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 없는 크리스천 - 바른 재정적 세계관
김의수 & 데이비드 서 지음 / 두란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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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교회 안에서 돈(재물)과 하나님의 복을 완전히 동일시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시작된다. 사람들과의 갈등이 일어나고, 상처를 받고, 결국 교회를 떠나기까지 하는...(1) 두 명의 저자들은 이런 일들이 하나님을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데서 발생하는 오류라고 본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바꿀 때 해결될 수 있다는 것.(2)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돈의 위협이 강력해지는 여러 순간들(자녀교육, 결혼, 집구입, 노후준비)을 언급하면서, 어떻게 그 지점들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지 간증이 섞인 조언을 덧붙인다.(3)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구체적으로 건전한 재정을 운용할 수 있는 원칙들을 제시하는데, 이 내용은 기독교인은 물론 비기독교인들도 충분히 귀를 기울여 들을 만한 내용이다.

 

 

 

 

2. 감상평 。。。。。。。

 

     처음엔 어떤 내용일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제목만 보고 골라 든 책이다. 하지만 내용을 읽어갈수록 이거 괜찮은 물건이구나하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었다. 일단 이 책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에게 복을 받아서(돈을 많이 벌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지를 써 놓은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교회 안에 횡횡하는 비성경적 재물관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서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렇다고 해서 날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책은 저자 두 사람의 경험을, 그것도 실수까지도 공개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올바로 집중하게 한다. 부와 재물에 관해 지나치게 민감해져서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달아오르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반복해 강조한다.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기도만 하면 다 잘 될 것이라는 식의 나태한 낙관주의에 빠지라는 것은 아니다. 책의 후반에는 아주 구체적인 건전재정원칙을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저자의 직업이 재무상담사가 아닌가. 저자의 실제적인 지적과 조언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기도 했다.

 

 

     ​책 전반에 걸쳐서 저자가 수차례 재구성하는 일화들이 인상적이다. 종종 얼토당토않은 세속적 주장을 신앙으로 꾸며대는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과장되고 무리한 언행들이 전혀 거짓 같지 않다는 게 더욱 낯이 뜨거워진다.

     ​사실 그동안 교회는 재정이라는 부분에 관해서 제대로 된접근방식을 가르쳐주지 못했던 것 같다. 막연히 이라는 관점에서 돈을 설명하다 보니, 그것이 가진 속성이나 어떻게 그것을 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어차피 그것이 복이라면 어떻게 사용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교회는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돈이 교회의(그리고 기독교인들의) 복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기독교인도 돈에 관한 제대로 된 인식을 해야 한다. 우선은 돈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바르게 운용할 수 있는 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이 책은 이런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좋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관련 내용으로 충분히 추천해 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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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자 그리스도 -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종결성에 관한 강의
레슬리 뉴비긴 지음 / 도서출판100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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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그리스도의 종결성이란, 우선적으로 인류의 여러 종교전통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갖는 독특하고 최종적인 권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예수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

     기독교인 사이에서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이 주장은, 선교적 상황에 놓여 있는 교회와 선교사들, 즉 누군가에게 이 개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좀처럼 쉽지 않은 개념이다. 몇 차례의 세계선교대회를 통해서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제시되었다. 하나는 그리스도가 모든 종교의 성취이며, 타종교의 고결한 요소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리킨다는 입장(에든버러 대회, 1910)이고, 다른 하나는 타종교 안에도 진리의 일부로서의 영적 요소가 있음을 좀 더 강하게 주장하는 입장(예루살렘 대회, 1928)이 그것.

 

 

      저자는 그리스도의 종결성을 이런 좀 다른 측면에서 정의한다. 그것은 기독교라는 특정한 종교가 포함하고 있는 양식의 최종적 권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이끌어 내는 관점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만물의 의미와 기원과 종말을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은 모든 인류에게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기에 종결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개념의 문제’, 혹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종결자라면 그것은 반드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개종의 문제가 조심스럽게 등장한다. 성령으로부터 시작된 이 새로운 인식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깨달은 이를 그리스도의 이름을 맡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2. 감상평 。。。。。。。

     결국 그리스도의 종결성이라는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타종교를 갖고 있거나 종교를 갖지 않은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관한 주제다. 소위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는 특정한 종교의 유일성, 최종적 성격, 종결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일로 여겨지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드러내고 나아가 주장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책을 손에 들었다. 여기엔 다분히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이름값에 상응하는 기대도 있었고.

