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보다가 자려고 했는데, 캐치원을 틀어보니까 <아무도 모른다>를 막 시작하는 참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워서 모시고 왔고, 1박2일의 여행에서 돌아와 전화통을 붙잡고 계시는 어머님까지 불렀다. 나야 봤지만 내가 없으면 안보실까봐 자리를 지키고 앉았다. 가끔씩 할머니한테 상황 설명을 해드리면서. 다행히 소리가 크게 들려 할머니는 일본말 대사를 다 알아들으셨다.


두 번째 보는 것의 좋은 점은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두번 봐서 또 재밌으면 진짜 좋은 영화다-과 연기를 누가 잘하는지 식별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좋은 영화였고, 주인공으로 나온 남자애의 연기는 다시봐도 일품이었다.


오늘사 내가 깨달았던 점. 처음 영화를 볼 때 난 아이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만 욕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말도 없이 도망갔다는 두명의 아버지를 엄마와 똑같이 욕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아이 넷을 맡기고 도망간 남편,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되면서 아이 넷을 버린 아내, 악함의 정도를 비교하는 게 불필요해 보이지만 어머니가 아빠보다 특별히 더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할머니와 어머니가 여자만 일방적으로 욕을 해서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할머니는 예쁘디예쁜 그 아이들이 나올 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런 애들을 놔두고 엄마가 다른 데로 도망갔다니, 그게 사람이냐?”

난 이렇게 답변했다.

“우리 엄마도 호랑이같은 나를 놔두고 어제 1박2일로 놀러갔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영화는 우리나라에 수입이 안되는 품목이었다. 그때 지배층이 내게 주입시킨 편견은 일본영화는 순전 폭력과 섹스로 점철된 이류라는 것. 하지만 막상 들어온 일본영화들을 보면서 난 놀라고 또 놀란다. “오겡끼데스까?”란 대사가 인상적인 <러브레터>, 보는 내내 폭소를 터뜨리게 했던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 도대체 무슨 권리로 그들은 이런 즐거움을 오랜 기간 박탈한 것일까. 영화의 질에도 일본영화의 흥행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한 이유는 나처럼 편견을 주입받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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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01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도 호랑이같은 나를 놔두고 어제 1박2일로 놀러갔잖아!”
우헤헤헤헤헤 _-_)~ 뒤집어짐. 형!!!! 귀여운 것도 정도가 있사와요~~~~

꼬마요정 2005-10-01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헤... 일본 공포영화 중에서 재밌는 건 별로 없었지요.. 제 동생은 학교에서 소용돌이를 봤대요.. 다음날 학교 운동장에 엄청시리 큰 소용돌이가 그려져 있었다는군요.. 그 영화 이상하다고...^^;; 뭐든지 다 그렇듯,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는 거죠..뭐.. ^^

마태우스 2005-10-01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앗 미녀는 잠꾸러기라더니 이시각에 웬일이십니까? 일본 공포가 별 재미가 없나요? 전 디 아이도 무서웠구요 주온도 무셔웠어요. 소용돌이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가시장미님/호호 제가 한귀여움 하죠 ^^ 그말 했더니 엄마랑 할머니가 어찌나 웃으시던지요. 근데 아까 주무신다고 하시지 않았었나요?^^

꼬마요정 2005-10-01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 아이는 일본 영화가 아니지요..^^ 주온도 디 아이도 하나코도 여우령도 착신아리도 도무지 무서운 영화가 없었답니다. 흑흑... 심지어 링은 졸다가 마지막 장면만 볼 만 했구요... 헐리우드 쪽 공포영화는 잔인하기만 하고... 그 무차별적인 살인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죠.. 일본 쪽은 나름대로 심리전을 구사하는데, 영~ 감이 안 오고.. 그래도 우리나라 공포영화가 젤 나은 듯 해요..^^

2005-10-01 0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10-01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안보셨다면 춤추는 대수사선도과 배틀로얄도 한번 보세요. 저는 두 영화 모두 괜찮게 봤었습니다. 전자는 코믹이고 후자는 뭐랄까 장르를 나누기가 힘드네요..

