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 - 낯선 길에서 당신에게 부치는 72통의 엽서
변종모 지음 / 꼼지락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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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은 어느 낯선 길에서, 내가 떠나온 사람이거나 나를 떠나간 사람들에게 부치는 엽서 크기의 말들이다. 어쩌면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거나 나와 상관없는 미래의 사람들에게 닿을 수도 있겠다. 주머니를 뒤지거나 일기장을 뒤지면 찾을 수 있는, 언제든지 안부 가능한 크기의 말들. 부치거나 부치지 못한 보잘것없는 말들은 결국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그대의 마음에도 들어 있는 말들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세상에 안부를 묻다

 

이 책의 저자 변종모는 오래도록 여행자이다. 지은 책으로는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같은 시간에 우린 어쩌면> 등이 있다.

그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엽서를 보낸다. 책은 낯선 길에서 그가 우리들에게 보낸 72통의 엽서를 담고 있다.

 

 

 

미얀마

 

어디를 가든지 자주 스님을 만나게 된다. 한 가정에 한 명은 스님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정하고 고요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마음이 되어 잠시 그 뒤를 따르고 싶을 정도다. 더구나 환하게 웃는 동자승을 만날 때면 자세를 낮추고 공손히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경건함마저 생긴다. 

 

맑다. 맑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은 선함이다. 그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졌다. 좋은 것을 마주하는 일은 항상 그렇다. 작게 웃고 있는 얼굴 하나가 모든 풍경을 빛낸다. 따뜻한 봄의 강가나 화려한 사원에서도 아이의 웃음 한 뼘이 가장 빛나고 좋은 풍경이 되어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소원이 별이 되는 밤이 있다. 휘영청 달 밝은 보름밤. 달빛에 별이 사라지고 새로운 별이 뜨는 밤. 등불에 담아 하늘로 올려 보낸 소원은 그대로 별이 되었다. 까만 밤하늘로 흐르는 수많은 별.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고, 등불은 스스로 환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날, 무심코 올려다본 밤하늘에 뜬 별 하나.

그 별을 볼때마다 내가 실어 보낸 등불 같은 다짐들을 기억할 것이다.

 

띄워 보내는 간절한 마음이 어두운 밤을 환한 빛으로 수놓으면 저마다 찬란하게 빛나는 밤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가슴에 손을 엊는다. 별이 된 등불을 잊지 앟으려 서성인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또 한 해를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한 기쁨도 크게 느낄 줄 알며, 평범이 가장 평온한 날들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을 끼고 도는 메콩강에는 물보다 많은 꽃잎이 흐른다. 바람이 불면 잔잔한 강물 위로 나비 같은 물결이 번졌다. 수심 깊은 꽃향기들이 사람들 사이에서도 맡아지곤 했다. 향기의 발원지는 예리하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치장한 왓 씨엥통 사원. 며칠째 사원과 강가를 배회하며 꽃의 장막 속에 갇히고 싶었다.

 

사원 마당에는 거대한 부겐빌레아가 하늘로 끝없이 이어졌고, 아무리 흩날려도 끝나지 않을 것처럼 매순간 꽃잎이 축복처럼 찬란히 쏟아져 내렸다. 꽃은 마지막가지 곁에 있는 모든 것을 빛내고 사라져간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도 아름답게 살라는 꽃의 부탁을 받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꽃비를 맞으며 아름다운 꽃씨 하나를 내 맘속에 심는다.

 

 

요르단

 

대지를 관장하는 거인이 지구의 어느 한 부분에 두 손을 넣고 틈을 벌린 것처럼, 균열이 간 대지는 지상 속으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아침 일찍부터 그 틈을 따라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간다. 비밀의 문을 통과하듯 말없이 걷다가 장밋빛 붉은 바위들의 끝에서는 끝내 탄성을 지르고 만다. 마음을 숨길 길이 없다. 감정을 속일 방법이 없던 것이다.

 

버려진 사막 위에서 다시 버려진 채로 세월을 견뎠으나 끝내 발견되고 말았다. 한때 찬란햇던 영화가 고스란히 드러난 바위 도시. 있는 그대로를 가꾸어 집을 짓고, 드러난 그대로를 다듬어 성을 만들었다. 해가 저무는 동안 바위는 여린 분홀빛 장미였다가 그림자가 겹겹이 쌓이면 붉은 장미가 되어 밤을 맞이 했다.

