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머리말(1/2) 순전한 기독교 읽기 스타트!!!!





(02) - 머리말(2/2) '현관 마루'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03) - 우리 모두는 자연법을 인식하고 있다




(04) - 어떤 경우에도 본능을 절대시하면 안 됩니다




(05) - 결코 떨쳐낼 수 없는 그 이름, 자연법





(06) - 교회는 질문을 불편해 해서는 안 됩니다




(07) - 낭패감에서 시작하는 기독교 신앙!




(08) - 타종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걸까?




(09) - 교회에 가면 비밀 무전을 들을 수 있다?





(10) - 자유를 선택하는 순간 따라오는 고통





(11) - 나는 한 번이라도 진정한 회개를 해본 적이 있을까?




(12) - 강남 기독교라고 들어봤어?





(13) -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 그리스도인은 사용할 수 없는 변명





(14) - 무지하거나 고집쟁이가 되거나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




(15) - 강아지를 사랑하는 데도 절제가 필요하다고?




(16) - 기독교인은 당연히 △△당을 지지해야 한다? 헛소리!




(17) - 저는 원래 성경공부 체질이 아니에요?




(18) - 드디어 이 주제를 다룹니다... 순결에 관하여





(19) - 설렘이 사라진 후에도 결혼을 유지해야 할까?




(19+α) 추가영상 - 가정의 머리가 남자라고?




(20) - 이 시국에 일본을 용서하라고?




(21) -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죄는 뭘까?




(22) - 교회에 사랑이 없다고?




(23) - 교회는 N포 세대에게 소망을 줄 수 있을까




(24) - 믿습니까? 무조건 '아멘'?




(25) -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26) - 왜 우리는 정확한 교리를 배워야 할까




(27) -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한 통로, 교회!




(28) - 하나님은 우리가 내일 할 일을 알고 계실까




(29) - '성령 훼방죄'에 아무 거나 갖다 붙이지 말자




(30) - 우리는 개인주의자인가 전체주의자인가




(31) - 은혜 받은 척? 은혜 받는 법!




(32) - 기독교의 시작과 끝은 바로 이것!




(33) - 하나님이 집착(?)하시는 단 한 가지!




(34) - 교회 다니면 다 밥맛일까?




(35, 완결) - C. S. 루이스가 말하는 '새 사람'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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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않아도,

딱 한 명이라도 좋으니

자신에게 푹 빠져 있는 누군가를 만나면 좋은 거 아닐까."


시로노 고네코, 『나는 고양이지만 나쓰메 씨를 찾고 있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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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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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저녁, 일주일 가까이 들고 있던 이 책을 다 읽었다. 공교롭게도 장례식 빈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죽음과 부활, 그리고 우주의 종말이라는 묘한 조합이다.



브라이언 그린이 쓴 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읽었던 『우주의 구조』는 제목처럼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탐구였다면, 이번 책은 “시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주의 역사를 탐구, 조망한다.


1장에서 3장까지는 물리학 법칙에 따른 우주의 발생과 진화를 다룬다. 빅뱅과 엔트로피의 증가, 그리고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영역에서 엔트로피의 감소(질서의 증가)가 나타나는 “엔트로피 2단계”의 영향으로 우주가 오늘에까지 이르렀다는 내용이다. 저자의 앞선 책에서도 일부 볼 수 있었던 것들이다.


물리적 세계에서 생명이 출현하는 과정을 다룬 4장과, 이어 의식과 마음, 신앙까지도 다루는 5장부터 9장은 위치적으로도 책의 중심에 놓여있고, 분량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헐겁게 느껴졌다. 유물론적 환원주의자인 저자로서는 어떻게든 “오랜 시간”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서 이런 주제들마저 물리적인 용어로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그게 썩 잘 되지는 않는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설명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내용인지를 토로한다. 의식을 설명하는 일은 “과학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197)이며, 예술에 관한 경험에 대해서는 “굳이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으며, “내면의 자아가 입을 다무는 순간”이라고 고백(335)한다. 308쪽에 등장하는 종교에 관한 “완전히 논리적인 서술”은 사실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으며, 어떻게든 이 주제를 유물론적 환원주의에 충실한 교리로 설명하려는 노력만 돋보일 뿐이다.


마지막 두 장은 우주의 미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다는 내용이다. 의식을 가지고 사고하는 존재가 계속 있을 것인가 하는 주제가 잠시 던져지기도 하지만, 수백 억 년 이후에 일어날 작은 일에 그토록 집중하는 모습은 조금은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애초에 의식이라는 게 그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생겨버린 사고와 같은 것에 불과한데,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지의 여부가 우주적으로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혔다. 하지만 유물론적 환원주의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 즉 아무 의미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부분이 강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C. S. 루이스가 말한 것을 약간 변용하자면, 의식과 이성적 사고라는 게 그저 우연히 쏟아버린 우유에 불과하다면, 그 우유의 쏟아진 모양을 보고 앞날을 예측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브라이언 그린이 리처드 도킨스 같은 유사 물리-인문학자보다 나은 점은, 그린 역시 자유의지를 단지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갑자기 벤치를 박차고 튀어 올라 사람을 구하”는 것(219) 정도로 설명하면서도, 그 이유를 “이기적 유전자” 같은 허황된 상상에서 끌어대는 대신 그냥 모른다고, 다만 그런 일들을 회상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220) 뭔가 (자신의 설명이 갖는) 한계를 인정하는 부분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르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질서정연한 우주가 형성되고, 그 안에 생명이 존재하고, 또 그 중 의식을 가진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극히 작은 확률의 사건이다. 물론 저자는 무한대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무리 작은 확률의 사건이라도 얼마든지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사건이 갖는 기적적인 확률을 부정할 수는 없었는지, 책 말미에 이렇게 쓴다. “우연의 신이 우리를 한없이 축복하사, 자연의 법칙이라는 좁디좁은 깔때기를 통과하여 우리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457)



