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자부심 소설Q
김세희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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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하얀은 프린랜서 기자다기자라고 하면 사건 사고를 따라 다니며 보도하는 사회부나 정치부 기자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하얀은 말 그대로 잡지를 비롯한 다양한 지면을 채울 수 있는 글을 쓰며 생활하고 있다언론고사리고 부르는 시험에 통과해 큰 신문사에서 일했지만공황장애가 생기면서 퇴직을 하고 시작한 일이다.


그런 하얀이 결혼을 앞두고 한 지방 교대의 학보 출간 50주년 기념 전시회 기획 의뢰를 받는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한다소설은 하얀이 맡은 전시회 준비 이야기를 중심으로그녀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가 함께 풀려 나간다.



프리랜서라는 일은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동시에 안정적이지 못한 일감 상황과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감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여기에 하얀의 어머니가 느끼고 있는, ‘자랑할 수 있는 간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무형의 손실도 있고.


하얀 역시 자신의 현재 처지에 대해 온전히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병 때문이라고는 하지만어머니와 비슷하게 대형 신문사에서 퇴직한 것을 경력의 후퇴로 여기는 마음도 있고넉넉하지 못한 경제적 상황 속에서 결혼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현실적인 고민도 문제였다하지만 그녀가 맡은 전시회 준비 중 알게 된 최영희라는 인물을 추적하면서 점차 중심을 잡아 나갈 수 있었다.


최영희는 어두웠던 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교대생이었지만그녀가 죽을 때 남긴 유서 말고는 별다른 민주화운동 행적이 발견되지 않아 열사라는 칭호를 받지는 못했다그녀는 다만 어두운 시국에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부끄러움을 깊이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고다른 표현으로 하면 그녀가 앞으로 가르치게 될 아이들 앞에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걸 진심으로 의식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하얀은 최영희에게서 그런 진실성을 발견하고그녀의 행적을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픈 마음이 생겼다하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은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던 최영희의 모습을 보면서 프리랜서로서의 자신의 일에 조금은 자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 말미에 하얀이 자신이 기획한 전시회에 조용히 다녀오는 장면이 있다비록 그녀가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썼지만전시회 어디에서 그녀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어쩌면 서운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하얀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비록 자신의 이름은 없어도그 일 자체가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어쩌면 이게 프리랜서가 살아가는 법이 아닐까도 싶다자신의 이름을 스스로가 원하는 위치에 넣을 수는 없지만자신이 한 작업 그 자체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책의 제목이 프리랜서의 자부심인 것도 이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잔잔하게 읽어갈 수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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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누군가가 자녀들을 칭찬해 주면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녀들이 부모의 칭찬을

얼마나 듣고 싶어 하는지는 잘 모를 수 있습니다.


- 알렉스 켄드릭,스티븐 켄드릭, 『하나님의 부모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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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K. 체스터턴의 영원한 사람 G. K. 체스터턴의 영성 고전 시리즈 2
G. K. 체스터턴 지음, 송동민.서해동 옮김 / 아바서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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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학자도 아니고,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활동한 소설가였던 체스터턴을 기억하는 게 평범한 일은 아니다그나마 어린 시절 몇 권 읽었던 브라운 신부 시리즈’ 추리소설들을 통해서 어렴풋 기억은 하고 있었지만작가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갖게 된 건 역시 C. S. 루이스 때문이었다루이스는 체스터턴의 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실제로 그의 글에서는 체스터턴의 자취가 짙게 느껴지는 부분이 자주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 체스터턴의 글을 몇 해 전부터 아바서원에서 한 권씩 번역해 내주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이전에 나왔던 책들은 주로 그의 소설들이었다면이 책과 앞서 읽었던 정통은 비평가이자 사상가로서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의 면모와 생각들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이다이 책의 경우 영어 원서를 알라딘에서 무료 전자책으로 풀어주어서 다운받아두었지만확실히 언어의 장벽 때문에(내용이 내용인지라 쉬운 문장들도 아니었다방치해두었다가이렇게 한글번역이 되어 나오니 보이는 대로 구입했다가 몇 년이 지난 이제야 손에 들었다.