 

요르단 페트라

 

묻히고 묻힌 일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드러날 일들.

잠시 숨죽여 살아야 하는 것으로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다시, 떠나는 자에게

 

나는 오래도록 여행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미 낯선 길 위에서 보낸 시간들이 많아져버렸으니, 그것이 여행자의 의무라 믿는다. 여행자의 의무는 여행의 즐거움만을 맛보게 하는 게 아니라 여행에서 비켜나 있는 모든 것들까지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우리가 여행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사는 게 아니라면, 여행에서 배운 것글로 일상을 대처하는 일이 더 유용하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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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세계사 1 - 고대편
이세환 지음, 정기문 감수 / 일라시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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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기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 했었다. 하지만 무기는 결국 전쟁에 쓰이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전쟁의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가 반드시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시작은 무기의 역사였지만 쓰다보니 어떤 전쟁에 어떤 무기가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전쟁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포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무기를 통해 전쟁이 보이고, 전쟁을 통해 역사가 보이는 책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전쟁에는 반드시 무기가 등장한다

 

책의 저자 이세환은 윈체스터와 콜트 싱글 액션 아미 등 클래식 총기를 사랑하는 밀리터리 콘텐츠 전문가로, 총알이 발사되는 순간의 느낌을 너무 좋아하며, 지금도 없는 시간 쪼개서 총을 쏘기 위해 미국의 실탄 사격장까지 날아가곤 한다. 인하대 토목공학과 대학원에서 아슬아슬한 성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7년부터 <월간군사세계>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6년부터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사〉에 출연하여 '샤를 세환'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고대에서 현대까지 수많은 전쟁에 쓰인 다양한 무기와 방어구를 소개하는 '이세환의 무기고' 코너를 맡고 있다. 밀리터리 영화광이기도 하여 국방TV 〈순삭밀톡〉 '시네마 웨폰', '리얼 웨폰' 코너에서 영화나 드라마 속의 밀리터리를 심도 깊게 분석, 비평하고 현실세계의 밀리터리를 재미있게 해설해주고 있다. 유튜브 〈레드 피그 아카데미〉와 〈샤를 TV〉, 한국콘텐츠진흥원, 군사교육기관 등에서 밀리터리를 주제로 한 방송과 강의도 하는 등, 알고 보면 재미있는 밀리터리 콘텐츠를 대중에게 쉽고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애쓰고 있다.

 

유튜브 누적 조회수 8,860만회 이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화제의 프로그램 <토크멘터리 전쟁사> 콘텐츠를 책으로 재구성했다. 이 책은 전쟁과 역사를 맛깔나게 버무려 들려주는 [토.전.사] 콘텐츠를 탄탄하게 깔고, 거기에 밀리터리 전문가인 저자의 필살기인 '무기와 방어구' 이야기를 더해 색다른 독서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전쟁사 책이다. [토.전.사]에서 해학적인 입담으로 '샤를 세환'이라는 별명을 얻은 저자의 '무기'에 대한 내공과 특유의 입담이 더해져 전쟁 이야기가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게 읽힌다.

 

 

 

 

전쟁과 무기를 다루는 역사책인 만큼 알키비아데스, 알렉산드로스, 한니발, 카이사르, 진시황, 한무제, 유비·관우·장비, 그리고 연개소문까지, 동서양을 대표하는 영웅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영웅전 종합 선물 세트'인 셈인데,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드라마틱한 죽음, 전장에서의 눈부신 활약상을 스케치하듯 훑어가면서 전투 장면들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묘사해준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당시 그리스는 제국의 영화를 구가하는 페르시아에 비하면 조그만 시골의 '촌놈'에 불과했다. 오늘날의 이란, 아프카니스탄, 타지키스탄의 시조인 페르시아는 최초로 오리엔트 문명권을 통일한 대제국으로 2세기가 넘는 비교적 긴 기간(기원전 559년~기원전 330년) 동안 존속했다. 최전성기엔 중동, 터키,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인도 인더스강 유역, 중앙아시아, 발칸반도 일대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가졌던 강대국이다.

