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제가 사랑스럽나요? -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젠틀 위스퍼 그림 묵상 에세이
최세미(젠틀 위스퍼)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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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 기회가 되어서 봤던 괜찮아 그냥 너 하나면 돼의 최세미 작가가 낸 두 번째 신앙 그림에세이다손에 딱 쥐어지는 크기에복잡하지 않은 큼직큼직한 그림들그리고 여기에 작가가 생활하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하나님과의 만남 경험을 담은 글이 덧붙여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막상 삶 가운데서는 경제적인 문제에 크게 흔들리고특히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로 자주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작가는 책 속에 솔직하게 담아낸다나를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일매일 겪는 그런 유혹과 시험그리고 극복과 좌절의 이야기라 책장을 넘기면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여기에 작가의 말투를 살린 지문들이 귀엽기도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수단 가운데는다른 사람의 삶이라는 통로도 있다하나님과 함께 문제를 붙잡고 씨름했던앞선 이들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게 간증이라는 말의 뜻이다(오늘날엔 내가 뭔가를 했더니 이렇게 잘 됐다는 식의 전형적 스토리로 왜곡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좋은 간증을 담고 있다책에 담긴 이야기가 아주 새롭거나엄청나게 특별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때로 우리는 몰라서가 아니라 잊어서 문제에 빠져들어 가기도 하니까.



     주일 밤침대에 누워 책장을 넘기다가 순간 울컥했던 부분이 있었다.


아 맞다!

하나님이 날 엄청 사랑하신댔지.

깜빡 잊고 좌절할 뻔했네.


     먼저 편안하게 읽고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주면 좋을 듯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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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과 기독교 신앙 스펙트럼 : 과학과 신앙 4
한국교회탐구센터 지음 / IVP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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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동안 IVP에서 이런 식의, 교회와 교회 밖 사람들의 인식 차이 부분을 탐구하는 책을 자주 내는 듯하다. 교회탐구포럼 시리즈도 나름 훌륭한 주제를 담고 있고, 한국교회탐구센터라는 조직에서 낸 이 책도 그 일환이다. 한국 교계에 의미 있는 도전을 던져주는 기획이라고 본다.

 

 

     이번 책에서는 약간은 이례적일 정도로 다시 불타오르고 있는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논쟁을 지질학적 관점에서 다시 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이런 시리즈에 속한 책들이 다 그런 건지,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여러 입장들을 종합하는 선에 그치고 있고, 그래서 저자들 사이에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장면들도 여럿 보인다

 

     ​예컨대 가장 첫 번째 글인 양승훈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안으로 다중격변론을 채택한다. 그리고 이런 전제 아래 대진화는 불가능하다(소진화는 어느 정도 수용가능하다는 뉘앙스)고 말하지만, ‘지구는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나?’라는 글에서 이문원 교수는 유물론에 기초한 진화론적 설명을 별다른 코멘트 없이 서술하고 있다.

 

     ​(적어도 교회 내에서는) 여전히 딱 부러지는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독자가 스스로 결론을 내일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라면 또 이해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인터뷰와 (지구의 연대와 지질학 발전의) 역사서술, (진화론적 지구 역사에 관한) 교과서적 연대기 제시,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이라는) 특정한 기술 소개, 설문조사, 그리고 서평들이라는, 좀처럼 접점을 찾기 어려운 너무 많은 유형의 글들이 모아져 있어서 좀 산만하다는 느낌도 준다.(얼마 전 비슷한 구성의 책을 봤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싶은)

 

 

     책에 실린 다양한 글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창조과학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구의 역사가 수천 년에 불과하다는 젊은 지구론을 중심에 두고, 성경의 문자주의적 해석을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과학으로 성경을 입증하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창조과학은 그 시작부터 문제가 적지 않았다. 의아스러운 것은 그것이 가지는 논리적 허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교회의 적잖은 사람들이 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

 

     ​과학주의와 유물론을 경계하되 과학 자체에 대해서 좀 더 열려 있을 필요가 있다는 양승훈 교수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귀를 막으면, 결국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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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서거 50주기 기념판) - 마틴 루터 킹 자서전
클레이본 카슨 엮음, 이순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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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던 시기를 제외하고, 20년이 조금 넘는 내 독서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사람은 C. S. 루이스와 마틴 루터 킹이다. 기본적으로 학자였던 루이스의 경우는 많은 책들을 써서 모으는 재미와 함께 다양한 즐거움을 주지만, 목회자이자 대중운동가였던 킹의 경우는 많은 책을 남기지 않았다. 때문에 단편적인 글의 모음 정도만 겨우 읽어왔던 차에 킹의 자서전이라니 이런 게 있었나 하는 반가움에 구입을 했다.

