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쉽게 배우는 성경 속 히브리어
이문범 지음 / 두란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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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히브리어의 기초를 배울 수 있는 교본. 히브리어 알파벳과 모음기호로 첫 발을 내딛은 후, 동사와 명사의 어미변화를 통한 각종 품사들에 대해 배운다. 그렇게 히브리어 문법의 기초를 뗀 후, 저자는 구약성서의 각 장르에서 대표적인 구절들을 뽑아 히브리 문장의 감을 익히게 도와준다. 중간 중간 QR코드를 이용해 직접 발음을 들을 수 있는 동영상으로 연결시켜두기도 했다.

 

2. 감상평 。。。。。。。

     ‘혼자서도 쉽게 배우는이라는 책 제목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와 구입을 했다. 성서를 좀 더 깊게 읽어보고 싶다면, 결국 히브리어, 그리스어 같은 원어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을 테니까. 책머리에 히브리어는 울면서 들어가서 웃으며 나오는 언어니 너무 걱정말라는 저자의 격려가 인상적이다. 정말 그렇게 웃으며 나올 수 있을까?

     사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대개 비슷하다. 그 언어에 익숙해져야 하고, 문법적 사항을 숙지하고, 단어를 외우고 하는... 이 책 역시 히브리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책답게, 이런 기본적인 부분을 먼저 다루고 넘어간다. 꼭 외워두어야 하는 것들은, 꼼짝 없이 외워야 한다. 책을 그냥 읽고 넘어가면 금방이겠지만, 제대로 익혀보려고 한다면 시간을 좀 더 들여서 잘 숙지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

 

      그런데 우선은 배우려는 언어에 대한 저항감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학창시절 영어와 프랑스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외국어에 대한 저항감 때문에 고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앞서 말한 것처럼 QR코드를 통해 노래와 발음을 직접 익혀갈 수 있는 장치를 더했다. ,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면서 좀 더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책 속의 신학적 설명은 약간 아쉽다. 창세기 1장의 엘로힘우리’, 그리고 단수동사를 가지고 삼위일체를 도출해 내려는 시도와 몇 장 뒤 장엄복수형에 관한 언급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히브리어를 가볍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데는 좋을 듯.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면 또 다른 책을 찾으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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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해부 - '앎'을 위한 팩트체크 옥성호의 성경 직독직해 시리즈 1
옥성호 지음 / 테리토스(Teritos)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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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책의 초반부 기도로 폐병을 고쳤다고 확신한 채 촉망받는 물리학자의 삶을 포기하고 신학으로 돌아선 한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애초의 진단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그가 쓸쓸하게 걸어간다는 내용으로 마치는 이 이야기는, 그가 신앙으로 자기합리화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저자의 거의 사실화된 강력한 추측으로 이어진다.(이 책에선 매번 이런 식이다. 자신의 추측이 곧 사실이다.)

     처음의 예와 거의 반복되는 또 하나의 사례(이번에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를 든 후, 저자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자신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이라는 것. 이를 위해 심지어 아담의 역사성까지 믿고 있다는 식으로 (다분히 깐족대는 어조로) 자신의 보수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건 다음 내용을 전개하기 위한 밑밥이었다.

 

     ​본론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자신이 볼 때, 성경 속 하나님의 모습은 차마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의 원시적이고, 무능력하며, 과격하고, 잔인한 신이며, 나아가 성경 속 각종 명령과 규례들은 온갖 모순을 안고 있으며,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전근대적 법령들이라는 것. 이를 위해 저자가 분석하는(이 책의 제목을 따르면 해부하는’) 대상은 놀랍게도 십계명이다.

 

  

2. 감상평 。。。。。。。

     먼저 책 서두에 나오는 한 전직 물리학도의 실감나는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전하는 사람들은 일어난 사건을 단순히 옮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맛대로 더하거나 빼기 마련이다. 더구나 저자가 전한 이야기는 그 자신의 생각으로 마무리 되고 있고, 또 마지막을 최대한 허탈하게 만들기 위한 구성도 엿보인다. 설사 그가 한 설명이 사실이 근접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속 주인공이 젊은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물리학자가 되었을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런 그의 삶에 대한 평가를 단순히 속은 것이라고 평가하는 저자의 판단은 무엇에 근거한 걸까? 또 그는 신앙에 의해 속임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가 물리학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주변의 기독교인들의) 강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다분히 이 이야기를 가지고 전통적인 신앙인들을 조롱하거나, 그들의 신앙생활 모습을 못 미더운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이런 식의 개별적(귀납적) 경험사례를 가지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실히 판단내릴 수 없다는 건 논리학의 기본적인 원칙이 아닌가.

