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몽
김승은.김희진 지음 / 베드로서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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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과 신학을 전공한 엄마(김희진)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딸(김승은)이 같은 영화를 보고 각자의 소감과 분석을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원래는 블로그에 적었던 글이라고 하는데, 그 때 항목이 이 책의 제목인 “영상이몽”이었다고 한다. 같은 영상에 대한 다른 꿈(해석)이라는 의미였을까.


모두 스물여섯 편의 영화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꽤 많다.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 관련 책들이 십수 개 정도의 영화를 담지 않던가. 여기에 각각의 영화마다 두 사람이 쓴 글도 빽빽하게 여러 페이지여서 전체적인 볼륨은 좀 더 커 보인다.


각 장마다 한 편의 영화를 두고 두 사람이 순서를 오고가며 각자가 요약한 줄거리와 분석을 싣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똑같은 영화의 줄거리를 매번 두 번씩 반복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든다. 물론 같은 영화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니 줄거리 요약도 약간 다를 수 있지만, 차라리 두 사람이 함께 줄거리를 요약하고(한 사람이 쓰고 다른 사람이 덧붙이던가 하는 식으로) 각자의 느낌만 남겼더라면 어땠을까.





영화평 부분도 각자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실은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서로 대화가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런 것들을 다 반영하려면, 애초에 블로그에 써서 모았던 글을 엮는 것보다 훨씬 더 품이 들어갔을 것이라는 예상은 되지만.


신학을 전공한 엄마 쪽은 확실히 신학적인 해석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딸 쪽은 조금 더 개인적인 평에(그리고 사회적인 분석 쪽에) 가까워 보인다. 둘 다 영화의 미학적인 부분은 딱히 다루지 않고, 주제 면에 집중하는 공통점이 있다.



책에 실린 스물여섯 편의 영화들 중에 절반을 조금 넘은 영화들을 이미 본 것 같다. 요새는 한 달에 한 편 보기도 어려워졌지만, 한창 때는 1년에 거의 100편씩 보기도 했었으니까. 이런 책은 역시 아는 영화가 나와야 좀 더 재미가 있다.


내가 봤던 기억과 책에 실린 평가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찾아보면서 읽으면 좀 더 흥미가 있을 것이다. 아직 못 봤던 좋은 영화들을 발견해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보는 또 하나의 유익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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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 운동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는

침례교, 감리교,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등

다른 모든 교파들이 교파를 초월하려는 의지로 함께 모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가톨릭 사제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들의 많은 교구민들이 참여했습니다.

모두가 손을 맞잡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결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중집회는 교회가 일요일 아침에 성취하지 못했던 것을

월요일과 화요일 밤에 성취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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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흥미로운 기독교 소설 한 권을 소개합니다. 담임목사를 정하는 과정을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진행하면 어떨까 라는 신박한 상상이 바탕이 됩니다.
■ 이 과정에서 작가는 교회란 무엇인가, 목사란 또 어떤 사람인가를 자연스럽게 질문하고 나름의 대답을 합니다. 쉬우면서도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책이네요.
■ 기대평 이벤트가 있습니다. 영상을 보시고 유튜브 댓글로 기대평을 달아주신 분들 중 3분을 뽑아 책을 보내드립니다. 어여 참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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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에 길들여진 믿음 - AI 시대, 교회는 알고리즘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홍광수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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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서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상물 속 반기독교적 코드를 읽어냈던 저자가 이번에는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미디어 알고리즘에 길들여진 현대인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를 다룬다.


책에서 말하는 알고리즘은 좀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의 개념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를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한 설계, 그 과정을 말한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지 않던가. 자기 전 휴대폰을 열어 쇼츠를 하나 눌렀다가 한참을 계속 화면을 위로 밀어내면서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거나, 뭘 하나 검색하면 금세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 내가 검색한 상품과 비슷한 상품 광고들이 잔뜩 뜨는 그런.


이런 알고리즘은 어떻게든 사람들의 주의를 오래 잡아끌기 위해 짧은 시간 동안 반복적인 자극을 추구하고, 반복적으로 오래 그런 것들에 노출되다보면 사람들의 뇌에도 분명 영향을 준다. 이제 우리는 조금만 긴 이야기에도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런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는 건 수익을 내기 위해 일을 하는 기업이다. 결국 그런 알고리즘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끝없이 우리의 돈과 시간을 바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거라는 의미.





사실 이 책은 이런 일반적인 알고리즘 종속의 문제를 넘어, 신앙적 차원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훌륭하게 분석한다. 예를 들면, 정보를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는 데도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요새 유행하는 건 3분, 1분 안에 핵심을 전달하는 쇼츠형 설교 콘텐츠이다.


이 ‘즉각성’, 즉각적 만족에 매인 태도는 신앙의 핵심을 놓치게 만든다. 저자에 따르면 “하나님과의 만남은 즉각적인 답변이나 요약된 진리 속에 있지 않”으며, “침묵과 기다림, 질문과 씨름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은 때로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들의 연속이다. 기도를 한다고 해서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 아니고, 매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느낌을 얻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일들은 충분한 축적이 있은 후에야 뭔가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알고리즘적 즉각적 응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를 선택하는 기준도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징들에 좌우되곤 한다. 교회가 갖춘 인프라, 교육 시스템, 온라인 서비스의 제공 여부, 찬양팀의 규모와 실력 같은 것들이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된다. 신앙생활도 ‘좋아요’를 누르는 콘텐츠화가 되어 버리는 것.





