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최후의 날
빅토르 위고 지음, 한택수 옮김 / 궁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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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백컨대, 여전히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조금 전에는 두려웠다.
 다행히 지금은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제목에서 뭔가 의미심장한 느낌을 받는다. 사형수 최후의 날. 제목대로 이 책의 내용은 사형 판결을 받은 한 젊은이가 감옥에 갇혔을 때부터, 실제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느낀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라는,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작가의 글이라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뽑아 든 책이다.



        사형수라.. 사형수는 어떠한 감정을 가지게 될까. 이제 얼마 후면 죽게 된 그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 삶이란 어떻게 다가올까. 레미제레블로 인간성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던 빅토르 위고는 이 문제를 ‘영혼의 고통’이라는 측면으로 접근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고는 사형제도를 반대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사형이란 단지 육체적인 생명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조금씩 갉아내는 무서운 행위이다. 위고는 사형이란 살인의 의미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

      아무도 나를 증오하지 않고, 모두 나를 동정하며, 그리고 모두 나를 구할 수 있는데도 그들은 네 아빠를 가지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죽일 것이다. 마리, 넌 이것을 이해하겠니? 침착하게, 예식을 차려가며, 좋은 일을 하듯이 나를 죽인단다! 아! 이럴 수가!



        이 외에도 위고는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사형제도가 갖는 부당함을 강변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해보게 되었다. 과연 사형이란 저자의 말처럼 어떠한 존재이유를 갖지 못하는 불합리한 형벌인가..

        어쩌면 위고가 접한 사형의 방법이 기요틴이라고 부르는 참수형이었기 때문에 더욱 반감을 갖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도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광장에서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 다음 이루어지는 공개처형 말이다. 아마도 이러한 집행절차가 저자에게 더욱 큰 혐오감을 주었을 것이다.


        한편, 주제와는 별도로 문학적인 영역에 있어서도 역시 위고는 탁월했다. 마치 자신이 직접 사형수가 된 것처럼 문장을 진행시켜나가고 있다. 특히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의 비극성을 심화시키는 부분은 정말 멋졌다. 비록 번역된 글이긴 했으나 역시 세계적인 작가의 솜씨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번역자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읽고서 의견 나눌 사람을 찾아봐야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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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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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국회의원으로, 얼마 전까지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했던 유시민 씨의 책이다. 흔히 보건복지부라고 하면, 그저 아픈 사람들 도와주는 부서쯤으로 치부해버리기 쉽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위상을 한 단계 상승시킨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는 부서로 말이다.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의 틀이 제조업 중심의 수출지향적인 국가로 짜여있으며, 이것은 과거 저개발국가 시기에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결정했던 체제임을 지적한다. 덕분에 이 나라는 성장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많은 문제들도 발생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양극화 문제와 고령화 문제다. 저자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이 두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에 국가의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것은 어렵다. 그런 것은 저항도 심할뿐더러, 무엇보다도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제조업 중심의 수출지향국가로 지내왔기 때문이다. 야구선수한테 갑자기 농구선수가 되라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여기에서 저자의(그리고 참여정부의 정책 기조인) 주장이 나온다. 대한민국은 대외적으로는 선진통상국가로, 대내적으로는 사회투자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의 내용에서는 이 개념들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보건복지부가 사회투자국가로 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서임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치면서, 국무위원으로 국가의 정책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저자이기에 재야 학자의 시선과는 다른 눈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고, 좀 더 실현 가능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두드러지는 장점이라고 하겠다.

