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암세포는 자폐증에 걸린 위험한 세포이다.

그것은 다른 세포들을 고려하지 않고

불멸성을 헛되이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증식하다가

마침내는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죽여 버린다.

 

        제목이 좀 선정적(?)이다. 왜 여공은 그런 ‘대수술’을 감행해야만 했을까. 그 ‘수술’이 이 책의 내용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등등 제목만을 보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많이 하도록 만드는 책이다. 하지만 내용은 그다지 제목과는 상관이 없었다. 몇 년 전 읽었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의 증보판 격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제목은 이 '사전'에 실린 한 항목의 이름일 뿐이었다.

 

 

        이 책의 원판이라고 할 수 있는 앞서의 그 ‘백과사전’이 일반적인 백과사전 류의 책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름에서도 그것이 잘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온갖 분야의 잡동사니 격의 지식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수집책과 같은 책이다. 이 책 역시 그 책의 증보판인 만큼 동일한 설명이 가능하다. 저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사방에서 보고, 듣고, 읽었던 각종 지식들 가운데, 저자의 기록욕구를 특별히 자극할만한 주제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이전 판의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가볍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군데군데 생각을 좀 하도록 만드는 항목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미 저자의 다른 책에서 거의 대부분 한 번쯤 언급했던 내용들이라 그 내용들에 관한 생각들도 한 번 해 본지라, 그리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다.


        이런 류의 책을 통해서는 베르나르 특유의 풍자와 비꼬기를 그대로 읽어낼 수 있어서,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몰입할 수 있다. 베르베르의 글쓰기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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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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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독자여, 그대는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세계와 우주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그대 자신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말을 거는 책이다. 수사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책 자체가 그렇게 하고 있다. 아예 책은 독자를 ‘당신’이라고 부르면서, 자신과 대화를 할 것을 요구한다. 책은 마치 여행 가이드가 여행자를 인도하듯이 독자를 여행지로 인도한다. 그 여행은 기차나 버스를 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여행이다. 공기, 흙, 불, 물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독자는 이 세상과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베르나르가 또 한 건 올렸구나 싶은 책이다. 독자는 책과의 대화를 통해 정신의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정신의 흐름에 따라 글을 써 내려가는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심리주의적인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정신의 흐름을 유도하는 책이니, 뭐라고 해야 할까... 복잡하다. 

        책은 ‘상상의 힘’ 혹은 ‘명상’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서술로 일관한다. 이는 라마승들의 참선에 대한 서술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저자에 따르면, 신도 지도자도 필요치 않다. 오직 자신의 정신의 힘이 모든 것을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의 힘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다. 자신의 내부에 안락한 집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고달픈 삶에서의 피난처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문제의 해결책이 존재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약물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고행 등을 이용해 그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책은 단지 정신의 힘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전반적으로 동양적인 선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부분이다. 저자 자신은 책의 서두에서 이 책의 내용은 특정의 종교나 뉴 에이지와 같은 사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책의 전체에서 묻어나오는 뉴 에이지적 요소는 감추려야 감출 수 없을 것처럼 강하게 느껴진다. 마치 뉴 에이지 명상법 실천편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의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가진 또 하나의 힘과 가능성을 제대로 잡아서 대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번뜩이는 생각에 놀라게 된다. 과연 글이라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책의 곳곳에 나오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예리한 비판적 시각 역시 베르베르 특유의 날카로움이 제대로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책 자체가 띄고 있는 사상적 경향이 여러 면에서 내가 가진 것과 충돌을 일으키기에, 책의 문학적 시도 외에는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는 싫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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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 DVD 세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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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동물들에게 겪게 했던 것을 우리 자신이 겪고 있는 거야"

 

 

        밖이 보이지 않는 유리 상자 같은 곳에 한 남자가 갇혀 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여자가 또 그 상자 안으로 떨어진다. 그 둘은 그 곳에서 처음 만났다. 남자는 화장품 회사의 연구원이고, 여자는 서커스단의 호랑이 조련사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너무나 낯선 곳에서 만났다. 그 곳은 어디일까? 왜 그들은 그 곳에 있는 것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다른 소설에서 이미 이와 유사한 착상이 반영된 글들이 있었다. 때문에 책의 극 초반부에서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었지만, 너무 잦은 설정이 아닌가 하고, 반전(?)을 기대했으나, 역시나 같은 설정이었다. 그들은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사육 상자' 안에 갇힌 것이다. 


 

        일견 무슨 황당한 설정이냐고 반문을 할지도 모르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점은 그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제법 심각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베르나르는 이 책을 통해 ‘어려운 이야기꺼리’인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에 관한 논의를 시도한다. 

        상자 안에 갇힌 두 사람의 시시각각 변하는 심리상태의 변화, 그리고 그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저자는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그리고 인류의 모험이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논의는 그들을 사육하던 외계인들이 핵전쟁으로 인해 지구가 멸망하는 장면을 텔레비전(논리상 난감한 소설적 장치다.)을 통해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통해 촉발된다. 이제 남은 인간은 그들 둘 뿐이다. 스스로 자살을 해버린 인류. 과연 그들 둘은 2세를 낳아 인류라는 종을 지속시켜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지는가가 문제의 일차적인 초점이었다. 



        결론은 저자로서도 명확하게 내고 있지는 못하다. 상자 안의 두 사람은 그 문제를 두고 모의 법정을 열어(다분히 프랑스인적 기질이 강한 인물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극이라니..) 결론을 내고자 한다.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계속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재판’의 논리적인 결론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리로는 상황의 변화를 전혀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변화의 요인은 감상적인 요소였다. 남자 주인공의 과거의 아픔을 들은 여자 주인공의 심적인 동요가 그들을 가까워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저자는 인류의 지속은 그런 논리적이고 당위적인 결론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감정과 심리적인 요소에 더 큰 영향을 받음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하다.) 



