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팀 켈러 목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분이 쓴 책들을 몇 권 읽어본 정도지만, 건실한 성경해석자이자,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역자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아직 못 읽어본 책들도 많아서, 시간이 되는 대로 한 번씩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이 손에 들어왔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팀 켈러에 대한 열혈 팬심을 잔뜩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팀 켈러가 남긴 다양한 업적들을 주제별로 정리해 이 작은 책 한 권에 담고 있다. 책 말미에는 팀 켈러가 쓴 책들을 주제별로 정리하고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을지까지 안내하고 있을 정도.
저자가 생각하는 팀 켈러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는 점인 듯하다. 그건 자칫 율법주의나 반율법주의로 치우치기 쉬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잡아주는 교리이자,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다양한 사역의 동인이기도 하다. 팀 켈러는 여기에 근거해 그의 설교라든지, 대사회 사역(정의 사역)이라든지, 신앙과 삶 사이의 다양한 통합을 추구했었다.
이 외에도 팀 켈러의 다양한 사역적 측면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목회를 하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고민들에 관해, 이런 대가가 어떤 길을 갔는지를 살피는 건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다만 책 자체가 팀 켈러가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가 어떻게 말했는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팀 켈러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금은 관심 밖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일단 팬심이 중요한 책이라는 의미.
전반적으로 책의 볼륨이 작긴 하지만, 각 주제별로 알차게 요약해 담았다는 느낌을 준다. 특정한 부분에 좀 더 관심이 생긴다면, 책 속에 언급된 팀 켈러의 또 다른 책들을 찾아보는 식으로 좀 더 깊이 공부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의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권력은 쉬 알아볼 수 있어서 논쟁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의는 힘을 받지 못한다.
권력은 올바름을 불의라고 부르고
스스로 정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정의에 도전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정의에 힘을 싣기가 어려우므로 권력을 정의롭게 해야 한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중에서
하나님이 제국의 체계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는 이들은
결국 급진적 비폭력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윤리적 경계가 언제나 명확하지 않으며,
인간 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악함은
어려운 결정이 융통성 있는 이상을 요구할 수 있는
복잡한 윤리적 환경을 조성한다고 도전할 수도 있다.
- L. 대니얼 호크, 『하나님은 왜 폭력에 연루되시는가?』 중에서
저자인 브라이언 채플이라는 이름을 오래 전에 들은 기억이 있다. 아마도 신학대학원 시절 설교학 강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와 함께 설교학의 대가 중 하나로 배웠던 것 같다. 사실 그 시절에는 배워야 할 것이 워낙에 많았기에 하나하나에 집중해 가며 읽거나 할 여유가 없었다.(물론 내 관심을 끄는 책들은 도서관에서 잔뜩 읽긴 했지만...)
사실 설교학은 실천신학 분야 가운데서도 가장 실천적인 학문이다. 설교는 모든 목회자들의 어깨에 지어진 고달프면서도 영광스러운 짐이니까. 특히나 한국교회의 특성상 담임목사의 경우 매주 적지 않은 수의 설교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설교문을 탁월한 수준으로 준비하고 설교하는 건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워진다.
때문에 설교를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하는지는 목회자로 훈련받을 때 신경 써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다. 하지만 이게 어디 고작 한 학기의 과정으로 충분히 갖춰질 리가 없으니, 결국 신대원을 졸업한 후에도 대부분은 자기가 좋아하는 설교자의 영상이나 글을 보며 따라하는 식으로 스타일을 만들어 가곤 한다. 그러나 좋은 설교문은 유튜브 영상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 설교의 스타일을 배울 수는 있어도, 내용을 배우기에 동영상은 사실 쉬운 매체가 아니다.
결국 쉴 새 없는 설교의 홍수 속에서 버텨나가기 위해서는 좋은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틀이라고 해서 모든 본문을 같은 형식으로 설교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건 본문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포인트에 집중할 것인가, 그리고 그 내용을 어떤 식으로 회중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 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관점이 없다면, 그때그때 설교자의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본문을 읽고 적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채플은 이른바 “그리스도 중심 설교”라는 틀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책은 이론적인 설명보다는, 그 틀을 따라 하는 열두 편의 설교문을 실제로 실어서 “그리스도 중심 설교”라는 것이 어떤 형태를 띨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물론 단순히 설교문을 옮겨 놓기만 한 것은 아니고, 각 문단들이 전체 원고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왜 그런 내용이 그 자리에 위치하는지 등을 단락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고, 이론적인 부분 역시 간략하게나마 각주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깨달았던 건, 내가 그리스도 중심 설교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하나의 틀로 성경 전체를 바라보고 풀어나가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또 실제로 유효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조금은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런 식의 접근이 모든 본문을 설명해 내지 못하거나, 종종 견강부회 식의 적용으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 중심 설교라는 건, 결코 모든 본문에서(이를 테면 구약의 어떤 임의의 본문에서도) 바로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방식의 해석을 취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책에 실린 일부 설교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적인 방식으로 등장하거나 그분의 교훈이 제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전히 그리스도 중심 설교일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과 역사의 중심이라는 전제 아래, 인간의 죄성(여기서 그리스도의 필요성이 드러난다)과 이를 극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 은혜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그리고 새로운 거룩한 삶(이건 그리스도와 연합을 할 때 가능하다)에 대한 강조 때문이다.
분명한 ‘틀’ 안에서 설교문을 작성하는 것이 매번 비슷한 느낌의 설교만 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이 책에 실린 열두 편의 설교가 각각 다양한 방식과 유형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을 통해 해소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려보다 훨씬 흥미롭고, 또,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순서가 좀 뒤집어 진 것 같긴 하지만, 이 책의 이론서에 해당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이 정도면 썩 괜찮은 책이 아닌가 싶다. 설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독자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꼭 설교자가 아니더라도 성경에 대한 건전하면서 안정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독자에게도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