▶◀소굼 2005-10-0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신기하게도..저도 어제 밤에 아무도 모른다 얘길 쓰면서 '다시 한번 봐야지'라고 마지막에 마무리지었는데...마태우스님도 다시 보셨군요.
혹시 안보셨다면 '지금, 만나러 갑니다'도 보세요: )

moonnight 2005-10-0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모른다 못 봤어요. ㅠㅠ 꼭 보고 싶어지네요. 역시 마태우스님은 효자세요. ^^

2005-10-01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10-0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제가 아니라 그 친구한테 고마운 일이죠 뭐. 그 친구 때문에 저까지 덩달아 좋은 사람이 되버리는군요^^ 사람 인연이란 참 알 수 없어요. 몇년 헤어졌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서, 우리 둘 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버렸으니깐요. 저 역시 제가 님에게 도움이 될 날이 올지 전혀 몰랐어요^^
문나이트님/제가 효자면 한석봉은 효녀게요!!<--무슨 말인지 써놓고도 이해못하고 있음
소굼님/곁에 계셨다면 꽈배기 라고 외쳤을 텐데요^^ 그건 비디오 빌려다 볼께요 알려주셔서 감사.
플라시보님/전자는 봤구요, 배틀로얄은 보고싶은 작품이긴 한데 할머니가 잔인한 걸 싫어하셔서 아마 안볼 것 같네요
속삭이신 분/그러게 말야. 겁나게 반갑네!
과일이좋아님/어린 것이 벌써부터 그렇게 연기를 잘하면 나중에 커서 뭣이 되려는지, 정말 걱정되요^^
꼬마요정님/엥? 디아이가 일본영화가 아니어요? 부끄럽습니다. 글구 주온, 링 이런 게 졸리셨다면....님의 공포지수는 거의 10.만점에 가깝네요 비결은...혹시 미녀라서??^^
* 공포지수: 공포를 참을 수 있는 지수로, 10점이 만점이다.

모1 2005-10-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느 영화제에서 최연소로 남우주연상 탄 일본 청소년이 나오는 영화말이죠? 아무도 모른다.(마태우스님께..큰 실수를 해서 기억에 의존하려니..정말 두렵습니다.)본적은 없는데..볼만한가보죠?? 지금까지 봤던 일본영화중 재밌게 본 것은 쉘 위 댄스랑 으랏차차 스모부정도네요.(음양사, 러브레터등 유명한 것은 재미가 없었고 그외 일본 공포영화는 무서워서 못 보겠더군요.)
 

 

그 맛있는 황소곱창을 먹으러 가던 날, 곱창집 근처에 비디오가게가 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 동네엔 이상하게 비디오가게가 없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그리고나서 한번도 거기 가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갑자기 그곳 생각이 났다. 일본에서 오래 사셔서 그곳에 대한 향수를 갖고 계신 할머니께 일본 영화를 보여드리자는 깜찍한 생각이. 하이드님에게 괜찮은 일본영화를 문의한 결과 <철도원>과 <비밀>을 추천받았고, 전자가 대여중이라-누구야 그걸 지금 보는 사람이?-<비밀>을 빌려왔다.


1. 닮음

영화를 보는 내내, 남자 주인공인 고바야시 가오루가 조폭마누라에 나왔던 남자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하지 않나요?


이사람이 '비밀'에 나오는 남편이구

 


오른쪽에서 두번째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2. 효도는 힘들다

사실 난 전에 이 영화를 봤었다. 케이블에서 하기에 중간에 약 한시간 정도를 보다가 약속시간 때문에 나갔는데, 나중에 결말 부분을 들었기에 다본 거나 진배없었다. 그래서 안보고 간만에 글이나 쓰자, 이랬었는데 할머니가 심심하실까봐 그냥 눌러앉아 봤다. 내가 안본 부분은 의외로 많았고, 결말 역시 무미건조하게 말로 듣던 거랑은 많은 차이가 났으니 보길 잘한 거지만, 그래도 힘은 들었다. 왜? 우리 TV의 문제인지 음량이 그다지 크지가 않아, 할머니가 대사를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니까. 난 소곤소곤 하는 대사를 할머니께 불러줬고, 순간순간마다 상황을 할머니께 얘기해 드렸다.

“그러니까 아내의 귀신이 딸에게 씌운 거죠! 몸은 딸의 몸인데, 정신은 엄마예요!”

귀도 잘 안들리시고 이해력도 떨어지니 참으로 답답했다. 버스 사고 후 죽은 엄마의 영혼이 딸에게 빙의가 된 얘긴데, 할머니는 그걸 이해 못하시는 듯했다.

“왜 딸한테 여보라고 한다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다. “저건 딸이 아니라 엄마라니깐요!”


스포일러 비슷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 막판이 되면 주인공은 딸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딸로 변신한다. 영화에선 친절하게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걸로 설정을 했지만, 할머니는 그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주인공이 딸이 되어 “아빠!”라고 하니까 우리 할머닌 이러신다.

“엥? 딸이 어디서 왔다냐? 그래도 용케 찾아왔구나!”

"그게 아니구요 엄마 귀신이 도망가서 다시 딸이 된 거예요“

할머니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말 이해하신 건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에 나오는 반전 역시 할머니가 이해하기엔 너무도 난해한 게 아닐까. 영화가 끝나고 나자 마치 내가 고바야시가 되어 혼신의 연기를 펼친 것처럼 힘이 들었는데,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일본 이름들을 보신 할머니가 쐐기를 박는다.