     책 초반 저자는 이 주제에 관한 이제까지의 논의를 비평하면서 명쾌하게 정리한다. 타종교인들의 신념과 믿음을 기독교인들이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모든 믿음을 기독교로 수렴시키려는 태도가 가진 억지스러운 면과, 완전히 무시하려는 고집스러움이라는 문제가 뉴비긴의 문장을 통해 금세 드러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흥미롭게도 뉴비긴은 종결성이라는 주제를 접근하는 시작점을 좀 다른 곳에서 찾음으로써 이 주제를 풀어나갈 길을 찾는다. 타종교와의 관계성은 물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접근이라는 것.

 

     ​그는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구별하려는 시도의 무용성을 지적하면서, 그 둘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아가 사실에서 의미가 나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고, 이런 차원에서 그리스도는 종결자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여기에서 복음전도의 타당성/유효성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저자는 이 과정에서 겸손함을 매우 강조한다. 회심/개종은 전적으로 성령의역사이지 기존 교회의 자기영역확장이 아니다. 나아가 우리는 종말적 상황에 관해 결코 완전히 알 수가 없다. 분명 그리스도는 종결자이시다. 그러나 그것은 타종교를 열등하거나 완전히 무익한 것으로 돌리는 차원에서 주장될 것이 아니다.

 

      작은 책이지만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번역도 좀 어렵게 된 것 같고. 하지만 일단 전체적인 맥을 짚고 나면, 과연 레슬리 뉴비긴이다 싶다. 책 말미의 겸손함에 대한 강조가 인상적이다. 어떤 것의 최종적 성격을 강조하면서도 겸손을 잃지 않아야 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섬세한 작업은 여느 글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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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위한 교회, 세이비어 이야기 IVP 모던 클래식스 14
엘리자베스 오코너 지음, 전의우 옮김 / IVP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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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세이비어 교회 사역에 비교적 초기부터 참여해 온 저자가,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에 대해 설명하는 책을 냈다. 우리나라에는 2016년에 번역되어 나왔지만, 책 자체가 나온 지는 아주 오래 되었다.(1968) 세이비어 교회가 창립된 것이 1947년이고, 저자가 세이비어 교회를 방문한 것이 1952년이니, 말 그대로 내부자의 시각으로 교회의 사역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주인공.

 

     ​책은 크게 두 부분(1~3, 4~10)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반부는 세이비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인 내적 여정에 관한 설명이고, 후반부는 그와 대비되는 외적 여정, 즉 세이비어 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사역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2. 감상평 。。。。。。。

     흔히 세이비어 교회 하면 우선 150여 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교회가 감당하고 있다고 하기엔 너무나 활발한 사역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의 후반부에 그 일부 사역들이 설명되고 있는데, 기금을 모아 낡은 주택을 구입해 수리한 후 집이 없는 저소득층에게 나누어주는 사역(복구지원팀), 커피숍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포터스하우스), 빈민가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역(언약 공동체), 주니어 빌리지(시에서 운영하는 아동복지시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아이사랑선교회 등등.

     하지만 저자는 책의 시작을 오히려 세이비어 교회가 어떻게 교인들로 하여금 믿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지, 즉 내적 여정을 설명하는 데 책의 첫 머리를 할애한다. 책 속의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도시를 바꿀 계획은 있으나 정작 자신을 바꿀 계획은 없는 사회 개혁가들과 공동체 지도자들은, 경건하다지만 세속에 물든 자들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구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확실히 이런 구조는 옳다.

