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이다. 1919년 3월 1일 벌어졌던 독립운동을 기억하기 위한 날이고, 일부에서 빈정거리듯 "우리 민족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되찾은 게 아니"라는 말이 허무맹랑한 소리임을 증명하는 날이기도 하다.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그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가 없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독립된 나라들의 운명이 어떠한지 쉽게 알 수 있다. 독립은 남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종종 나오는 이야기가 기독교의 공헌 부분이다. 한 편에서는 기독교가 별로 한 일이 없다고 평가절하 하고, 그 증거 중 하나로 신사참배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일제의 강압에 따른 것이었다고는 하나,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를 한 것도 사실이고, 그 결과로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이에 참여하며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동참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 반발하다 살해 당한 목사들도 있었고, 신사참배의 압박을 거부하고 자진해서 학교를 폐쇄했던 기독교 학교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소수의 산발적인 거부였고, 해방 이후의 행적을 봐도 참배 찬성, 독려 측 인사들이 주류를 이룬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의 공헌을 강조하는 쪽은 기독교를 믿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제시하곤 한다. 안중근(가톨릭), 안창호(개신교), 김구(개신교), 유관순(개신교) 등이 자주 언급되는 케이스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는 데 참여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점도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기독교의 공헌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는 건 확실히 지나쳐 보인다.

하지만 뭔가 좀 아쉽다. 교회는 신사참배에 찬동하고 독려하며 나섰는데,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요컨대 기독교인 개인으로서는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교회는, 교회로서는 한 일이 별로 없다고 하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 같다. 일부 개별 교회들이나 YMCA 같은 기독교 계열 단체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교단과 조직체로서의 교회는 비겁했다. 뭐 어느 쪽에 무게를 더 두느냐는 선택의 문제에 가까울 거고.

요컨대 문제는 기독교에 우호적인 시선을 가지고 그 상황을 바라보느냐, 그렇지 않으냐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 큰 영향을 주는 건, 그 때 그 사람들이 어떻게 행했는지보다는 오늘 우리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다. 오늘의 교회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준다면, 우리의 과거도 그렇게 느껴지게 만들 수 있을 게다.

오늘도 사랑제일교회의 전모씨가 대규모 종교/정치집회를 진행했다고 한다. 벌써 하루이틀 된 문제도 아니고, 수백 개의 교단으로 분열되어서 남의 교단 일에는 뭐라 개입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게 한국 교회의 현실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인물들과 제대로 손을 끊지 못하는 게 우리의 수준이다. 우리는 그나마 나라를 위해 애썼던 선배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도 남는 부끄러운 후예들이다.



https://news.v.daum.net/v/20220301204503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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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불공정한 예술이다. 

무대 위에서 단 한 번 만에, 

그것도 수많은 낯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해서, 

어린 시절부터 기술을 연마했다고 해서 

그 노력이 반드시 결과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소리는 시간과 함께 날아가버리기 마련이고, 

아무리 성실한 연주자라도 그 소리를 다시 잡아서 수정할 수는 없다.


김호정, 『오늘부터 클래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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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우리의 인생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이력서에나 올릴 만한 

객관적 증명이 가능한 내용으로 채워진 삶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삶이 그 옆에 평행으로 붙어 함께 가고 있습니다. 

그 다른 삶의 공간은 신비와 경이로움, 

떨림과 광활함 같은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지적으로 판단되고 가늠되는 삶이 전부가 아니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경험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평행을 달리고 있는 삶들은 

이 두 가지 각각의 측면을 대표하는 공간들인지 모르겠습니다.


- 박성일, 『헤아려 본 기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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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을 통해 나의 강점을 인식하는 것은 

숨은 잠재력을 발현하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칭찬을 구걸할 필요는 없다. 

요한 것은 남에게서 듣는 칭찬이든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칭찬이든, 

이를 스스로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이토 다카시, 『여전히 서툰 어른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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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에게 하나님나라가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다면 

당신이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행동하며 기다리는 하나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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