 

그렇다면 왜 페르시아가 한 줌의 모래도 안되는 그리스 땅을 침범했을까? 한 마디로 말해 변방의 북소리가 황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즉 페르시아의 북서부 지방 최대 도시인 사르디스에 밀레투스 반란군이 침범해 페르시아 신전을 방화하는 참사극을 연출했던 것이다. 당시 그리스는 작은 도시국가들의 연맹체였는데, 밀레투스는 이오니아 지방에 위치, 반페르시아 봉기를 일으켰다.

 

 

밀레투스 참주의 거짓말도 한 몫을 했다. 당시 주식 원재료인 밀의 수입에 어려움을 겪던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존재가 야속했는데, 왜냐하면 이오니아 지방을 페르시아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밀레투스에서 쉽게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막대한 전리품을 챙길 수 있다고 유혹하자, 바로 아테네는 반란군에 아낌없는 지원을 했던 것이다. 고대의 역사를 보면 신전은 '성스러운 장소'로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밀레투스 반란군은 신전을 불태웠으니 페르시아의 입장에선 '신성 모독'에 해당하는 커다란 자극이었으며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기다.    

 

"패닉에 빠지지 마라. 내게 계획이 있다.

내 말대로 하면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아테네도 지킬 수 있다."

 

이는 전투에 앞서 밀티아데스가 병사들에게 한 말이다. 지휘관의 이런 자신에 찬 태도는 아테네 병사들의 믿음과 복종을 만들어낸다. 마침내 아테네 중장보병들은 진형을 갖추고 언덕 위에서부터 페르시아군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군은 아테네군이 활의 사정거리 안쪽으로 들어오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아테네군이 활을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페르시아군은 활로 충분히 아테네군을 저지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윽고 양군의 거리가 200미터 이내로 좁혀지자 페르시아군은 슬슬 화살을 발사할 준비를 했다. 고슴도치로 만들겠다고 페르시아 궁수들은 활시위를 당겼다. 그 순간, 전혀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밀티아데스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전군! 적을 향해 전속력으로 뛴다!"


밀티아데스가 뛰어 나갔다. 이에 모든 아테네 중장보병들도 전속력으로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페르시아군은 당황했다. 예상에 없는 각본이었기 때문이다. 주춤하는 사이 아테네군과 페르시아군의 간격은 급격히 좁혀졌고, 페르시아군이 황급히 날린 화살들은 아테네군의 머리 위로 날아가버려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우리들 예상 그대로다. 처절한 근접백병전으로 돌변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청동 방어구 착용과 대형 방패 등으로 중무장한 아테네군을 고작 으로 무장한 페르시아군이 결코 이길 수 없었다. 이렇게 그리스 전쟁사의 전설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고구려-수나라 전쟁

 

중국 대륙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이 있어왔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최초로 등장한 통일 왕조가 바로 진나라이다. 하지만 진나라도 진시황 사후에 급격히 붕괴되고 말았다. 이후 한나라, 위진남북조 시대로 다시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수나라가 통일 제국의 면모를 이룩했지만 나라의 역사는 38년으로 비교적 단명이었다. 멸망의 가장 큰 이유는 2차례에 걸친 고구려 원정 전쟁의 참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중국 역사교과서엔 이런 설명이 전혀 없고 내부 폭정에 따른 멸망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100만 수나라 대군은 고구려군에 몰살당하다"

 

중국은 자신들을 둘러싼 다른 나라들을 오랑캐로 불렀다. 이른바 '5호胡'(흉노, 갈, 선비, 저, 강족)로 구분된 세력 중 가장 신경을 쓴 지역이 바로 만주 땅이었다. 그들은 만주에 통일왕국이 건립되면 반드시 자기네 땅을 침략할 것으로 예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렇게 생각한 이유를 저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중앙 아시아의 몽골 유목민족들은 와서 털지언정 정착을 잘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서융의 티베트와 돌궐은 중국과 기후가 크게 달랐고, 남만은 정글이어서 이들 역시 중국 내부에 들어와 적은하며 살기를 원치 않았다. 그에 반해, 만주족 가운데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이 중국 내부로 들어온다면 눌러앉을 가능성이 컸다"