이 책은 일종의 역사책이다하지만 무슨 연도를 나열하면서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를 서술하는 내용은 아니고최초의 인간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그리고 이 역사관에서 두드러지는 건 저자의 기독교적 관점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첫 번째는 인류 일반에 관한 설명이고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앙에 관한 설명이다그 기준은 성육신 사건이다.(일단 여기만 봐도 기독교적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저자는 20세기 초에 유행이었던 진화론적 관점을 강렬하게 비판한다정확히 말하면 진화론적 역사관그러니까 인간 역사의 여러 부분(문화종교사회질서와 구조 등)이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되었다는 식의 단순한 해석에 대한 비판이다이 때 비판의 핵심은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선사시대의 경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란 고작 동굴 속 사슴 그림 몇 개 정도가 전부다하지만 학자들은 이것들을 가지고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진화론적 역사가설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한다그거 오래된 것은 원시적이고 조악한 수준이었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걸 방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런 선입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저자는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그리고 그런 관점으로 바라본 신화는 단순히 미개한 원시인들이 가진 조악한 심리적 환상이 아니라뭔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한 지식과 일종의 예측이 담겨 있을 수 있다쉽게 말해 저자는 인류의 신앙이 점차 진화되어왔다는 통속적 가설에 반대해처음부터 그 안에 중요한(그리고 핵심적인것이 계시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 기독교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훑어보는 내용이다이 역시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와 같은 몇몇 권력자들의 비호로 인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식의 통속적인 설명을 비판하면서이단들과의 투쟁여러 차례의 쇠락과 부활을 경험하면서 오늘까지 이를 수 있었다여기에는 단지 외부적 원인만이 아니라 기독교 내부적 요소가 있었다그 안에 진짜 생명이 있었던 것.



책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문장의 풍미도 좋다어떻게 보면 책 전체가 농담으로 채워져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자유자재로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 돋보인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농담이란 실없는 말의 낭비가 아니라사안을 유쾌하게 묘사하는 쓰기 방식인데당연히 어느 정도의 내공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다덕분에 읽는 내내 머리가 좀 아프면서도 유쾌한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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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작은 아씨들 : 일반판
그레타 거윅 감독, 시얼샤 로넌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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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판매종료


사랑스러운 자매들


영화는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를 배경으로네 명의 자매들과 엄마로 구성된(여기에 집안일을 함께 해 주는 인물이 하나 더 있다여성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가족의 아버지는 노예해방이라는 북군의 대의를 위해 입대한 상황.


1800년대 중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이 영화의 장점은 그런 상황에서 네 명의 자매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인 메그는 화려한 외모로 사교계에 데뷔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가난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정을 이루는 선택을 했고둘째인 조는 글을 써서 성공하기를 꿈꾸고 있다셋째인 베스는 몸이 약해 활발한 활동은 어려웠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기쁨을 누릴 줄 알았고넷째인 에이미는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


감독은 이 네 명의 이야기가 서로 엉키지 않으면서(물론 일부 캐릭터들 사이의 갈등과 케미는 있지만각자의 이야기가 잘 풀려나올 수 있도록 배치한다수완이 있는 감독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네 명의 자매들 중에 자연스럽게 누구 한 명인가에는 공감하며계속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개인적으로는 첫째 메그 역의 엠마 왓슨의 미모가... )




여성의 한계


영화 속에는 시대적 한계 중 하나였던 여성의 사회진출제한에 관한 지적이 여러 부분에서 발견된다당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었고이 점은 작가가 되고 싶었던 둘째 조와 화가가 되고자 했던 넷째 에이미에게 큰 벽으로 다가왔다그래도 조의 경우는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팔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에이미는 새로운 화풍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기도...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 속 자매들의 아버지가 참전했었던 미국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에게도 주어진 참정권이여성들에게 여전히 부여되지 못한 권리였다는 점이다미국에서 여성참정권이 주어진 건 그 후에도 50년은 지나서였다.


영화 속 자매들의 어머니는 이런 점에서도 좀 독특한 인물이다그녀는 자신의 타고난 성정 때문에 괴로워하는 조에게 어떤 천성들은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다고 조언한다여성이라고 해서 특정한 성격 유형을 가져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인데이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한 조언처럼 보인다.





자매끼리


사실 영화의 주요 스토리 중 하나는 둘째 조와 썸을 타고 있던 로리라는 인물이 조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을 당하고수년이 지난 후 넷째인 에이미와 결혼을 한다는 내용이다그 안에 담긴 감정선과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에 관한 이해가 없으면 자칫 막장(?)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이게 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게 백미.


셋째인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유럽에 나가있던 에미와 로리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조는두 사람이 어떤 관계가 되었는지는 상상도 못한 채 앞서 로리의 청혼을 거절했던 것을 후회한다는 편지를 쓴다하지만 에이미에 앞서 만난 로리로부터 두 사람이 약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지만 내색은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조그리고 아래 층에서 동생 에이미를 만났을 때에이미의 표정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여기서 조가 에이미를 향해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자매들끼리 화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지.” 불안해하는 동생을 위로하면서동시에 자신에게 남아 있는 미련을 깨끗하게 몰아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도 들렸던 대사인데개인적으론 영화에서 가장 멋진 대사였던 것 같다그렇게 지난 일을 털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일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도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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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갈수록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걱정을 키우는 것 같다.


베로니크 드 뷔르, 『체리토마토파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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