“이거 일본 사람들이 만들었다냐?”


그래도 극장과 달리 내가 마음껏 소리지르며 가르쳐 드릴 수 있으니 좋다. 앞으로 그 비디오 가게를 자주 갈 것 같다. 그러고보면 지난번에 여동생과 벌인 ‘비디오대첩’에서 이기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혹시 좋은 일본 영화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3. 영화 속 상황에 대한 질문

정신은 아내지만 몸은 딸이 된 주인공, 의대에 들어가 대학생활의 낭만을 마음껏 즐긴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질투하지만 아내는 그럴수록 남편에게 짜증만 난다. 여성분들게 문의드립니다. 결혼해서 십몇년을 살았는데 자신의 몸이 갑자기 10대 후반으로 바뀌어 버린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편을 떠나는 쪽입니까, 아니면 남편 곁에서 평생을 살겠습니까? 내 생각인데 ‘떠난다’가 80% 이상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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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9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5-09-2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남편인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
음.. 아무래도 비밀은 스토리가 약간 복잡하죠.. 뭐가 좋을까나.. 저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태님, 너무 착해요. 이뻐요. ㅋㅋ

겨울 2005-09-29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와 비디오를 그것도 비밀을 보시다니 감탄이 절로.... 저는 할머니와 드라마라도 볼라치면 동문서답은 기본이고 나중에는 버럭버럭 싸움이 다 납니다. 귀가 어두우시니 상황의 십분의 일도 이해를 못하시고 이상한 해석을 해서 나중에는 할머니가 개작하신 내용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할머니의 몸보다도 정신이 더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경우 여자인 경우는 80% 남지만, 남자인 경우는 90% 떠나지 싶은데요.

마태우스 2005-09-29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우와... 그렇군요. 10대의 몸이 되어도 그렇다니 님의 부군은 행복한 분일 것 같습니다.
판다님/남편에 따라 다르단 말이죠. 근데 전 영화 속에서 딸의 몸을 한 아내에게 훨씬 더 공감을 했거든요. 저 같음 제가 도망가죠^^

마태우스 2005-09-2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몽상님/할머니가 개작하신 게 맞다고 하신다니 저희 할머니보다 조금 더 심하신데요^^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깯다게 됩니다. 님 말씀 듣고 2분의 투표결과를 보니 여자 분은 남고, 남자는 떠나는 것 같군요. 제가 너무 남성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여자도 떠날 거라고 했네요

panda78 2005-09-29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이도 있으시고 하니,,,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 같은 게 어떨까 싶기도 한데요. (일본 명작 컬렉션이라고,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10dvd박스셋트가 있던데 29800원. 이건 어떨지? 구로자와 아키라가 별로라면 오즈 야스지로 박스 컬렉션도 있던데요. 9디비디 24900원.)

마태우스 2005-09-29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 판다님/저희집에 아직 dvd가 없습니다. 이참에 하나 살까요...

panda78 2005-09-2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군요! ^^;;;;; 그걸 간과했습니다;;;; 근데 제가 적은 건,,, 아마 dvd뿐일 거 같아요. ;; 비디오로 나와 있을지도 모르니, 한번 스토리라인 보시고 괜찮다 싶으신 거 찾아 보시면 어떨지.. 아.. ^^;; 당혹스럽구만요..
(비디오가 있을 것 같은 영화- 호타루.. 요건 어떨지..?)

마태우스 2005-09-2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VD가 점점 세를 불려가는 것 같아서 무섭습니다...

panda78 2005-09-2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dvd가 비디오에 비해 좋은 점이 많은지라.. ^^;; 저희 집엔 DVD플레이어 뿐이라 비디오는 못 보거든요..

2005-09-29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9-2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이 다시 딸의 몸으로 돌아온건 결코 아닌거지. 엄마가 그런척 한거지. 그러다가 나중에 남편이 아내가 일부러 그랬다는걸 아는거지.

BRINY 2005-09-3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고3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절대!

moonnight 2005-09-30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 너무 재미있다는 얘길 듣고 봤는데 왠지 제겐 기대에 못미쳤던 영화였어요. ;; 괜히 찝찝하고 기분 안 좋았던 기억이.. ㅠㅠ;;

마태우스 2005-09-30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이트님/잔잔한 감동을 느끼긴 하지만, '너무 재밌다' 수준은 솔직히 아니더이다^^
브리니님/그죠? 고3은 너무너무 싫죠. 졸업 후에도 고3이 된 꿈에 얼마나 시달렸는지요
하이드님/저도 알아요!!!!!!!
속삭이신 분/감사합니다^^ 어쩜 그렇게 해박하신가요. 그 갸냘픈 체구에 그리 많은 게 담기더이까...
판다님/DVD로 인한 차별이 21세기 차별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죠

수퍼겜보이 2005-10-01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남편이 좋아도 딸의 몸으로는 좀 찝찝할 거 같아요 -_-
그나저나 할머니는 이해 여부를 떠나서, 자막 없이 일본영화감상이 가능한 바이링구얼이시겠죠? 호호.