 

     저자가 십계명의 조목들을 해부하는모습도 썩 능숙해 보이지는 않는다. 저자가 이 과정에서 참고한 것은 대체로 자유주의적 관점을 지닌 신학자들의 의견일 뿐이고, 각각의 판단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신학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잠재적인 것일 뿐인데, 저자는 지나치게 자신의 판단을(정확히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자유주의적 신학방법론을) 확신하고 있다.

 

     ​예컨대 왕하 3장의 모압전투 가운데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히브리어 원문은 주어를 아예 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만을 보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없다. 본문에서 저자는 그것을 신의 분노라고 읽지만, 꼭 그렇게 읽어야 할 것은 아니다. 모압 비문에서야 그것을 자신의 신학에 입각해 해석해놓았지만, 그 비석이 성경기록을 해석하는 키는 아니다.

     [엘 엘룐][엘로힘]을 두고 저자가 그리는 신관의 발전에 대한 이미지(다신교일신교유일신교)는 애초에 문학적 수사법 안에서 두 단어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히브리 수사법에서 대구, 반복 등은 매우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고, 각각의 단어들이 꼭 다른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전반적으로 이 책 속에서는 이런 식으로 수사적 표현과 논리적 정합성을 다투는 문장 사이의 혼동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물론 저자가 선택하고 있는 문자주의적 자유주의(?)’ 신학은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물론 저자가 책 속에서 지적하고 있는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발견되는 이중적인 모습들, 말과 행동의 불일치, 작은 부분에 집착하면서 더 큰 기회와 관계를 포기하는 좁은 시야 등은 분명 곱씹어 들을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심지어 여호와가 인신제사를 좋아하는 신이라는 식의 주장까지도 거침없이 하는 걸 보며(이 부분에서 저자는 레 27장의 속전 개념, 3장의 레위인 대속 개념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메스를 들고 진리의 배를 가를 수 있는 능력은 있는 건지 싶다. 저자는 마치 자신이 성경 속 신앙인들로부터 바로 나온 것처럼 여기는 듯하지만, 그가 책 속에서 비웃고 있는 수많은 무명의, 그리고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신실하게 살려고 애썼던 신앙의 선배들 덕택에 지금 그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생각지 못하는 것 같다.

 

     ​칼을 들고 다짜고짜 배를 가른다고 다 수술은 아니다. (, 저자는 수술이 아니라 해부라고 했으니 상관이 없는 걸까.) 해부용 메스는 휘두르는 게 아니라 조심스럽게 관련된 부분에만 그어야 한다. 하물며 의학적 목적으로 기증된 시신을 대할 때도 난도질을 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할 때는 좀 더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추는 게 기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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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존 D. 커리드 지음, 이옥용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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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고고학의 발전으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표현들, 이야기들과 유사한 인근 문명의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서의 기록이 그런 인근 지역의 신화들에서 파생된, 혹은 표절된 아류기록이라고 본다는 것. (이 책에 의하면 심지어 후대에 기록된 인근 기록이 이전에 기록된 성서의 기록의 원조라고까지..)

 

     이 책의 저자는 좀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본다. 물론 성서의 기록자들이 인근의 신화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들의 기록에 인근 문화의 요소들이 일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엔 분명한 목적이 있었는데, 그건 성서 기록자들의 기록들과 인근 기록들의 차이점에서 발견된다.

 

     저자는 성서의 기록자들이 의도적으로 외부의 이야기와 표현들을 가져왔으며, 이는 성서의 하나님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성서 이야기 안에서 이방의 신들은 의도적으로 약화되어 있고, 인근 문화에서 그들의 신에게 돌려지던 능력과 영광은 성경 속에서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른바 논쟁신학적 목적이라는 것.

 

     책의 주요 내용의 대부분은 이른바 창조 이야기부터 홍수 기사, 요셉,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 등 다양한 이야기 등을 통해 논쟁신학이 어떤 식으로 실제 전개되는지를 보여준다.