책 전반에 걸쳐서 알고리즘을 강요하는 현대의 디지털 문화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지만, 마지막 장인 4장에서는 이른바 “블렌디드 교회”라는 개념을 가지고 와서 기존의 전통적인 신앙생활의 형태와 새로운 디지털 환경을 섞은(블렌디드) 형태의 전망을 하는 것도 독특하다. 개인적으로는 내용상 앞의 것들과 좀 어울리지 않는다 싶긴 한데, 책 자체가 너무 반문화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까.


저자는 교회가 단순히 디지털과 멀어져야 한다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지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실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충분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4장의 마지막 절에는 아날로그적 삶이 주는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반 디지털 쪽으로 기우는 것 같기도 하다. 내적 갈등이었으려나...



이 시점 한 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주제였다. 책에도 언급된 것처럼, 급격히 변하가고 있는 세상에서 교회는 그저 상황을 뒤쫓아 가기에 급급했던 면이 있다. 이미 AI라는 도두가 우리의 신앙생활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는 상황이지만, 늦었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계속 늦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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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이들의 소꿉장난.


앞서 나왔던 영화 “길복순”은 센세이셔널했다. 물론 여기저기서 본 듯한 클리셰들이 잔뜩 있긴 했지만, 이런 스토리의 영화를 우리나라 배우들과 한국어 대사를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전도연과 황정민이 칼싸움을 하는 영화를 또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그 영화의 속편이 나왔다고 해서 어느 정도 전편에 근거한 기대를 갖고 보기 시작했는데, 이건 무게감이라든지 분위기가 확실히 이전만 못하다. 주인공 킬러 역에 임시완이라는 배우가 잘 어울리는지는 좀처럼 확신이 안 들고, 상대역인 신재이 역을 맡은 박규영 역시 깊은 고민이나 내면의 복잡한 감정 같은 걸 표현하기에는 아직 좀 더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오히려 카메오로 잠깐 얼굴을 비친 전도연의 몇 마디가 더 임팩트가 있었다고 하면 좀 가혹한 평일까.


전작 길복순이 흥미로웠던 건, 거대한 킬러 회사와 그들로 구성된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설정만이 아니라(이건 존 윅 시리즈에서 훨씬 더 잘 구현되어 있다), 업무 외의 시간에 복순의 가정사가 묘사되는 과정에서의 갭 차이도 중요한 몫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게 없다. 주인공 사이의 썸 비슷한 게 있긴 한데, 그것뿐이라면 한국 드라마 특유의 고질병(회사 다니면서 연애하고, 법정에서 연애하고, 병원에서 연애하고..)의 반복일 뿐.





스토리는 또 왜 산으로...


영화는 전작의 스토리를 이어간다. 길복순은 일을 그만두기 위해 회사를 상대로 홀로 전쟁을 시작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이제 이 킬러들의 세계관을 창조한 전임 회장이 죽은 상황에서 조우진이 연기하는 독고라는 인물이 복귀해 다시 회사와 킬러 세계의 질서를 수습하려는 상황.


그런데 이 정도까지 묵직한 세계를 만들었다면, 그걸 깨려는 쪽도 그에 상응하는 무게감을 지녀야 어울린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질서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재이의 행동 뒤에는 그저 ‘재미있어 보여서’라는 이유로 돈지랄을 하는 벤자민 조라는 캐릭터가 있을 뿐이다. 애초에 킬러들의 세계에서 신재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유능했는지 모르지만, 어디서 물주 하나 물고 왔다고 해서 저렇게 건방지게 행동하는 걸 나머지 조직들은 멍청하게 그냥 보고만 있다고?


심지어 신재이가 독고와 싸우러 가는 것까지는 억지로 이해해 보려고 하는데, 내심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는 주인공 이한울이 그녀와 함께 독고에게 달려드는 건 도대체 뭐 때문인지 감도 안 잡힌다. 이게 이른바 MZ식 사고라는 건가? 안 그래도 여리여리 캐릭터라 언제 개그가 튀어나올까 조마조마한데, 이런 식으로 스토리까지 무너지면...





스타일리시한 액션?


그나마 전작을 계승한 건 스타일리시한 액션씬 정도가 아닐까 싶다. 특히나 다들 킬러들이라는 설정상, 살상용 무기를 들고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칼 대신 주인공 이한울은 사마귀라는 별명답게 일종의 낫을 변형한 무기를 들고 있고, 독고의 경우 톤파를 개량한 살상 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존 윅 식의 총이라는 편리한 무기를 왜 사용하지 않는 건지는... 우리나라에선 총기규제가 심하기 때문인 걸까? 애초에 이 정도의 대규모 암흑세계가 존재하는데, 단지 총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공권력이 모른 척 할까. 우리나라가 멕시코 같은 갱단에 지배되는 나라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이 수도 없이 잘리고 죽어나가는데, 그 장면이 단지 멋있다 정도로만 묘사되어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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