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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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이름 윤휴  

조선에는 윤휴라는 인물이 있어  

서인과 송시열 그리고 노론을 영원히 부끄럽게 한다 

당대의 패배자 이지만 진정한 승자 윤휴 

그 이름과 정신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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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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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근간은 백성으로부터의 신뢰이다. 백성이 있은 후에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은 후에 임금이 존재하는 것이니 백성이 없는 군주는 군주일 수 없다.   

나라가 늘 시끄럽고 정국이 불안한 것은 백성을 근간으로 하는 정치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백성이 불안하면 나라가 불안해지고 결국 그 나라는 쇄망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때에 국가의 존망을 위해서 필요한 인재가 바로 정치에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김종서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라는 생각이다. 

개개의 사관은 사고의 방향을 결정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하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모태가 된다. 이러한 사관 중 하나가 바로 '충신은 어떤 사람인가' 이다. 과거 올바르지 않은 사관 덕분에 많은 진정한 충신들이 충신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엉뚱하게도 충신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 충신이라는 허명을 얻곤했다.   

나라를 구한 사람도 충신이겠지만 일생 국가와 군왕의 근간이 되는 백성을 위해서 일생을 한결같은 일념으로 노력한 인물이 바로 진정한 충신이다. 김종서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그러나 김종서가 왜 충신인가에 대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종서에대하여 많은 것이 알려질 수록 김종서와 황보인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자들은 하락한다는 반대급부 덕분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수양대군일 것이며 그 수양대군과 함께 계유정란을 도모했던 그의 하수인이자 살생부를 적성했던 한명회와 군신의 의를 헌신짝 버리듯 저버린 정인지 신숙주, 기회주의자 권람, 이계전, 최항등일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은 역사 교육 때문이며 이차적으로는 올바른 사관을 가지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탓이기도하다. 우리의 교육 제도 자체가 주입식이라는 특성이 일차적인 이유를 부채질 했다는 점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일차적인 문제의 배경에는 뿌리 깊은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의 사회와 실상에서 비롯된다. 

김종서를 바르게 조명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 그렇다면 왜 김종서는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권력을 잃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리학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게된다. 주희가 성리학을 계급구도로 유도하면서 비롯된 것이지만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를 더더욱 강화시켜 영원한 이익을 추구하는데 몰입한다.  

그러나 권력 다툼의 패배자인 김종서는 아웃사이더였으며 깍아 내려야하는 불충한 자 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부당한 평가를 여전히 받고 있는 역사의 충신들이 있다. 바로 윤휴가 또다른 대표자이다. 혹은 진정한 충신이지만 충신으로서의 면모가 숨겨진 인물들도 있다.  

그렇다면 백수건달이었던 한명회와 수양대군의 하수인들이 일으킨 쿠테타가 조선에 끼친 악영향은 무엇인가. 첫째는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멀쩡하게 살아있는 임금을 죽여 조선의 백성들에게 무자비한 탐욕을 본보기로 보여주었다. 둘째로는 공신들에게 죄없는 김종서등의 가솔들을 나누어 주는 반 인륜적은 행패를 보여주어 조선 사회의 문란한 모럴 해저드를 일으켰다.  

이러한 패륜적이며 도덕적 해이가 성리학을 국시로하는 조선 사회에 던친 파장은 지대한 것이다. 정인지는 박팽년의 아내 옥금과 김종서의 며느리와 손녀를 차지했다. 신숙주는 최면의 누이와 조완규의 아내와 딸을 차지했다. 한명회는 유성원의 아내와 딸을 차지했다. 과연 염치가 있는 인사들이던가. 조선의 강역을 확보하고 현재 한반도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기위해 일생을 보내다시피 했던 김종서의 공을 조금이라도 감사하게 생각했다면 과연 그걸 수 있었을까... 

이러한 반 인륜적인 행위을 자행한 공신들은 조선 사회에 모럴해저드를 일으킨 장본인 들이었다. 그 어떠한 공로로도 이를 상쇠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김종서는 세종과 문종 그리고 단종, 3대에 걸친 충신으로 일생을 헌신한 인물이다. 그에 대한 조금의 인정을 베풀었더라면 과연 정인지가 그토록 반도적적인 행위를 자처하고 나섰겠는가. 

게다가 정인지와 신숙주는 세종과 문정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자신의 입지를 높여간 인물들이 아니던가. 세종과 문종의 신뢰와 배려가 없었던들 과연 신숙주와 정인지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문종이 그토록 보살펴 달라며 유언을 남겼건만, 기회주의자로 전락하면서 선왕들의 의리를 배신하다니... 

