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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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2천만 명이 읽은 화제의 작품. 작품 소개 한 번 화려하다. 무슨 책이기에 2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읽었으며, 또 그렇게 유명한 책인데 왜 난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까 하는, 약간은 쓸데없는 생각으로 뽑아든 책이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매우 사색적으로 쓴 책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상징도 들어있는데, 그 가운데는 성경에 나오는 멜기세덱이 초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도 한다.  

        저자는 ‘연금술’이라는 언뜻 현대인들의 이성과는 전혀 반대의 것을 테마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연금술이란 금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의미한다. 분자와 원자가 밝혀진 마당에, 아니 그 보다 작은 전자와 양성자, 중성자의 세계, 가상의 물질인 쿼크의 세계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왠지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연금술이 먹혀들어간다니, 한 번쯤 생각해보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이다. 저자는 주인공이 연금술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자아실현이라는 가치를 말하고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산티아고는 늙은 왕(멜기세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을 통해 자아실현의 꿈을 갖게 되고, 이를 위하여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로 여행을 떠난다. 그 가운데 여러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 사람들 각각은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온갖 종류의 추상적인 것들을 형상화시켜놓은 존재들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산티아고는 그러한 방해요소들을 극복하고 자아를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그야말로 뉴 에이지 계의 『천로역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각 인물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나, 여행이라는 모티브, 그리고 그 끝에 얻게 되는 성취라는 유형 모두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그대로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존 번연은 신앙, 믿음의 우월을 주장하는 반면, 코엘료는 자아실현의 가치를 고양시키고 있다는 점일 뿐이다.

 

        유네스코의 ‘영적 집중과 상호 문화 교류’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는 저자의 이력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작품 전체에서 뉴 에이지 적인 냄새가 매우 짙게 느껴진다. 물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인간 스스로의 능력(사색, 자기 발견, 꿈꾸기 등과 같은)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으로 보는 코엘료의 시각은 동의하기 어렵다. 시오노 나나미도 말했지만, 역사에는 뛰어난 능력과 배경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운’을 얻지 못해서 실패했던 군상들이 얼마나 많은가. 단지 개개인의 노력으로만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너무 순진한 사람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운, 혹은 신의 섭리가 역사(세계사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도)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저자는 이 점을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해 버렸다.

        현실은, 단지 사색하고, 고민한다고 해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을 만큼 녹녹하지가 않다. 인간이란, 그 자체로서는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오랜만에 어린왕자 풍의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만족감에 푹 빠지기 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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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이정환 옮김 / 자유문학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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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옷을 입을수록 추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약 。。。。。。。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어느 동네건 적응이 될 만 싶으면 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는 가족이 있다. 엄마(요코)와 딸(소코)은 그렇게 정확한 목적지도 없는 유랑을 거듭한다. 

 
 

 

     젊은 시절, 피아노를 전공했던 요코는 자신을 가르쳤던 모모이 교수와 나이 차를 뛰어넘는 결혼을 감행한다. 하지만 둘은 단 한 번의 관계도 없는 이상한 부부였고, 요코는 유부남인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결국 그와 사이에 아이까지 갖게 되었지만, 남자는 마침 경영하던 레코드 가게가 망하게 되면서 요코의 곁을 떠난다. 꼭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아직 갓난 아이인 소코와 함께 전국을 방황하게 된 요코. 소코가 커서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요코의 습관적인 이사는 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정착하게 되면 그를 찾아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아서라는 요코는, 끊임없이 소코에게 아빠와의 로맨스를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준다.

 

 

 

     끊임없는 이사 이야기로 끝날 것만 같았던 이 이야기에, 갑자기 이 단조로운 흐름을 가로막고 다른 곳으로 흘러가도록 만드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소코였다. 어느 덧 소코도 나이가 들었고, 그녀는 엄마의 비현실적인 삶에 싫증을 느끼게 되는데..
 

