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파도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마파도>, 영화를 보고나서 도대체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의아하기만 했다. 이문식, 김수미 등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지만 설정 자체부터 공감이 안가 별반 웃을 수가 없었다. 내 생각에 영화적 웃음에는 두종류가 있다. 만사마가 눈썹을 춤추듯 움직일 때 웃는 웃음이 그 하나고, 거대한 줄거리가 만들어내는, 그러니까 다른 배우를 써도 비슷한 효과를 전달할 수 있는 웃음이 다른 하나다. 우리가 재미있는 영화라 함은 후자가 많이 나오는 걸 지칭하지만, 마파도는 아쉽게도 전자의 웃음만 잔뜩 나왔을 뿐이다.
-난 영화에 로또복권이 나오는 게 싫다. 영화란 게 현실서 못 이룰 꿈을 대신 실현시켜주는 매체긴 하지만, 수백만분의 1에 불과한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건 아무리 영화지만 현실감이 없어 보인다. <달마야 서울가자>가 못마땅했던 이유가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영화 속에서 찾지 못하고 로또의 힘을 빌려야 했기 때문이었듯이.
-영화에서 두목은 다방 종업원 장미에게 로또를 사오라고 시킨다. 로또를 사가지고 오던 장미는 비를 피하려 전파사 앞에 머무는데, 거기 TV로 1등에 당첨된 걸 확인한다. 글쎄다. 로또를 사본 사람은 알겠지만, 추첨이 임박한 오후 8시 이후에는 로또를 팔지 않는다. 설마, 복권 판매소와 다방이 45분이나 걸렸을까? 걸어갔다 온 걸 봐서는 그리 멀지 않을 듯 싶은데. 참고로 마파도에 나오는 로또 당첨번호는 16, 17----(그 다음 기억 안남)이었는데, 이번주 로또복권 당첨번호가 16, 17이 있다. 그대로 했다면 5천원은 건졌을 듯한데.
-복권을 찾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복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 하지만 장미는 꼴랑 복권 한 장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현금화되지 않은 복권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러는 걸까. 게다가 고향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 나 같으면 잽싸게 돈으로 바꿔서 외국으로 튄다.
사실 이런 걸 따지는 게 더 우스운 짓일지 모르겠다. 추리극도 아닌, 웃자고 만든 영화를 논리로 재단하려는 것이. 하지만 아무리 웃자고 만든 영화라도 기본 설정이 안되었다면 웃을 수가 없는 법, 웃기려고 하는 이문식의 눈물겨운 시도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는 김수미, 여운계 등 할머니들의 연기가 빛이 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난 시종 허탈한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3. 달콤한 인생
배우라면 대표작이 하나 있어야 한다. 최민식을 보라. <올드보이> 이후 ‘연기의 신’ 쯤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는가. <꽃피는 봄이오면>이 흥행에 실패했건 말건, 최민식은 이제 전설로 남을 것이다 (<쉬리>는 한석규, <해피엔드>는 전도연의 영화였다). 이병헌의 영화 데뷔는 정말 못봐줄 수준이었다.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에서 이병헌의 오버는 정말로 날 미치게 만들었다. 그러던 그가 흥행배우로 우뚝 서고,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활약 중인 것은 순전히 '공동경비구역' 의 성공에 기인한다. 내게 있어서 이병헌은 임창정, 김정은, 이범수 등과 함께 ‘나오면 꼭 본다’는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이병헌의 이번 영화는 마음에 안들었다. ‘보스의 여자를 감시하다가 그 여자가 좋아져 버렸다’ 영화의 소재는 그런대로 신선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인데, 그 점에서 <달콤한 인생>은 실패작이다. 수없이 나오는 폭력 장면은 정당성을 결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이병헌이 운전 중 시비를 건 사람들을 쫓아가 쥐어 패는 대목은 그 극치일 것이다.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가 당하는 불행을 자신의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이병헌은 싸움 좀 한다고 시도때도 없이 폭력을 휘둘렀고, 혼자 잘난 맛에 꽉 막혀 있었다. 그가 당하는 불행이 내 것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인데, 거기에 더해 이병헌이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는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 속 폭력은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줌으로써 현실의 폭력을 예방한다고 믿어 왔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감독을 쥐어패고 싶어진다.
난 신민아를 좋아하는 편이다. 순위로 따지자면 강수연-김정은 다음으로 좋아한다. 한때 그녀의 팬클럽에도 가입한 적이 있을만큼. 이 영화에서 신민아는 유일한 여자로 등장, 자신의 매력을 유감없이 뽐내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는 남자들의 영화일 뿐, 신민아의 역할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에서 베트남 처녀로 나온 이래 <화산고> 망했지, <마들렌> 폭삭 망했지, 이 영화의 전망도 그리 좋지 않으니, 그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딴지 한가지. 나쁜놈은 이병헌에게 이런 말을 한다.
“잘-못-했-음. 딱 이 네 마디만 해라”
네 음절이지, 네 마디가 아니다. 한번만 나오면 실수로 생각하겠지만, 그게 네 번인가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