한명회야 본디 백수로 권력에 눈이 먼 탐욕덩어리 였다치지만 선왕들과의 의를 저버린 정인지와 신숙주가 과연 죽어 세종과 문종 앞에서 어떻게 그 염치도 없고 의리도 없는 낮짝을 들 수 있을런지....  

이제 충신이라는 말에 대한 정의를 다시한 번 더 정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연 충신이란 어떤 인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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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용설명서 -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
마거릿 맥밀런 지음, 권민 옮김 / 공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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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도 천 번 말하면 진실이 된다-괴벨스, 50% of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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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용설명서 -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
마거릿 맥밀런 지음, 권민 옮김 / 공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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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는다. 학생의 티를 벗고 독서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그동안 자신이 공부해온 역사의 또 다른 면과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에 실리는 모든 가시가 진실이 될 수는 없듯이, 어느 한 단면믈 잘라낸 역사의 덩어리는 전체를 왜곡시키기 일쑤이며 이는 때로 의도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된다. 

역사를 매우 잘 활용한 사람들은 서구의 열강이었고, 제국주의자들이 특히 심했다. 일제는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서 철저한 역사 왜곡의 최전선에 서있었다. 의도가 담긴 역사는 진실이될 수 없다. 그 용도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용도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짐작하고 있듯이 자신들의 편리에 맞도록 형질을 바꾸어 전달한다. 그렇게 전달된 역사로인하여 어떤 사람들은 분노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있는 역사가 진실된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채 세상을 하직한다. 

역사의 진실을 잘 못 알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곳이 아니라 의도된 역사의 왜곡을 간파하지 못하고 의도자들의 뜻대로 사고하고 움직여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역사를 잘 못 인식하는 것은 늘 있어온 일이겠지만 그것이 보이지않는 힘에 의해 조작된 결과물이라면 이는 세상과 친화하려는 의도는 절대로 아니다. 

왜 역사의 전선에 있는 학자들은 역사를 주물러 편리한대로 재단하고 활용(?)하는가...그 행위 자체는 지극히 이기적이며 타를 희생하고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이다. 대표적인 예가 멀지 않은 중국의 역사 왜곡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역사 상당부분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일본은 조선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진채 침략 이전부터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한 유일한 목적으로 연구해왔고 현재까지도 그러하다. 교과서의 왜곡은 단적인 예이다. 

유럽은 역사의 최전선에 있어온 국가들이 있는 곳이다. 그들은 콜럼버스의 약탈과 잔혹한 살인행위를 포장하여 미화시켰고 한국의 학자들은 가감없이 무비판적으로 그들의 사관을 들여와 현재의 어른이 된 상당수는 셀수없이 많은 인명의 살인자를 위인전기에 싣곤 했다. 심지어 최근의 TV광고에서조차도 콜롬버스를 여전히 탐험과 모험의 대명사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 우리 국가의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뼛속깊이 파고든 역사왜곡의 현 주소를 적나나하게 보여주는 광고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콜롬버스가 영웅이된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 학문의 시발점은 서구이고 역사의 학문적 태동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선진 대열에 들어선 국가들로 유학을 떠나야 했던 우리들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의 시관을 심사숙고하지 않고 받아들인 결과 물인 것이다. 온전한 유럽의 사관에 물든 학자들의 가르침은 이제 진실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런 죄도 없이 족쇠를 채운채 아메리카로 끌려갔던 50,000,000(5천만) 명의 아프리카인들도 과연 그리 생각할까...40만명이었던 호주의 원주민인 애보리진들은 서구의 침략 이후 4만명으로 급감했다. 당시 존재했던 인구의 90%가 죽은 역사 이래의 비극을 그 어떤 참사에 비교할 수 있을까...그러나 당시 호주 원주민들의 비극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어쩌면 그러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호주의 워주민들은 서구의 역사를 과연 어떻게 설명하고 싶어할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 했을 당시 원주민들은 거의 7천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서구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한 댓가는 너무나도 참혹하여 그 진실을 말로 담을 수 조차 없다. 역시 그들의 숫자도 200년만에 90%가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거꾸로 6천만명이 넘는 원주민들이 사망했다는 쉬운 결론에 도달한다. 과연 그들의 죽음을 그렇게 쉽게 숫자로 표기해도 되는 것일까...과연 그들의 역사는 유럽인들을 어떻게 설명하고 싶어할까....  

역사는 이렇게 바라보고 싶어하는 부분만을 부각시키고 그 이면의 진실들은 드러내지 않는다. 역사는 그런 것 이란 말인가??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헛소리에 불과했단 말인가? 이론적으로 그의 책은 옳은 말을 하고있지만 그의 선조들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한 적도, 그렇게 행동한 적도 없었다. 이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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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 규장각 보물로 살펴보는 조선시대 문화사
신병주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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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하여 더욱 풍성하고 재미있는 시리즈로 다시 탄생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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