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3 - 7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7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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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대단원이다. 이게 일곱 번째 시리즈이고, 각 시리즈마다 3권씩으로 되어 있으니 총 21권, 그리고 여기에 가이드북까지 더하면 모두 22권이었다. 첫 권을 2020년 1월에 보기 시작했으니 햇수로 5년 만에 완결까지 이르렀다. 마지막 리뷰는 시리즈 전체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해 볼까 한다.


먼저 각 시리즈의 주인공은 다음과 같다.

1) 로마의 일인자 - 호민관 드루수스(小 드루수스), 마리우스

2) 풀잎관 - 마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3) 포르투나의 선택 - 코르넬리우스 술라, 율리우스 카이사르

4) 카이사르의 여자들 - 율리우스 카이사르

5) 카이사르 - 율리우스 카이사르

6) 시월의 말 - 율리우스 카이사르

7) 안토니우스의 클레오파트라 -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확실히 카이사르가 중심인물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의 시작 시점은 BC 1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전하고 로마가 지중해 서부의 패자로 발돋움한 시기, 하지만 여전히 로마라는 작은 도시(그리고 그 도시를 주도하는 원로원)만이 모든 힘을 독점해야 한다고 여기는 소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득권 세력들에게 저항하며 최소한 이탈리아 반도 안의 동맹시에는 로마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 호민관 드루수스였다. 하지만 결국 그의 암살로 계획은 실패했고, 이에 절망한 동맹시민들은 결국 내전을 선택한다.


카이사르 역시 한편으로 드루수스와 유사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는 더 이상 작은 도시 중심의 국가가 아니고 제국의 길로 나아갔으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기득권층에게만 로마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여기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은 아닌 듯하다. 작가는 바로 그 드루수스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카이피오를 등장시켜 서로의 여동생과 결혼을 했던 그들의 관계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카이피오가 드루수스의 동생 리비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카이사르의 애인이었던 세르빌리아(브루투스의 어머니다!)였고, 카이피오와 이혼 후 재혼을 한 리비아가 낳은 아들이 소 카토(카이사르의 정적)과 포르키아(브루투스의 아내)였다. 그리고 아들이 없이 죽은 드루수스의 양자가 낳은 딸이 옥타비아누스의 아내가 된 리비아이고. 물론 고대 로마 귀족들의 결혼이라는 것이 유력한 가문들 사이의 연합이었기에, 유명한 사람들은 대충 다 인척관계로 이어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작가는 한 인물만이 아닌 좀 더 큰 맥락에서 이야기를 볼 수 있도록 세밀하게 인물들을 배치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작가는 한 인물, 한 인물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어떤 인물이 그리 유명하지 않은데도 그에 관한 개인적인 서술이 길게 나오면, 그는 반드시 뒤에서 떤 중요한 결정이나 사건의 방아쇠를 당기는 인물이 되는 식이다. 아무래도 역사 소설이다보니까 이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자유롭게 인물들을 사용할 수 있지 않았나 싶은데, 단순히 역사 기록으로만 남은 건조한 문장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큰 바람을 일으키게 만드는 능력은 확실히 탁월한 글솜씨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마지막 권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의 최후의 결전을 다룬다. 앞서 두 권에 걸쳐서 이들이 제2차 삼두정치를 시작한 후 각각 서로를 견제하며 어떻게 준비해왔는지를 길게 다루었던 저자는, 마침내 두 사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장면을 연출하지만 그 모습이 영 지리멸렬하다. 가장 주된 원인은 이미 이 시기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낸 결과로 안토니우스의 심신은 피폐해져있었고, 그 틈을 파고든 클레오파트라가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전투에 관해선 문외한이었던 클레오파트라가 설치면서 안토니우스 주변의 인물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결국 첫 대결 이후 대거 이탈을 하게 된다.


작가는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을 클레오파트라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거듭 언급하는데, 생각해 보면 고대 로마에서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비공식적으로) 서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있어도, 군사 지휘에 나선 적은 없으니 그렇게 봄직도 하다. 물론 그녀의 군사적, 정치적 식견이 상당히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오직 아들(카이사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카이사리온)을 전 세계의 통치자로 세우겠다는 단견밖에 갖지 못했던 클레오파트라의 계획이 실패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상대하고자 했던 로마는, 벌써 수백 년 동안 수없이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무엇이 최선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때로는 무력을 동원한) 토론의 결과로 나온 결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클레오파트라의 계획은 오히려 망상에 가까웠다. 얼마 전 있었던 계엄처럼.