 

 

     ​세이비어 교회에 관한 이야기는 이 번 책이 두 번째다. 10년 전 쯤 우리나라 저자가 쓴 책(유기성, 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교회)이 한 권 더 있었다.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에 관한 소개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두 책이 비슷하지만, 유기성의 책이 사역 자체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그리고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간 문장들 때문에 좀 읽기에 불편했다면), 이 책의 경우는 각각의 사역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내부적인 논의와 고민들이 있었는지를 담아내는 데 더 힘을 쓰고 있다.(확실히 내부자만의 시각이다.) 또 한 가지 차이는 이 책이 좀 더 일찍 쓰여서, 소개되고 있는 사역의 종류가 좀 덜 다양하다는 점.(그 후에도 점점 이 작은 교회의 사역은 늘어갔다는 말) 목적에 따라 적당히 골라 읽으면 될 것 같다.

     책 말미에 세이비어 교회 관계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열었던 한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여러 사람들이 집중했던 것은 그 교회가 하고 있는 그 많은 사역들에 들어갈 재원을 어떻게 충당되고 있는지 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담당자는 그런 질문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고. 중요한 문제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이지, 무슨 돈으로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각 교단별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당 건물을 여러 개 갖고 있다는 한국 교회의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장명인 듯해서 부끄러웠다.

 

     ​그와는 반대로 이 책 전반에 걸쳐 참된 교회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여러 노력들이 보여서 뿌듯했다. 책 안에 이런 예측이 들어 있다.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교회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을 넘어 그들이 고통 받는 그 자리에 있게 될 것이라는. 물론 여기에서 ‘20년 후, 책이 쓰였던 당시부터니까 지금은 거의 50년이 지났다. 우리의 교회는 과연 사람들이 고통 받는 그 자리에 있는 걸까.

 

 

     ​다만 아쉬운 걸 꼽자면, 문체나 구조가 깔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책 초반부에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하다가 갑자기 끝나버리는 감도 있고. 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지만, 이 책 자체가 잘 쓰였다고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책 자체의 작품적 완결성보다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의 덕을 더 많이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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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공동생활 디트리히 본회퍼 대표작 1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정현숙 옮김 / 복있는사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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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적으로 공동체로서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이유로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회퍼는 이런 상황이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예수는 원수들 한 복판에서 사시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무엇보다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성도들이 하나 됨을 이루며 사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복 중 하나라는 점이다.(1)


      성도들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기도는 필수적이다. 우리는 우리 자체로 서로를 온전히 품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히 시편의 다양한 공동체의 기도를 본을 삼으라고 권한다. 물론 여기에 말씀(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공동의 찬송도 빠질 수 없는 요소고.(2)

      흥미로운 것은, 함께이기 위해서 홀로될 줄 알아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이다.(3) 하나님 앞에(이 책에서는 주로 그분의 말씀 앞에 서는 것과 동일시된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


      이외에도 공동체 속에 뿌리내리는 한 방법으로서의 섬김’(4)과 공동체 안에서의 죄 고백과 이를 받아주는 일의 중요성(5) 등이 담겨 있다.

 

 

2. 감상평 。。。。。。。

     이 책에 앞서 읽었던 옥중서신이 그 유명함에 비해서 생각만큼 내용이 인상적이지 않았었다. 감옥 안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있었던 저자와 책을 읽는 지금 나의 상황 사이에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저자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상황에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어떻게든 명랑해지려고 했던 그의 글을 보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 어찌되었든, 쉽게 공감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만은 분명.


      그에 비해 저자가 수감생활을 하기 이전, 좀 더 안정적인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교회의 교우들과 함께 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이 책은 훨씬 더 쉽게 와 닿는다. 저자가 가정하고 있는 상황과 환경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그가 탐구하고 있는 인간의 성품에 대한 통찰이 너무 생생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그리 큰 기대감 없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지만, 얼마 안 가서 빠져들고 말았다. 쉴 새 없이 인상적인 문구들을 체크하면서.