예쁜토마토 2005-10-03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주로 몰드시죠? 마테님 글은 참 잼있어서 나 좋음!
 

간만에 영화보다 울었다. 제목을 보고 지순한 사랑 이야기겠거니 했지만, 의외로 울지 않으면 안될 장치들이 몇 개 있었다. 그런 것에 좀 걸려 주는 게 예의인 듯,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나도 모르는 새 난 그 대열에 동참하고 있었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밤 시간이 비었던 어제, 난 엄마, 할머니와 영화보러 갈 것을 제안했고, <가문의 위기>를 보려던 내 계획은 <너는 내 운명>을 주장하는 엄마 때문에 바뀌어 버렸다.

맨 처음 할머니랑 영화보러 갔을 땐 정말 쑥스러웠다. 다들 젊은애들, 그 대부분이 쌍쌍으로 온 터에 나 혼자 할머니와 앉아 있노라니, 마치 찌는 여름에 바바리를 걸친 기분이었다. 남들이 “쟤는 애인도 없나봐”라고 비웃는 것 같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것도 몇 번 반복되다보니 남들의 시선에 익숙해졌고, 요즘은 남들이 날 존경의 눈으로 보는 것같다는 착각마저 한다. 얼마전 영화를 보다 말고 할머니 팔짱을 낀 채 화장실로 모시는데, 다들 “쟤가 내가 아까 말한 그 효자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머나 멋지게 생겼다!”란 말은 확실히 내 환청이겠지만.

전도연은 참으로 예뻤고, 황정민은 농촌총각 그 자체였다. 전도연의 연기야 정평이 나 있지만, 황정민이 연기를 그리 잘하는 줄 미처 몰랐었다. 하여간 그 둘이 만나니 영화 스크린은 현실이 되어버렸고, 난 황정민이, 때로는 전도연이, 간혹가다 황정민의 가족들이 된 채 영화 속에 있었다. 꼭 손예진같은 청순가련이 나오지 않아도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는 걸 오랜만에 느꼈다. 이제부터 스포일러.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에이즈다. 그걸 뛰어넘는 지순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니까. 그런데.
나: 할머니, 에이즈가 뭔지 알아?
할머니: 몰라.
나: 죽는 병이야.
할머니: 그럼 쟈가 독약을 탔냐?
나: 그게 아니라 성병이야.
할머니: 뭐? 전화가 왔어?
나: (큰소리로) 성-병-!
다들 날 쳐다봤다. 이쯤해서 엄마가 나설 차례, “민아, 그냥 보자, 응?”

택시를 타고 집에 가다가.
나: 할머니, 에이즈라고 들어본 적 있어?
할: 들었는데 까먹었제.
엄마: 걸리면 죽는 병 있잖아.
할: 들어본 것도 같아.
에이즈가 뭔지 모르는 할머니는 이 영화가 왜 슬픈지 모르셨다.

오늘 아침, 결혼식 때문에 부산을 가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 할머니, 그게 문둥병 같은 거야. 그거 걸리면 다들 가까이 안하려고 하잖아. 근데 그 농촌 총각이 그래도 여자를 좋아하니까 아름다운 거라구.
할머니: 에이즈 나도 알아. 옛날에 나 어릴 적에 들은 적이 있어. 그것 때문에 남자들이 맘대로 가시내 못따먹잖아.

옛날이라니. 어릴 때라니. 에이즈가 나온 게 1980년대 후반인가 그런데, 할머니가 에이즈를 제대로 이해하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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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9-25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님은 매독인 줄 아시는 거 아닐까요?

울보 2005-09-25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참 착한 손자네요,,
언제나 오래도록 마태님곁에 할머님이 계셨으면 합니다,
잘하셨어요,,,박수

Phantomlady 2005-09-25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나쁜 게 존재하는 지도 모르고 사시는 것도 행복일 거 같아요 ^^

야클 2005-09-2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효자시군요.
효자들은 장가를 늦게 가는가 봅니다.

일찍 가는게 효잔가???