좋은 작품이었다. 흡입력이 대단하고, 스물한 권의 대적임에도 전체를 두고 봐도 구성이나 설정이 크게 무너지는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공화정 말기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봐둬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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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부자들은 해마다 골프를 치는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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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날드 J. 사이더,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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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 선입견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다시 듣는 하나님의 음성
권연경 지음 / 야다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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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부터 “문해력”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풀어보면 “글을 이해하는 능력” 정도일 텐데,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낮은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최근 이 문해력이 떨어지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문제라고 한다. 글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상태. 마치 한글을 처음 배운 외국인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이 책의 뒷표지에 실려 있는 소개 키워드에도 이 문해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그런데 그 앞에 한 단어가 더 붙는다. “성경 문해력”이다. 책은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퍽 괜찮은 세일즈 포인트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을 보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읽기에 있어서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1부와, 실제로 사례 본문들을 언급하면서 잘못된 이해와 바른 이해를 대조하는 2~4부다. 2부에서 4부는 약간의 집중 타겟의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비슷한 형식이다. 책 자체가 한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았는지라, 각각의 글만 따로 떼어 봐도 충분히 읽을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 1부의 내용이 특별히 눈에 들어온다.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교인들은 이른바 성경의 “영감”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쉽게 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성경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인걸까? 보수적인 학자들조차도 거기에 쓰인 한 글자 한 글자를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자적 영감”, 그 한 글자 한 글자부터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기 위해서는 일종의 신학적 상상력을 통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축자적, 전체적, 유기적 영감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모두 받아들인다고 해도 결정적인 문제가 남는다. 그 세 원칙이 적용되는 “성경”은 각 책의 저자들이 쓴, 하지만 오늘날에는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원본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사본학 연구의 결과로 우리는 (지금 시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밝혀낸) 비교적 원본에 가까운 사본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본이 쓰이고 전수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들, 그리고 한국 독자들이 보고 있는 “번역된 성경”은 또 다시 원문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들을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른바 “성경 숭배”에 빠질 수 있다.





중학생 때 성경을 펴서 읽기 시작한 이래로, 벌써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성경을 읽어 왔다. 성경읽기는 어렵지 않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는 건 참 어려운 일이이라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물론 성경이라는 책이 말이 아주 어렵게 쓰였다거나,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주문 같은 글로 잔뜩 채워진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구원에 이르기에 충분한 내용”은 무슨 신학적 지식을 잔뜩 쌓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구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아니던가.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성경은 참 중요하다. 그리고 이 때, 우리가 온갖 오해와 억측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낸다면 당연히 우리의 삶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성경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다. 책을 읽으며 단지 몇몇 구절의 원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더 중요한 건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적인 태도다. 이 책은 성경을 좀 더 조심스럽게, 자세히 살피는 데 좋은 도전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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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이야기
최무영 지음 / 북멘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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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어렵게 느껴진다. 복잡한 수식과 개념들, 그리고 가끔은 상식에 어긋나는 것 같은 이론들이 펼쳐지기도 하고, 아득히 멀리 있는 것들에 관해서 마치 실험실 탁자 위에 있는 무엇을 설명하는 것처럼 풀어내는 것 또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크고 먼 이야기를 잠시 제쳐두면, 결국 물리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를 설명하기 위한 학문이다. 무작정 무시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물리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굉장히 엉뚱한, 세상에 관한 일그러진 관점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물리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느 정도 교양으로 알아둘 필요는 있다고 보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비전공자들을 위한 교양물리학책이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물리학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들(물리학이란 무엇인지, 물리학과 다른 학문들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하는 것들)이 담겨 있고, 2부에서는 물리학에서 연구하는 대상들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다. 그리고 3부에선 21세기 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비교적 근래의 물리학 연구 주제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전반적으로 전문적인 용어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어렵게 느껴지는 수식들도 일부러 뺀 느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느 물리학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언급되는 용어들을 순우리말 용어로 바꿔서 설명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블랙홀은 “검정구멍”, 화이트홀은 “하양구멍”. 흔히 통일장이론이라고 부르는 개념은 “통일마당이론”으로 표기한다. 이전의 용어에 익숙하다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학 비전공자들을 위한 교양서로 사용되었다는 것 같기도 한데, 딱 그 정도 수준에 추천해 줄만해 보인다. 나름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고등학생들에게도 권해 줄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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