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익숙해지는 것은 참 씁쓸한 일이다. 그런데 하루 종일 병원에 앉아 있다보면,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의 죽음과 아픔에 무뎌지게 된다. 그 끔찍함이란..
오늘 하루, 당신이 한 번도 감동을 받지 못했다면 당신이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고통", 1940년,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1945), 청동
고통스럽다.
사람들이 점점 악해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가짜로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낮춰보기를 즐긴다.
그렇게 하면서 스스로 높은 체 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아직 낮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여전히 올라가야할 자리가 저 앞에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을 낮추면서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다.
정말로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높여줄 줄 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내려 가는 일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겹겹의 가면이 붙어 있었으므로 어느 게 어떻게 슬픈 건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1. 줄거리 。。。。。。。 작가가 쓴 여러 개의 단편 소설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도 담겨 있고,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 민담들, 또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해 낸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2. 감상평 。。。。。。。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평생 네 번에 걸친 자살을 시도했다는 작가가 쓴 첫 소설집. 첫 소설집인데 제목은 마치 수십 년 작가 생활을 마무리 할 때나 어울릴 것 같은 ‘만년’이다. 꽤나 복잡한 작가라는 느낌이 팍 든다. 책의 전면에 삽입되어 있는 일본식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흑백사진(아마도 작가 자신인 듯)에서 느껴지는 포스와 ‘성장통을 앓고 있는 모든 청춘들을 위한 영혼의 바이블’이라는 멋들어진 카피문구는 책을 펴기 전부터 잔뜩 기대감을 갖도록 만들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면서 느껴지는 건 실망감에 가까운 느낌. 문제는 역시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저자의 복잡한 심경 때문이라고 할까. 작품 전체에 그런 사색과 개인적인 방황이 짙게 묻어난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우리나라 근대초기 소설류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과 유사하다. 지나친 심리주의나 낭만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좀 더 리얼하게 표현하면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다락방 냄새랑 비슷하다고 할까. 아무튼 현대의 독자들 중에는 썩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나도 그 중 하나)이다. 읽는 데 참 힘들었던 소설.
나에게는 겹겹의 가면이 붙어 있었으므로
어느 게 어떻게 슬픈 건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작가가 쓴 여러 개의 단편 소설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도 담겨 있고,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 민담들, 또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해 낸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평생 네 번에 걸친 자살을 시도했다는 작가가 쓴 첫 소설집. 첫 소설집인데 제목은 마치 수십 년 작가 생활을 마무리 할 때나 어울릴 것 같은 ‘만년’이다. 꽤나 복잡한 작가라는 느낌이 팍 든다.
책의 전면에 삽입되어 있는 일본식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흑백사진(아마도 작가 자신인 듯)에서 느껴지는 포스와 ‘성장통을 앓고 있는 모든 청춘들을 위한 영혼의 바이블’이라는 멋들어진 카피문구는 책을 펴기 전부터 잔뜩 기대감을 갖도록 만들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면서 느껴지는 건 실망감에 가까운 느낌.
문제는 역시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저자의 복잡한 심경 때문이라고 할까. 작품 전체에 그런 사색과 개인적인 방황이 짙게 묻어난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우리나라 근대초기 소설류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과 유사하다. 지나친 심리주의나 낭만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좀 더 리얼하게 표현하면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다락방 냄새랑 비슷하다고 할까.
아무튼 현대의 독자들 중에는 썩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나도 그 중 하나)이다. 읽는 데 참 힘들었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