바람돌이 2005-09-25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자 마태님에게 한표!
저도 친정어머니와 가끔 영화를 보러 간적은 있었는데 그것도 언제였던지 기억도 안나누만요.
마태님 덕분에 엄마랑 영화라도 한 편 보러갈까 싶어요. ^^

클리오 2005-09-2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성병 때문에 '남자들이 여자를 마음대로 못따먹다니..' 새로운 해석이십니다... ^^ 글구, '다들 “쟤가 내가 아까 말한 그 효자야”라고 말하는 듯했다'라구요? '말했다'가 아니라 '그런 듯 했다'는 거죠? 이제 환청까지 들으시다니... 크흐흐.... (내가 오늘 왜이럴까... ^^;;;)

검둥개 2005-09-2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존경의 눈으로 봐드릴께요. 어머 멋져요!!!

진주 2005-09-2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님께서는 매독이나 임질로 이해하셨다면 정확한 거 아닌가요?
요즘이야 그 병들에 대한 치료약이 나왔지만, <꼿가치피어 매혹케하라>를 보면 매독의 치료약이 없어 시체요법, 생간요법, 수은요법 등 무시무시한 민간요법들이 총동원되고 코가 문드러지는 끔찍한 질병이었으니 요즘 에이즈와 다를 바가 없었어요.

마냐 2005-09-2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요즘 서재 곳곳에서 올라오는 영화평들은 모조리 염장질임다. 느무느무 보고싶은 영화에 또 추가....암튼, 효자효손 마태님 만쉐이~

kleinsusun 2005-09-25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마태님 정말 효자시군요.
그 극장엔 마태님의 그런 모습에 반한 미녀들이 엄층 많았을꺼예요. ^^

마태우스 2005-09-2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서님/반하면 뭐합니까. 다 쌍쌍이 왔는데^^
마냐님/맞다 마냐님은 영화 못보시는군요! 하지만 외화는 가장 먼저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신데렐라맨 보고 싶은데..
진주님/그런가 봅니다. 매독인 줄 아셨나봐요. 옛날엔 매독도 에이즈 취급을 받았겠네요...
검둥개님/헤헤 저를 알아주는 이, 님밖에 없습니다
새벽별님/제가 좋아서 웃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클리오님/친구가 제게 이러더군요. 우울증이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다구. 테니스 칠 때 잘한 것만 기억한다나요^^ 그러니 환청이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람돌이님/알라딘에서만 효자가 되요. 사실은 효자도 아닌데^^ 다음에 또 갈수밖에 없습니다.
야클님/장가와 효자는 사실 별 관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스노우드롭님/그럴지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검은비님/할머니께 그렇게 전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울보님/그전에 워낙 해드린 게 없으니, 철들고 나서는 잘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님/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moonnight 2005-09-26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마태우스님은 효자세요. 흠.. 할머님께서 에이즈를 너무너무 잘 이해하시는 거 같아서 사실 깜짝 놀랐답니다. ^^; 맞아요. 옛날엔 매독도 에이즈에 버금가는 병이었겠지요. 유럽에서 어제밤에 돌아왔는데 잠이 안 와서 이러고 있어요. 근무가 슬슬걱정되네요. ㅜㅜ;; 즐거운 월요일 여시기 바래요. ^^

모1 2005-10-03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멋지십니다.(마태우스님 팬할래요.)
저는 가끔씩 엄마, 아빠 영화표 끊어드리는데..좋아하시더군요.(이상하게 올해는 영화예매권이 상당히 많이 당첨되어서 엄마, 아빠...영화구경 더더욱 잘하셨어요.)
참..그런데요. 영화 선택도 중요한 것 같아요. 결혼은 미친짓이다...시사회권이 당첨되어서 엄마랑 갔거든요? 그 것 보고 민망해서 혼났어요. 성관계맺는 장면도 자주 나오는데다가 내용이 결혼따로 연애따로 하는 내용이라서..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갔다가 얼마나 불편하던지....
 

 

프롤로그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어머니는 친구 분들과 놀러가셨고, 난 할머니와 영화를 보러갔다. 할머니는 코미디가 좋다고 하셨지만 <가문의 위기>가 매진이라 내가 보고 싶었던 <외출>을 봤다. 내가 멜러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처음으로 안 건 어떤 남자애랑 같이 <폴링 인 러브>를 보면서부터였다 (이 얘기, 전에도 했지만). 메릴 스트립과 드 니로의 농염한 연기에 매료된 난 시종 “재밌다!”를 연발했는데, 그 이후부터 시시때때로 이거다 싶은 멜러는 꼭 본다. 가을산님이 좋아하는 배용준이 나온다는 것도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었지만.