 

 

2. 감상평 。。。。。。。

 

     흥미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성서와 인근 고대 문명의 신화, 기록들 사이의 유사성을 두고 주로 성경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던 논의에, 일종의 전환지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양측의 공통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점에서 특별함을 찾으려 하고 있고, 이는 막연히 사상의 진화론적 전제를 고수하면서 별다른 증거도 없이 하나가 다른 하나로 변했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좀 더 학문적으로 보인다.

 

     다만 책이 뭘 말하려는지 주제 파악은 일찌감치 끝났는데, 정작 본문에 들어가서도 앞서의 설명했던 주제를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물론 앞서의 주장을 실제 본문들 가운데서 입증하기 위해 예를 제시하는 부분이기에, 주제의 반복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면, 주제의 발전을 보여주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 만한 내용의 확장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 꼭 완성적일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그렇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이방의 신화가 이스라엘의 사실이 되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덧. 번역은 대체로 괜찮게 되었는데 88페이지 표의 가장 마지막 단의 표현이 거슬린다. “야웨가 노아를 축복한다는 문장인데, ‘축복복을 빈다는 뜻이다. 비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소원을 듣고 복을 내려주는 존재가 필요하고. 그렇다면 야웨가 그보다 더 높은 존재에게 복을 빌어서 노아에게 내리도록 한다는 뜻인데, 이건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던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표현이다. 영어의 bless를 번역할 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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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편견
랜돌프 리처즈.브랜든 오브라이언 지음, 홍병룡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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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아무런 편견 없이 중립적으로 읽을 수 없다. 자신이 타고난 문화와 역사, 지리와 환경으로부터 온 온갖 관점들이 성경을 읽는 우리의 눈에 안경이 되어 영향을 끼친다. 이 책은 바로 그 부분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결코 맨눈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편견들은 다양하다. 관습과 인종, 언어, 개인 문화 대 집단문화, 명예-수치 관념 대 옳고 그름, 시간의 흐름에 대한 다른 감각, 규칙을 지키는 것과 관계를 세워가는 것 사이의 중요도 문제, 미덕과 악덕에 대한 다른 기준, 자기 중심적 읽기 등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이것들을 수면 위’, ‘수면 바로 아래’, ‘수면 아래 깊숙한 곳이라는 소제목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알아채기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를 배열한다.

 

     결론부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런 문화적 편견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지에 관한 몇 가지 조언들이 덧붙여져 있다. (물론 이 내용은 각 챕터마다 이미 길게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2. 감상평 。。。。。。。

 

     기독교의 시작은 동양의(정확히는 동방) 한 작은 도시에서부터였다. 오랫동안 신학의 중심지 역시 소아시아를 비롯한 동방이었다. 하지만 중세가 되면서 동방은 이슬람교의 무대로 변했고, 자연히 신학의 중심지도 서방으로 옮겨갔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신학은 서방 중심, 나아가 서양 중심으로 연구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신학연구의 방법은 물론 목적과 방향까지도 서양인들의 사고를 따라서, 그들의 문화와 역사와 환경의 영향력 아래서 이루어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기독교가 서양인들의 종교였을 동안에야 딱히 불편함이 없었을지 모르지만(물론 이건 틀리지 않았다는 말과는 다르다), 신의 미래라는 훌륭한 연구서에서 저자인 필립 젠킨스가 말한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는 서구사회 이외의 지역에서 훨씬 더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양 중심의 신학적 사고, 성경의 이해 역시 도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책의 공저자 중 하나인 랜돌프 리처즈는 이런 지역적 편견에 근거한 성경읽기에 대한 도전을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인도네시아에서 8년 동안 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런 좋은 책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모두가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자신의 편견을 편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으니까. 여러모로 이 책의 기획과 내용은 저자 자신의 특징과 성품이 많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책은 성경을 대하면서 흔히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편견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물론 목차에 나온 순서가 이 문제들이 우리의 내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전체적으로 읽기기 편한데, 그건 경험에서 나온 적절한 실제 예가 자주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가 직접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한 예들은, 그 당시 당황했을 저자의 심정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다

 

     한국교회는 분명 아시아의 한 부분이지만, 그 시작부터 미국교회의 영향을 깊이 받아왔다.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서양적 편견을 상당부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종종 보수성을 자랑하는 일부 기독교 단체가 성조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물론 동시에 동양적 정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기에 또 어떤 부분에서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서양적) 편견도 있었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묘한 재미가 느껴진다.

