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의심이 신앙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2) -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 성경




(3) - 우린 왜, 어떻게 선교해야 할까?




(4) - 우린 복음 안에서 답을 찾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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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은 내 인격의 수준만큼 필요한 것이지

내 인격의 수준보다 많이 가지면 재산의 노예가 됩니다.


- 김형석, 『교회 밖 하나님 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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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모험담.


이게 벌써 시리즈 세 번째 영화라지만, 솔직히 가오갤 시리즈를 찾아 본 적은 없다. 사실 마블 영화 자체도 반드시 따라가면서 봐야한다는 생각도 없는 편이었으니까. 뭐 세어보면 그래도 이런저런 MCU에 속한 영화를 몇 편 보긴 했는데, 개봉을 기다려가며 봤다기 보다는 영화를 보려고 하는 날에 맞는 게 그 영화였다는 쪽이 더 큰 것 같다.


아무튼 덕분에 이 등장인물이 잔뜩 등장하는 시리즈를 보기 위해서는 영화 초반 주의를 바짝 기울여야 했다. 마블의 다른 영화 시리즈에 등장하는 걸 보긴 했지만, 특히 “엔드게임”에서 일부 캐릭터 간 스토리가 그려지기도 했지만, 제대로 본 건 이게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가 그렇듯, 캐릭터들의 특징과 케미는 금세 빠져들게 만들었고, 어느 정도 지나면서 바로 영화 속 모험을 즐기게 된다. 물론 영화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인 스타로드와 가모라 사이의 애절함에는 그닥 공감할 수 없었고, 쉴 새 없이 삽입되어 있는 팝음악들이 살짝 시끄럽긴 했지만.





동물실험과 C. S. 루이스


영화는 인간화된 너구리 “로켓”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마도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는 걸로 보이는 로켓은 실은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기 위한 “하이 에볼루셔너리”라는 존재가 동물실험 중에 탄생한 것이었고, 그는 자신의 작업을 더 완전하게 진행하기 위해 로켓의 두뇌가 필요했던 것.


영화 속에는 회상신으로 과거 로켓이 받았던 실험과, 그 실험실 속 로켓의 친구들 이야기를 조금은 슬프게 그려낸다. 인간화되긴 했지만, 신체의 일부가 기계장치로 대체된 토끼와 바다사자, 그리고 (아마) 수달들은 창살로 막힌 좁은 공간에서 새로 들어온 로켓을 친구로 받아들여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곧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만들어 낼 새로운 세상에 갈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갖고. 그러나 하이 에볼루셔너리에게 자신의 친구들은 그저 실험 중 만들어진 불량품에 불과하다는 걸 안 로켓은 친구들과 함께 탈출을 시도하지만 사고로 모든 친구들을 잃고 만다.


조금은 극단적으로 묘사되긴 했지만, 사실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던 소재다. 여전히 수많은 동물들이 인간들의 실험에 의해 고통을 받다가 결국 소각처리가 되고 만다는 불편한 진실. 물론 의약품 개발 같은 일에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봐줄 수도 있지만, 단지 화장품 같은 미용목적으로도 동물들이 희생되는 건 좀 염치가 없어 보인다.


영화를 보며 C. S. 루이스의 우주 3부작 중 마지막 책인 『그 가공할 힘』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작중 NICE라는 연구소에서는 인류의 최종적인 진화상태를 앞당기기 위해 동물(과 나중에는 인간) 실험을 자행하는 집단이 등장한다. 루이스는 결국 그들이 인간이 아닌 존재로 전락해버렸다고 그린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일은 가장 비열한 범죄 중 하나다.





가디언즈.


히어로 영화들이 다 그렇지만, 주인공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을 지키기 위해 신의 목숨과 안전을 내어놓은 채 싸움에 뛰어든다. 당연히 이 일은 쉽지 않고, 작정하고 뭔가를 망치러 달려드는 이들은 강하고 수도 많다. 그래서 초능력 같은 일종의 주인공 보정이 더해지는 거고.


그런데 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팀원들은 그런 초능력이랄 게 좀 약해 보인다. 물론 나무처럼 가지를 (그것도 아주 강한 재질의) 자유자재로 뻗어 싸우기도 하고,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조정하기도 하지만, 당잘 이더인 스타로드는 그냥 인간일 뿐이니까. 아이언맨처럼 슈퍼 슈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몸으로 달려들면서도, 생명과 친구들을 지키겠다는 마음만은 뒤지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짠하면서 애정이 간다.