손예진

요즘 시대의 아이콘은 전지현이다. <엽기적인 그녀>에 나온대로 자기 주장이 강한 당찬 여성이 각광받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청순가련을 찾아헤매는 남정네들이 있게 마련, 손예진의 존재는 그래서 빛이 난다. <클래식> <연애소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늘 그런 이미지로만 나왔던 손예진은 여기서도 자신의 끼를 십분 발휘한다. 윤리적으로 금지된 사랑을 향해 다가가는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 그리고 질투심에서 비롯된 밀고 당기기, 이런 것들을 손예진은 아주 아름답게 구현해 냈다. 카페에 앉아 자신의 숙소를 찾은 배용준의 실루엣을 보면서 눈물짓는 장면이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야함

노출의 수위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음에도 영화는 무지하게 야했단 느낌이다. 불륜이 주는 상상력 때문인지, 아니면 두 배우의 몸매가 워낙 훌륭했기 때문인지.

처음 하는 장면. 바닷가 카페에서 손예진이 묻는다. “우리 뭐 할래요?”

곧바로 호텔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고, 둘은 한다. 그러니까 손예진이 물어본 ‘뭐’는 바로 그거다.

나중에 하는 장면. 배용준이 말한다. “밥 먹으러 가요...기다릴께요”

예진, “아니요”

곧바로 둘이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배용준이 말한 ‘밥 먹는 것’도 바로 그거?


사랑

배: 어느 계절 좋아해요?

손: 봄이요

배: 전 겨울.

손: 저도 눈은 좋아해요

배: 봄에 눈이 오면 되겠네요.

고수부지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거라든지, 이렇듯 유치한 대사에도 그저 좋아 죽겠는 게 바로 사랑이다. 그러고보니 사랑을 안한 지도 벌써 아홉달이 다 되어간다. 근데 난 왜 혼자 유치한 걸까?


영화가 끝나고

난 시종 재미있게 이 영화를 봤지만, <외출>의 맥스무비 별점평균은 5.5였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관객들의 반응도 그와 비슷했던 것 같다. 이게 뭐냐, 허무해 죽겠다 뭐 이런 반응들.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그들이 바라는 건 뭐였을까? 둘이 결혼에 골인하는 해피엔딩? 이런 식으로 감독이 결론을 지어줘야 속이 시원한 걸까? 그냥 집에 가서 나였으면 어땠을까를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참고로 내가 감명깊게 본 <폴링 인 러브>의 결말도 <외출>과 비슷하다. 바람을 피우던 두 배우는 배우자에게 고백을 하고 착하게 살기로 하는데, 그러고나서 둘은 지하철에서 만난다. 미소를 띄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두 사람, 그 광경은 내게 무진장 많은 여운을 남겨줬었다. 그땐 아무도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둘이 하러 갔다는 거야?”라고 불평하지 않았었던 것 같은데 (물론 외출이 그 영화와 비슷한 수준이란 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건, 영화의 여백은 관객이 채우는 거라는 게 내 소신이다. 특히 남녀간의 사랑이 주제라면)


허진호

이 영화는 김희선과 장동건이 나온 <패자부활전>의 재판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어떤 배우가 나오느냐, 또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영화 수준은 많이 달라진다. 영화가 끝나고 허진호라는 이름을 확인한 순간 난 “역시!”라고 중얼거렸다. <봄날은 간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감독은 실제 모습과 가까운 사랑 얘기를 잘도 그려냈다. 멜러 전문 감독의 탄생이랄까.


집으로 가면서

택시 안에서 할머니에게 노트를 꺼내놓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 사람하고 이 사람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다 사고를 당했는데, 간병을 하다 이 둘이 바람이 난 거야”

내 설명을 들은 우리 할머니, “아, 그렇다냐. 망할 것들이네...”

아니 그걸 이제야 깨달으셨단 말입니까. 영화에 다 나오고, 영화 중간중간에 내가 그렇게 설명을 드렸는데. 옛날에 내가 쓸 행거(옷걸이)를 조립하시면서 내 감탄을 자아냈던-할머니는 어쩜 그리 못하는 게 없어요?-할머니가 간단한 불륜영화도 이해 못하시게 되었다니. 할머니, 흑 너무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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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1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5-09-2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병원에서 많이 발생한다고도 하더군요. 실제 목격자도 있구요 ㅠ.ㅠ

마태우스 2005-09-2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만두님/아 그런가요.... 하긴....

비로그인 2005-09-2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문의 위기를 보러갔더라면 이해하셨을 거예요. 너무 낙심하지 마셔요 ^^

세실 2005-09-2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할머니에게 외출은 좀 무리셨을듯~ 할머니는 이 영화를 보시고 무슨 생각 하셨을까요?
저는 멜로영화와 코믹영화만 좋아합니다.

하루(春) 2005-09-2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패자부활전 봤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는군요. 암튼, '외출'은 베드신이 별로였어요.

