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
톰 라이트 지음, 김재영 옮김 / IVP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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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정의에 대한 욕구로 시작해, ‘관계’, ‘아름다움같은 주제로 논의를 이어간다. 인간에게 이런 요소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 세계의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일종의 메아리 같은 것이며, 그 소리가 울려나오는 근원을 찾아갈 때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다.(1, “순전한 기독교에서의 C. S. 루이스의 도입과도 유사하다)

     기독교는 그 대답으로 어떤 이론적 틀보다는 일종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바로 기독교의 이야기, 혹은 성경의 이야기가 그것. 저자는 자연스럽게 구약과 신약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구속의 이야기로 넘어간다.(2)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그는 당연히 예배라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기도와 성경을 읽는 삶, 교회로 모이는 것, 나아가 하늘과 땅이 만나는 비전을 품고 세상을 그에 어울리는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 역시, 그분을 알 때(만날 때) 가능해진다.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란 바로 이런 비전을 바탕으로 새창조에 참여하는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2. 감상평 。。。。。。。

 

     책의 판형이 좀 작다. 그런데 책 두께는 얇지 않다. 여기에 면의 여백도 좁다. 한 마디로 말해, 적지 않은 내용을 타이트하게 꽉 채워낸 느낌. 그런데 단지 글자의 배치만이 아니라 책의 내용도 그렇다. 오랫동안 우려낸 고기국물처럼 짙은맛이 느껴지는 글이다.

     저자는 예배, 기도, 성경읽기 같은, 어떻게 보면 관행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 신앙의 각 요소들에 담긴 깊은 의미들을 잘 풀어낸다. 이 개념들을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하나님 나라 개념 아래 효과적으로 종합해 내고 있다. 큰 그림에서도, 각론에서도 묵직한 책.

 

     ​우리말 번역 책 제목은 기독교 여행이지만, 원제목은 'Simply Christian'이다. 둘 다 이 책이 어려운 신학책 보다는 신앙서적에 가깝다는 점을 어필하는 듯하다. 하지만 물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개념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면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하지만,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논지들은 가볍게 읽기에는 좀 무리지 않을까 싶다.

     책의 전개 방식에서도, 저자는 일단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혹은 받아들이겠다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전제(前提)주의적 입장을 취하는데, 이 부분에 불만을 품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반 틸의 주장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어차피 자연주의적 입장을 가진 이들 역시 그런 전제를 강요한 채 이론을 펼치고 있으니 피장파장이긴 하다.

 

 

     ​이런 종류의 책읽기에 익숙하다면 추천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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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정말 제네바의 학살자인가? - 칼뱅이 제네바의 독재자이자 학살자였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팩트 체크 시리즈 1
정요한 지음 / 세움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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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이 책은 종교개혁자 칼뱅에 대한 널리 알려진 오해를 반박하기 위해 쓰였다. 그 오해라는 것은, 칼뱅이 제네바를 신정국가로 만들려고 했고, 그 자신이 최고 지배자의 자리에 올라 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때로 처벌하거나 죽이기까지 했던 잔혹한 인물이라는 내용이다.

     저자의 반론요지는 이렇다. 우선 칼뱅 학살자설에 관한 증거가 없다. 흔히들 인용하는 자료라는 것들의 출처가 불분명하고, 직접 주장했던 사람들은 대개 수백 년 후의 평론가들이거나 심지어 소설가일 뿐이다.(예외적 경우 증언자의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 둘째로 칼뱅은 제네바 체류 기간 내내 거의 이민자 신분이었고, 공직에 오를 수도 없었다. 셋째, 제네바의 정치상황은 모두가 친칼뱅적이지 않았고, 상당기간 제네바 의회는 제네바 교회와 긴장관계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당시 제네바 교회가 갖고 있었던 징계 권한은 육체적 처벌이 아닌 수찬정지(출교도 아니고!)였을 뿐이라는 것.