 

 

      공동생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그냥 같이 모이고 만나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적 결속이 이루어지는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상황에서는 좀처럼 공동체를 경험한다는 것이 더욱 쉽지 않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버릴 일은 물론 아니다. 교회가 공동체성을 잃어버리면, 그냥 한낱 집단으로 전락해버리게 되고, 그러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 힘은 그대로 잃어버리고 말 테니까.

      한 문장, 한 문장이 참 묵직하다. 날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깊은 애정이 배어있는 글에서는 깊이가 느껴진다. 교회의 공동체성이 참 많이 약화되어버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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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옥성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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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한국 초기 기독교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던 저자가, 이 시기 한국 교회의 역사와 관련된 잘못된 통설들을 바로잡고, 당시 기독교회의 실체적 성격을 설명하는 책을 썼다.

     책은 크게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백낙준과 민경배의 교회사관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2부에서는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에 관한 여러 오해들을, 3부에서는 초기 한국 교회들에 관한 오해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담아낸다. 4부 당시로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한국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여러 예배(송구영신예배,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 등)의 모습들의 기원과 모습에 관해, 마지가 5부에서는 당시 한국 기독교계 안에서 이뤄졌던 몇 가지 논쟁들을 담고 있다.

 

2. 감상평 。。。。。。。

     (물론 그 뿌리는 아시아에서 시작된 운동이지만) 우리에게 기독교는 서양에서 전래되어 온 종교이다. 최근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경교(네스토리우스교)를 한반도 기독교 전래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보이지만, 일단 그건 현재의 한국 교회와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흔히 교회사하면 유럽 중심의 서양교회사가 주류다. 그러나 한국에 교회가 정착한지 100년이 넘은 상황에서 여전히 서양의 이야기만 줄줄 외우고 읊는 건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지난 100년 간 참 다양한 일들이 한국 교회 안에 있었고, 그 안에는 부정적인 내용들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자산들도 적지 않다. 다만 이런 종류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는 비신자들은 별 관심이 없고, 신자들의 경우 일종의 헌정된 역사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 종종 충분한 증거 없이 미화되는 측면이 많았던 게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오류들을 증거에 입각해 교정하고,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역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좋은 시도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들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13장에서 다루는 남대문 교회의 기원은 현재 남대문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1885년이 아니라 1909년이라는 주장은, 무조건 오래된 것이 좋다는 식의 의식을 갖고 있다면 기분이 꽤나 상하는 내용일 것이다. 흔히 언더우드의 기도로 알려진 기도문이 실은 소설 속에만 나오는 작가의 상상물일 뿐이라는 설명(8), 사무엘 마페트 선교사의 턱에 큰 상처를 냈던 깡패 이기풍이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에 약간의 윤색이 있었음을(이기풍은 깡패가 아니라 조선 관원이었던 듯하고, 직접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 지적하는 내용(10) 역시 김이 새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사실에 기초해 은혜 받는 일이 어디 제대로 된 일일까? 사료에 근거해 재구성해가는 한국 초기 기독교사의 이야기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리는 대신,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보화를 발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어떤 과정으로 공부에 전념했었는지, 조선 땅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의 노력이 어떠했는지(그들이 교리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했는지), 특히 선천 지역의 기독교 성장은 한국 기독교가 서양 선교사 중심의 타율적 조직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성장과 발전과정을 거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다만 책 초반에 실려 있는 두 초기 한국기독교회사가(백낙준, 민경배)에 대한 비판은 좀 더 상세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스승의 성과물을 비판하는 것이 거의 드문 한국의 학계 분위기에서, 이들의 초기 선구자적 연구결과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이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은 일단 너무 적고,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이 거기에 중심을 둔 게 아니긴 하지만, 그러면 굳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 부분을 맨 앞에 배치해 둘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과 관련한 연구서가 따로 출판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일단 사관(史觀)’이 중요한 법이니까.

 

 

     무작정 미화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함으로써 후세에게 교훈과 경계를 남기는 것. 역사 서술의 중요한 목적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초기에 국한된 연구이긴 하지만, 한국 교회사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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