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은혜
폴 투르니에 지음, 추교석 옮김 / IVP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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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기독교 신앙 사이의 조화 내지는 융합을 시도했던 것으로 잘 알려진 폴 투르니에가 쓴 책이다. 이번 책의 주제는 “죄책감”이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는데, 1부에서는 죄책감이란 무엇인지, 2부에서는 죄책감이 일으키는 다양한 문제들, 3부에서는 죄책감을 대하는 일반 의학적 접근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로서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회개와 용서를 말한다.


죄책감이라는 것이 인간 심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가 전혀 다른 식으로 이해하던 이상행동들의 근원에 죄책감이 있었다는 설명 등은 흥미롭다. 심리학이라는 분야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내면에 관한 분석과 설명이다 보니 확실히 신기한 면이 있다. 예컨대 자기 주장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퍼붓는 인간들(대체로 정치인들이 그런 면이 있다)은 실은,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심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는 많은 경우에서 죄책감을 이용한다. 우선은 모든 부분을 법과 같은 규정을 통해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고, 나아가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그 근거가 불확실한 것들을 강제하려고 할 때도 죄책감은 톡톡히 이용된다. 물론 이런 부분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다. 문제는 이 죄책감이 어떤 사람의 내면에 심각한 억눌림을 초래할 때다. 과도한 죄책감, 정확히는 잘못 이해되는 죄책감은 한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를 막아 지속적인 괴로움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죄책감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래서 죄책감을 초래하는 근원적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문제해결을 시도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근본적인 치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현대 의학은 죄책감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환시키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특정한 성적 본능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는 상황에 대해 현대 의학은 그가 그런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제 그 남성은 “자연스러운” 본능을 억압했던 과거의 자신의 모습에 관한 부끄러움을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투르니에의 독특한 관점이 빛을 발한다. 저자는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인 용서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실제적인 차원에서 이는 그 권한을 위임받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여기에 저자는 다양한 기독교 교파의 의식을 모두 포용한다).


그리고 하나 더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의학적이고 영적인 치유를 통합하는 의사에게 일종의 성레적 치유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명명법인데, 의사가 성직자를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종의 일반은총에 기초한 직업적 소명에 대한 강조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한동안 인간을 단지 기계적으로만 이해하는 관점만이 적절한 의학적 이해라는 착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물론 여전히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런 차원에서 영과 육을 아울러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폴 투르니에의 주장은 사뭇 특별하게 여겨진다. 사실 인간을 기계로 이해하는 사람도 정작 자신이 기계 취급을 받으면 불쾌함을 표하지 않겠는가.


특히 죄책감이라는 문제는 죄와 용서라는 기독교의 중요한 주제와도 연결해서 확실히 신학적인 면에서도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은 부분이다. 당장 죄가 무엇인지, 그것이 인간의 전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도식적이고 이론적인 결론만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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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많다고 젊은이보다

더 나은 스승이 될 자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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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교회의 밀착으로 많은 점이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나태해졌다.

사람들이 출석하든 말든 돈이 계속 들어오니

사제들이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둘째, 이 밀착으로 사람들은 종교를 ‘일종의 공공재’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개개인이 교회를 지키기 위해 할 일이 없었다.

이런 태도는 교회에 기부하는 일을 꺼리게 했고

국고 보조를 받지 못하는 교파가 경쟁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했다.

그래서 독일 전도자들이 텔레비전 사역에 나섰을 때

시청자는 끌어들였지만 기부금은 끌어들이지 못했다.

종교는 공짜여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로드니 스타크,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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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크리스틴 다치필드 지음, 이규원 옮김 / 사랑플러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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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 만난 “나니아 연대기”에 푹 빠져서 이후 C. S. 루이스의 팬이 되었다는 레퍼토리는 꽤나 많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나니아 키즈” 중 한 명이다. 현재(책을 쓸 당시)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많이 썼다고 하는 저자는, 나니아 연대기 중 가장 먼저 쓰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 속 기독교적 메시지를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쉽게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냈다.


책 제목이 좀 혼동을 준다. 나니아 연대기 속 제목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고, 이 책에는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라는 우리말 제목이 붙어 있다. “와”를 ,로 바꾼 건데, 그 위에 “C. S. 루이스의 눈으로 나니아 읽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긴 하지만 혼동 되는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부제의 내용도 좀 웃긴 것이, 애초에 나니아 연대기를 루이스가 썼다면, 당연히 그 작품은 루이스의 눈으로 쓰였고, 읽게 되는 것 아니던가.


참고로 영어 원제는 "A Family Guide To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이다. 가족이 함께 사자와 마녀 그리고 옷장을 읽는 데 쓸 만한 자료라는 의미 정도인데, 차라리 우리말 제목을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 정도로 했으면 어땠을까?





책은 우선 루이스의 삶을 간단하게 조망하고, 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들,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 등을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사자와 마녀 그리고 옷장”을 몇 개의 장으로 나눠 줄거리를 설명하고, 그와 연결되는 성경 구절을 소개한 후 몇 개의 질문을 덧붙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이도는 딱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함께 읽고 나누기에 맞게 쉬운 수준이다. 당연히 나 같은 독자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고, 탁월하다고 느낄 만한 통찰이 담긴 문장들을 찾지도 못했다. 물론 나름 관련된 성경 구절을 충실하게 찾아서 설명하고 있으니, 목적에 맞춰서 선택해 읽으면 될 일이다.(다만 절판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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