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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개소리쟁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효다.

그는 진리의 편도 아니고 거짓의 편도 아니다.

정직한 사람의 눈과 거짓말쟁이의 눈은 사실을 향해 있지만,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개소리를 들키지 않고 잘 헤쳐 나가는 데 있어

사실들이 그의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들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이다.


- 해리 G.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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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수학 - 32년형을 선고받은 크리스토퍼에게 수학은 무엇이었을까?
프랜시스 수 지음, 고유경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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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신학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이들에게”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신학이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일각의 오해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이 책도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단 이번에는 신학이 아닌 수학이다.


수학 역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왔다. 특히 ‘수포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학문분야로 악명을 떨치고 있기도 하고. 심지어 일부는 수학이라는 게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무관한 학문분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오해에 대한 수학자의 반론이다.





저자인 프랜시스 수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동양계, 정확히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이민자인 부모님은 자신들은 힘든 일을 하면서도 아들은 대학원을 졸업하기를 원했던 전형적인 동양적 사고의 소유자였다. 결국 그는 최초로 미국수학협회 회장에 오른 동양계 인물이 되었으니, 부모로서는 꽤 뿌듯한 일이었을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즐겨했던 저자에게 수학은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분야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자로서 이런 성공을 거두기까지 난관이 없을 리가... 이 책은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겪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수학 그 차제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유익에 대한 저자의 찬사들로 채워져 있다.


또 하나, 이 책의 제목이 “참회의 수학”인 이유는 저자와 편지 교환을 하고 있는(그리고 그 일부가 책에도 실려 있는) 한 죄수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마약에 빠져 열아홉 살 때 무장강도 사건으로 32년형을 받은 젊은 중범죄자였다. 그런 범죄자가 교도소 안에서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이를 통해 세상 속에 담겨 있는 진리에 대해 하나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수학이 인류의 번영을 위한 학문이라고 말한다(이건 수학이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에 대한 반론이다). 기본적으로 정확한 계산을 바탕으로 하는 수학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손해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걸 가르치는 방식에 기인하는 문제다. 수학은 단순히 많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가, 세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일종의 탐험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으로 수학을 접하고 배운다면, 우리의 수학에 대한 공포증은 조금 줄어들었을가?


나아가 저자는 수학은 의미를 찾아내고, 일종의 놀이이기도 하며, 아름다움과 영원, 진실 같은 좀 더 철학적 주제들을 더듬어 따라가는 방식이라고도 본다. 하긴 흔히 최초의 수학자로 생각하는 피타고라스도 철학자이자 일종의 종교인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이 수학을 통해 그런 것들을 얻을 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에는 수학은 물론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다양한 편견(여성은 남성보다 수학을 잘 못할 것이다, 동양계 학생은 수학 성적이 좋을 것이다 같은)과 힘의 논리 같은 것들이 사람들의 수학 탐험을 방해한다. 책의 후반은 수학의 진정한 가치를 더 널리 확장시키기 위해 갖춰야 할 부분에 관해 제안한다.





학창시절 나도 수학을 제법 어려워했던 것 같다. 온갖 수식들이 난무하던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에서 길을 살짝 잃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졸업할 때까지 배우는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본 적이 한 번 도 없었는데, 유독 수학에선 어려움을 느꼈다(그래도 수능시험에선 만점을 받긴 했다). 처음에 그렇게 두려움을 느끼니 이후에도 좀처럼 친해지지 않았다. 만약 수학을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탐험으로 배우기 시작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비단 모든 학문이 제대로 공부를 한다면, 결국 세상에 대한 이해로 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학문이라면 어느 것 하나 필요 없는 게 없을 것이다. 이게 배움이 주는 즐거움의 원인일 테고. 이 책에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숫자나 수식보단 수학철학, 공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제기 같은 게 좀 더 많이 나온다. 조금은 다른 식으로 수학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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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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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에 이 책 전집(3권)이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올라왔을 때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주제도 워낙 관심이 갔고, 저자도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확실히 글재주가 있는 시오노 나나미였으니까. 확실히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었고, 한참 만에 꺼내 읽기 시작하다 과연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십자군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었다. 거의 200년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사건들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그 중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 1095년 시작된 첫 번째 십자군이다. 당시 유럽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 사이의 대립이 꽤나 격렬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으로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을 꿇었던(상징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것이 바로 몇 년 전이었고, 이에 원한을 품고 있던 황제는 곧 자신을 무릎 꿇린 교황을 몰아내버렸다.


같은 시기 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이슬람 세력의 위협이 일종의 상수였다. 아라비아 반도의 한쪽 구석에서 시작된 이슬람 세력은 곧 아라비아 반도 전체와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전역, 그리고 이 시기에는 북아프리카 전체와 유럽의 일부(이베리아 반도)까지 세력을 확장한 상황이었다.


십자군은 이 두 가지 상황을 한 번에 타개해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레고리우스 8세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던 우르바누스 2세는 이슬람 세력에 의한 예루살렘의 성묘교회 파괴와 순례자들에 대한 공격을 명목으로 ‘성지회복’을 위한 십자군을 주창한다. 그리고 여기에 유럽의 여러 귀족들이 참여하면서, 교황의 권위는 전 유럽에 떨쳐지게 된다.


1차 십자군은 사실상 성지 회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유일한 십자군이었다. 사실 여기에는 프랑스나 잉글랜드의 왕이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같은 군주들이 직접 나서는 대신,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지역의 영주들이 주축이 되어 자칫 오합지졸이 될 뻔했던 구성이었지만, 노르만족 출신의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와 그 조카인 탄그레디, 또 독일 지역의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와 그 동생 보두앵 등 전술과 전략에 뛰어난 지휘관들과 오히려 사분오열 된 이슬람 세력의 상황으로 지중해 동부 연안을 점령하고 일종의 기독교 연방 국가들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전체 3권 중 첫 번째 책인 이번 권의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였다.





뭐 이 정도의 간략한 이야기는 인터넷을 조그만 뒤지면 누구나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역시 시오노 나나미의 글이라면 디테일한 사건의 전개 과정 묘사, 그리고 이 과정이 흡입력 있게 재구성되어 있다는 장점 아니겠는가. 기록으로만은 쉽게 파악하기 힘든, 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그들이 내린 결정에 어떤 사고과정이 있었을지 하는 부분들은 인상적이다.


물론 “로마인 이야기” 때부터 은근 자주 보였던 군국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일본)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다운 제국주의적 관점이 여기에서도 틈틈이 보이긴 한다. 예컨대 ‘지즈야’라는 비무슬림에게만 부과되는 세금을 내면서 살아야 했던 이슬람 세계 속 기독교인들의 처지를 나름 나쁘지 않은 거 아니냐는 식으로 묘사하는 부분(30)은, 과거 일제의 식민지 시절 조선인들도 조금 피해를 입긴 했으나 나름 살 만했다는 어느 무지한 이들의 망언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 대체로 힘의 원리를 신봉하고 있고, 정복자, 특히나 인상적인 전과를 올리는 정복자들에게 우호적인 서술을 한다거나,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은근한 폄하도 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없는 걸로 생각하고 무시해버리는 케케묵은 계몽주의 시대 똑똑이들의 관점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1차 십자군의 과정에 관해서 이보다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약간은 애증의 감정으로 계속 보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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