 

 

 

특히, 만주는 세계 4대 곡창지 중 하나인 만주평야가 있다. 그리고 중국 최대의 철광 산지이기도 하다. 고구려가 철 생산량이 풍부했던 이유도 만주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덕분에 고구려군은 철제무기를 폭넓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장갑기병이 중국보다 고구려가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서기 581년, 수나라 왕조는 겨우 내전을 수습했다. 이제 막 출범하는 수나라 입장에선 만주 땅을 고구려가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큰 고민거리였다. 당시 수나라의 위용은 대단했기 때문에 고구려와 매우 가까웠던 돌궐족도 납작 엎드렸고, 심지어 한반도의 신라까지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만은 뻣뻣했다. 수문제의 눈에는 당연히 '괘씸죄'로 보였으므로 전쟁의 발단이 되고 말았다.

 

결정적인 이유로는 영양왕 때 오히려 고구려군이 먼저 요서지방을 1만 기마병력으로 침범했던 것이다. 이에 급히 수문제도 전쟁 준비에 돌입, 침략을 강행했지만 요하를 넘지도 못하고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그의 아들 수양제가 대병력을 이끌고 고구려 땅을 침범했지만, 요동성 함락에 실패하고 을지문덕에 위한 살수대첩으로 수나라군은 대패당하고 말았다. 

 

    

중국식 전통 무기인 모와 피에서 더욱 진화된 '창'이 수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이후 창은 '모든 병기들의 왕'으로 일컬어지며 전쟁터나 무술세계에서도 군림하게 된다. 창은 19세기 말, 화약무기가 냉병기를 몰아낼 때까지 병기의 왕좌를 지켰다.


수나라는 산성 방어 위주의 고구려군을 공략하기 위해 공성 무기 제작에 아주 심혈을 기울였다. 먼저 높은 고구려 산성을 공략하기 위해 높이 40미터의 접이식 사다리운제를 만들었다. 운제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규모가 훨씬 작았고 화공에 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수나라는 운제를 대형화하고 겉에 진흙을 발라 화공에도 대비했다.


다음으로 전호피차는 성벽 가까이 접근해서 땅을 팔 수 있도록 만든 장갑무기인데, 성 아래로 터널을 만들어서 몰래 진입하기 위한 공성 무기이다. 전통의 공성 무기인 발석차와 당거도 빠질 수 없다. 발석차와 당거는 로마군의 트리뷰셋 투석기와 램헤드에 해당하는 무기였다. 수나라군이 사용한 발석차의 사거리는 약 80미터였다.

 

 

 

 

 

 

 

 

 

수나라군은 고구려 성벽 앞에 아예 대규모 진지공사를 해서 성벽과 같은 높이의 고정식 공성탑을 만들어 사용했다. 당시 수나라는 운하를 팔 정도로 매우 앞선 토목공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기술력을 십분 활용한 공성법이 당연히 존재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역시 중국판 헬레폴리스인 8륜 누차를 사용했다. 한마디로 수나라는 고구려를 공략하기 위해 공성 무기 종합 세트를 완벽하게 갖춰놓고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성은 결코 공략이 쉽지 않았다. 성엔 요철 모양의 '치'라고 하는 돌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잇어서 수나라군을 향해 세 방향으로 공격가능했다. 방어에 특화된 설계였던 셈이다. 

 

"전쟁의 승리엔 남다른 전쟁 무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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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주는산타의 주식투자 시크릿 - 8천만 원 종잣돈으로 124배의 수익을 올린 투자 고수가 되기까지
선물주는산타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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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블로그의 글들을 다듬고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맨몸으로 부딪히고 깨우친 주식투자의 핵심과 삶의 자세를 모두 이 책에 담았습니다. 실생활에서 작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식시장의 흐름을 읽는 눈을 키우는 방법, 내 전 재산을 믿고 맡길 회사를 찾는 방법, 온라인 게시판이나 투자 지표와 시세에 휩쓸리지 않고 투자의 원칙을 지키는 방법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 '머리말' 중에서

 

 