        책 전체에는 베르나르 특유의 유물론적인 관점과 반종교적인 관점이 남자 주인공인 라울을 통해 상당히 자주 표출되고 있다. 이 점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였다. 이는 뉴에이지적인 저자의 또 다른 경향과 어떻게 생각하면 배치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저자 자신에게는 큰 문제가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 제시는 시도했으나, 그 결론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부분이 약간 부족했던, 20% 부족한 느낌이 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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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재미있는 시도를 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책의 필자를 22세기에 살고 있는 한 가상의 인물로 설정해 두고, 그의 시각에서 ‘지난 시대’인 21세기에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는 형식으로 ‘가상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자신이 보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 책을 영 황당한 공상과학소설로 볼 수도 없는 것이, 저자들의 이력이 단순하지 때문이다. 책에 나온 저자이력이 모두 사실이라면, 한 명은 수백 편의 논문을 제출한 과학 교수(정확히 전공이 무엇인지는 안 나온다.)이고, 다른 한 명은 NASA의 주임 연구원인 것이다. 

     이런 저런 면들을 고려해 볼 때, 이 책의 정확한 성격은 일종의 미래학 서적과 유사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아주 딱딱하거나 하지는 않다. 책의 형식은 역사서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상의 구체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내용 중 일부는 마치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듯 했다. 

 


 

    책에서 그리는 미래는 긍정적이지만도, 부정적이지만도 않다. 

    일면, 미래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매우 긍정적으로 그려질 것처럼 보인다. 생명공학(특히 유전공학)의 발달로 의학 분야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최근 연구되고 있는 줄기세포와 같은 연구들이 완성되어, 대부분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수명까지도 연장된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이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그것으로 인해 치명적인 위험도 예상된다. 

    5장과 같은 부분은 과학으로 지은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들의 삶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한 가족의 구성원들의 생각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그려진 5장은, 세계의 네트워크화, 대부분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 재택근무, 의학의 비약적 발전, 각종 인간에게 만족을 주는 기기들의 등장 등, 말 그대로 과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미래형이자 가능성을 담고 있는 표현)’ 유익들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어두운 측면들도 그리고 있다. 20세기 초에 있었던 것과 같은 세계적인 경제공황과 빈부격차의 심화, 자연재해(지진), 사이비 종교가들의 불안심리 조장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대혼란’의 시기, 우발적인 핵전쟁이 남길 끔찍한 고통과 심각한 위협들, 여전히 가난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대륙의 어린이들. 저자는 이런 것들을 그리면서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심각한 위협들로 표현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원천을 ‘인간의 선의’에서 찾는다. 그런 위기와 문제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 문제들을 인간 공통의 선의로서 풀어나갈 수 있는 위대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세계적인 핵확산 방지와 핵무기 감축을 위해 뛰는 한 의사, 기아퇴치세를 세계적으로 추진하는 어떤 사람, 하는 식이다. 
 




    요컨대, 저자들은 과학은 인간에게 전반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며, 일부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인간들 내부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선으로서 그것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과학자다운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관점은 이성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책의 내용 가운데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으며, 동성애와 같은 문제를 다루는 부분은 매우 위험스러운 정도이다. 저자는 물질적인 면에만 집중할 뿐, 정신적인 영역, 영적인 영역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저자가 생각하는 정신적인 면이란, 기껏해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인간들의 모습에서만 나타난다. 

    과연 그럴까? 이렇게 우연적인 요소(인간의 선의)에 많이 기대어도, 미래라는 사건이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까?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는지, 나로서는 놀라울 뿐이다. ‘인간’이라는 새로운 신앙의 대상을 찾아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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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름으로
헨리 나우웬 지음 / 두란노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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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에 대한 유혹이 막기 어려울 정도로 강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사랑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대한 손쉬운 대체물을

힘이 제공하기 때문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하나님 되는 것이 더 쉽고,

사람들을 사랑하기보다는 사람들을 컨트롤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기독교 영성에 관한 여러 책으로 유명한 헨리 나우웬의 책이다. 이번 책은 21세기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한 강연회에서 그가 한 연설을 엮은 것이다. 영성운동의 대가가 말하는 리더십의 요건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읽기를 시작했다.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 리더의 요건은 목차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세 가지였다. 지나치게 현실 지향적일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성 중심으로 임할 것과,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진실한 ‘목회’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자신이 무엇이든지 결정하고 이끌어간다는 우월적인 자리에서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인도를 받는 자리에 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연을 목적으로 한 글을 엮은 얇은 책이기 때문에 책을 읽어나가면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헨리 나우웬 특유의 영성이 넘치고 감동이 배어있는 글솜씨 때문에, 내용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만든 책이다. 약간은 힘들고 어려워지는 요즘 내 사역에, 작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헨리 나우웬의 글이 이토록 감동적인 것은, 그의 뛰어난 영적 고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말과 일치하는 삶 때문일 것이다. 그가 쓴 글들에는 언제나 그의 치열한 삶의 고백과 경험들이 담겨 있는데, 이 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정말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아쉬운 점은,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용어들을 개신교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책의 서두에도 이를 미리 밝혀놓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헨리 나우웬의 다른 책에서 보이는 ‘저자의 체취’가 반감된 듯 하다. 카톨릭 사제인 저자의 글을 개신교 출판사에서 펴내려다보니까 아무래도 좀 거슬렸나보다. 그래도 번역의 제일되는 기본원칙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인데, 지나치게 이런 저런 용어들을 바꿔버린 것은,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결국 기독교인이라면 어디에 서든지 리더가 되어야 할 사람들 아닌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리 길지 않아서 어렵지 않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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