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일에서 구하옵소서
벤저민 T. 퀸.월터 R. 스트릭랜드 지음, 오현미 옮김 / 좋은씨앗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업과 신앙 사이의 연결점을 탐구하는 책은 제법 여럿 나와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도 그런 종류의 책 가운데 하나다. 사실 책 초반의 전개는 여느 책들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직업, 일이라는 것은 소위 영적인 무엇에 비해 열등한 무엇이 아니라는 강조와 함께(1장), 구약과 신약 속에서 일이 어떤 식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지를 언급한다(2-3장).


이 책의 독특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건 4장부터이다. 책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성경의 언급을 우리의 인생 전반에 걸쳐 필요한 지혜로 연결시킨다. 인생에는 출발점과 도착점이 있다. 성경에 따르면,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우리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건 이 출발점과 종착점 사이를 어떻게 걸어 가느냐이고, 이 기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일터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성경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꽤 흥미로운 논리다.


5장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축으로, 제자로서 사는 것과 일터에서 우리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 사이의 연결지점을 살핀다. 흔히 오해되는 것처럼 제자도는 영성에 관한 일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영역 전체를 포괄한다. 제자는 타락한 세상 속에 살면서, 타락 이전의 모습은 어땠을 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면서 자신이 있는 곳을 회복시켜 나가는 사명을 지닌다는 것.




하나님 나라라는, 기독교 세계관의 중심 주제와 연결되면서 일의 성경적 의미가 무엇인지 잘 정리해 내고 있는 책이다. “일은 소명이라는 장갑에 생동력을 불어넣는 손과 같다”는 저자의 말은 일의 중요성에 관한 저자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일을 제대로 해 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 가운데 담긴 소명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해봤자 되지 않는다는 식의 패배주의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성속이원론은 그렇게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안에 날마다 깊은 자국을 남긴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건 절망을 이기는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의 목적지인 하나님 나라,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붙드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강조이다. 여전히 하나님 나라는 우리 시대에도 중요한 주제인 것 같다.


작고 얇아서 부담이 적다. 이 주제에 관해서 처음 시작한다면 이 정도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사람에게 투자하지 못한 결과는 이미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기술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기술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려주길 기대할 때 우리는 쉽게 조종당한다.

그래서 알고리즘이 우리를 분류하고 추적하고 분열시키는 방식,

즉 서로 다른 뉴스를 보여주고, 서로 다른 대출 상품을 판매하며,

이웃과는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을 깨닫지 못했다.

기업가는 스스로 발명한 기술을 비판하기를 꺼리고,

정치인은 수학적 정교함이 부족해 기업가들의 책임을 묻지 못하며,

일반 대중은 기술과 수학의 관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걸

우리는 목격한다.


프랜시스 수, 『참회의 수학』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야망계급론 - 비과시적 소비의 부상과 새로운 계급의 탄생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지음, 유강은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우리의 소비행태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 소비는 단순히 필요에 의해 사용되는 차원을 넘어 ‘지위재’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에 “명품”이라는 말로 잘못 번역되는 “Luxury", 즉 사치품이다. 수백만 원씩 하는 고가의 가방에 물건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운반하는 데 시간을 절약해 주거나 힘이 덜 들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때로 빚까지 지기도 한다(신용카드 할부는 빚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장치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명 그런 종류의 사치품들을 몸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런 소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인 여유가 있음을 과시하는 중이다. 그런데 세계의 경제적 성장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새롭게 ‘중간계급’이 떠오르게 되었다. 이들이 이전의 상류층이 전유하던 사치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물론 가벼운 결정은 아니라도) 경제력을 보유하게 되면서, 사치품 그 자체는 예전과 같은 ‘지위’를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여기에서 이 책의 저자가 꼽는 야망계급이 탄생한다. 새로운 시대의 상류층, 즉 “귀족”이 되고 싶었던 그들은 다시 한 번 소비의 형태로 지위를 드러내고자 한다. 물론 여전히 고가의 사치품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보여주려는 이들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좀 더 힙한 방식이 사용된다.


그들이 선택한 새로운 지위재는 엄청나게 비싸거나 화려하지 않다. 물론 보통의 물건들보다 값이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값은 아니다. 대신 그것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 내가 이런 것들을 골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깨어있음을 보여주는 것들을 소비하는 것이다.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서너 배 비싼 유기농 달걀이라든지, 일반 우유 대신 아몬드 우유를 마시고, 아이에게 축구 대신 하키를 가르치고 하는 행위들이 그런 예라는 것.


여기서 책에 아주 흥미로운 문장이 나오는데, “맛대가리 없는 슈퍼마켓 토마토를 먹는 건 정말 ‘멋대가리 없는’ 짓이다. 그러나 똑같이 맛없고 물만 많은 토마토라도 그게 토종 토마토라면 ‘진짜’ 맛이 된다.”




 

사회학 연구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종류의 야만계급적 소비의 예를 보여준다. 물론 책에 등장하는 예들은 대개 미국이나 유럽 쪽의 사례들이지만,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얼추 맞아들어 간다. 소위 깨어있다는 티를 내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대표적인 것이 “이념적 채식주의”나 “극단적인 환경주의” 같은 것들이 아닐까도 싶고.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사치품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저자는 “소박해지려면 우선 충분히 부자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힙한 소비를 위한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소비의 방식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자 한다는 면에서 그들 역시 물질주의적 사고에 여전히 매어있는 셈이다.


저자는 “물건을 아무리 사도 우리가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무엇인가를 구입하는 행위로 자신의 지위와 성취를 과시하려는 태도는, 자신의 꽁지깃털의 화려함으로 암컷을 유혹하고자 하는 수컷 공작새와 그 수준에서 별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이들 야망계급의 욕구는 그들이 겉으로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의 정의와 올바른 질서의 해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면에서 위선적이기도 하다. 그들이 하고 있는 실천이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


물론 대안적 소비라는 게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사치품으로 온몸을 두르는 허영심보다는 분명 나은 면도 있다. 그러나 결국 소수만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으로 사회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애초에 그런 목표도 없이 그저 자신이 깨어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소비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 정도의 의미도 없을 테고.



독특한 개념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다양한 연구조사 결과들과 수치들이 언급되지만, 이 부분의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면 그런 것에 얽매일 필요 없이 전반적인 논지만을 좇아가며 읽어도 충분하다. 어떤 구체적인 주장까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라 살짝 아쉽지만, 뭐 사회학 연구라는 게 현실을 나름의 논리로 잘 분석한다면 그건 또 그대로 의미가 있는 거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랫만에 돌아온 "책방N정치"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모든 책임을 회피한 채
그저 위에서 시킨대로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는 
비겁함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