쉽게 우상화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위험 때문에 교회가 예술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목적을 회복시키고 그에 이르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예술의 근원을 하나님에게서 찾는다. 하나님은 세상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드시고, 그것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이끄신다. 예술은 어떤 도구적 기능만 가지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행위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건은 성막 제작과 이 작업을 총괄했던 브살렐과 오흘리압이라는 인물인데, 그들이 성막을 만드는 과정은 하나님이 이 작업에 얼마나 큰 기대와 관심을 보이고 계시는지, 그리고 그들이 하는 작업 자체가 지니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만나는 자리를, 아무 장식도 없는 단조로운 공간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기독교적 예술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경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던가, 복음 전도를 위한 목적이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저자는 여기에는 ‘선함’과 ‘진리’,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어떤 것이 이 기준을 만족시킨다면, 그건 그 자체로(심지어 추상예술이라고 해도) 충분히 기독교적이다.
작고 얇은 책이다. 당연히 많은 주석이나 전문적인 논의까지 덧붙여 있는 책들과는 달리, 핵심적인 내용만 간단하게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 주제와 관련한 논의를 시작하기에는 괜찮은 책. 너무 전문적이어서 나 같은 초심자들은 읽기 어려운 것들보다는 오히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