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23종.

휴.......

좀 더 지혜로운 방법은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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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대 지역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뭐.. 군부대, 그것도 최전방에 그런 소문 하나 없는 데 없겠지만..




이런 건 학교에나 훈련받을 때도 안 배웠던 건데...;;

ㅋㅋ

여자 귀신이라는 사람도 있고, 남자 귀신이라는 사람도 있고..

목격자에 따라 다른 걸 보니

뭔가 보기는 본 건지...




암튼.. 그래서 오늘 밤엔 소초에 가서 병사들이랑 함께 잘 것 같습니다.

병사들 안정시켜주는 것도 주요 임무 중 하나니까요.

내일 뵙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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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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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에 걸친 이 강의에서는

한국의 선거에 대해 일반인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결코 상식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선거는 한국 사회를 바꿔놓는 데

대단히 역동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1. 요약 。。。。。。。           

 

     대한민국 건국 직후부터 지난 2007년 대선까지, 이 땅에서 실시되었던 여러 선거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놓은 책이다. 이 땅에 선거라는 것이 처음 시작되었던 시기부터(1강),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선거를 왜곡시켰던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선거들(2, 3강), 그리고 유신체제의 시퍼런 서슬 아래서 권력자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표현했던 선거들과(4강) 소위 민주화를 이룬 후에 실시되었던 선거들(5강)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있었던 선거들을 소개하면서 한국 근대사를 ‘선거적 관점’으로 바라본 흥미로운 책이다.


 

 

2. 감상평 。。。。。。。 

 

     이 책은 처음부터 책을 만들기 위한 원고로 쓰인 것이 아니라 강의를 녹취해 책으로 엮었기에 좀 정리된 맛은 덜하지만 대신 생동감이 있었다. 책을 쓸 요량이라면 이것저것을 찾아보느라 내용이 길어지고 문장이 딱딱해지는 느낌을 주기 쉽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강의라면 제한된 시간 내에 꼭 중요한 내용만을 전달하기 위해 자잘한 것들은 생략해버린다. 당연히 진행에도 탄력이 붙고, 읽는 과정도 ‘듣는 것’처럼 술술 읽힌다.(물론 내용의 깊이 부분은 어느 정도 제한되겠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니까)

 

     정치에 대한 불신이 결코 적지 않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적당히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정치행위의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선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선거가 가진 놀라운 힘과 그것이 가져온 결과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좀 더 선거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선거의 정신에, 선거의 절차에, 선거의 결론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좋은 선거’는 누가 그냥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의 투쟁의 결과로 얻게 된 소중한 보석과도 같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이 보석을 엉뚱한 데 이용하려는 시도들을 우리는 단호히 경계해야 한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정보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선거가 생각했던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권력자들에 의해 선거가 불법적 권력연장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런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놀라운 선택으로 권력자들을 몰아세우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선거는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대한민국 민주정치의 중요한 기점마다 선거가 놓여 있었다. 비록 최근의 선거가 정의나 도덕, 인간의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가치들이 완전히 무시된 채 물질주의에 치우친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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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 - 미국을 제대로 보기 위한 가치 있는 가정들 라면 교양 1
김준형 지음 / 뜨인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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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승리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게임의 규칙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1. 줄거리 。。。。。。。

 

     책의 서두에 실려 있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지나가던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내기를 했던 해와 바람. 결국 해가 이겼다는 결론은 다 알고 있지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강제보다는 부드러움이 이기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그 게임의 규칙을 해가 정했기 때문이라고. 만약 나그네의 옷을 입히기 내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해가 이겼겠느냐고.

 

     저자가 미국을 보는 시각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전 세계의 ‘절대 선’으로, 세계의 경찰국가(사실은 패권국가)로 자처하고 있는 미국이 정말로 그러하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저자는 미국 역사의 주요 순간들 - 건국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1장), 냉전 체제의 지속(2장), 9․11테러(3장) -에서 미국이 결정한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리고 그 선택들의 기초에는 사실상 자국의 이익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4장에서는 이러한 미국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대한 조명을 하는데, 저자는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초기의 불안정한 상황을 지나오는 데 있어서 미국의 막대한 공헌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끼친 잘못들을 ‘일곱 가지 배신’이라는 항목으로 묶어놓았다. 그러면서 달라진 안보환경에 맞춰 기존의 미국중심의 한미관계에 대한 적절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2. 감상평 。。。。。。。

 

     역사를 뒤집어 상상해 보는 일은 대개 재미있다. 많은 경우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는 내용들은 동시에 ‘강한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관념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생각을 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두뇌는 꽤나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하기 마련. 더구나 그 ‘역사적 사실’이 현재와 연관이 되는 일이라면, 이 작업은 단지 ‘흥미꺼리’의 수준을 넘어 ‘행동을 촉구’하는 데까지 이르니 이 또한 재미있다.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어이없게도 스스로가 가장 강하게 믿고 있는) 고정관념 중 하나인 ‘미국은 선하다’, 혹은 ‘미국은 정의로운 나라다’라는 고정관념을 이 책은 비판한다. 역사상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했을 뿐이며, 사실상 기존의 이미지와는 반대의 여러 행동들 - 무력을 동원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세상을 재단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꽤나 불편한 진실을 저자는 나름 맛깔나게 풀어나가고 있는데, 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툭하면 내뱉는 ‘감정적 반미(反美)’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꽤나 ‘논리적 반미’이다.