 

2. 감상평 。。。。。。。                    

 

     잔 다리를 밟아 출세한 것이 아니라, 낙하산을 타고 장관직을 맡은 사람들이 그저 경력을 쌓거나 언론에 자신을 알리기 위해 고민만 하다 나가는 것과는 달리, 당시 유시민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장관일 제법 열심히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번 책을 읽으니 당시 유장관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동분서주했으며, 참여정부의 정책들은 어떤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고 유지되어 왔는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참여정부는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열심히 일을 하려고 애 쓴 정부가 아닌가 한다. 그것도 당장 눈에는 띄지만 훗날 큰 피해를 가져오는 선심성 행정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국가발전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나가는 데 주력했다. 대통령 중임제 개헌이니, 선거구 재설정이니 하는 것들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일을 하다 보니 부딪히는 장애물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평가는 가장 낮은 축에 속하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소위 평가 기관임을 자임하는 언론사들이 노골적으로 야당을 후원하며 정당 기관지를 자청하고 있으니 평가가 좋게 나올 리 없다. 나아가 저자는 그런 언론들을 통해 전해진 왜곡된 정보들만을 가지고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는 게으른 국민들까지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이 부분은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당장에 먹고 사는 일 자체만으로도 힘겨운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들이 정부 홈페이지에 접속해 장관, 혹은 대통령과 함께 보는 보고서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읽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물론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지만은 말이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했던 정동영씨와 김근태씨가 동시에 입각한 적이 있었다. 당시 통일부와 보건복지부 중 누가 어느 부서의 장관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언론들은 어느 것이 좀 더 실세가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 두 전 장관 사이의 경쟁구도를 조장했었다. 소위 지배적 언론들의 천박함이란 이런 수준이다. 아울러 1, 2년마다 반복되는 각종 선거는 정당들로 하여금 선거용 공약들을 남발하게 만드는 주원인이다. 덕분에 한정된 국가예산은 중장기적 ‘투자’에 사용되기보다는 과시용 목적의 ‘소비’에 치우치게 된다. 기초연금제 예산을 1,000억원 줄여 지역구 도로건설사업에 투입하는 식의 일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는지.

 

 

     소위 글 좀 쓰는 사람이어선지, 책 전체의 논리적 구성은 매우 깔끔하다.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정치인들 사이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청량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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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독야독 2007-09-27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을 읽어봤지만 아직 뭐라 기록은 하질 않았는데 리뷰가 좋네여~ㅋㅋ
저도 이제 적극적으로 한번 책을 읽으면 기록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 겠어여..ㅋㅋ
리뷰 재밌게 봤습니다^^

노란가방 2007-09-28 01:11   좋아요 0 | URL
아.. 칭찬 고맙습니다. ^^
 
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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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진실이란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칼과 같아서

오히려 쥔 쪽이 다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줄거리 。。。。。。。                     

 

     타고난 방랑기를 가진 시누헤. 그는 총명한 머리로 의사가 되었지만, 어느 날 만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자신이 가진 재산은 물론 부모님의 재산가지도 모두 탕진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깨달은 그는, 결국 고향인 이집트에 정착해 다른 사람처럼 살지 못하고, 평생을 이곳저곳을 방랑하게 된다.

     마침 이집트에서는 새로운 파라오 아케나톤이 등극했고, 그는 아몬 신을 정점으로 하는 이집트의 사제들의 권력을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톤이라는 새로운 신을 유일신으로 선포한다. 그의 등극 시부터 함께 했던 시누헤는 또 다른 친구 호렙헴과 함께 아케나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너무나 급진적인 주장인데다가 아몬의 사제들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의 반발은 나라를 점차 혼란에 빠뜨린다.

     그런 가운데 이집트를 떠난 시누헤는, 시리아, 바벨로니아, 크레타섬을 비롯한 근동의 세계 제국들을 두루 여행하며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깨닫는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집트에서 그는 아케나톤의 개혁이 실패한 결과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고, 자신의 삶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이집트 판 김삿갓의 이야기!?