 

 

2. 감상평 。。。。。。。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는 동시대 사건에 대한 평가와는 좀 다르다. 특히 수백 년 전의 사람들은 다른 체제와 사고, 세계관 안에서 살아갔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가 지났더라도 바뀔 수 없는 기준이라는 것도 있다. 예컨대 사람의 생명을 대하는 방식이라든지. 칼뱅 학살자설은 그래서 꽤나 강력한 비판이다. 정말로 그가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기를 즐기던 사람이라면, 그의 신학에는 오늘날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칼뱅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끌만한 내용을 갖고 있다. 칼뱅 학살자설이 거짓 선전에 근거한 주장이라면?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도 없고(출처를 찾아가보면 실제로는 그런 문서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비판자들이 책 제목의 오타까지 수정하지 않고(혹은 못하고) 반복적으로 인용하고 있다면?(이건 비판자들이 원전도 확인하지 않은 채, 자기 입맛에 맞는 주장들을 반복 재생산했을 뿐임을 보여준다.)

     마치 선거철 상대 후보에 대한 마타도어를 하듯, 비판자들은 조작된 증거에 근거해 자기강화주장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번 그렇게 자기강화의 수렁에 빠진 사람들이 이 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할지, 아니 찾아보기나 할지 모르겠다. 칼뱅을 향한 중상을 확실히 논리적으로 잘 반박해 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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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목사가 목사에게
옥한흠 지음 / 은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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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사랑의 교회를 개척해서 제자훈련을 바탕으로 큰 성장을 이룬 옥한흠 목사가 생전에 전임교역자 회의에서 나누었던 말씀과 충고, 또 교역자 수양회를 통해 전한 메시지 등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편의상 책에는 옥한흠이라는 이름이 저자로 나와 있지만, 애초에 이 내용들은 책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일종의 녹취록.

     기본적으로 공예배에서 교인들을 위해 준비했던 내용이 아니고, 또 다른 교회도 아닌 본 교회 부교역자들을 대상으로 한 메시지인지라 그 내용이 훨씬 직설적이고, 시의성이 강하다. 하지만 선배 목회자가 후배 목회자에게 애정을 담아 하는 조언이라고 보면, 꼭 그 당시,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내용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의 부마다 담긴 내용의 시간은 제각각이다. 앞서 말한 녹취록을 책으로 만들면서 편집이 가해진 부분. 그래도 적지 않은 내용을(500여 페이지나 된다) 녹취록으로 만들면서 제법 짜임새 있게 정리를 해 냈다.

 

  

2. 감상평 。。。。。。。

     대형교회이면서 좋은 교회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건 규모가 갖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고, 그 위험을 제대로 피해내는 일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옥한흠 목사가 목회했던 시절의 사랑의 교회는 그 어려운 일을 상당 수준으로 달성하기 위해 애쓰는 교회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분이 개척 한 교회를 크게 성장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교회로 남기 위해 애썼던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이 일은 역시 쉽지 않았다. 개척자가 은퇴한 후 새롭게 세워진 후임자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고, 그 결과는 수천억을 들인 호화로운 새 건물과 온갖 외부활동에 공사가 다망한 사역이었다.(여기서 후임자의 인품이나 사역기술, 강론의 질을 문제 삼는 건 아니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더 이상 그 교회만의 독특함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냥 여러 대형교회들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듯한 아쉬움이.

 

     여전히 옥한흠 목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이런 변화가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논란이 되고 있는 후임자도 그가 직접 선택했고, 최근 엉뚱한 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그의 아들을 보면, 그 역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책의 면면에서 그려지는 가장 큰 특징은, 사역자로서 그는 함부로 흠잡을 만큼 녹록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 사역에서 만큼은 제대로 된 기준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아주 열정적이었고, 자기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높은 기준을 적용했던 인물이었다.

     그분 밑에서 배우며 일했던 사람들은 정말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적지 않은 유익을 얻었을 거고,(그래서 이런 일종의 추모집까지 냈을 터) 다만 그런 맹렬함이 모두에게 적용되어야만하는 걸까 하는 생각은 남는다. 마치 119 대원들이 대기하듯, 사역자들이 24시간 깨어 일에 매진하는 걸 열심’, ‘경건’, ‘소명같은 단어로만 설명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이 또한 산업화 시대가 만들어 낸 과잉노동에 대한 찬양의 영향은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리고 그런 거라면, 그분 역시 시대의 한계를 갖고 있었던 거라고 봐야 할 듯싶다.