     다만 이 ‘논리’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결론까지 완전히 논리적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예컨대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의 고립주의는 훗날 힘을 키워 패권국가가 되려는 미국의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이라는 논조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고립주의와 패권국가로의 발돋움 사이에는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백 여 년에 걸쳐 이루어진 일인데, 미국이 정말로 그런 긴 안목과 정책적 일관성을 지닌 나라일까.

 

     저자의 말처럼 미국은 다른 여러 나라와 같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미국이 하는 모든 일은 ‘오직’ 자국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미국의 이익’이라는 말도 ‘모든 미국인들의 이익’이라는 말과는 또 다르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최소한 ‘균형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균형 잡힌 시각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처리되는 일은 당연히 균형 잡히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눈에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서는 아무리 똑바로 걸어가려고 하더라도 삐뚤게 갈 수밖에 없으니까. 극좌나 극우가 위험한 것은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만이 전부인 양 주장하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당하지 않은 폭력까지도 동원하기 때문이다.

     비단 미국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진로에 대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면 좀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할텐데...

 

     외적인 측면에서 책의 시리즈 제목이 ‘라면 교양’인데, 이 책도 그런 기획의도에 맞추기 위해서인지 각 장을 시작하는 부분마다, 알려진 것과는 반대의 가정을 한 가상 역사로 흥미를 돋운다. 하지만 그 가상역사 부분이 그다지 본문의 진행과 밀접한 연관이 없는 내용이라는 점은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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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라는 금속은 고급스러우면서도 대중적이다.



잘 세공된 은 장식품들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은 자체가 우선 보석의 한 종류인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도, 화폐경제가 시작된 중국에서도
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초적인 화폐로 사용되곤 했다.
조개껍데기가 아닌 은을 화폐로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귀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이 있다.
하지만 사실 이 격언에는 한 문장이 생략이 되어 있다.
그 전문(全文)은 이렇다.
‘침묵은 금이다. 그러나 웅변은 은이다.’
이 말을 했던 이는 그리스의 한 웅변가였다.
왜 웅변가가 말을 금이 아닌 은에 비유했을까?
그것은 이 말이 사용될 당시 그리스에서는

금보다 은을 더 귀중하게 여겼었기 때문이다.
‘은’은 그만큼 옛부터 귀중하고 고급스러운 금속이다.

 

 

 

반면, 은의 대중성은
오늘날에 와서는 그것의 절대적인 가치가
여타의 보석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진데서 기인한다.
이제 은보다는 금이 훨씬 더 고가에 거래가 된다. 

가난한 남녀가 결혼을 약속하는 그림에서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는 왠지 어색하다.
얇은 은가락지가 어울리는 조각인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에 은이라는 보석은
대중성이라는 이미지 또한 품고 있다.

 

 


 

고급스러움과 대중성이라는
두 상반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은’.
어쩌면 ‘은’의 이런 이중적인 이미지는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는 ‘은색’이 가지고 있는
다중적인 이미지를 미리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은색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점 때문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언제부터인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특성이 결정된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확산되면서 이런 질문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도 쓸 말이 좀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난 주저없이 은색이라고 대답하는데,
대부분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어쩌다가 그런 색을 좋아하게 되었느냐는 투다.
질문자들이 준비해놓은 선택지에는
여간해서 은색 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자의 그런 당혹감(?)을 지켜보는 것도 꽤 재미있긴 하지만
그런 반응을 구경하기 위해 은색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은이라는 금속이 그렇듯이,
은색도 제법 여러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우선 ‘은색’하면 가장 흔히 떠오르는 생각인 ‘차가움’이다.
아마도 은색이 대부분의 금속들이 띄고 있는 색이기 때문에,
은색이 그런 금속 특유의 차가움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차가운 형광등이나 달빛이 칼날에 반사가 되어 빛나는 장면을 그려보면
좀 더 쉽게 와 닿을 것이다.
그런 금속성의 은색은 왠지 냉정함과 냉혹함
(둘 모두 ‘냉(冷)’자가 들어간다),
혹은 날카로운 느낌을 받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은색에서 광택을 없애버리면 어떻게 될까.
은색을 차갑게 만드는 형광등이나 달빛으로부터
그런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옮긴다던가,
아니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산화)하여
빛을 잃은 은색.
극단적으로 말해 그런 은색은 사실상 회색처럼 느껴진다.
마치 콘크리트처럼 무겁고, 느릿하고, 어두운 색 말이다.
좀 전에 느껴졌던 날카로움은 한없이 무뎌지고,
차가움은 우울함으로 바뀐다.
그래서 그럴까.
빛을 빼앗긴 은색은 슬퍼보인다.

 

 
차가움과 우울함.
아직 은색에게는 반전이 하나 남아있다.
은색은 ‘따뜻함’도 발산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은색을 그렇게 만들까?
역시 ‘빛’이다.


은색의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형광등이 아닌 백열등을 이용해야 한다.
이왕이면 하얀색보다는 붉은 빛이 도는 전구가 좋다.
아예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데 사용하는
색색의 반짝이는 줄로 이어진 꼬마전구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이번에 나오는 은색은 사실 그 트리에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큰 은색 별, 종, 공들.

이런 것들은 은색이 발산하는 따뜻함을 담고 있는 물건들이다.

 

 

은색이 담고 있는 여러 이미지들.
차가움, 우울함 혹은 슬픔, 따뜻함.
내가 은색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매우 특별한 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색 안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색이 은색처럼 풍부한 이미지를 함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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