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휴전을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겠느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이상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겠습니까?
저는 우리나라 영웅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도 지불할 수 있습니다.
명성, 지지율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대통령 자리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는 우리의 영토입니다.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중에서
책을 주문해 받고서 크기에 흠칫했다. 205*290mm라는 판형이니 여느 책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백과사전 사이즈에 가깝고, 좀 낮은 내 책장에는 세워서 들어가지 않을 정도. 그만큼 큼직큼직한 지도들이 잔뜩 들어있고,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삽화도 제법 많다. 확실히 비주얼적으로 신경을 쓴 책이라는 느낌.
네 명의 저자들이 장을 나누어 썼는데, 두 명은 군사에 관한 글을 많이 쓴 작가이고, 다른 두 명은 교수다. 그 중 한 명인 롭 라이스는 미국 국방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조합.
개인적으로 성경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역사였다. 당시 나는 아직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성경 역시 기본적으로는 역사 이야기가 담긴 책으로 보고 읽기 시작했으니까. 나중에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에 안 사실인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이 역사 부분을 어려워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겐 그렇게 재미있었던 부분을.
이후에도 꾸준히 성경을 읽으면서도 역사서에 관심이 많았고, 덕분에 유튜브에 성경 역사를 설명하는 영상들까지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역사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리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능하면 어떤 사건을 설명하면서 관련된 지도나 지리적 정보들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이 책을 손에 든 가장 중요한 이유도 이 부분에 있었다. 고대 역사는 대체로 전쟁 위주의 기술인지라, 이와 관련된 내용을 좀 더 풍성한 배경과 함께 실감나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결론적으로 이런 기대는 3할 정도만 충족된 것 같다. 총 20개의 전투 장면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제목과는 다르게 성경 시대에서 벗어나는 전투가 7개, 즉 1/3이다. 뭐 그래도 중간기나 복음서 이후 시기 유대 땅을 배경으로 한 전투이니 아주 관계가 없는 내용은 아니다. 어찌 됐든 각 전투의 상황을 깊이 있게, 또는 입체적으로 설명만 해주었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접근하기에 필요한 자료 자체가 대단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구약에 실려 있는 전투 장면에 관한 묘사는, 기록자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어서 전투 자체보다는 그것에 담긴 신학적 의미에 치중한다. 애초에 전투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상황에서, 저자들은 전투의 배경이라든지 하는 좀 겉도는 이야기를 길게 설명한다.
물론 일부 전투의 경우 전장의 지형을 반영한 투시겨냥도를 그려서 한 눈에 보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또 많은 경우는 느슨한 느낌의 지도 위에 공격측과 방어측의 진행방향을 화살표로 그려놓은 정도이기도 하다. 그래도 몇몇 지도들, 예를 들면 팔레스타인에 있었던 여러 요새들의 위치를 표시해 놓은 것들은 기억해 둘 만했다.
삽화 쪽도 살짝 아쉬운 것이 본문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도 제법 실려 있었다는 점. 물론 이 역시 애초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래도 중간기 이후부터는 나름 여러 자료들이 남아 있어서 볼만하긴 했다.
다만 이런 좀 박한 평가는 내가 이 부분에 관해서 (유튜브 영상을 만드느라) 여느 사람들보다 많이 조사하고 익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역사서 부분을 어렵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배경 설명이라든지 나름의 전개를 좀 더 입체적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도 같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여섯 번째 시리즈이자, 당초 계획에 따르면 마지막 시리즈인 “시월의 말”의 첫 권이다. 작가 소개를 보면 이 시리즈의 집필을 끝낸 뒤 1년 후 시력을 잃었다고 하니 말 그대로 일생의 역작을 써 내려간 후 진이 빠졌던 걸까. 하지만 원래 계획과는 달리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하나의 시리즈를 더 덧붙인다. 작가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편에서 파르살로스 회전에서의 승리로 사실상 공화파와의 내전을 끝낸 카이사르는, 이제 후속조치에 나선다. 우선은 패전 후 도망친 폼페이우스를 뒤쫓아 이집트로 가지만, 이미 폼페이우스는 이집트 관리들에 의해 살해된 뒤였다. 폼페이우스에게 관용을 베풀어서 내전을 조기에 수습하던 계획은 그렇게 무산이 되었고, 심지어 이집트 왕실 내에서 벌어지던 내전에 휘말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흥미로운 부분은 흔히 미인으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의 외모에 대한 작가의 묘사인데, 절세미인이라기보다는 마른 외모의 그리 예쁘지 않은 얼굴, 하지만 재기발랄하고 높은 지적 수준인 인물로 그려진다. 언뜻 아가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과도 비슷한 느낌이랄까.