 

     오랫동안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살아왔던 훌륭한 인물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무게가 있다. 쓸 데 없이 미사여구를 붙이는 대신, 원래의 목소리를 최대한 그대로 전달하려고 했던 책의 편집 방식도 마음에 든다.(후반부에 붙은 회고장은 이런 종류의 책엔 아주 빼기 어려웠을 거라고 양보해 본다) 사역자라면 읽어볼 만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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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8-0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옥 목사님 추모 설교집을 읽었는데
읽으면서 이 책이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아무리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니 하는 말이 있지만
2대라고 해서 1대와 같을 거란 건 기대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쓰셨던 것처럼 이건 1대만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봐야겠죠.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도 간디 얘기가 나오는데
그가 위인인 건 사실이지만 아들 교육은 실패한 인물이더군요.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ㅠ

그나저나 휴가는 다녀 오셨습니까?
요즘 가끔 작년 이맘 때 노란가방님 교회 다녀 온 생각이 나더군요.
그때 좀 더 잘할 걸 하는...ㅋ

노란가방 2018-08-06 12:35   좋아요 0 | URL
네. 자식은 나 자신과는 다른 인격체니까..
어떻게 자라고 어떤 사람이 될지를 부모가 결정해 줄 수는 없는 거겠죠.
이 책에도 곳곳에서 자신이 가정을 좀 더 챙기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비단 옥 목사님만 그러셨던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아마 주변 사람들도..).

휴가, 얼른 가고 싶습니다. ㅋㅋ
 
사랑하는 친구에게 - 믿음의 길 위에서 대화가 필요할 때
유진 피터슨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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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명한 기독교계 저자 유진 피터슨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신앙생활의 다양한 상황에 필요한 조언을 책으로 엮었다. 책 속의 친구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저자가 실제로 마주했던 사례들이라고 한다.

 

     ​편지 속 친구는 오랫동안 신앙을 떠났다가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미네소타 인근의 한 작은 루터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여기에서 그는 새로운 신앙적 경험들을 하면서 점점 기독교에 관심을 가져가고 있고, 기도와 예배 등에 관해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

 

     화려한 외형이나 극적인 장치들보다 일상 속에서 잠잠히 변화해 가는 과정을 강조하는 유진 피터슨답게, 책 전반에 걸쳐 알찬 조언들이 가득 차 있다.

 

 

2. 감상평 。。。。。。。

 

     처음 몇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이 책이 담고 있는 내공이 느껴졌다. 하긴 유진 피터슨과 IVP의 조합이니까. 책에는 모두 54통의 편지가 실려 있는데, 거의 매번 따로 표시를 해 두고 싶은 문장들이 발견된다.

​ 

     저자는 좀 더 깊은, 단순하면서 핵심에 제대로 다가갈 수 있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런 신앙생활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고, 경험하는 교회생활과는 사뭇 다른 느낌일 것이다. 복잡한 교인양육 프로그램도 없고, 최신의 신학적 동향을 바탕으로 한 교재나 강의도, 화려한 조명과 울림이 좋은 음향도 없다. 성도들은 한 주에 한 번 모여 예배하고, 나머지의 날들에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 

     저자에 따르면, 영적인 성장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우리 삶 속에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100). 물론 여기에는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건 삼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프로그램이나 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터슨의 조언은 매우 직설적이다. 그리고 이런 조언은 특정한 상황을 표적지로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 책에 실린 특정한 문장을 따로 떼어서 그것이 저자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여기면 안 된다. 때로 강력한 비판은 (누구처럼) 그것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부분이 좀 더 보완되고 제대로 서야 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때문에 이 책은 어느 정도 신앙생활의 맛을 아는 사람,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라야 권해줄 수 있을 듯하다.

 ​ 

     ​하지만 오히려 신앙생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초심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이런 저런 선입관 없이, 처음부터 확실한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이 책은 신학적인 내용 보다는 신앙생활을 말하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충분히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얇지만, 훌륭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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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 교회가 신앙을 지켜온 치열한 역사
알리스터 맥그라스 지음, 홍병룡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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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오늘날 이단에 대한 감상적 관점이 역사적 사실(근거)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다음 문장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개방적이고 느긋하고 성적 중립을 지키는 관대한 이단과 편협하고 독단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정통을 서로 대비시키는 일은 역사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접근법은 오늘날의 문화에 맞춘 산뜻하고 매력적인 대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와는 양립할 수 없는 접근 방식이다.”(125)

  

      우선 초대 교회는 정통에 반대하는 이들을 제거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았다. 3세기 초까지 기독교회는 지속적으로 당국의 핍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기 고전적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는 에비온주의, 도세티즘(가현설), 영지주의, 발렌티누스주의, 마르키온주의 등은 적어도 권력에 의해 제거된 자유운동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단을 배제하는 움직임의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단이 교회의 권위나 구조에 제기하는 도전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의 미래에 주는 의미 때문”(134)이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교회의 다수파(정통파)는 이단의 주장을 따를 경우 장기적으로 기독교가 가진 독특함을 상실하고 결국 소멸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고,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중세에 이르면, 신앙이나 교리보다는 교회와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좀 다른 분위기가 되어 버린다(160).

