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의 사순절과 부활절 - 광야에서 영광으로
톰 라이트 지음, 전의우 옮김 / 야다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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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이 오면 늘 마음이 조금 분주해집니다. 무엇을 끊어야 할지,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평소보다 더 신앙적인 시간을 보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 실천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참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잠시 불편함을 견디는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방향이 그대로라면 사순절은 쉽게 습관이 되고 맙니다. 겉으로는 경건해 보여도 삶의 중심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톰 라이트는 사순절을 몇 가지를 포기하는 기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의 방향을 다시 바로잡는 시간으로 이끕니다. 회개는 지나간 잘못을 곱씹는 데 머물지 않고, 세상의 질서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 앞으로 돌아서는 일이 됩니다. 시선을 바꾸고, 걸음을 고쳐 딛고,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자기 절제의 시간만이 아닙니다. 톰 라이트는 그 넓이를 '하나님 나라'라는 말로 열어 줍니다. 사순절은 마음을 괴롭히는 시간이 아니라, 길을 다시 찾는 시간입니다. 방향을 잃은 삶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특히 광야를 다루는 부분에서, 톰 라이트는 그 사건을 정체성과 소명의 자리에서 읽습니다. 세례 때 확인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부르심이 곧바로 시험대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힘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시고, 말씀 안에 머물며, 아버지를 신뢰하며, 맡겨진 길을 벗어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광야는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가 되실 것인가가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흔들렸던 자리에서, 예수는 참 이스라엘로 서십니다. 유혹은 다른 길을 제시하지만, 예수님은 끝내 하나님의 길을 붙드십니다. 광야는 그렇게 십자가의 길이 미리 비치는 자리가 됩니다.


이 대목은 우리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역시 더 쉬운 길을 택하고 싶고, 더 빠른 답을 얻고 싶고, 내 힘으로 상황을 바꾸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 믿음은 마음속 다짐이 아니라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의 문제가 됩니다. 사순절은 바로 그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방식에 다시 귀 기울이게 하는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십자가를 다루는 대목에 이르면 책의 시야는 더 넓어집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내 죄를 위한 죽음이라는 고백으로 먼저 받아들입니다. 그 고백은 귀하고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톰 라이트는 십자가를 거기서 멈추게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까지 함께 무너지게 하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과 세상의 운명을 몸에 지고 어둠의 시간 속으로 홀로 들어가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손쉬운 승리가 아닙니다. 그 길 앞에는 두려움이 있고, 버림받음의 공포가 있고, 인간으로서의 떨림이 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그 무게를 아시면서도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이 기대한 칼의 길이 아니라, 목자가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길을 끝까지 받아들이십니다.


이렇게 읽고 나면 십자가는 익숙한 종교 언어 안에 가둘 수 없는 사건이 됩니다. 거기에는 슬픔이 있고, 억울함이 있고, 인간의 폭력과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둠을 피해 가지 않으십니다. 그 안으로 들어오셔서 악을 끌어안으시고, 세상을 향한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여전히 십자가가 복음의 중심인 이유입니다.


부활에 대한 그의 설명도 같은 방식으로 시야를 넓혀 줍니다. 부활은 죽음 이후를 위한 위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는 선언입니다. 부활은 슬픔 뒤에 덧붙는 위로가 아니라, 세상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소식입니다.


톰 라이트는 부활을 새 창조의 시작으로 읽습니다. 세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여전히 타락과 탐욕과 폭력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두운 한복판에서 새 생명의 질서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죽음의 지배 아래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생명을 주는 통치 아래로 옮기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막연한 소망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뒤흔드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견디게 하는 힘일 뿐 아니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미래의 약속이 현재의 삶을 붙들게 됩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부활을 제자들의 사명과 떼어 놓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맡기십니다.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고, 그 길을 따라 살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권세는 선언으로만 머물지 않고, 제자들의 순종을 통해 역사 속에서 펼쳐집니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전히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마태복음의 처음에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에도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부활은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교회와 세상 가운데 이어지는 현재의 현실이 됩니다. 


부활절은 지났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가리키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광야를 지나 십자가를 통과하신 주님은 이제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사순절과 부활절은 해마다 스쳐 가는 절기가 아니라, 복음의 중심을 다시 붙들게 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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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 서재에 제가 읽은 책들의 자취를 남겨 왔습니다. 한 권 한 권 읽고 적어 내려간 시간들은 제게 참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마음으로 이곳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 첫 책 『다시 읽는 복음』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자주 들어 왔지만, 그 익숙함 때문에 오히려 복음의 넓이와 깊이를 충분히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을 하나님 나라와 삼위일체, 그리고 교회라는 자리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그 고민의 흔적을 따라 써 내려간 글입니다.


