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신 - 저항과 복종 디트리히 본회퍼 대표작 3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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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본회퍼가 반체제 활동(당시는 히틀러의 나치 정부 치하였다)을 했다는 이유로 군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쓴 편지들의 모음집. 책의 초반부는 그의 부모에게 보낸 편지들이고, 중반 이후의 가장 많은 분량은 본회퍼가 그의 한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들이다.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가능한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려는 본회퍼의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그는 감옥에 있는 자신이 잘 지내고 있으며, 책도 제법 읽어 있다면서 보고 싶은 책들의 목록을 적기도 한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내용이지만, 군데군데 기독교회의 본질이나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란 무엇인지와 같은 신학적 사유들의 단상도 적혀 있다.

 

 

2. 감상평 。。。。。。。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 책이 재미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한 사람이 제대로 된 재판과 판결 없이 감옥에 갇힌 채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수감생활을 하며 쓴 편지들을 엮은 책이 재미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물론 책 속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폭격이 일어나고, 최악 중의 최악이었을 나치 독일 치하의 군 교도소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가능한 명랑한 기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애써서 괜찮은 듯 보이는 태도 자체가 안쓰러워 보인다. 책 후반에 실려 있는 어떤 시에서는 본회퍼 자신의 불안한 내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사람들은 그를 대단히 용감하고, 그래서 두려움 따위는 전혀 없이 꿋꿋하게 감옥 안에서 생활하다가 영웅적으로 죽은 인물처럼 생각하기도 하지만, 용감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캄캄한 밤 홀로 잠 못 들며 온갖 생각으로 날을 새우기도 했고, 자신에게 온 편지가 없음을 알고는 낙심하기도 했다(290).

     문제는 두려움이나 불안이 생겨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런 감정들이 생겼을 때 어떻게 싸워나가느냐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갇혀 있던 감옥에서 정신이 무너져 내렸지만, 본회퍼는 그 안에서 수많은 신학적 사유들을 (아마도 머릿속으로) 정리해 냈다. 그의 신학적 사유도 사유지만, 우선은 스스로가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동참(345)’하는 생활을 했던 것만으로도 그의 용기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할 것 같다.

 

 

     사실 단편적인 편지들의 모음집이라, 이 책에서 체계적인 본회퍼의 신학사상을 제대로 이끌어내기는 좀 어렵다. 하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들 중에서 분명히 떠오르는 것은, “현실중심적인 신앙”, 세상의 악과 고통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 기꺼이 문제가 되는 상황을 해결하는 짐을 감당해 내는 모습이다.

 

     ‘행동이라는 이름의 짧은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352)

 

제멋대로 행할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행하며 시도하고,

가능성 속에서 허우적거릴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을 과감히 붙잡아라,

자유는 도망치는 생각 속에 있지 않고 행동 속에만 있음이니

 

      자주 생각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시였다. 그와 같은 용기를 갖지 못한 부끄러움이 책을 덮은 지 만 하루가 된 지금까지 나를 무겁게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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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6-12-0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다시 읽어 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죠

노란가방 2016-12-01 23:25   좋아요 0 | URL
네. 동감합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교회가 이런 본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새로운 일이 시작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saint236 2016-12-01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죠

노란가방 2016-12-01 23:54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책이 있었군요.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 이 땅에서 그분의 교회로 살아가는 길
윌리엄 윌리몬.스탠리 하우어워스 외 지음, 김기철 옮김 / 복있는사람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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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미국 사회의 세속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미국교회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세속주의 신학(여기에는 콘스탄틴주의라고 불리는 신앙과 세속권력 사이의 혼합 신학과, 신앙과 이성의 분열을 초래한 계몽주의 신학이 있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분명 이건 교회로서는 위기다. 하지만 이건 정확히 말하면 잘못된 신학에 기초했던 교회들의 위기다. 오히려 저자들은 이 상황을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교회 본래의 비전을 세울 수 있는 기회로 본다.

      저자들이 생각하는 교회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이 세상의 일정 영역에 세운 개척지(이 책에서는 식민지라고 번역한다). 교회와 세상은 서로 다른 주인을 섬기며, 교회는 카이사르가 아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심을 그 존재 자체로 선포해야 하는 조직이라는 것. 당연히 교회로 산다는 것은, 세상 주류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일종의 모험적인 삶을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저자들은 교회 자체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이 교회가 지닌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라고 말하는 듯하다.(“우리가 제시해야 할 가장 창조적인 사회 전략은 바로 교회다.” 125) 교회는 세속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어느 한쪽 편에 서려고 안달할 것이 아니라, 가장 교회다운 일에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교회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실제로 살아내는 모습을 통해 그러한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유익한지를 보여주고,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줌으로써 그러한 삶이 지속적으로 전수되도록 공헌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탈진해버린 많은 목회자들을 위한 조언을 담고 있다. 내용은 앞서 서술한 것들과 비슷해서, 우선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 공동체인지를 바로 세운 후,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