 

     하지만 킹은 실제로 자서전을 쓴 적이 없었다. 자서전이라면 보통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인생의 후반부에나 쓰기 시작하는 종류의 책이지만, 겨우 30대 후반의 나이에 암살을 당한 그로서는 제대로 준비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 책은 킹의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온 클레이본 카슨이 킹의 생애와 그가 남긴 글들을 시간 순서대로 늘어놓아 엮은 사후 자서전이다. 물론 일부 편집자의 역할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킹의 말과 글을 바탕으로 했기에 충분히 마틴 루터 킹을 접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만한 책이다.

 

 

     마틴 루터 킹이라면 역시 비폭력저항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그가 비폭력 무저항을 주장했다고 생각하는 건데, 킹은 비폭력주의과 무저항주의를 분명히 구분한다. 생전에도 그를 향해 일종의 정적주의(Quietism)를 선포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히려 킹의 비폭력주의는 저항을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봐야 한다. 폭력을 행하는 상대에게 저항을 하되 비폭력이라는 수단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쪽이 도덕적 우월성과 정당성을 드러낼 수 있는 좀 더 강력한 방식이니까.

 

     실제로 그의 생각은 옳았던 것 같다. 흑인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그의 비폭력 투쟁은 비록 자신은 암살로 생을 마감하긴 했으나, 결국 여러 실제적 결과들을 얻어냈으니까. 물론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긴 하지만.

 

     ​또 한 가지 책을 읽으며 새롭게 깨달았던 것은, 그가 모든 영역에서의 비폭력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킹은 베트남 전쟁에서 반전주의의 편에 섰고, 이 때문에 수많은 정적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개인 차원에서 자신이나 가족들을 공격하는 적에 대해 자기방어를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심지어 총도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다만 흑인인권운동의 차원에서는 비폭력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정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킹은 열정적인 행동가였다. 북미 대륙 이곳저곳을 쉬지 않고 오고가며 그의 힘이 필요한 곳에 있기 위해 애를 썼다. 심지어 오전에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투쟁의 현장에 갔다가, 다시 저녁 예배의 성례식을 위해 돌아오기도 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는 행동파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킹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그의 상상력이었다. 흑인은 백인과 함께 앉아 식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차별정책을 자랑스럽게 유지하겠다고 말하는 권력자 앞에서, 사나운 개와 물대포를 앞세우고 위협하는 경찰청장들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킹은 노예주인과 노예의 후손들이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갈 날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상상력이 그로 하여금 불가능해 보이는 행동을 꿋꿋하게 해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연설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게 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그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진다. 탁월한 연설가였다.

 

 

     일단 책 자체도 두툼하고, 이전의 다른 책들에서 봤던 문장들과 글들도 상당수 담겨 있어서, 마틴 루터 킹이라는 인물의 투쟁과 그가 품고 있던 생각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기본 교과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잘 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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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교회탐구포럼 시리즈 8
송인규 외 지음 / IVP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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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명의 저자들이 교회와 페미니즘이라는 두 개 주제를 중심으로 쓴 글을 모은 책이다. 먼저 IVF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송인규는 영미 복음주의 안의 여성에 관한 네 가지 입장(가부장제와 상보론, 평등론, 페미니즘)을 차분히 정리했다. 각각 순서대로 보수적인 입장부터 진보적 입장으로 스펙트럼이 펼쳐져 있는데, 대체로 상보론과 평등론 중 어딘가에 자신의 입장을 두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입장들을 구분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을 얻었고, 여기에 상보론과 평등론을 포괄하면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입장들(3의 길)을 최선을 다해 정리해 준 부분도 높이 평가한다. 저자는 이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읽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지 않을까 싶다.