생각하는 너부리 2005-09-21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효손이에요. 저는 엄마랑도 영화본 적이 어렸을 때 외에는 아직까지 한번도 없거든요. 참, 가슴이 따뜻한 분 같아요. 부끄러워지기도 하고요.
저도 외출 보고 싶어지네요. 화양연화에서 느꼈던 그 애닮픔을 그래서 더 아름다운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줄리 2005-09-2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러를 좋아하는 남자 주위에서 별로 못봤는데 마태님은 역쉬.......(여운을 남기며)^^

비로그인 2005-09-22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 내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대사가.. 여기 있구나. 저걸 어찌 기억하우? ^-^
할머니 모시고 영화봤어? 왠지. 되게 아름다워 보인다. 조금 민망했겠는걸?! 으흐흐
근데.. “아, 그렇다냐. 망할 것들이네...” 이 말씀이. 참 와 닿네. ^-^;;
영화의 여백은 관객이 채우는 거라는 게 내 소신이다 -> 흠. 나두 종종 하는 생각.
그래도 아무 영화나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진 않지만.. 외출은 그런 생각이 들었어.
대사 하나하나가 상징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보면서.. 머리아팠던 영화.
리뷰쓸 때는 몰랐는데. 왜 손예진이 배용준한테 화분 선물하면서 " 죽이지 마세요 "
라고 하잖아.. 그게 배용준의 아내가 살아난다는 것의 복선이었던 것 같아.
자꾸 맴도는 대사가 많은 것을 보니. 책으로 먼저 봤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들어.
참! 형. 보고싶은 책있어?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말야. 그냥. ^-^
보고싶은 책 생기면 나한테 말좀 해줘용! 내 책상에 아직도 형의 책이 있는데...
아직 리뷰를 못써서.. 맘에 걸리네. 너무 훌륭한 책이라서 선뜻 리뷰를 못쓰겠어.
으흐흐흐흐흐. 언젠가는 쓸께. 이해해주세요. ^-^

마태우스 2005-09-22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님/아, 손예진의 죽이지 마세요가 복선일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보고픈 책은 ... 원래 있었는데 오늘 12만원어치 질러 버려서 이젠 없어졌어. 나중에 있음 말할께. 글구 리뷰 써야 한다는 부담 절대 느끼지 마시길. 그러라고 준 게 아니걸랑.
줄리님/오오 여운을 남기며.... 멋진 댓글입니다. 주변에도 찾으면 있을텐데요, 남자들이 멜러 좋아하면 없어보일까봐 정체를 숨기는 게 아닐까요
에이프릴님/평이 워낙 안좋아 섣불리 권하질 못하겠어요. 글구 효손까지... 저보다 효자손이 더 효자죠..하핫 썰렁한 농담... 할머니한테는 너는 내운명 같은 영화가 더 어울릴 것 같단 생각에, 이번 일요일엔 그걸 보려구요.
하루님/전 그정도만 봐도 야해서 가슴이 뛰었어요. 좀더 진했다면 쓰러졌을 듯...^^
세실님/할머니가 그래도 영화 잘봤다고 좋아하셨어요. 영화가 뭔지보다 나갔다 오신 걸 더 즐기시는 듯... 영화 전에 커피집에 가서 커피를 먹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화장실에 두번이나 같이 가야 했어요....
고양이님/으음, 가문의 위기가 더 좋을까요? 그럼 그걸 보도록 해야겠군요

가을산 2005-09-2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저때문에 B군에 대한 내용이 빠진겁니까? 아니면 그냥 빠진겁니까?
하하... 귀여우십니다... ^^ 고마워요.

마태우스 2005-09-2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을산님! 배용준의 연기, 몸매 모두 훌륭했습니다. 그 덕분에 영화가 밀도높게 진행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남자다보니 아무래도 손예진 쪽으로 촛점이 맞춰졌네요^^ 배용준 칭찬도 넣을 걸 그랬단 생각이.... 죄송합니다!

sooninara 2005-09-2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예진은 카페에서 그를 추억하고..배용준은 그녀가 떠난 빈방에서 그녀를 생각하고..그런데 손예진이 카페에 앉아서 그의 실루엣을 본것은 아닌듯..ㅠ.ㅠ
카페와 삼흥호텔이 가까운곳이 아니잖아요?
둘이서 같은 시간에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장면 아닌가요?

마태우스 2005-09-2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님 미워! 제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걸 꼬집어내다니 흑...

가을산 2005-09-2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 손예진이 카페에 앉아서 그의 실루엣을 본게 맞아요.
카페가 모텔 바로 길 건너편에 있어요. 인수 방은 길가쪽, 손예진 방은 주차장쪽.
바로 가까이에 병원도 있고..........실재로 그런 배치의 장소라 삼척에서 찍었다네요.
 