 

 

2. 감상평 。。。。。。。

     미국의(그리고 서구의) 교회들이 오랫동안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정작 중요한 자신들의 고유한 것들을 스스로 잃어버렸음을 지적하는 저자들의 진단은 날카롭다. 또 교회와 더불어 힘이 소진되어버린 목회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존의 대처방안(문제는 목회자의 심리적인 문제이며, 휴일을 요구하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하는 식으로 해결하라는)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도 아주 분명하게 긁어준다.

     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교회의 본질과 고유한 가치에 집중하려는 저자들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교회는 뭔가를 열심히 해왔는데, 그렇게 열심히 해 온 결과로 교회는 점점 힘과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교회는 잘못된 열심을 내 온 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건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고)

     사실 이런 문제들은 저자들이 학문적으로 입증하는 작업을 하기 이전에도, 이미 우리의 경험을 통해 인식해왔던 것들이니까... 신학교와 교단들부터 돈과 권력에 매달리는 인사들이 잔뜩 달라붙어 전횡을 일삼은 지 오래되었고, 강단은 준비되지 않고 자격 없는 이들의 세속적 강론으로 깊이 오염되었다.

 

 

      저자들의 대안은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내가 이해하기에 이 주장에 담긴 첫 번째 의미는 지나치게 확장되어왔던 교회의 사역들을 좀 정리하고, 이것이 정말 교회의 일인가를 확인하는 성찰의 때를 가지라는 뜻으로 들렸다. 정말로 한동안 교회는 되돌아보는 시간 없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에만 골몰했었다. 이제 잠시 그런 확장을 멈추고 이것이 정말 본질적인 사역인가를 고민해봐야 하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주장이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저자들은 정말로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일종의 모험이 필요함을 바르게 지적한다. 그렇지 않은가. 주류의 성공 공식을 거부하고, 수천 년 전 갑자기 나타난 작은 공동체의 행동방식을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이만저만한 모험적 결단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모든 것은 우리가 자신을, 그리고 이 세상을 무엇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저자들의 말처럼, 우리가 좀 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라고 인식하고, 이 세상은 일종의 무대이며 진짜 세상이 따로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나그네가 아닌 거주민으로 살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독특함은 나그네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붙잡는데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은 나그네가 아닌 (성공한) 거주민으로서 인정받고자 애쓰는 것 같다. 저 높은 분의 인정을 위해 기꺼이 세상의 인정을 포기할 수 있고, 한없이 확장하는 대신 본질에 집중하고, 성공을 위한 지혜 대신 옳은 삶을 위한 지혜를 구하기 시작한다면, 비로소 교회는 다시 교회다워지고, 교회에 약속된 복들을 누릴만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이 약간 퍼져 있어서 핵심 논지를 따라잡는 게 살짝 어려울 수 있지만, 언제라도 교회다움이 흐려졌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한 번 펴봐야 할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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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원 교수의 구약 꿀팁 궁금해 시리즈 1
김구원 지음 / 홍성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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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최근 들어 여기 저기 이름을 자주 올리는 김구원 교수의 새 책. 구약성경을 읽다가 떠오를 수 있는 여러 궁금증들에 대답을 해 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40가지 질문이 담겨 있는데, 몇 가지 질문은 신약 복음서에 나오는 내용(사마리아 여인이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간 이유, 열 므나 비유의 의미는 무엇인가)인지라 이 책의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듯.

 

     ​책이 타겟으로 하는 대상은 신학보다는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인 듯하다. 전반적으로 특별히 어려운 신학적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가벼운 궁금증들을 다룬다.

 

 

2. 감상평 。。。。。。。

 

