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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여기에는 바로 ‘꿈꾸는 책들’이 있었다. 그 도시에서는 고서적들을 그렇게 불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장사꾼들의 눈에는 제대로 살아 있는 것도
그렇다고 제대로 죽은 것도 아니고 그 중간인 잠에 빠져 있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은 사실상 과거에 존재했다가 이제는 소멸을 앞두고 있었으며,
그래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 줄거리 。。。。。。。
이야기의 주인공은 공룡이다. 그리고 그 공룡의 직업(?)은 시인이다. 더구나 그는 ‘겨우’ 일흔 살밖에 안 된 ‘젊은’ 공룡 시인이다! 처음부터 책의 내용에 관한 어떤 정보도 갖지 못하고 책을 뽑아든 나로서는 가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흔 살짜리 공룡 시인이 주인공인 소설이라니.
이 책의 장르는 환타지이다. 주인공 공룡의 이름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이다. 그는 린트부름 요새라는 곳에 살고 있는데, 그 요새는 공룡들만이 사는 곳으로 그들은 모두 시인으로 자라게 된다. 자신의 대부시인인 단첼로트로부터 유언 비슷하게 한 편의 원고를 받는다. A4 용지 겨우 너 댓 장 분량밖에 안되는 글이었지만, 글을 읽은 미텐메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글을 쓴 사람을 찾아 책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떠난다.
부흐하임은 말 그대로 ‘책의 도시’이다.(독일어로 ‘책의 도시’라는 의미) 그 도시에 있는 모든 것들은 책과 관련해 이루어진다. 각종 책들을 사고 팔고, 책들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도시 곳곳에서는 신인 작가들과 시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하는, 그런 곳이다. 마치 도시 전체가 서점으로 이루어진 듯한 그 도시에서 미지의 작가를 찾아가려는 미텐메츠의 모험은 시작된다.
과연 그는 그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 숨어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그림자 제왕, 책 사냥꾼, 살아 있는 책이라는 흥미를 돋우는 소재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 감상평 。。。。。。。
작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이야말로 ‘환타지’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일이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차모니아라는 새로운 대륙과, 도시의 모든 것이 책으로만 되어 있는 부흐하임이라는 새로운 도시, 그리고 부흐하임의 땅밑에 만들어져 있는 지하세계. 저자는 펜으로 이 모든 것을 새로 만들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종종 지루할 정도로 세밀한 장면의 묘사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 세계는 작가가 새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칫 독자들이 현실의 무엇과 혼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임을 끊임없이 각성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영화라면 그냥 쓱 한 장면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지만, 책은 그럴 수 없으니까. 불편한 일이긴 하지만, 이야말로 책만이 가지는 매력이 아닌가. 펜으로 세운 세상. 멋지지 않은가.
소설 전체에 걸쳐 저자는 책과 관련된 수많은 진리를 설교조가 아닌 보여주기의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책이 다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위험하다는 진리는 ‘위험한 책’에 관한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이 책들은 단지 내용만 사람에게 혼란이나 어려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주인공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독이나, ‘물어뜯음’(?)으로..;) 하지만 이뿐 아니라, 한편으로 책들은 주인공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시해주기도 한다. 지하세계의 미로에 빠진 주인공은 책들에 대한 지식에 근거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 지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단 몇 구절만으로도 그 시대를 보여줄 수 있는 시들과 책들에 대한 묘사는 읽을 때마다 일종의 짜릿한 쾌감까지 주었다.
무엇보다 온통 책으로만 가득 차 있는 세상, 그리고 오직 책과 관련된 일들만 해도 되는 세상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단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수 있는 부흐링 족들의 모습은 독서광들의 오래된 꿈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하나 빼 먹을 수 없는 부분은,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들이다. 만화가라는 경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 온갖 상상속의 존재들을 눈으로 볼 수도 있도록 해 책장을 넘기는 또 하나의 재미로 작용한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