온통 자기 욕심에 빠져서 주변의 존재들을 망가뜨리는 이들로 뉴스가 채워져 있는 세상이 아직도 망하지 않고 있는 건, 어딘가에서 이런 가디언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훌륭히 감당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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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기독교 교리사
후스토 L. 곤잘레스 지음, 이후정 옮김 / 컨콜디아사(재단법인한국루터교선교부유지재단)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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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저자의 책을 대여섯 권 읽어보면, 이제 그 저자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확실히 잡히곤 한다. 앞으로 그 저자가 쓴 책을 계속 찾아볼지, 아니면 이제 그만 보는 게 나을지. 나에게 이 책의 저자인 후스토 곤잘레스는 믿고 봐도 좋은 교회사 관련 저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 읽고 말게 아니라 구입해서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봐야할 책을 내 주는 인물이다.


곤잘레스의 책의 장점이라면 역시 좋은 정리다. 교회사라는 방대한 내용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콕 집어내서 전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학술 연구자들은 좀 더 방대한 배경자료들이 필요하겠지만, 나 같은 일반 독자에게 그런 것까지는 필요 없으니까.(필립 샤프의 방대한 전집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이유다.)


또, 이런 자료들을 그저 늘어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읽기 쉽게 풀어놓는 재주도 가진 작가다. 여기엔 과도한 찬탄이나 탄성이 들리지 않고, 역사가로서 가능한 객관적인(물론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객관성 따위는 없다) 서술을 담담하게 해 나간다는 점도 읽는데 부담스럽지 않게 해 주는 부분이다.





이 책은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기독교 교리’에 관한 내용이다. 제목이 좀 딱딱해서, 또 교리라는 것에 대한 선입관 때문에 왠지 무지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전혀 다르다. 물론 이 책이 무슨 무협지나 SF소설처럼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에,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꽤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쓰였다.


이 책의 특징은 연대기적 서술을 하면서도 동시에 주제별로 통시적인 관찰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열한 가지의 신학 주제들을 배치하는 데, 그 순서가 교회의 역사에서 그 주제를 다룬 순서를 따른다. 이건 어떤 신학 논의가 등장하게 된 이유와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각각의 주제들을 서술하면서는 단지 그것이 처음 나왔을 때의 논의만이 아니라 중세, 근대, 현대의 논의까지를 아울러 설명현서, 주제에 대한 좀 더 복합적인 이해를 돕는다.


기본적으로 이런 구성만으로도 어느 정도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책이다. 이게 말은 쉽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니까. 2천 년 기독교 신학의 전반적인 흐름에 관해 폭과 깊이를 두루 갖춘 괜찮은 교양서적이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이 2천 년이라는 역사와 전통 위에 서 있지만,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기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로 나오는 것이 온갖 허접하고 허술한 진술과 스스로는 기발하다고 우쭐대나 실은 이미 이단적이라고 밝혀진 얄팍한 사고들이다. 또, 현재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진술들이 신학 역사에서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몇몇 인물들로 소급될 수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게 절대적인 진리인 양 착각하기도 하고.


또, 저자는 교리란 우리가 절대적으로 지키고 따라야 할 무엇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야구 경기의 파울선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 선을 넘어가면 아무 의미가 없는 무효타인 거고, 그 안에 있어야 유효한, 하지만 일단 그 라인 안에만 있으면 수없이 다양한 상황들을 얼마든지 용납해 낼 수 있는 그런 선이 교리라는 말이다. C. S. 루이스가 말했던 “난간”과도 비슷한 설명이다.


교리는 여전히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교리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신학자들의 욕심, 혹은 방식 때문일 것 같다. 곤잘레스가 자주 쓰고 있는 문장 가운데 하나가 “교리는 예배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애초에 교리가 단순한 지적 토론으로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또, 교리는 예배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교리가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인도해주지 못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교리가 아닐 수 있다.



좀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리를 좀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그 유익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시작은 익숙지 않아서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첫 발을 떼지 않으면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법이니, 조금은 참고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이 작업에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아쉽게도 일찌감치 절판되었다. 혹 아직 중고로 구할 수 있을 때 구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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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말단 주임이 내놓은 멋있는 아이디어는

수많은 회의를 거쳐 임원 단계까지 가면

사족이 붙어 그저 그런 아이디어가 되고 만다.

창의력을 가진 인재도 중요하지만,

창의력이 있는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도 그만큼 중요하다.


- 이상직,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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