 

 

 

 

오늘 아침 7시쯤, 난 친구들과 올림픽코트 테니스장에 있었다. 비가 오고 천둥까지 쳤지만 거기엔 실내코트가 있었으니까. 코트장 열쇠를 갖고있는 직원이 나오지 않아서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하는데, 7시 반이 넘자 하나둘씩 포기하는 팀이 생겼다. 직원이 나오든지 비가 그치던지 둘중 하나만 되도 좋았을 테지만,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직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8시가 넘어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비가 그쳤는데, 왜 꼭 테니스를 칠 시각에만 비가 오는지 원망스러웠다.


어제 난 학교를 가지 않았다. 휴강을 했고, 학교 일은 다음주부터 열심히 하기로 했기 때문에. 사실 어제 같은 날 어설프게 천안에 갔다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학교에 안가는 대신 난 오랜만에 내가 속한 클럽에 테니스를 치러 갔다. 아침 6시 10분쯤 집을 나서서 산뜻하게 두게임을 치고 집에 왔는데, 그 중 한게임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훌륭한 게임이었다. 스트로크에서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위력적인 스트로크를 날렸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진라면을 먹은 뒤 수서에 있는 테니스 코트에 갔다. 아주머니들이 많은 그 코트 말이다.


연습경기 두 경기를 하고난 뒤 곧 경기가 시작되었다. 남자와 여자의 숫자가 얼추 비슷해서 남녀가 한팀이 되어 풀리그로 경기를 했는데, 운이 좋게도 난 최고의 미녀와 한편이 되었다. 다들 우리를 보고 “최약체팀”이라고 했지만, 난 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미녀 또한 착실하게 뒤를 받쳐 3승1패로 2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어제 아침부터 내가 뛴 경기수는 총 여덟게임, 테니스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경기였다. 힘들지 않았냐고? 죽는 줄 알았다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일곱 번째 게임부터는 팔을 휘두르는 게 어려웠고, 서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대충 하면 좋을 텐데 내 파트너인 그 미녀는 미모만큼이나 승부욕이 많아서, 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시시때때로 표출했다. 할 수 없이 난 여덟 번째 게임에서도 사력을 다했고, 이기긴 했지만 오후 세시 반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을 때 다리에 쥐가 나려고 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난 뒤 술을 마시러 갔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무 바쁜 것 같다. 난, 테니스 맨이다!


* 내 이름이 100위 안에 없다는 걸 알고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에 테니스만 갔다온 뒤 저녁 약속이 있는 다섯시까지 하루종일 글만 쓰려고 했다. 리뷰 하나에 페이퍼 열개쯤? 그런데 망했다. 남동생네가 왔기 때문이다. 나와 노는 데 맛이 들린 조카는 “큰아빠 심심해요!”를 외치면서 내 글쓰기를 방해하고 있다. 오늘은 조카랑 레고나 해야겠다.

* 조카 녀석이 자기 얘기를 쓴다고 뭐라고 한다. 이 녀석, 글씨를 모르는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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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17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고보다는 같이 테니스를 하심이^^

비로그인 2005-09-17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추석 잘 보내세요 ^^

merryticket 2005-09-17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스런 조카랑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울보 2005-09-1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마태우스님도 어린조카랑 노시는군요,,,열심히놀아주세요,,

검둥개 2005-09-17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여덟 게임이라니, 정말 대단하세요. ^^ 게다가 2위까지 하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기를 ~~

이리스 2005-09-1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정말 100위 안에 없었단 말여욧? @.@

비로그인 2005-09-1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 나도 100위안에 없어. 으흐흐흐흐. 우리.... 이제. 못 쓰는고야? -_ㅠ

마태우스 2005-09-17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언니, 우리 담주부터 열심히 하자구요!
낡은구두님/엊그제 글쓰는 법에 대해 쓴 게 추천이 많았기에 30위권도 기대를 했었는데요, 실망이야요 실망!
검둥개님/그렇죠? 제가 생각해도 전 테니스 머신 같아요
울보님/지금까지 놀았답니다. 파김치가 되어 약속에 갑니다...
올리브님/즐겁...지는 않았습니다. 무지 피곤해요...
고양이님/마릴린 먼로같으신 고양이님, 님도 아름다운 추석 보내세요
만두님/조카애가 저와 테니스를 치려면 아직도 십년은 더 기다려야 할 듯...그땐 제가 무려.... 와...

클리오 2005-09-17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목포의 낯선 피시방에서 보내는 제 타전소리가 님께 들릴라나 모르겠네요.. 흐~

마태우스 2005-09-1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오오 목포.... 저희 누님도 그곳에 계십니다! 클리오님을 봤을 때 친근하게 느껴진 이유가 있었군요!

클리오 2005-09-19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누님의 연락처를... 접선해볼까요.. 흐흐흐.. (그런데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했건만, 또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시는 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