제대로 된 투자원칙을 정립하다

 

책의 저자 선물주는산타8천만 원의 종잣돈으로 8년 만에 100억 원의 자산을 이룬 재야의 주식투자 고수이다. 열다섯 살부터 주식에 관심을 갖고 증시와 기업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스무 살 이후에 생긴 수입은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 많은 개인투자자가 그렇듯 저자 역시 여러 차례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었다. 8천만 원으로 2억 원을 만들면 다시 1억 원으로 미끄러지고, 어렵게 3억을 모았다 싶으면 또 2억으로 줄어들길 반복하며 좀처럼 자산이 늘지 않았다. 저자는 자신의 문제점을 찾다가 종목 선정 방법마음가짐이 주식투자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단하지만 중요한 투자 원칙을 찾은 이후 저자는 빠른 속도로 자산을 불릴 수 있었다.

주식 관련 온라인 카페와 종목 게시판을 통해 숨은 투자 고수로 알려져 있던 저자는 개미투자자들의 쇄도하는 요청으로 2018년 말 개인 블로그를 개설했다. 블로그에 자신의 투자 종목과 과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투자 노하우와 마인드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국내는 물론 미국, 중국 등 해외를 다니며 손품과 발품을 팔아 얻은 기업 조사 자료를 아낌없이 공개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성장을 예측하고 투자한 기업의 주가가 500%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해 개인투자자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개설 1년 만에 조회수 250만 회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현재는 저자의 글을 기다리는 수만 명의 주식투자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블로그를 찾는다.

 

 

 

 

왜 큰돈은 더 쉽게 사라질까

 

자신의 투자 그릇이 여전히 작아 아직 큰돈을 담을 정도가 아닌데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기면 그 돈을 감당하지 못하고 흘러넘치고 만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 즉 아직 그릇을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하루아침에 분에 넘치게 받을 경우 이를 주체하지 못해 삶이 이전보다 더 어려워지기 십상이다. 로또복권 당첨자가 흥청망청하다가 서울역 홈리스로 전락했다는 뉴스도 있지 않던가 말이다.  

 

 

자산의 크기를 키우려면 먼저 경험내적 성장으로 투자 그릇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그릇이 작을 경우 흘러넘쳐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자신의 그릇 수준에 맞춰 자산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삶의 순리이자 이치이다. 2000만 원밖에 담을 수 없는 그릇인데 운 좋게 수익이 나서 1억 원이 되었다면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5000만 원조차 담을 수 없는 그릇이니 1억 원이 생기면 당연히 그 돈은 조만간 사라지고 만다.

 

"부富는 투자 그릇만큼 담을 수 있다"

 

저자도 처음 8000만 원에서 2억 원으로 가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다. 간신히 2억 원을 만들면 다시 내려오고 또다시 힘들게 올라가면 역시나 내려왔다. 심지어 원금 근처까지 내려오는 바람에 허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다행히 내적 성장이 이뤄지고 2억 원을 다루는 것에 능숙해지는 시기가 오자 시장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2억 원을 계속 지켜낼 수 있었다.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이 빨리 도착하는 법이다

저자는 이제 1~2년에 한 번 정도 투자를 한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소액으로 단기투자를 할 때도 있지만 많은 자산을 움직이는 중요한 투자는 1~2년에 한 번뿐이다. 애초에 확실한 산업과 회사에 투자할 경우 중간에 마이너스 5퍼센트가 오고 그 이상 하락하더라도 2~3년 동안 해당 산업과 회사에 투자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기다린다. 그러다가 나중에 좋은 시점이 왔을 때 충분한 수익을 내고 팔면 5억 원이 10억 원이 되고 다시 20억 원으로 바뀐다. 더러 그렇게 투자하는 사이 단번에 급등하는 주식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투자는 많은 세금과 수수료를 비롯해 잘못 들어간 탓에 벌어지는 손실로 인해 가랑비에 옷아 홀딱 젖는 현상이 생긴다. 이에 반해 저자는 중간에 손실이 나더라도 산업과 회사에 대한 확신을 갖고서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결국엔 어느덧 많은 수익이 따라온다.

