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껌, 자전거, 도마뱀, 그리고 하나님 - 여덟 살 꼬마와 철학박사 아빠의 톡톡 튀는 하나님 이야기
제임스 스피글 지음, 강선규 옮김 / 살림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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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끊임없이 질문을 퍼붓는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철학교수 아빠인 저자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과 질문들을 통해 그들을 신앙으로 키워나가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귀찮거나 또는 잘 모르기 때문에 ‘쓸 데 없는 질문’으로 치부하거나 덮고 넘어가려고 할 만한 것들에 대해서도 저자는 인내심을 갖고 차분히 대화로 바른 대답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2. 감상평 。。。。。。。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철학교수로 대화의 기술을 갖추고 잘 훈련된 저자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자녀들의 질문에 진지한 자세로 대답해 주고 있다. 덕분에 그 이야기들을 모은 이 책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 아직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쉽지만 꼭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들을 바르게 잘 가르쳐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소크라테스 이래로 질문과 답변을 통해 상대가 가진 질문의 본질을 깨닫게 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교육의 방법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교육방식도 그랬다. 그분은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그들의 무지와 오해를 깨닫게 하시고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깨닫게 하셨다. 무엇인가를 질문한다는 것은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고, 그런 학생에게 가르칠 때에야 교육이 제대로 되는 것은 당연하다.(무엇인가를 가르쳐 본 사람이라면 모두들 동의하리라. 문제는 질문을 안 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어린아이는 신앙을 배우고 가르치기에 딱 좋은 상대다. 어쩌면 (책의 말미에도 등장하듯) 예수님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고서는 자신에게 나아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 의미 중 하나는 그들의 왕성한 호기심을 가리키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좋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그들의 부모는 정작 가르칠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이 또한 사실이다. 세속학문의 경우는 이미 학교와 학원에 완전히 그 기능을 내어주었고, 이제 신앙적인 부분 또한 교회기관에 맡겨버리는 듯하다. 그러나 이건 정말로 잘못된 일이다!

 

     이 책은 그런 차원에서 부모들이 어떻게 자녀들의 신앙을 성장시키기 위해 행동해야 하며, 또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정말로 삶의 모든 부분에서 자녀들에게 바른 세계관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날아가는 새를 보며, 길가에 핀 꽃과 풀들을 보며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참된 비전을 보여주셨는데, 부모들이야말로 그래야 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정도로 쉬운 표현과 바른 내용이라면 초신자들에게도 추천해 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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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3
옥성호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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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록이라는 음악 장르가 태생적으로 사람을 흥분시키며 중독성 있는 호르몬을 분출(57)케 하는 ‘부정적인 영향’(57)을 초래하는 음악이기에 이를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예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록에 기반한 찬양들이 예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결국 복음/성경의 메시지가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이런 경향의 원인을,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교회가 자신을 세상에 맞추어 변형시키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2부에서는 성경에 기초한 바른 예배의 정의와 형태에 관해 말하면서, 바른 예배 찬양이 가져야 할 요건들을 제시한다. 또, 예배 음악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소명을 드러내는 한 방식으로서의 음악(저자는 CCM을 이렇게 정의한다)의 필요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위해 음악적 재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분발해야 한다는 요청이 덧붙여 있다. 

 

 

 

2. 감상평 。。。。。。。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책은 앞서의 책들보다 더 잘 드러나는 부분인 ‘교회 안의 음악’에 관해 다루었기에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읽힐 것 같다. 최근의 ‘이상한’ 찬양들에 대해 뭔가 불만이나 불안감을 품고 있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의 논지 중 어떤 부분은 상당히 명쾌한 조언을 제시하고 있으니 읽어볼 만하다. 나도 저자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만들고 향유하는 음악들을 예배를 위한 것과 예배 이외의 목적을 가진 것으로 나누어서 보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전자의 경우는 예배라는 일종의 의식에 맞게 제작된 것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부분에도 찬성한다. 저자의 말처럼 성경 구절 한두 개를 떼어 내서 가사에 집어넣었다고 해서 모든 게 ‘찬양’이 되는 건 아니니까. 찬양이란 말 그대로 상대를 높이는 것이지, 그것을 하는 행위자 자신의 만족과 위안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저자가 말하는 주요 주장에 동의를 함에도, 책 자체를 보면 좀 아쉬운 점이 많다.

 

 

     저자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에 관한 이야기로 본론을 시작한다.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만으로도 우리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39) 어떤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그의 행동을 달라지게 하는 것, 일반적으로 이런 작업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즉 저자의 말대로라면 음악은 교육을 위한 매우 효과적인 도구이다. 그런데 또 다른 곳(181)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동안 진짜 중요한 것을 노래로 배운 게 있’느냐고 반문한다. CCM을 통해 부드럽게 복음을 전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며, 그러니 좀 더 진지하게 말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내포하는 것 같다. 아니, 음악이 그렇게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데 말과 함께 음악과 노래를 사용해서 안 될 이유는 또 뭔가? 그리고 저자의 말과는 달리 우리는 살면서 중요한 것은 노래로 다 배웠다. 유치원을 가면 서로 도와야 하며, 사랑해야 하고, 길은 횡단보도로 건너고, 양보하고, 효도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내용들을 다 노래로 배운다. 유대인들은 쉐마라고 불리는 신명기의 성경구절을 노래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시편을 노래로 암기하며,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일종의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예컨대 빌 2:1-12 같은)