복음은 한 사람의 내면만 위로하는 소식에 머물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관계를 회복하게 하며,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하나님의 좋은 소식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오늘의 교회 안에서 붙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학의 이야기를 현실의 교회와 삶의 자리로 가져와 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먼저 하나님 나라와 삼위일체, 교회에 대한 기초적인 물음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몰트만의 교회론을 통해 교회를 다시 생각해 보고, 현대 교회의 여러 흐름과도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합니다. 마지막에는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가 어떤 교회여야 할지를 함께 묻고 싶었습니다. 큰 답을 내세우기보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돌아보면 한 권의 책은 혼자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읽고 배우고 강의하고 대화하던 시간들이 쌓여,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이 서재를 함께 지나와 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오늘은 그 감사와 함께, 제 첫 책의 소식을 조용히 나누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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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복음 - 하나님 나라와 삼위일체적 공동체를 향한 여정 : 몰트만과 현대 교회론이 나누는 대화
모중현 지음 / 지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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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다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너무 오래 들어 왔기에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익숙함이 복음을 좁게 붙들게 만들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 『다시 읽는 복음』은 복음을 조금 더 넓고 깊게 읽어 보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삼위일체, 그리고 교회라는 자리를 따라 복음을 다시 묻고 다시 정리해 본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제가 붙들고 싶었던 것은 복음의 넓이였습니다. 복음은 개인의 위로와 구원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큰 이야기 안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다시 세우며,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소식으로 읽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신학의 언어와 교회의 현실 사이에서 함께 붙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책은 먼저 하나님 나라와 삼위일체, 교회에 대한 기초적인 물음들을 차분히 정리합니다. 그리고 몰트만의 교회론을 중심에 두고, 현대 교회의 여러 흐름과 대화하면서 오늘의 교회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이 과정은 어떤 하나의 해답을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선을 더듬어 가는 여정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읽는 동안 교회를 향한 애정과 고민이 함께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첫 책이다 보니 부족한 점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복음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은 분들께, 또 교회를 사랑하면서도 여러 질문을 품고 있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익숙한 말을 반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복음을 다시 새롭게 듣는 계기가 된다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조심스럽게 내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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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XR 성경강해 4
노승수 지음 / 크리스천르네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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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 목사의 『히브리서』는 난해하게 느껴지기 쉬운 히브리서를 큰 흐름 속에서 풀어 주면서, 그 중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또렷하게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큰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서도 이 책을 힘겹게 써 내려갔고, 그 치열한 집필의 흔적은 책 전체에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저자의 사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시간을 통과한 사람이기에 히브리서가 말하는 인내, 순종, 소망의 메시지를 더 절실하게 길어 올렸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본문을 치밀하게 해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신앙의 진정성이 함께 살아 있는 기록으로 읽힙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설명하는 히브리서와 저자가 붙들고 버틴 복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히브리서 전체를 읽는 큰 틀을 분명하게 제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히브리서를 ‘율법과 성전’이라는 두 축으로 정리하며, 책 전체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1–2장은 계시와 율법의 문제를, 3장 이후는 성전과 대제사장직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구도 속에서 히브리서는 난해한 논증의 집합이 아니라, 구약의 그림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드러내는 책으로 읽힙니다. 덕분에 독자는 본문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지 않고, 각 단락이 결국 어디를 향하는지 붙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세부 주해를 제공하면서도 숲 전체를 잃지 않게 해 준다는 점에서 큰 힘을 가집니다.


특히 저자는 율법을 다루는 방식에서 이 책의 성격을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율법은 인간의 죄와 무능을 드러내지만, 사람을 정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설명은 율법과 복음을 단순히 대립시키지 않고, 복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함께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가 말하는 경고와 권면도 차가운 위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는 방식으로 읽히게 됩니다. 저자는 개혁주의 신학의 단단한 틀 위에서 이 문제를 풀어 가지만, 설명은 교리적 선언에 머물지 않고 성도의 실제 삶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교리를 정리하는 책이면서도 동시에 복음의 길을 다시 보게 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중심부에서 특별히 인상적인 대목은 12장 「자비로운 대제사장 그리스도」입니다. 저자는 히브리서 5장 1–10절을 따라가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의미에서 참된 대제사장이신지를 매우 탄탄하게 설명합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자비가 막연한 위로나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사람 가운데서 택함을 입으셨고, 인간의 연약한 조건 안으로 들어오셨으며, 통곡과 눈물의 자리까지 감당하신 분으로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형편을 멀리서 판단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품으시는 대제사장으로 제시됩니다. 이 장은 히브리서의 기독론이 얼마나 높고 깊은지를 보여 주면서도, 그 높이가 어떻게 성도의 위로가 되는지를 함께 드러냅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십자가 직전의 한순간만을 가리키지 않고, 성육신에서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이르는 전 생애의 순종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순종을 배우셨다”는 표현도 단순한 수난의 묘사가 아니라, 구원의 길을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전 생애적 사역을 드러내는 말이 됩니다. 더 나아가 저자는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의 순종의 완전함에 달려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순종에 달려 있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여기서 개혁주의 신학의 장점이 잘 드러납니다. 구원의 근거를 인간 안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두는 설명이 책 전체를 안정감 있게 붙들어 줍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귀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한 번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분일 뿐 아니라, 지금도 자기 백성을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복음은 단지 “한때 있었던 구원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중보와 돌보심의 복음으로 읽힙니다. 이 설명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매우 실제적인 위로를 건넵니다. 우리는 이미 완성된 구원을 믿을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히브리서』는 교리서를 넘어서 현재의 신앙을 붙드는 책이 됩니다.


