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패배한 직후

민주정치를 버리고 과두정치로 이행한 것은

승자인 스파르타의 강요 때문이 아니었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전투가 굴욕적인 패배로 끝나면서

아테네 시민 스스로 100년에 걸쳐 유지해 온

민주정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 시오노 나나미, 『그리스인 이야기 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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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영화.


영화는 일제 강점기 경성의 총독부에 잠입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비밀스럽게 잠입해 총독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그를 부르는 이름이 바로 “유령”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함과 치명적인 파괴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요원에게 꽤나 어울리는 이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다섯 개의 국경일 중 두 개가 일제 강점기와 관련이 되어있는 나라다. 삼일절과 광복절이 그것. 그만큼 이 나라의 현대사에 일제강점기가 남긴 상처는 깊고 굵다고 해야 할 것이다. 때마다 종종 그 암울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가끔은 그보다 앞선 일본의 침입―예를 들면 임진왜란 같은―을 다루기도 하고)


해방된 지 벌써 곧 80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그 시절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여전히 그 시절 일어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도 싶다. 대통령과 친구라는 어떤 양반이 싸질러 놓았다가 급히 삭제한 글처럼 결코 “식민 지배 받은 나라 중 사죄·배상 악쓰는 건 한국뿐”인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더 가증스러운 건 스스로를 일본과 동일시하는 조선놈들이었다.





스타일리시한 연출.


영화 전체가 꽤나 긴박감이 있으면서도, 세련된 느낌이다. 스파이 “유령”으로 지목된 조선인 다섯 명이 한 호텔에 감금된 채 심문을 받고, 누군가 자수하지 않으면 모두를 고문하며 해치겠다는 위협을 받는 상황에 몰린다. 그런데 여기 모인 여섯 명이 꽤나 생생한 특징을 지닌 캐릭터들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역시 이 흥미로운 캐릭터들인 것 같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라는 조금은 묵직한 배경 속에서, 이 독특한 캐릭터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만들어 내는 케미가 통통 튄다. 특히 정무총감의 비서이자 내연녀인 유리코(박소담) 캐릭터가 꽤나 눈에 들어온다. 누가 봐도 싼티가 철철 넘치며 온갖 난동을 부리며 시선을 빼앗으니까. 또, 자기 어머니까지 죽여가면서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거기서 성공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무라야마(설경구)도 영화 중후반까지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영화의 초반은 그 호텔에 갇힌 다섯 명 중 누가 스파이인가를 두고 감독과 관객이 벌이는 머리싸움이기도 하다. 각자가 모두 의심스러운 면이 보이고, 그들이 하는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를 고민해 가며 보는 맛이 있다. 확실히 상업영화를 만들 줄 아는 감독.





오늘의 한일관계.


이런 영화를 보면 자연히 오늘의 한일 양국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 일본은 또 다시 독도가 자신들의 합법적인 영토라고 망나니짓을 하기 시작했고, 그 며칠 후 우리 대통령은 일제에 항거한 3.1운동을 기념하는 날에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대통령 눈에 드는데 인생을 바친 여당 쪽 인사들의 맞장구 소리에 며칠간 귀가 따가울 정도였고, 오늘 충북지사는 “나라를 위해 자신은 친일파가 되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새에 발생한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의미하는 건 뭘까? 물론 인접국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필요한 일이고, 때로 악질 국가들과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이어가는 것도 외교의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굴종의 방식, 특히 여전히 제국주의적 망언을 쏟아내는 정권에 대한 무릎 꿇기 식이어서는 안 되는 거다.





영화 속 무라야마는 전형적인 스스로 무릎 꿇은 조선인이다. 그는 일본인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이 스파이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진짜 스파이를 찾아 죽임으로써 조선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던 인물이다. 그는 벌써 합방된 지 10년이나 됐다며, 언제까지 독립 타령을 할 것이냐고, 이제는 내선일체를 이뤄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한다.