결국 현대 물리학은 우주는 아무 것도 아닌 데서 시작해, 지금도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우주의 원리를 밝혔더니, 결국 다 없어져버릴 일이라는 결말이 조금은 허탈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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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창업하기 전 꼭 읽어야 할 책




(2) - 절대 피해야 할 인터뷰 태도





(3) - 될 만한 사람의 세 가지 특징




(4) - 돈보다 더 중요한 게 분명히 있습니다




(5) - 돈을 버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틀린 이유




(6) - 의지로 일하는 사람 vs 열정으로 일하는 사람




(7) - 기업의 좋은 비전이 연봉협상에 도움이 되는 이유




(8) - 고객을 돈줄로만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




(9) - 좋은 리더는 이런 게 다릅니다





(10) - 창업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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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
신아연 지음 / 책과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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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고난주간, 우연히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책은 제목처럼, 안락사가 법으로 허용되어 있는 스위스에 다녀온 작가가 그 경험과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은 에세이다.


스위스에 가게 된 동기가 독특하다. 오래 전부터 작가의 글을 읽고 알고 있었던 한 독자가 갑자기 연락을 해왔고, 기대수명이 얼마 남지 않으 상태로 큰 고통을 겪고 있던 그는 안락사 신청이 받아들여졌으며 작가가 자신의 그 마지막 여행에 동행해 주었으면 한다는 의사를 표해왔다. 그는 일찍이 호주로 이민을 간 한국인으로, 이 여행에는 아내와 다른 지인들도 초대해 놓은 상황이었다.


처음 만나는 상대와 함께 안락사를 위한 스위스 여행에 동행이라니... 책 초반에는 이 초대에 일단 응하기로 하고서도 계속해서 고민에 빠지는 작가의 모습이 실려 있다. 사실 누구라고 해도 이런 초대에 응하고 싶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가 특별히 자신을 지명해 초대했다는 점과 작가로서의 모험심, 즉 이 여행을 통해 뭔가 글을 남길 수 있겠다는(그건 “그”의 요청이기도 했다) 생각이 어울려서 따라나섰던 것 같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겁다. 한없이 늘어지는 준비 과정과, 막상 스위스에 도착해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길들, 그 와중에 지인들을 무심히 배려하는 “그”의 모습. 마침내 당일 일이 진행되고, 돌아온 후에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마음과 지난 일을 복기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까지 모든 작업이 느릿하게 진행된다.


온라인서점인 알라딘에 이 책에 관한 100자평이 좀 우습다. 하나같이 1점이라는 괴상한 점수를 부여하고 있는데, 물론 이 책이 명작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1점이 부여될 정도의 형편없는 글은 아니다.


주된 이유는 작가의 기독교 신앙을 지나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스위스로 갈 때까지만 해도 종교를 갖지 않았던 작가가, 귀국 몇 개월 후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이 책을 쓸 때 자신의 신앙을 바탕으로 그날을 해석(자살은 옳지 않다)했던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물론 이런 식의 비난은 별 가치도, 의미도 없는 공감과잉의 결과일 뿐이다.


애초에 돌아가신 분의 삶과 품성에 대해서 작가는 어떤 비난도 하지 않고, 자살이라는 선택 자체가 가지는 종교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려 했을 뿐이다. 물론 작가가 선택한 해석이 기독교 전체의 유일한 해석은 아니고, 또 굳이 그 이야기를 여기에 덧붙임으로써 “그”의 죽음에 어떤 평가를 내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최선이었나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글쓰기 방식으로 썩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죽음에 대해 뭐라도 덧붙여야 할(그래서 다른 사람은 가능하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의무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정도 말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못하게 막으려고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과도한 PC주의나, 죽음에 대해서는 무조건 특정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일방적인 사고에 빠져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돌아가신 분이 굳이 작가를 초청했고, 그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면, 그 방향까지는 뭐라고 쓰던 별 상관은 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괴로운 여행을 결정하고, 그 모든 과정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려고 했던 “그”의 생각과 심정에 더 큰 관심이 갔다. 자신이 죽을 날짜를 정하고, 그걸 알면서도 그 길을 향해 나서는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마치 이번 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그분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걸어가면서 들었던 생각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물론 두 죽음의 의미나 효력이 비슷하다는 건 아니다.)


기독교인들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님 아들의 결연하고 당당한 행보 정도로만 여길 때가 있다. 하지만 겟세마네에서의 처절한 기도에서도 알 수 있듯, 그분도 여느 사람들처럼 두려움과 불안, 초조함을 느끼셨을 것이다. 죽음은 누구라도 함부로 가볍게 대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오히려 그분이 맞이하신 죽음을 좀 더 생생하게 상상할 때, 우리가 일으킨 죄의 결과의 파괴력에 대해서도 더 실감나게 인식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역시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꽤 아쉽다. 안락사(조력사)의 신학적 문제를 지적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꽤 담담한 시선으로 조력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심리상태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읽을 만한 내용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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