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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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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치의 근간은 백성으로부터의 신뢰이다. 백성이 있은 후에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은 후에 임금이 존재하는 것이니 백성이 없는 군주는 군주일 수 없다.
나라가 늘 시끄럽고 정국이 불안한 것은 백성을 근간으로 하는 정치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백성이 불안하면 나라가 불안해지고 결국 그 나라는 쇄망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때에 국가의 존망을 위해서 필요한 인재가 바로 정치에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김종서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라는 생각이다.
개개의 사관은 사고의 방향을 결정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하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모태가 된다. 이러한 사관 중 하나가 바로 '충신은 어떤 사람인가' 이다. 과거 올바르지 않은 사관 덕분에 많은 진정한 충신들이 충신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엉뚱하게도 충신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 충신이라는 허명을 얻곤했다.
나라를 구한 사람도 충신이겠지만 일생 국가와 군왕의 근간이 되는 백성을 위해서 일생을 한결같은 일념으로 노력한 인물이 바로 진정한 충신이다. 김종서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그러나 김종서가 왜 충신인가에 대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종서에대하여 많은 것이 알려질 수록 김종서와 황보인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자들은 하락한다는 반대급부 덕분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수양대군일 것이며 그 수양대군과 함께 계유정란을 도모했던 그의 하수인이자 살생부를 적성했던 한명회와 군신의 의를 헌신짝 버리듯 저버린 정인지 신숙주, 기회주의자 권람, 이계전, 최항등일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은 역사 교육 때문이며 이차적으로는 올바른 사관을 가지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탓이기도하다. 우리의 교육 제도 자체가 주입식이라는 특성이 일차적인 이유를 부채질 했다는 점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일차적인 문제의 배경에는 뿌리 깊은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의 사회와 실상에서 비롯된다.
김종서를 바르게 조명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 그렇다면 왜 김종서는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권력을 잃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리학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게된다. 주희가 성리학을 계급구도로 유도하면서 비롯된 것이지만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를 더더욱 강화시켜 영원한 이익을 추구하는데 몰입한다.
그러나 권력 다툼의 패배자인 김종서는 아웃사이더였으며 깍아 내려야하는 불충한 자 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부당한 평가를 여전히 받고 있는 역사의 충신들이 있다. 바로 윤휴가 또다른 대표자이다. 혹은 진정한 충신이지만 충신으로서의 면모가 숨겨진 인물들도 있다.
그렇다면 백수건달이었던 한명회와 수양대군의 하수인들이 일으킨 쿠테타가 조선에 끼친 악영향은 무엇인가. 첫째는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멀쩡하게 살아있는 임금을 죽여 조선의 백성들에게 무자비한 탐욕을 본보기로 보여주었다. 둘째로는 공신들에게 죄없는 김종서등의 가솔들을 나누어 주는 반 인륜적은 행패를 보여주어 조선 사회의 문란한 모럴 해저드를 일으켰다.
이러한 패륜적이며 도덕적 해이가 성리학을 국시로하는 조선 사회에 던친 파장은 지대한 것이다. 정인지는 박팽년의 아내 옥금과 김종서의 며느리와 손녀를 차지했다. 신숙주는 최면의 누이와 조완규의 아내와 딸을 차지했다. 한명회는 유성원의 아내와 딸을 차지했다. 과연 염치가 있는 인사들이던가. 조선의 강역을 확보하고 현재 한반도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기위해 일생을 보내다시피 했던 김종서의 공을 조금이라도 감사하게 생각했다면 과연 그걸 수 있었을까...
이러한 반 인륜적인 행위을 자행한 공신들은 조선 사회에 모럴해저드를 일으킨 장본인 들이었다. 그 어떠한 공로로도 이를 상쇠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김종서는 세종과 문종 그리고 단종, 3대에 걸친 충신으로 일생을 헌신한 인물이다. 그에 대한 조금의 인정을 베풀었더라면 과연 정인지가 그토록 반도적적인 행위를 자처하고 나섰겠는가.
게다가 정인지와 신숙주는 세종과 문정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자신의 입지를 높여간 인물들이 아니던가. 세종과 문종의 신뢰와 배려가 없었던들 과연 신숙주와 정인지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문종이 그토록 보살펴 달라며 유언을 남겼건만, 기회주의자로 전락하면서 선왕들의 의리를 배신하다니...
한명회야 본디 백수로 권력에 눈이 먼 탐욕덩어리 였다치지만 선왕들과의 의를 저버린 정인지와 신숙주가 과연 죽어 세종과 문종 앞에서 어떻게 그 염치도 없고 의리도 없는 낮짝을 들 수 있을런지....
이제 충신이라는 말에 대한 정의를 다시한 번 더 정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연 충신이란 어떤 인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