 

 감상평 。。。。。。。                     

 

     ‘냉정과 열정사이’,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볼 수 있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글쓰기 스타일이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나타난다. 이른바 교대로 글쓰기인데, ‘냉정과 열정사이’에서는 두 명의 작가가 두 명의 주인공의 입장에서, ‘반짝반짝 빛나는’에서는 한 명의 작가가 두 명의 주인공의 입장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방식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은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일이다. 작가는 소코와 요코의 입장에서 교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참 재능 있는 작가인 것만은 인정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 이번 이야기의 내용 역시 그다지 일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소코는 유부남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고, 떠난 남자에 대한 꿈과 환상으로 만든 세계에 살면서, 끊임없이 그를 찾아 딸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불륜과 망상의 절묘한 조화라고 할까.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이 이야기를 굳이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을 번역한 이정환 씨의 해석이 그렇다. 역자후기에서 그는 사랑을 단순히 순간적인 감정으로만 보며 ‘어떻게 느끼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런 세계관에서 나오는 결론은 사랑이라는 순간적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요코는 성숙한 여성이고, 소위 ‘현실’에 눈을 뜬 소코는 미성숙한 여성(p. 268)으로 밖에 안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사랑이 그렇게 불확실하고 순간적으로 변하는 감정적 변화일 뿐일까? 그렇다면 그렇게 불확실하고 자주 변하는 것에 왜 사람들은 그렇게 큰 확신을 가지고 매달릴 수 있는 걸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순간적이고 말초감각만을 짜릿하게 해 주는 오로지 감정적인 사랑에 매달려 사는 요코야 말로 미성숙한 인물이 아닐까.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감정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딸에게 적절하게 제공되어야 할 양육환경에 대한 배려까지도 내던져버린 미성숙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여기에 초콜릿과 담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그녀의 유아적 양상을 드러내주는 소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없이 자기를 방어하면 할수록 그녀 자신이 더욱 약해보이는 것은 왜일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의 소설을 읽어보면 좀 다른 느낌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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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우리의 복음
헨리 나우웬 지음 / 복있는사람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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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 내려가는 삶을
우리 속으로 깊이 느끼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 존재의 모든 본성이 거기에 저항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가끔 한번씩 관심을 갖는 것까지는 좋지만
가난의 자리로 내려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해지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시고자 택하신 길이다. 

…………

가난을 내가 성취해야 할 일로 생각할 때마다 나는 우울해 진다.
그러나 내 형제자매들이 함께 예수님께 순종하여
그길을 가자고 나를 부르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나는 희망과 기쁨에 차오른다.
               

 




오랜만에 읽은 '영성서적'이다.

(사실 내가 이런 영성서적류를 잘 안읽는다.)

도서관을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

표지도 괜찮고, 저자도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사람이라서,

내용에 대한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헨리 나우웬이 한 권으로 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와 연관되어 남긴 여러 글들을

편집자가 다시 수집, 배열한 책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각 장에 대한 저자의 깊은 묵상이 두드러지는 책이었다.






노틀담, 예일,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어느 날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에 들어가

남은 평생을 그들과 함께,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살아갔던 저자이지만,

책장 군데군데 남겨져 있는 저자의 자신에 대한 반성에는

거기에는 어떤 미화를 하려는 노력이나,

자기를 변호하고자 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그대로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하는 노력만이 보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삶을 돌아보면서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저자는 자신을 니고데모와 같은 '중도파'에 더 가깝다고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간만에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었다.

온통 자신이 잘났다고 떠드는 책이 범람하는 오늘,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고 반성하는 이런 책들이 더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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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0-157 1
로빈 쿡 지음, 서창렬 옮김 / 열림원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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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를 머리에 떠올릴 때마다 왜 사람들이 그걸 먹을까, 놀라게 되요.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난 반쯤 채식주의자였는데, 이제는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됐어요."

"농무성 소속의 고기 검사관이 그런 말을 하다니, 꽤나 걱정이 되는군요."

"햄버거 안에 들어가는 것들을 생각하면 뱃속이 메슥거릴 지경이라구요."

"뭐가 들어가는데요? 근육을 말하는 건가요?"

"근육과 다른 많은 것들요. 선생님은 '첨단 고기 회수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마샤가 물었다.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소."

킴이 말했다.

"그건 소뼈에 붙은 모든 고기 부스러기들을 깨끗이 발라내는 고압 장치에요. 그 장치를 사용해 회색의 죽 같은 걸 얻게 되는데, 그들은 그것에 빨간 색소를 넣어 햄버거에 첨가한답니다."

"역겹군요."

"그리고 중추신경 조직도요. 척수 같은 거. 그건 항상 햄버거에 들어가지요."

"정말이오?"

"정말이고 말고요.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나쁜 거라구요."