 

 

     결국 기독교는 성경 중심의 종교다. 그렇다면 성경을 제대로읽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게다. 그런데 종교적 권위라는 것은 사람들을 쉽게 독선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자신의 관점과 해석이 모든 것을 꿰뚫는 절대적인 진리인 양 주장하고 나서는 것.(대개 이단이라는 단체들이 그런 식이다)

 

     내가 아는 것, 내가 이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식이 없이 성경을 읽으면, 그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도 망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도구가 된다. 때문에 무엇보다 성경을 읽으며 겸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교훈도 이것이 아닐까 싶다.(물론 세세한 지적들도 그냥 넘기지 말자.)

 

     성경을 아예 처음 읽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읽어보았고, 좀 더 깊이 읽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 책 말미에 붙어 있는 미주는 본문을 읽으면서 그냥 넘어가기엔 아까울 정도로 꽤나 알차다. 바로 앞 추천도서 목록도 마찬가지다.

 

     2. 홍병룡 선생님의 좋은 번역에 늘 감사하고 있다. 다만 고대 로마 인물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쓰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것도 바로 윗줄에는 라틴어식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220페이지에는 옥타비우스 아우구스투스와 싸운 앤소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앤쏘니는 '안토니우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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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아이 (양장) -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홍종락 옮김 / IVP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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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이 시대 영미권에서 교회에 관한 탁월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쓴 자서전이다.

 

     텍사스에서 조적공(벽돌을 쌓는 건축노동자)이었던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스탠리는 자신도 아버지와 친척들의 직업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조적공의 일을 어느 정도 배우고 해 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건축현장이 아닌 학문계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결국 대학에서의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우어워스의 평생을 둔 관심 중 하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었다. 애초의 남부 특유의 감리교적 전통 아래서 교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신이 정말로 신앙을 갖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을 했던 것. 그는 가톨릭, 메노나이트, 복음주의 교파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동료와 분위기 아래서 일해 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을 찾아가게 된다.

 

     또 한 가지 관심사는 윤리학이었다. 사실 하우어워스는 윤리신학자라기 보다는, 신학적 (소양이 깊은) 윤리학자라고 불리기를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기독교 윤리학이 필연적으로 세상의 실제적 문제들을 다뤄야 하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과감한 평화주의를 채택했던 그는, 반전운동이나 인종차별 철폐, 성차별 거부에 (평화주의적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는 보수적인 이들로부터 미움을 사는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책에는 하우어워스가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은 수많은 사람들(그리고 수많은 책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정말로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아내 앤의 이야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현된 그녀의 정신질환은 하우어워스가 거의 평생을 지고 가야했던 십자가였다.

 

 

 

 

2. 감상평 。。。。。。。

 

     한 사람의 일생을 보거나 읽는다는 건, 어떤 형태로든 감동을 준다. 특히 그 기록이 억지로 잘 보이려고 꾸며대거나,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변명으로 일관된 형편없는 책과 거리가 멀다면 더더욱.

 

     하우어워스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을 솔직하게 내어 보이고 있다.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매순간 열성적으로, 그리고 진실하게 살기 위해 애써왔던 한 사람의 삶은 자연스럽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특히 진리를 향한 그의 오랜 탐구의 여정들, 지적인 면과 삶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신의를 지치기 위해 애써왔던 모습 등이 인상적이다.

 

 

     평생을 배우고, 새로운 것에 열려 있는 인물은 많지 않다. 자기의 것을 완고하게 고수하면서 그 자리에 머물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특히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 주장했던 것에 교조적으로 매달리거나, 어느 순간 고민 없이 반복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우어워스는 좀 다르다. 그에게서는 자주 새로움이 느껴지는데, 아마도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향한 탐구를 그치지 않았던 삶의 태도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넘어가는 대신 끝까지 문제를 파고들어가려 했던 성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류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지적으로나, 말과 삶의 일관성에 있어서) 정직하고자 했던 이의 삶에선 참 배울 점이 많다.

 

 

     책 속엔 하우어워스와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상당수는 학자들)과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책들의 목록이 잔뜩 등장한다. 덕분에 두께가 제법 두툼해졌지만, 이 부분 또한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좋은 참고 목록이 될 듯하다. 본격적으로 하우어워스의 작품세계에 발을 내딛으려고 한다면 꼭 딛고 넘어가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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