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긴 제목(“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만든 특유의 세계관, 굳이 말하자면 ‘베르베르 유니버스’를 알아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단숨에 유명작가로 만들어준 『개미』 속 등장하는 괴짜 박사인 에드몽 웰즈가 썼다고 설정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나중에 작가는 실제로 같은 이름의 책을 내기도 했다)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에 이 책의 저자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게 된 고양이라는 설정이 더해져서 이 책이 나왔다.
우선 진짜 작가인 베르베르 자신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도 하고, 최근 작품인 『고양이』에서 그 생태를 자세하게 묘사하기도 했던지라, 그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고양이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들, 주요 사건들이 실려 있고, 2부에서는 고양이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생물학적 정보들이 담겨 있다.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신화적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던 고대와, 터부시되었던 중세를 거쳐 반려동물로 받아지게 된 르네상스 시기 이후, 그리고 우주선에 타기까지 했던 현대의 이야기를 쭉 훑어가는 1부는 재미있었다. 이 서술이 고양이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 설정도 재미를 조금은 더해주고.
다만 2부는 정말 말 그대로 “백과사전”을 넘기면 나올 만한, 평이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책 사이사이에 들어간 여러 장의 컬러 도판이 그나마 눈을 즐겁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몇 개의 항목은 그냥 양을 늘리려는 속셈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같기도 하다.
뭐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은 아니고, 그냥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팬심으로 볼 만한, 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쁘지 않게 볼 수 있을 만한 내용이다. (이렇게 출판사는 책을 또 한 권 파는데 성공하고....)
아~ 아이유~
솔직히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의 팔할은 아이유 때문이었다. 인정한다. 아이유가 예쁘고 밝게, 그리고 연기가 영 못 봐줄 정도만 아니라면 충분히 이런 영화를 얼마든지 봐줄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쪽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 준다.
첫 등장부터 털털 발랄한 모습으로 나온 아이유는 시종일관 그 텐션을 유지하면서 영화 끝까지 활약한다. 생계형 PD 소민 역으로 어떻게든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했던 상황에서, 상대를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귀여운 억지까지 부리면서.
상대역인 박서준과의 티격태격도 재미있고, 그렇다고 둘 사이에 어설픈 로맨스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각자 결국 원하는 것을 얻고, 꿈을 향해 조금 더 나아가게 되었다는 내용도 나쁘지 않다. 뭐 다 아니라도 그냥 아이유가 예쁘게 나왔다면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홈리스 월드컵.
영화는 홈리스들을 위한 국제축구경기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로 이런 대회가 존재하고, 영화 초반에도 이게 실제 대회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다는 멘트가 나온다. 물론 등장하는 인물의 캐릭터나 사건은 전적으로 창작이라는 말이 덧붙여지지만.
홈리스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잡지 “빅 이슈”도 마찬가지로 실제로 존재한다. 영화 속 그림처럼 주요 지하철 역사 입구에서 빨간색 조끼를 입고 판매하는 판매원에게 몇 번인가 구입한 적도 있다. 다만 내가 사는 곳 근처에선 팔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어서 만날 때만 구입할 수 있었다. 내용은 뭐 특별한 건 없고, 표지모델로 연예인들 화보가 들어있는데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거가 불안정하다는 건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굉장한 위기를 초래한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건 나머지 시간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래서 다른 무엇을 하기 어렵게 만들기까지 한다. 홈리스들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도, 그들 안에 있는 이런 근본적인 불안과 무력감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홈리스들에게 축구경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그건 홈리스들에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성취감과 목표의식을 줌으로써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말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그들 역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일원이라는 걸 상기할 수 있는 기회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짜임새가...
배우도 좋고, 의미도 있다. 다만 영화의 전체적인 짜임새는 상당히 헐겁다. 뭘 말하고 그리려는 지는 확실히 알겠다. 하지만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긴밀하지 못하고, 그저 훈련과 경기에 참여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나열되기만 한 느낌이다. 주인인 아이유와 박서준에게 꽤나 집중되어서 나머지 인물들은 완전히 주변으로 밀려난 것 같기도 하고.