 

     물론 오늘날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들이 이런 복음의 내용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는 백번 공감한다. 그런 노래들을 예배시간에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정말 엉뚱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들이라면 그 외의 시간에도 부르지 않는 게 옳다. 그런데 저자의 좀 과격한 입장에는 ‘록’이라는 음악 장르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좀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이라고 하면서 그 자체에 선하고 악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47) F단조는 악하고 C장조는 선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일한 사람이 몇 장 뒤에 가서는 특정한 비트와 코드 패턴, 그리고 큰 소리(저자가 말하는 록의 특성들이다)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부정적인 영향’(57)은 그것을 듣는 이들이 반복해서 찾게 된다는 것 말고 별다른 것이 제시되지 않는다.(아, 청력에 문제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긴 하다) 심지어 저자는 ‘음악은 그냥 음악일 뿐이다’라는 주장에 다시 문제를 제기하면서 ‘도와 솔은 중립적이지만 이런 음계가 합쳐져서 화성을 만들고 리듬을 이루고 멜로디가 더해지면 더 이상 음악은 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99) 앞서의 논리와는 모순되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는 록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매우 대략적으로 특정한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일종의 중독상태를 일으킨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여전히 이 부분에 관해서는 충분한 의학적 연구 결과가 없는 것으로 안다. 참고로 프랭크 갤럭 등이 쓴『위험에 처한 교회음악』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이 책처럼 주관적인 느낌과 경고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요컨대 이 록이라는 특정한 음악 형식이 주는 메시지가 얼마나 강한지 거기에 어떤 거룩한 가사가 붙어 있더라도 그것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113)는 주관적 견해를 일반화하고 있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이 세상의 어떤 부분(록과 같은)은 악하다는 식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하는 건 아닌가. 그건 성경적인가?

 

     이 외에도 2장의 ‘CCM 옹호론에 대한 반론’은 저자가 잘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 때리기에 그치고 있고,(거기 나오는 상대방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위로와 격려, 축복을 주제로 하는 노래들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복음을 나쁜 소식으로, 그래서 예배 음악에는 죄에 대한 강조만이 강하게 드러나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부분(143-144)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마다가 경외와 감탄으로 기쁘게 노래했던 구약과 신약의 전통과도 어긋나 보인다. 성경 어디에도 기독교인들/하나님의 백성들을 집단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그리고 있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기뻐하며 서로를 축복하는 이들이 아닌가.

 

 

     문제는 예배 음악을 엉뚱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감정적 충동을 성령의 은혜라고 가르치는, 감정만 뜨거워지면 그게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선 것이나 그분을 바르게 예배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찬양인도자들이 문제 아닌가. 여기에 인격적으로 그분을 만나기 위해 성경을 읽고 깊은 기도를 하기보다는 컵라면 끓이듯 손쉽게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인 양 착각하는 게으른 신자들도 문제가 있고.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를 좀 더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려는 욕심, 그래서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자세가 되어있는, 준비되지 않은 목회자들일 거고. 이런 차원에 이 책은 전작인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와 거의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부록에 가깝다. 주제의 발전에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물론 이 말이 이 책이 나쁘다거나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쉽다. 세 번째 책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이, 이 시리즈에 속한 앞서 두 권의 책과 비교해 이 책을 가장 덜 논리적이고 쫓기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이 주제에 관해 저자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적 경험’(26)들을 자주 삽입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물론 짤막한 글이라도 자주 써 본 사람이라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잘 쓰기는 힘들다는 데 공감을 표할 것이다) 주관적 신앙 경험과 견해를 일반화하기 위해선 좀 더 조심스럽고 폭넓은 연구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엔 곱씹어 볼만한 내용들이 많으니, 차분히 읽어본다면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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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불어완역판) 자끄 엘륄 총서 1
자끄 엘륄 지음, 박동열 옮김 / 대장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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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그리스도인 됨’을 구현할 수 있는지에 관해 논리를 전개해나간다. 그들은 세상 속에 있지만 결코 세상에 속할 수는 없다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졌으며, 따라서 현실에 순응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전해주는 세계관을 그대로 수용해 목적을 상실한 채 끊임없는 향상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들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 지성들은 이 일을 통해 그들의 존재의의를 찾을 수 있다. 

 

 

 

2. 감상평 。。。。。。。        

 

     책을 다 읽고 나니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겠다. 저자인 엘륄은 선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악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바르게 정초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긴장’에 대해 매우 깊게 파 들어간다. 다소 난해한 서술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 단일 주제에 관해서는 이 책보다 상세하게 말하고 있는 책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든(심지어 기독교를 국교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세상에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너무나 쉽게 이 두 개의 나라(세상의 나라와 하늘의 나라)의 화평을 시도하거나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기독교에 대한 조롱과 실망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로 인한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혼란상을 보고 겪으며 쓴 책답게,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다. 하지만 세상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애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절망적이지는 않다.