 

 

 감상평 。。。。。。。                    

 

     책 전체에서 저자의 이력(신학 전공)이 짙게 묻어난다. 이력을 읽어보면 아마도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중반가지 신학을 공부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는 소위 ‘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신학 사조가 막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더구나 저자의 아버지가 루터파 교회의 목사였고, 이 작품을 발표한 해가 1945년이라는 것까지 생각해 보면, 칼 바르트나 루돌프 불트만 등이 새롭게 만들어 놓은 신학을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그들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집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실은 성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아마도 저자가 택하고 있는 신학적 입장을 반영한 것이리라) 그 중에서도 불트만이 주장한 양식비평(Form Criticism)을 중심으로 삼아 전승비평(tradition Criticism) 등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입장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쉽게 말하면,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내용들은 그 자체로 고유한 내용이 아니라, 당시 이웃하고 있었던 여러 나라의 신화나 전설 등을 모아 재구성 한 것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들은 이를 ‘양식’이나 ‘전승’ 등을 연구함으로써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도 ‘야웨’라는 이름이 ‘지방신’으로 등장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온다. 또, 호렙헴은 불타는 나무를 보고, 아케나톤은 유일신을 신봉한다. 무엇보다도 책 뒷표지에 실려 있는 소개글에는 아케나톤을 모세의 ‘정신적 스승’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들을 통해 저자는 성경에 실려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은 이집트나 바벨론, 시리아 등지의 신화들을 차용한 것이라는 주장을 이면에 깔고 있다.

     물론, 서로 유사한 두 가지 이상의 내용이 발견될 경우, 하나가 다른 하나로부터 그 생각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일 뿐(다른 말로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가설’일 뿐)이다. 서양의 가면과 우리나라의 탈이 그 기능이나 형태에 있어서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둘 중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베꼈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양식비평론자들의 문제는 비슷한 건 모두 서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설사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선후관계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의 중심인물 중 하나로, 모세의 정신적 스승으로 소개되고 있는 아케나톤의 재위 연대는 BC. 1352년~1336년이다. 그런데 여러 증거 상 모세의 출애굽의 연대는 BC. 1446년이다. 영향을 받았으면 모세에게서 아케나톤(또는 이그나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불만이나 이의를 잠시 뒤로 하고 작품 안으로 들어가 보면, 우선 앞서와 같은 그런 점들은 이야기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좋은 재료들로 작용한다. 사실 관계야 어떻게 되었든, 크레타 섬의 미궁이나 미노타우르스, 리바이어던과 같은 소재들은 확실히 이야기꺼리로 괜찮지 않은가.

     하지만 아쉬운 점은 왠지 이야기에 잘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나와 80여년의 차이를 두고 살았던 저자와 족히 3,300년 전에 살았을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그에 따른 사고방식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그것과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인 듯싶다. 물론 이 말은 역사소설은 모두 재미없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이 전생에 람세스였다고 주장하는 약간은 어이없는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의 경우에는 유사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몰입이 잘되니 말이다. 문제는 과거의 이야기를 얼마나 현실에 적절하게 조화를 시키느냐 하는 부분인데, 저자인 미카 왈타리는 너무 ‘그 시대의 이야기’만 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몰입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작품 자체가 지니고 있는 관점이나 적용점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작가는 시대적 영향(1, 2차 세계대전)을 받았기 때문인지 지나치게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 비관적인 결론만을 내고 있는 듯하다. 아케나톤의 개혁 작업을 전혀 현실성이 없는 망상으로만 서술해 버리니,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될 꺼리가 있겠는가. 급격한 변화는 수용할 수 있지만, 극단적 변화는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애초부터 개혁이나 변화를 ‘극단적인 것’으로 정의해버린 이상 저자의 이야기에서는 결코 희망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의 세계관이나 글쓰기 방식 모두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경험들은 고대 근동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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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드샤 칸 역사 인물 찾기 14
에크나스 에아스와란 지음, 김문호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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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비폭력 전투’라는 놀라운 발명품을 제공했고,
바드샤 칸은 그 발명품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간디와 함께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인물, 바드샤 칸에 관한 전기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바드샤 칸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이런 인물이 있었는가 하는 감탄으로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갔다.