여기에 다양한 종류의 신파코드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갔다는 점도 지적될 만한 부분 같다. 물론 홈리스라는 거의 사회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캐릭터들인지라,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겠다는 점은 수긍이 가지만, 이렇게까지 그걸 늘어놓으면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도 좀 부담스럽다.
또, 영화 중후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축구경기 장면에서도, 스포츠 특유의 역동성과 긴박감을 잘 그려낸 것 같지도 않다. 이야기로 풀려나와야 할 부분은 그저 캐스터의 중계 멘트로 다 때운 느낌이고, 실제로도 전문적인 선수들이 아닌 이상 무슨 멋진 드라마가 나오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이야기가 될 만한 것을 만들지 못할 건 아니지 않던가.(예능프로그램인 “골때녀”를 보라)
결론은... 영화의 짜임새, 이야기 자체의 매력은 별로, 하지만 실제 사건에 대한 환기라면 의미가 있고, 팬심으로 보기엔 나쁘지 않았던 영화.
벌써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을 병원 생활을 하셨고, 소위 “중환자실”이라고 불리는 집중치료실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내셨었다. 수년 동안의 입원생활로 몸의 근육이 거의 사라지면서 건강하셨을 때와는 전혀 다른 외형이 되셨고, 위독한 고비를 몇 번이나 지나신 후, 결국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였던 지라, 이 책의 내용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이 지적하는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죽음이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편안한 곳(아마도 집)에서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되도록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기를 바라고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에 임박해 찾는 곳은 병원이다.
일단 병원에 도착하면 바늘을 찌르고, 수액을 꽂고, 온갖 검사들을 돌아다니다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집중치료실(대부분의 병원에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종실을 따로 마련해 두지 않는다)에서 죽을 때까지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버티다가 마침내 진이 빠져 숙는다. 이게 과연 존엄하고, 존중받는 죽음의 모습일까?
저자가 말하는 건 호스피스 의료의 중요성이다. 생애 말기에 이르러 더 이상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무작정 영양을 공급하고.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약물투입으로 환자가 고통을 겪는 시간을 늘리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환자가 남은 생을 최대한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처치를 제공하는 호스피스 의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에 크게 동의한다. 오랜 병원 생활이 얼마나 사람을 초췌하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옆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의 의사들이 ‘최선’이라는 모호한 기치 아래 일종의 교조주의적 집착에 빠져, 환자에 대한 치료 아닌 치료를 고집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여러 번 반복되는데, 동료 의사들의 고집과 자존심 지키기에 대한 저자의 분통이 터져 나오는 부분이다.
물론 여기에는 법의 모호함으로 인한 책임추궁을 피하려는 의사들의 심리와, 죽음 자체에 대해 제대로 고민할 틈이 없는 일반적인 상황들, 그리고 완화의료(호스피스 의료)가 현재로서는 병원 운영에 경제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사람(의사)과 문화와 결국 돈의 문제.
난 그렇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받은 것을 충분히 갚고 나면 남은 삶은 여유를 좀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뭐 그것도 경제력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가능한 일일 게다. 그렇다고 무슨 큰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이나 노력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잠언의 한 구절처럼, 너무 부자가 되지도, 너무 빈곤해지지도 않기만을 바랄 뿐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죽음에 관해서는 부디 큰 고통이 없이 맞이했으면 좋겠다 싶지만, 책에 묘사된 대로 일단 병원에 잡혀가고 나면 그런 기대가 실현되는 건 쉽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죽음은 점점 더 익숙한 일이 될 텐데, 이에 대한 좀 더 속 깊은 대화가 좀 더 빨리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좀 편안히 갈 수 있을 테니까.
책에서 지적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볼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모습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기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