 

     책 후반에는 이단이라는 집단을 만들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인지종교학이라는 연구를 통해 추적해 본다. 크게 다섯 가지로, 문화적 규범(기독교를 당대의 문화에 어울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합리적 규범(기독교의 특정 교리가 비논리적이라고 여겨질 때 이를 합리화시키려는 의도), 사회적 정체성(특정한 이단교리가 일부 사람들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현상), 종교적 타협(다른 종교와의 공존을 위해 교리의 일부분을 완화시키는 것), 윤리적 관심(‘정통파가 특정한 윤리적 규범에 적절한 대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에 대한 자체적인 답변을 제시하려는 시도)가 그것.

     여기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관계설정에 관한 짧은 논의들이 덧붙여지는데, 이 부분도 나름 흥미롭다.

 

  

2. 감상평 。。。。。。。

     초기 기독교의 역사는 박해와 이단과의 투쟁,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만큼 이단이라는 존재는 큰 영향을 끼쳤다. 그건 교회가 교리를 좀 더 정교하게 만드는 데 자극을 주었고,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물론 로마가 기독교화 된 이후, 그러니까 박해가 사라진 후의 이단 논쟁은 분열을 조장하거나(아리우스 논쟁) 투쟁에 참가한 이들의 개인적인 적대감이 반영된 경우(네스토리우스 논쟁)도 없지는 않다. 특히 고대 후기의 몇 차례 공의회에서는 매번 같은 주제(단성론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단 논쟁은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단순히 억압적 권력에 의해 제거된 힘없는 자유주의자들이라는 그림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바로 이 부분을 밝혀내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기독교 내의 권력 관계, 그리고 실제 이단들의 성향은 현대의 낭만적 이상주의자들이 그리는 것과 전혀 달랐다.

     이단과의 투쟁 가운데서 정통교리에 대한 의식이 싹트고 정립되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할 유익이다. 저자는 이 때 정통교리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만약 그랬다면 이단에 대한 배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기독교 사상과 예배 가운데 내재해 있었다’(45)고 말한다. 처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관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세우기 위해 교리를 발전시켰다는 것(48).

 

     이 책의 장점은 정말로 있었던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다. 고대의 주장과 현대의 주장이 섞여 시대착오적인 결론을 내는 이들이 빠진 함정을 피하기 위해, 실제로 있었음직한 사건들을 역사적 연구를 통해 재구성해 낸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이단의 본질, 혹은 이단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들이 처음부터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악한 목적을 갖고 나온 이상한 집단이 아니었음을 보여준 부분이다. (이 점은 현대의, 특히 우리나라의 여러 교주들과는 사뭇 다른 부분) 초기 기독교회 안에서이단은 발생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기독교를 좀 더 나은 형태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이 의도면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연구를 마치고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상상력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교회가 단순히 지적으로, 영적으로 정통에 맞닿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해서는 충분치 않다는 것. 정통이 갖는 강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다면 얼마든지 또 다른 데서 그와 비슷한 상상력을 제시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상상력이 결여된 의식만큼 따분하고 지루한 것도 없다(각종 기념식의 일반적인 축사 시간을 떠올려 보라). 정통이 진짜 기독교라면, 그건 따분해서는 안 된다. 그 메시지와 형식 모두가 세상을 뒤집었던 복음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일은 초기 기독교 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부를 단속하기 보다는 그 중심을 제대로 강조해 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 홍병룡 선생님의 훌륭한 번역은 크게 나무랄 데가 없지만,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이름을 당대에 사용하던 라틴어나 그리스식으로 표기하면서도, 일부(예컨대 순교자 저스틴유스티누스혹은 유스티노스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에서는 영어식 표기가 등장해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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