      바드샤 칸. ‘칸 중의 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칸의 본명은 칸 압둘 가파르 칸이다. 인도의 국경지방인 파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평생을 영국의 지배 하에 있었던 파탄과 인도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책의 말미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파탄지방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지방을 말한다고 한다.

        파탄 지방은 대대로 복수의 가치를 매우 높게 여겼고, 무혈투쟁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바드샤 칸의 오랜 기간동안의 비폭력투쟁은 마침내 파탄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수 만 명이나 되는 비폭력 군대인 ‘쿠다이 키드마트가르’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더구나 그 영향은, 사람들이 수 천 년 동안 가지고 내려왔던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비폭력투쟁이라는 바드샤 칸의 투쟁방식은 일견 매우 소극적이고, 대책이 없는 것 같은 방식이지만, 결국 비폭력이 폭력을 이겼다는 사실은, 그 투쟁방식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게 만든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단주의적 대결신봉주의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예수님의 가르침 또한 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안타까운 점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화합을 위해 통일 인도를 추구했던 바드샤 칸은 간디와 마찬가지로 절충론자로 오해받기 쉬웠고, 결국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에 의해 감옥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대중이란 얼마나 무지몽매한가.

        신념을 위해 살다가 죽은 사람들의 일생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스승이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아닌가. 내 미래의 모습이 이러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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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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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2천만 명이 읽은 화제의 작품. 작품 소개 한 번 화려하다. 무슨 책이기에 2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읽었으며, 또 그렇게 유명한 책인데 왜 난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까 하는, 약간은 쓸데없는 생각으로 뽑아든 책이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매우 사색적으로 쓴 책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상징도 들어있는데, 그 가운데는 성경에 나오는 멜기세덱이 초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도 한다.  

        저자는 ‘연금술’이라는 언뜻 현대인들의 이성과는 전혀 반대의 것을 테마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연금술이란 금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의미한다. 분자와 원자가 밝혀진 마당에, 아니 그 보다 작은 전자와 양성자, 중성자의 세계, 가상의 물질인 쿼크의 세계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왠지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연금술이 먹혀들어간다니, 한 번쯤 생각해보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이다. 저자는 주인공이 연금술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자아실현이라는 가치를 말하고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산티아고는 늙은 왕(멜기세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을 통해 자아실현의 꿈을 갖게 되고, 이를 위하여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로 여행을 떠난다. 그 가운데 여러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 사람들 각각은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온갖 종류의 추상적인 것들을 형상화시켜놓은 존재들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산티아고는 그러한 방해요소들을 극복하고 자아를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그야말로 뉴 에이지 계의 『천로역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각 인물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나, 여행이라는 모티브, 그리고 그 끝에 얻게 되는 성취라는 유형 모두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그대로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존 번연은 신앙, 믿음의 우월을 주장하는 반면, 코엘료는 자아실현의 가치를 고양시키고 있다는 점일 뿐이다.

 

        유네스코의 ‘영적 집중과 상호 문화 교류’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는 저자의 이력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작품 전체에서 뉴 에이지 적인 냄새가 매우 짙게 느껴진다. 물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인간 스스로의 능력(사색, 자기 발견, 꿈꾸기 등과 같은)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으로 보는 코엘료의 시각은 동의하기 어렵다. 시오노 나나미도 말했지만, 역사에는 뛰어난 능력과 배경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운’을 얻지 못해서 실패했던 군상들이 얼마나 많은가. 단지 개개인의 노력으로만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너무 순진한 사람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운, 혹은 신의 섭리가 역사(세계사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도)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저자는 이 점을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해 버렸다.

        현실은, 단지 사색하고, 고민한다고 해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을 만큼 녹녹하지가 않다. 인간이란, 그 자체로서는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오랜만에 어린왕자 풍의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만족감에 푹 빠지기 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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