     최근에 교회에서 책을 추천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권씩 추천도서를 정하는데, 홀수 달에는 신앙도서를, 짝수 달에는 일반도서를 추천한다.(10월엔 요아힘 가우크의 자유를 추천했고, 12월에는 알비 삭스의 블루드레스를 골라두었다) 그래도 한 번 추천하면 당장에 십 수 권 이상의 공동구매 신청이 들어오니 (개별적으로 구입하는 수량은 알 수 없고) 나름 독서문화진흥(?)에 공헌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신앙도서를 고르기 위해 구입한 책인데, 추천도서로까지 선정하기엔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우선 다루고 있는 질문들이 그렇게 중요한 내용들이 아니다. 몇몇 질문들은 흥미로운 부분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 비중이 높지 않다. 게다가 상당수의 대답은 책 뒷표지에 광고한 것처럼 명쾌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저자의 지식과 실력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 그것을 책 속에 제대로 녹여내지 못했다. 이 정도면 여느 목회자들도 충분히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정도 내용으로 꼭 책으로 만들었어야 했을까 싶은 생각이 살짝 든다.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 정도에 올리면 충분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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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스케치 - 2천년 전, 예수가 살던 팔레스타인으로 가다
알프레드 에더스하임 지음, 김기철 옮김 / 복있는사람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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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유대 회당에서 탈무드와 토라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공부했던 저자가, 유대교 문헌에 등장하는 고대(여기서는 주로 1세기 경)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책 제목의 스케치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각각의 사항을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분석하기 보다는, 마치 여행자가 잠시 머물면서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는 듯 묘사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책의 순서는 우선 그 지역의 지리로부터 시작해, 일상생활의 모습, 자녀 양육과 교육, 여성관, , 그리고 종교의 순서로 이어진다.

 

 

2. 감상평 。。。。。。。

 

     이와 유사한 종류의 책들이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서 이 책의 장점을 꼽자면, 우선 저자의 이력이다. 저자 자신이 유대교 회당에서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부인들보다는 내부의 시각을 더 잘 반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책에서 재구성 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그 당시 유대교 문헌들에서 뽑아낸 내용을 재료로 했다는 점도 독특하다. ‘현지의 시각현지의 문헌은 이런 책을 내는 데 아주 중요한 재료다.

 

     이 두 가지 특별한 요소 덕분에, 일반적인 개설서에는 소개되지 않는 다양한 세부적 사실들을 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대인 소년이 다섯 살이 되면 처음으로 배우는 히브리 성경이 레위기라는 점은 이전에 어떤 책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이다. 책 후반의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에 관한 설명은 매우 깊이도 있으면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관점과 설명들도 제법 많이 포함하고 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책 초반 지리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동안, 서술하고 있는 내용을 보여줄 수 있는 좀 더 상세한 지도가 실려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책 전반에 걸쳐 단색 도록들이 많이 있지만, 대개는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그림 정도지, 책의 내용을 보충하거나 설명하는그림은 아니다.

 

    또 책 자체가 쓰인지 100년이 훨씬 넘었기에, 저술 이후의 상황이 좀 더 반영되었더라면 더 흥미진진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정도 저자라면 이후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과 그 이후의 여러 사건들을 전통 유대교적 시각으로 설명해 주었을 테고, 그랬다면 정말 재미있는 책이 되었을 것 같다.

 

 

     두고두고 참고할 내용이 있을 때마다 들춰봐야 할 것 같은 책.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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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교회에게 -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편지
존 R. 스토트 지음, 윤종석 옮김 / 포이에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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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요한계시록의 초반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을 나름의 키워드로 정리한 책. 기본적으로 스토트는 복음주의자답게 이 편지가 예수께서 요한을 통해 당대의 교회들에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본다. 때문에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이 편지들사이에 어떠한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할 수 있었고, 이는 이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편지들을 해석하는 데 주요한 도구가 된다. , 스토트는 요한계시록 초반의 편지들을 해석하기 위해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자유롭게 인용한다. 전반적으로 성경에 의한 성경해석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을 잘 보여준다.

 

 

2. 감상평 。。。。。。。

 

     ​요한계시록은 다양한 상징어들이 사용되어서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래도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해석되는 부분이 초반의 편지들’, 즉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들이다. 물론 그래도 이 교회들이 실제하는 교회인지, 아니면 교회의 이름 자체도 상징이나 표상으로 읽어야 하는지를 두고서 이론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스토트는 좀 더 명료한 쪽인 실제 교회를 향해 보낸 편지라고 본다.

 

     앞서도 설명했지만, 저자는 이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를 각각의 교회에 주가 되는 키워드를 제시함으로써 정리한다. 에베소는 사랑, 서머나는 고난, 버가모는 진리, 두아디라는 거룩함, 사데는 실체, 빌라델비아는 기회, 라오디게아는 전심(全心)이 그것. 물론 오직 그 메시지만 있다고 하면서 억지로 끼워맞추는 식은 아니고..

 

     전체적으로 복음주의적 관점이 잘 드러나는 요한계시록 해석이고, 그래서 크게 벗어남이 없다. 좀 비딱하게 보면 크게 새로운 게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견실함이 두드러진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교회, 이상적인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좋은 교회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뒤틀린 교회들이 많아져버린 오늘날, 다시 한 번 기본을 집어주는 괜찮은 책. 책 곳곳에 실려 있는 컬러도판(주로 편지들에 나오는 도시들 사진이다)이 잠시 눈의 여유를 갖게 해주는 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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