일제가 조선을 발전시켰고, 덕분에 근대화가 이루어졌으며, 오늘날에도 일본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 경제와 안보가 당장 망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암덩이처럼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은, 분명 온 목숨을 바쳐 독립을 이뤄내려 했던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는 일일 것이다. 영화 속 무라야마는 결국 유령에 의해 처형되었지만, 현실 속 무라야마들은 삼일절에 일장기까지 내걸며 더 발광 중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뉴스로 돌아가면 입맛이 더 씁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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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 기쁨의 하루
C.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요 근래 두란노 출판사에서 C. S. 루이스의 글 중 일부를 짧게 발췌해서 몇 권의 책을 펴냈었다. 그 중 세 권은 작고 얇았고, 한 권은 나머지 세 권을 합친 것 정도 되는 양이었다. 작은 책들은 기도, 신앙, 독서라는 주제에 따라서 글들을 뽑아내서, 특정한 주제에 대한 루이스의 생각을 찾고 싶을 때 도움이 될 만도 했다.


하지만 역시 한국어판 C. S. 루이스라면 근본은 홍성사 아니겠는가. 루이스 정본 클래식이라는 시리즈로 거의 모든 루이스의 책을 출판한 만큼, 적어도 내 안에는 이 출판사에서 낸 책들이 훨씬 애정이 간다.


이 책 역시 앞서 말했던 두란노에서 낸 발췌집과 비슷한 기획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은 1년 365일에 해당하는 날에 맞는 루이스의 글들을 뽑아 배치했다는 것. 그리고 뽑아 놓은 문장이 좀 더 길어서, 그게 어떤 문맥에서 나왔는지를 파악하기에 용이하다. 각각의 날들 중 특별히 기독교의 기념일과 겹치는 날이면 그와 관련된 문장들이 실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방금 전에 알게 된 사실은, 365일이 끝난 후, 매년 날짜가 바뀌는 기독교 축일에 해당하는 몇 개의 글이 더 추가되어 있다.


아, 우리 집에는 이와 비슷한 성격의 책, 아니 일력이 하나 더 있다. 이쪽은 달력처럼 스프링으로 제본되어 매일 넘길 수 있게 된 형식. 이 역시 홍성사에서 낸 건데, 문장은 훨씬 짧다.





자 쓰다 보니 책의 내용보다는 형식에 대해 말이 길어졌는데, 사실 이미 우리말로 번역된 루이스의 책을 모두 읽어본 상황에서, 이 책에 발췌되어 있는 글들이 아주 새롭다고는 할 수 없다. 대부분은 읽으면서 이전의 기억들들 되살리는 경험이 반복되었다. ‘아, 이런 글도 있었나’ 싶었던 내용은 솔직히 말하면 채 열 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루이스의 명문장들은 다시 읽어도 그 좋음이 어디 사라질까. 몇 번이나 읽었던 내용들도 눈길이 지날 때마다 다시 한 번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글들을 매일 읽을 수 있도록 편집을 해 놨다면 그 또한 유용하지 않은가.


사실 이번에 완독을 하는 데까지는 몇 년이나 걸렸다. 우선은 눈앞에 읽어야 할 책들이 늘 쌓여 있기 때문이었고, 이미 한 번은 읽어본 내용들이라는 생각에 조금 뒤로 밀린 감도 있다. 또, 워낙 두께도 두껍고, 글자는 또 살짝 작아서 눈에 편하지는 않기도 했고.


하지만 일단 완독을 했으니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 책을 두고, 물론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생각이 날 때마다 그 날 날짜에 맞는 글을 찾아 읽어보겠다는 것. 앞서 언급했던 일력을 매일 한 장씩 넘기면서 이 책까지 본다면, 그 제목대로 루이스와 함께 “기쁨의 하루”를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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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꽃 한 송이 보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죽지 않고 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고,

여전히 나는 찔레꽃 한 송이 피우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 제님 ,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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