42장 「마지막 권면과 인사」는 이 책 전체를 다시 조망하게 해 주는 결론부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히브리서 전체를 다시 ‘율법과 성전’이라는 구조 안에서 정리하며, 왜 이 틀이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인간은 죄책과 부패 가운데 놓여 있으며,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참된 선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율법으로 우리의 실상을 드러내시고, 성전과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에게 나아오는 길을 여십니다. 이 결론부를 읽고 나면, 앞에서 읽어 온 모든 논의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구원의 질서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점이 또렷해집니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히브리서를 단지 해설하지 않고, 그 전체 구조를 다시 독자의 손에 쥐여 줍니다.


후반부에서 더욱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히브리서 11장 이후를 믿음, 소망, 사랑의 흐름으로 읽는 방식입니다. 그는 개혁신앙의 “오직 믿음”이 소망과 사랑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낳는 시작이라고 설명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는 관계의 출발이며, 소망은 그 관계를 미래까지 붙드는 힘이고, 사랑은 그 관계가 삶 속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단지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신자 간의 관계와 교회 공동체와 더 넓은 사회적 삶 속에서 윤리적 결실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 설명은 히브리서를 교리의 책으로만 좁히지 않고, 공동체를 세우는 책으로 다시 읽게 만듭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복음을 말하면서도 끝내 삶을 놓치지 않습니다.


노승수 목사의 『히브리서』는 본문을 깊이 해설하면서도 큰 그림을 놓치지 않는 책입니다. 율법과 성전이라는 구조, 자비로운 대제사장 그리스도, 완전한 순종과 현재의 중보, 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열매가 한 흐름 안에서 유기적으로 이어집니다. 책은 분명히 개혁주의 신학 위에 서 있지만, 그 설명은 건조하거나 닫혀 있지 않고 목회적이며 실제적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신학생과 설교자에게는 해석의 틀을 제공하고, 평신도 독자에게는 히브리서를 더 분명하게 붙들 수 있는 길을 열어 줍니다. 무엇보다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누구를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차분하고도 분명하게 일깨워 줍니다. 히브리서를 더 깊이 읽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를 더 선명하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오래 곁에 둘 만한 든든한 길동무가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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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 -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 삶으로 형성되는 지혜의 영성
강영안.최종원 지음 / 복있는사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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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은 공부를 기술이나 전략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공부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입니다. 정보를 더 많이 갖는 일이 아니라, 존재의 결이 달라지는 일입니다. 공부하기 전과 후가 같다면 그것은 아직 공부가 아니라는 단호한 전제가 이 책을 관통합니다. 배움은 결국 사람을 새롭게 빚는 과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저자는 공부를 ‘자기 변형’이라 부릅니다.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고,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을 다시 점검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이 새로워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공부의 핵심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인격의 깊이입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성숙해진 사람이 되는 것에 무게를 둡니다. 공부는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입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읽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읽기는 저자의 생각을 받아 적는 행위가 아닙니다. 텍스트와 긴장 속에서 마주 서는 일입니다. 동의와 반박, 이해와 비판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사유가 자랍니다. “왜?”라는 물음이 멈추는 순간, 공부도 함께 멈춘다고 그는 말합니다.


저자는 또한 ‘듣기’를 강조합니다. 공부는 타인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태도는 배움의 문을 닫습니다. 경청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배움의 조건입니다. 이 점에서 공부는 지적 활동이면서 동시에 윤리적 태도입니다.


공부는 혼자만의 고립된 행위가 아닙니다. 스승의 가르침과 벗과의 토론은 생각의 경계를 넓혀 줍니다. 서로 다른 관점과의 만남 속에서 편견이 드러나고 사고의 틀이 수정됩니다. 더 나아가 공부는 사회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시대의 질문에 응답하지 않는 배움은 온전하지 않다고 그는 말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공부와 삶의 분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을 삶으로 옮기지 못할 때 앎은 공허해집니다. 실천이 동반될 때 비로소 앎은 힘을 얻습니다. 공부는 특정 시기의 과제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배움은 삶 속에서 증명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앎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무지’로부터의 자유, ‘무능’으로부터의 자유, ‘무감’으로부터의 자유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이 책의 중심을 드러냅니다. 앎은 인간을 가볍게 만드는 장식이 아니라 묶여 있던 상태에서 풀어내는 힘입니다. 자유로 향하는 변화가 공부의 본질이라는 선언입니다.


참된 앎은 인간을 더 자유롭게 하고 더 공감하게 하며 더 책임 있게 만듭니다. 모름에서 앎으로, 무감에서 공감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곧 배움의 여정입니다. 『공부한다는 것』은 공부를 경쟁의 수단으로 축소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새롭게 빚는 긴 과정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공부는 결국 존재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공부는 살아가는 방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향해 자신을 단련하는 일입니다. 비교와 속도에 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깊게 하는 과정입니다. 이 책은 그 방향을 차분하면서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배움이 삶을 바꾸는 힘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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