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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 상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비너스를 복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복수란 자기의 온 시간을 바쳐서 해야 하는 일인데,
그녀는 지금 남에게 해를 끼치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전작인 『타나토노트』의 후속작의 형태로 쓰인 책이다. 전작에서 사후세계를 탐험했던 주인공들은, 이 작품에서 천사가 되어 다시 한 번 더 높고 깊은 세계를 탐험하러 나간다.
언제나 좀 더 새롭고 높은 세계를 향해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로 가득 찬 라울 라조르박, 그리고 그의 말에 혹해서 함께 탐험을 펼쳐나가는 미카엘 팽숑, 전작에서는 꽤 뛰어난 판단력을 보여줬으나 이번에는 매우 염세적으로 변해서 보조인물에 불과하게 된 랍비 프레디, 그리고 그의 애인 마릴린 먼로(?).
전작에서 이들은 영계탐사를 위해 함께 애썼던 타나토노트였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결국 천계의 존재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고, 결국 그들의 탐사를 막기 위해 죽음을 맞도록 만든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그토록 탐사하고자 했던 영계에 도착한 그들. 하지만 그들이 마주친 것은 더 높은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영계묘사는 현실세계를 묘사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저자의 현실인식인 인과응보적인 순환론적 인생관이 그대로 투영되어서, 천국에서 조차 천사가 된 주인공들은 세 명의 인간영혼을 맡아 그들의 업보점수를 높이는 공을 세움으로 더 높은 세계로 갈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인 팽숑이 맡은 세 사람의 인간들의 삶을 서술하면서 적당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저자의 솜씨는 훌륭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스토리가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서 느낀 점은, 좀 가볍다 라는 느낌이다. 우선 전작인 타나토노트의 등장인물이 등장하기에, 등장인물의 특별한 성격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인물들이 맞닥뜨리는 갈등상황이나, 인물들 간의 갈등조차 전작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은 약간 지루한 맛을 느끼게 했다.
또, 자연스런 스토리 전개보다는 지나치게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요소가 많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이유로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하고 싶었던 주제를 제시하는데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작품이 스스로 흘러가게 만드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즉, 책이 저자의 생각에 살짝 스토리라는 껍질을 덮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
내가 꽤 좋아하는 작가지만, 이번 작품은 저자 특유의 풍부한 상상력과 관찰력을 집필하는 동안 모두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