 

 

     내겐 번역가로서의 인상이 강한 양혜원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교회 내 여성(특히 사모라고 불리는 이)의 위치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다. 선뜻 페미니즘적(페미니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할 수 없으면서도(이는 다분히 복음주의적, 혹은 보수적 신조에 동의하는 그의 신앙관 때문인 듯하다), 온몸으로 겪고 있는 교회 내 여성에 대한 적절치 못한 시선 역시 그대로 넘기기 어려웠던 고민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저자는 여기서 제자라는 개념을 다시 도입한다. 교회 내 권위나 지위에 관한 논쟁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앞에서 동등한 제자로서의 정체성 회복에서 문제 해결의 (개인적인) 실마리를 찾아낸다

 

 

     ​앞서의 글이 깊은 개인적 고뇌가 묻어나오는 진득한 글이었다면, 이에 반해 이화여대의 백소영 교수의 글에는 단호함이 보인다. 그는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데, 일견 굉장히 분명해 보이지만 사실 이런 식의 접근이 내포하고 있는 수많은 난제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성급한 뜀뛰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와 관련해서는 앞서의 두 글을 보는 게 도움이 될 듯)

 

     ​물론 씨줄과 날줄(책에서는 경줄과 위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의 비유를 통해, 성경의 본질적인 부분을 잡고 상황적 부분을 적당히 해석해 가며 읽어야 한다는 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이다. 문제는 여기서 어떤 것이 씨줄인지를 판가름 하는 것이 철저하게 현대적 기준이라는 점인데, 이는 자칫 C. S. 루이스가 경고한 연대기적 속물주의(뭐든지 새로 나온 게 옳다는 사고방식)”빠져들어 갈 수도 있어 보인다.

 

 

     ​정재영과 김애희는 한국인의 남녀관계에 대한 인식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그 내용을 분석하고(정재영), 그 자료를 바탕으로 교회 내 성평등을 촉구하는 내용(김애희)을 담고 있다. 이런 설문조사 결과는 학술적으로는 필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듯싶다.

 

 

     ​마지막에 배치된 정지영의 글은 조금 독특하다. 이 책은 어떤 내용을 구체적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1970년대 이래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페미니즘 관점, 혹은 페미니즘을 설명하는 수많은 책들을 연대기적으로 차곡차곡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여기에 소개된 모든 책을 다 직접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방대한 서지학적 작업을 해 낸 노력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저자는 복음주의 내 페미니즘 논의가 어제 오늘에야 시작된 것이 아니며, 미국 등지에 비하면 좀 늦긴 했으나 이미 50여 년 가까운 학술적 연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글을 추천한다. 송인규의 글에서 우리는 논리적으로 자신의 입장(혹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여기에 영향을 준 개념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 양혜원의 글을 통해서는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일들을 설명하는 좋은 선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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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이름들 - 대림절에 알아보는
월터 브루그만 지음, 이옥용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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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력에는 대림절이라는 기간이 있다. 크리스마스 이전의 한 달(4)를 가리키는데, advent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예수의 출현 또는 오심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교회력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대부분의 개신교단들에서는 거의 잊히긴 했지만, 일부 교단들에서는 여전히 이 날을 기념한다.

 

     그 이름에서부터 이 기간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기다리며, 그분을 묵상하는 절기다.(사실 기독교회는 모든 날을 그분과 연결지어 생각해야 하지만) 이 작은 책은 대림절의 4주간 한 주에 하나씩 묵상할 수 있도록, 이사야 96절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네 가지 별명을 분석하고 설명한다.

 

     기묘한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는 네 가지 칭호는, 각각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그 각각의 칭호가 어떻게 예수의 사역과 연결되는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드문 듯하다. 저자는 이 작업을 수행하면서, 우리가 너무 금방 지나쳐버린 그 칭호와 예수의 사역 사이의 연결고리를 깊이 묵상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개인적으로는 예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이 얼마나 (신학적으로) 어색한 일인지, 그리고 평강의 왕이라는 용어 또한 이사야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기대와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를 지적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 짧은 구절(9:6)이 탁월한 저자의 손에 들리면 얼마나 아름답게 풀려나오는지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아쉬운 건 그리 분량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번역과 편집 과정에서 오타가 몇 개나 나오고 있다는 점.(세 개는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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