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시고니 위버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예상 못한 판타지물.


영화 제목에 ‘몬스터’가 들어가 있긴 했지만, 그게 실제로 화면에 나타날 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정말로 나무 괴물이 등장해서 주인공 코너와 “대화”를 시도한다. 그렇다. 괴물이지만 막 때려 부수는 게 아니라 소년과 대화를 시도하는 괴물이다. 덩치가 크니 움직일 때마다 뭔가 부서져 나가긴 하지만, 대화가 끝나면 다시 원상복귀 되는 것으로 보아 현실 세계의 괴물이 아니라는 걸 금세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 코너는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소년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마저 큰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학교에서는 왜소한 체구의 코너를 괴롭히는 패거리들이 있다. 여기에 코너를 자신에 집에서 생활하게 하려는 엄격한 외할머니까지.


앞서 말한 괴물이 결국 소년의 상상 속 판타지였다면, 그건 그에게 영향을 끼친 무엇이 형상화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과연 괴물의 정체는 과연 뭐였을까. 물론 영화 말미에 그 정체는 어느 정도 드러난다.





괴물이 소개하는 이야기.


밤 12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면, 나무 괴물은 소년을 만나러 온다. 그리고 소년에게 자신과 관련이 있는 옛날이야기를 네 편(세 번째 이야기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들려준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내용이 평범하지 않다. 마녀 여왕을 물리친 왕자의 이야기에서 정말로 나쁜 캐릭터는 마녀가 아니었고, 젊은 목사와 의심쩍은 약제사 이야기에서 문제는 목사에게 있었다. 이야기의 결말에 이르면 누가 옳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결국 이 이야기는 소년, 즉 코너의 이야기다. 앞서 그의 앞에 나타난 이 괴물이 그를 둘러싼 괴물들 중 누구를 형상화한 것일까를 물었었다. 십대 소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의 불치병)를 겪느라 안 그래도 힘이 든 그에게 그 모든 것이 버겁기만 했을 것이고, 모두 충분히 괴물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단순한 결말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 괴물은 반복해서 ‘진실’을 말하라고 오히려 코너에게 요구했고, 결국 코너가 그 진실을 입 밖에 내버렸을 때 비로소 흩어졌던 퍼즐들이 맞춰지면서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사실 그 진실이라는 것도 실은 그 나이 또래의 소년이 충분히 해볼만한(사실은 그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생각이었으니, 코너를 괴롭혔던 것은 주변 환경도 환경이지만 본인 자신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의 근원이, 우리 안에 있었음을 깨닫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그걸 솔직하게 말해버리고, 그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게 그걸 치유하는 지름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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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본적 정체성은 리더가 아니라 팔로워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끌라는 말씀 대신 따르라는 초대장을 주신다.

팔로워십이 리더십보다 앞서고 보다 포괄적이다.


- 유진 피터슨, 『젊은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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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하나님의 사람 4
에버하르트 베트게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뉴스 화면 속에서 본회퍼의 문장이 가장 극악한 방식으로 모욕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ㅈ이라는 (자칭)목사가 자신의 정치집회에 본회퍼의 그 문장을 커다랗게 인쇄한 현수막을 걸어놓은 것이었다. 어떻게 ㅈ같은 인사가 감히 자신을 본회퍼의 후예인 양 ‘참칭’(이 어려운 단어를 최근 누가 다시 뉴스의 한복판으로 들고 나왔다)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으면서도 화가 나서, 서둘러 본회퍼의 글로 눈을 씻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에는 예전에 중고서점에서 구입해서 책장 한쪽에 숨어있던 이 책이 있었다.(읽지 않은 책들이 잔뜩 꽂혀 있는 책장은 부끄러운 모습이다. 환경적으로도, 지적인 허영심이라는 차원에서도) 만들어진지 오래되어서(벌써 절판된 책이다) 종이가 누렇게 바래있었지만 읽기엔 별 문제가 없었다. 양장본임에도 가벼운 종이를 사용해서 들고 다니기도 좋다. 출판사에게 잠시 박수를.



이 책은 본회퍼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전기의 축약본이라고 한다. 원래는 좀 더 두툼했을 책을 나 같은 보통사람들을 위해 작게 편집한 것. 덕분에 전기이지만 아주 세세한 내용들을 길게 나열하는 대신, 그의 삶 주요 지점들을 꽤 속도감 있게 걸으면서 살핀다. 확실히 지루함은 좀 덜하고, 리듬을 잃지 않으면서 본회퍼의 삶을 전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라면, 역시 저자가 본회퍼의 누이의 딸과 결혼을 해 그의 일가에 속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덕분에 다른 데서 얻을 수 없는 좀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고, 이런 점은 인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치열하게 살다 간 인물이다. 나치가 독일 내에서 점점 세력을 얻어가고, 그를 추앙하는 대중들이 아리아인 민족주의니, 반유대주의니 하는 혐오 주문을 되뇌고 있을 때, 독일의 교회들도(심지어 고백교회의 일부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었다. 본회퍼는 이런 상황에서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고 깊게 고민했고, 결국 히틀러를 제거하는 계획의 일원이 되었다가 거사가 실패한 후 사형에 처해진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의 글에는 진득한 땀과 피가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뭔가 한 자리를 하거나 이름을 알려보겠다는 잡스러운 욕망과는 거리가 멀었고,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전념했던 인물이다. 어디 감히 ㅈ같은 인물이 갖다 댈 수준이 아닌 거다.


다만 이런 부분 때문에 본회퍼의 신학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특정한 문제에 대한 깊은 사고를 담은 단편들로만은 그 생각들 사이의 틈을 완전히 메우는 건 쉽지 않으니까. 이 책에서도 그런 면이 좀 느껴진다. 뭔가 종합을 시도하려고는 하지만, 썩 괜찮은 결과물이 보이지는 않는달까. 하지만 꼭 종합을 해야 뭔가 배울 게 있는 건 아니니까.



아직 본회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손에 들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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