 

     다만 불어를 번역해 놓은 책은 왜 이렇게 읽기가 어려운지. 물론 철학이나 그에 준하는 책들만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논리전개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독일식의 만연체는 아니었지만 논리구조가 치밀하다기보다는 직관적인 흐름에 따라 글을 쓴 면이 강해 읽는 데 애를 좀 먹었다. 이점만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이 때문에 과감하게 추천하기는 좀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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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찰스 콜슨 지음, 정영만 옮김 / 요단출판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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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소개와 그 실제적인 적용에 대해 제시하고 권면하는 책이다.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기본적인 틀 안에서 세속적 세계관이 가진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동시에 성경적 세계관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제시한다. 결론부에서는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타락한 세상의 구조를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지’에 관해 앞서서 활동했던 실제 인물들의 예를 통해 실감나게 제시하며 따라서 고민하도록 한다. 

 

 

 

2. 감상평 。。。。。。。               

 

     기독교 세계관을 소개하는 데 관해서는 탁월한 책이다. 공저자이기도 한 낸시 피어시가 쓴 또 다른 책인 『완전한 진리』와 유사한 구조와 논리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심지어 책의 두께까지;;) 글에서 드러나는 분위기는 좀 다르다. 쉐퍼의 제자이기도 한 낸시 피어시의 글이 좀 더 부드러운 설득조라면, 콜슨의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어떤 ‘행동’을 촉구하는 듯한 느낌을 더 강하게 받는다.

 

 

     책은 저자가 처해 있는 상황인 미국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늘 미국을 따라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도 딱히 낯선 장면들은 아니다. 세속적 세계관은 이미 교육계를 비롯한 정치, 경제, 사회운동과 문화,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그 파괴적인 영향력은 이미 곳곳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소위 ‘전문가’들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고는 있지만, 그들이 가진 관점 자체가 문제인데 뭘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미 이 나라는 어느 정도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곳곳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배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은 좋은 일이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중심으로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어휘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것에 대한 개념을 들어본 것과 그것을 아는 것은 분명 동일한 일은 아닐 것이다. 또 아는 것과 그대로 사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세계관이라는 것은 그렇게 살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전히 세속적 세계관으로 살면서 기독교 세계관에 관해 들어봤다는 이유로 자신이 기독교 세계관을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내가 보기엔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기술자들이다. 이는 ‘기독교 국가’, 혹은 ‘신정국가’를 세우는 것과는 다르다. 그분의 주권을 기억하고(창조), 이 땅에 널리 퍼져있는 타락의 영향력을 바로 알고 그것들을 제거하고 고치기 위해 애를 쓰며(타락), 이 일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가능함을 늘 기억하며 일하는(구속) 것이다. 이들은 어떤 이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결코 자기들을 위한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다.

 

     이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한 일들을 잘 해내려면 - 모든 일이 그렇듯 - 일단 좋은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이 책은 후자에 관해서는 확실히 종합적인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주고, 전자에 관해서도 간접적이나마 선명한 그림을 보여준다. 아주 좋은 책이라 하겠다. 왜 이제야 이런 책을 보게 되었는지 아쉬울 뿐. 책의 엄청난 두께(각주를 빼도 본문만 700페이지가 넘는다)가 좀 위압감을 주긴 하지만,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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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자반 (반양장) 믿음의 글들 129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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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기독교인으로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을 잘 정리해 둔 책이다. 일종의 캐터키즘 해설서라고도 볼 수 있겠다. 우선은 삼위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내용에서 시작해, 성경과 기도, 교회와 예배,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관한 교리를 설명하는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2. 감상평 。。。。。。。                

 

     감정에 중독된 시대. 결국 순간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만 남게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경향은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그 결과가 신학, 특히 조직신학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이다. 흔히 교리를 연구하는 신학으로도 알려진 조직신학을 분열의 원인으로, 또 차가운 지식놀이 쯤으로 여기고 감정의 고양을 성령의 감동으로 착각하는 신앙생활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지극히 충동적인 헌신과 즉응적인 성경해석과 적용으로 인해 신앙생활의 굳건한 뿌리가 사라지자,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 신앙’,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고 하면 이것저것 재보지도 못하고 그저 따라가는 ‘유행 신앙’들이 늘어났고, 그런 신앙태도는 사람들을 결코 신앙적으로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없었다.

 

     적어도 기독교적 의미에서 성숙한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기초적인 부분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갈 때에야 도달할 수 있는 무엇이다. 하지만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실용주의가 신앙생활에도 파고들면서 대형 교회에서 하는 것이면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신 것’이라는 어이없는 판단도 무시 못 할 주장이 되어가는 슬픈 현실에서, 한국 교계에 의미 있는 울림을 주고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이런 교리 해설서를 집필하고, 또 그 책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다.

 

     책은 보수신앙을 담고 있으면서도, 문자 자체에만 치우치지 않는 건전한 성경해석법에 기반해 쓰였다. 여기 담겨 있는 내용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당연히 독자를 재미있게 할 만한 내용도 별로 없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를 어제 봤다고 해서 오늘 그것이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의 빛나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차분히 정리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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