- 책 내용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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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 스릴러 작가로 유명한 로빈 쿡의 소설이다. 제목 O-157은 몇 해 전인가 우리나라에도 크게 유행했던 대장균의 이름으로, 주로 쇠고기를 제대로 익혀먹지 않을 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당히 치사율도 높은 편 이어서 당시 전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에 나오는 세균도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제대로 익히지 않은 고기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은 주인공의 딸이 세균에 감염되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자, 주인공은 그 원인이 되는 가축가공업체에 잠입해 감염경로를 밝히고자 한다.

      소설의 마지막은 저자의 다른 소설과는 달리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장에 잠입한 주인공은, 공장에서 자신을 죽이기 위해 보낸 폭력배를 죽이고 도망치는 곳에서 소설이 끝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어떤 자료를 방송기자에게 보내고, 계속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다짐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건의 본질적인 해결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사실, 늘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것이 어쩌면 현실과 더 동떨어진 일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생활에서는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은 대부분 억압받고, 진실이 감추어지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이런 스토리 라인 안에서 여러 가지 오늘날의 현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저자와 주인공이 모두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데서 짐작할 수 있는데, 오늘날의 의료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로 기업화 된 병원에서 생명을 다루는 작업이 얼마나 효율성과 경제성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이다. 환자나 의사 모두, 병원의 운영자에게 있어서는 돈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판단이 된다. 이런 모습은 저자의 다른 작품인 『DNA』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점이다.


      그런 가운데서 주인공인 의사는 온통 꽉 죄어진 삶을 살게 되고, 그 삶 가운데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모든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단순히 기계화된 관계만을 영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생각만 하게 되고, 당연히 그런 곳에서 온전한 관계가 이뤄지기 어렵다. 이 부분에 관한 저자의 묘사력은 매우 대단해서 읽고 있는 나마저 숨이 막히도록 답답함을 느꼈다.


      세 번째로 정부부처와 대기업(여기서는 육류가공공장)간의 담합도 지적하고 있다. 감독을 하면서 보호를 해야 하는 이중적인 입장에 선 정부부처는 어진간해서 자신이 감독해야할 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의 농무부는 자국의 쇠고기 산업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들이 올바로 공정을 진행시키고 있는가를 감독해야할 책임도 있다. 때문에 가공과정에서 엄격한 검사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치명적인 세균이 검출되었다면, 결국 그 산업이 피폐해지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을 보호해야하는 정부 부처의 입장에서 결코 좋지 않은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처럼 로빈 쿡의 소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한 가지 마음먹은 것이 있다면, 햄버거와 같은 것은 정말 먹지 말아야하겠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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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2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학 스릴러의 대가 로비쿡의 책이군요. 한때 로빈쿡의 소설에 빠져 지내던 때가 생각나는 군요. 이 책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스릴있고 무섭게 느껴질 것 같군요. 최근에 로빈쿡의 신간이 나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예전처럼 다시 그의 의학 스릴러에 빠져 들고 싶은 기분이네요.ㅎㅎ

노란가방 2007-09-03 10:30   좋아요 0 | URL
네.. 작가의 글솜씨도 괜찮고,
주로 의학계 내부의 비리나 위험들을 고발하는 종류의 소설이라 그런지 의식도 있어보이고.. ^^
 
베르베르 독자들이 쓴 나무 2
강창모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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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시도의 책이다. 책을 쓰는 사람이 작가이고, 독자는 그 책을 읽는다는 전형적인 공식을 뒤집는 기발한 상상의 책이었다. 바로 독자가 쓴 책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직후, 베르베르가 새로운 책을 썼나보다 하고 주저 없이 빼서 펴보았지만, 웬걸 이 책은 베르베르의 작품이 아니었다. 전작인 『나무』를 읽은 그의 한국 독자들이 베르베르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쓴 것들을 모아 놓은 글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 책 가운데서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은 이 책을 만든 방식이다.

 

        저자들의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는 매우 다양하다.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할까 하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수 백편의 글 가운데 뽑아서 엮어진 글들인 만큼 하나하나 기발한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역시 아마추어 작가들의 글이라서 그런지, 베르베르의 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인간성에 관한 심오한 고찰이나, 사회 전반의 부조리에 대한 풍자와 우스개를 섞은 비판과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표면적인 풍자나 비판의 선에서 그치고 마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늘 서평을 쓸 때마다 인용해 놓고 하는 한 두 개의 멋진 문장을 이 책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뭐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 풋풋함이 또한 읽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한 가지 요소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직 어린 초등학생도 작가 목록에 끼어있다는 사실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고등학생들도 상당수가 끼어 있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이 친구들이 잘 성장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멋진 작가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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