이집트를 떠난 카이사르는 북아프리카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던 공화파를 분쇄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른바 강경 수구파였던 보니의 지도자 카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부분에서 다시 한 번 카이사르의 계획은 무산되는데, 그는 누구보다 자신을 강경하게 반대했던 카토를 용서해 줌으로써 자신의 관용을 선전하고 내전 이후 정국을 빠르게 수습하려고 했다.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 상상을 덧붙이는데, 카이사르가 생각하는 건전한 정치는 언제나 반대파의 존재를 상수로 깔고 있어야 했다는 점이다. 반대파가 없는 원로원은 필연적으로 약화되고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건데, 이건 정적 죽이기에 여념이 없는 지금의 정치 지도자들이 좀 들어야 할 말이지만... 보통 이런 사람들은 책을 안 읽으니까.
계속 지적하는 부분이지만 작가의 인물평은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들과 좀 다른 면들이 종종 보인다. 전편에서는 라비에누스를 야만적으로 묘사하더니, 이번에는 테렌티우스 바로를 아주 얌생이로 만들어 놓았다.
카이사르의 최대 정적이었던 카토에 대한 묘사에 특히나 공을 들인 듯한데, 한편으로는 스토아 철학에 헌신한 깐깐한 원칙주의자이지만 바로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무시하는 멍청함도 함께 안고 있다.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배정된 수송선을 모두 보내버리고 1만 명의 병사들과 함께 (배로 며칠이면 될 거리를) 육로로 행군하는 고지식함의 소유자이면서, 죽음을 앞두고는 과연 영혼은 영원할까를 두고 그리스 고전을 읽고 또 읽는 두려움에 빠지는 모습도 보여준다.
또, 훗날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가 된 카시우스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느낌은 소 카토의 마이너 버전? 시종일관 투덜거리며 카이사르가 하는 일마다 흠을 잡고, 평가 절하한다. 물론 카이사르도 그런 일들을 다 알고 있지만, 앞서의 자신의 정치 원칙에 따라 놔두는 느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토니우스. 앞선 갈리아 전쟁에서도 나름 존재감을 드러내긴 했지만, 독재관에 취임한 카이사르를 대신해 기병대장(부독재관)으로 로마를 다스리고 있던 그는 최악의 통치를 하고 만다. 작가는 이 시기 이탈리아에 머물던 군단병들의 반란을 안토니우스가 조장한 것으로 묘사하기까지 한다.
확실히 소설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인물 묘사에서 복선을 깔아두는 느낌이다. 역사가 스포인지라 결말을 알고 보면 다 나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내용들이고.
참고로 “시월의 말”이라는 제목은, 전쟁의 신인 마르스에게 바쳐지는 제물이 되는 말을 가리키는데(첫 머리에 그 의식이 소개된다), 어쩌면 카이사르를 가리키는 비유가 아닌가도 싶다. 마르스에게 바쳐진 전차 경주에서 이긴 쪽의 말이 제물이 되는 것처럼, 내전을 끝낸 승리자인 카이사르가 결국 암살을 당한다는...
사랑은 9할이 미움으로 바뀌었을 때에도
스스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법이다.
- C. S. 루이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