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에는 어떻게해야 아이들이 덜 피곤할까 고민했다.

주말과 주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를 못하니,

명절만큼이라도 가족이 시간을 오래 보내면 좋겠다 생각했다. 


우리의 바램대로 된 건지, 아니면 너무 과한 기대였던지.

둘째의 독감에 첫째까지 덩달아 입원하게됐고,

우리 가족은 꼬박 일주일의 시간을 병원에 갇혀 보내게 됐다.


평소에는 시간의 부족 혹은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소설은 많이 보지를 못했다. 


병간호를 하는 아내가 무료할까하여 

대출한 책 중에 소설책을 병원으로 들고갔다. 


정세랑의 지구에서 한아뿐이나영의 토요일그리다

이인휘의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 줘를 들고갔는데,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 틈틈히 읽었다. 


각기 다른 장르의 소설이지만,

소설을 연속으로 읽는 경험을 하게되니,

'이야기'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철학과 신학, 사회학이나 역사, 경제학 같은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책을 읽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책들을 읽고나면,

이후에 기억에 남는 것이 많지가 않았다. 


그런데 소설은 전체 이야기의 스토리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가 가진 맥락과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가

고스란히 남겨져서 아직도 울림을 준다. 















정세랑의 지구에서 한아뿐』은 

외계인이 등장하는 허무맹랑한 스토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가지는 막대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어떤 일에도 당연함이 없듯,

평소 주변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섬겨야함을 깨닫게 해준다.


"보고싶어." 

그 말이 자연스럽게 새어나왔다. 망할, 외계인이 보고싶었다.

익숙해져버렸다. 그런 타입도 아니면서 매일 함께 보내는 데 

길들어져버렸다(143).
















이나영의 토요일그리다』 는 언니를 잃어버린 쌍둥이 동생이

언니를 향한 기억과 상처들을 재정의하면서

우리가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인생은 크로키 같다. 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다. 

연필을 움직이다보면 없는 게 생기기도 하고 

있던 게 없어지기도 한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 다반사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함부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179).















이인휘의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 줘는 

이번에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시골마을에 정체모를 벽화가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그 벽화를 매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연을 향한 사랑과 만물의 이치가 

어린 아이의 입과 행동을 통해 그려지고, 

현대인의 삭막하고 어두운 진실이 폭로된다.

특히 '돈'을 사랑하고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소설이다.


헛된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몸이 축난다는 사실을 아는 거죠.

그걸 보면 사람들은 참 어리석어요. 

욕심이 화를 부르는 것도 모르고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니까요(182).














최근에는독일의 소설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읽었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어른들이 꼭 읽어야하는 책인듯하다. 


각박한 세상에서 정처없이 

삶의 목표와 의미를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표류하는 현대인들에게 

시간과 사람, 소통과 이야기, 여유 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이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360).



소설은 이야기의 흐름을 세밀하게 추적하며 읽어야하기에

빠른 속도로 읽거나 대충 읽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좋은 소설책을 읽었을 때 주어지는 

유익과 삶의 풍성함, 한 사람을 이해하는 통찰력 등은

다른 장르에서 경험할 수 없는 귀한 자산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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