 

시장의 절대 '갑'을 찾아라


전문지식이 있어야 해당 업체를 분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애용하면 해당 회사는 당연히 돈을 많이 벌 테고 그처럼 돈을 버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이다. 이것은 가치평가나 기술적 분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업모델로 접근하는 것이다.

가치평가를 하기 전에 사업모델이 쉬운가부터 확인하라. 먼저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회사를 선정한 다음 가치평가를 시작하라. 차트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

 

 

인수하고 싶을 만큼 탐이 나는 회사에 투자하라

주식을 사서 좀 오르면 팔아치우는 식의 매매를 하면 주식 수급과 당장의 인기, 제대로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정보만 쫓아다닐 수밖에 없다. 차트상 좋아 보이는 것, PER이 낮은 것 그리고 TV 경제방송이나 온라인 전문가들이 투자지표만 보고 예측한 것을 추종해 투자하면 부자가 될 수 없다.

반면 경영자 지분율이 높고 현재 부자 회사이면서 앞으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할 만한 회사 중 실제로 인수하고 싶은 곳에 투자하면 주식으로 크게 손실을 보거나 마음고생을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단순히 사고파는 매매 개념으로 주식에 접근하지 마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그로 인해 성장할 산업을 찾은 다음 또 그 안에서 통째로 인수할 회사를 찾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면 분명 투자를 하면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심리적 안정과 월등한 수익률을 경험할 것이다.

 

텐배거 기업들의 폭발력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술을 갈고닦은 회사는 인력과 설비가 안정적이라 산업이 호황기에 접어들어 고객사의 주문이 증가하면 곧바로 수혜를 본다. 이때 해당 산업에 불어온 성장 바람의 크기에 따라 회사가 받는 수의 정도는 다르다. 100~200퍼센트 상승하는 종목도 있고 10배짜리 텐배거 종목이 나오기도 한다.

 

텐배거의 공통점

 

크게 성장하는 산업에 속한다.

자기 분야에서 1~2등의 기술력을 보유하거나 시장점유율을 유지한다

수십 년간 한 우물만 판 덕분에 인프라를 갖춰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텐배거로 성장한 회사는 관련 산업 내에서 한 우물만 파며 인력과 인프라 등 재원을 이미 갖추고 있던 강소기업이 갑자기 전방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수혜를 본 경우이다. 다시 말해서 그 회사 혼자 열심히 잘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에 주목하라

 

회사를 평가하는 다양한 분석과 방법이 있지만 결국 해당 회사가 지금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따져보고 그 돈 대비 몇 배를 부르고 있는지 봐야 한다. 부르는 가격은 현재 보이는 시가총액이므로 인수자 관점에서 이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인수자의 입장으로 영업현금흐름의 몇 배에서 회사를 사는 게 합당하고 좋은 거래인지 생각해보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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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전략의 역사 - 손자병법부터 AI전략까지 전략의 핵심을 한 권에! CEO의 서재 시리즈 22
고토사카 마사히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센시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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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5년간 연재한 경영 전략의 역사를 한 권에 담은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경영 전략 전체의 역사를 담은 책이 없다는 데 착안해 주요 경영 전략의 핵심을 모아 5년간 연재했고, 그 내용을 1년간 대폭 보강하고 다시 조정해 책을 완성했다. 수많은 전략 중 내 회사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경영 전략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보아야 한다. 경영 전략 전체라는 큰 그림을 보아 두어야만, 내가 속한 회사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게 되고 새로운 전략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경영전략의 역사를 살펴보다


이 책의 저자 고토사카 마사히로는 옥스퍼드대학교 경영학 박사로, 경영 전략과 국제경영 전문가다. 현재 게이오기주쿠대학교 종합정책학부 준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소매, IT 분야의 회사를 세 차례 창업하여 경영했다. 이후 맥킨지의 도쿄 지사와 프랑크푸르트 지사에서 일하며 북유럽, 서유럽, 중동, 아시아의 9개국에서 다양한 경영 과제 해결을 지원했다. 이때, 특히 신규 사업과 경영 전략에 관여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프랑스 EHESS(사회과학고등 연구원)의 어소시에이트 펠로를 겸임했으며, 지금도 현업에서 여러 기업의 임원으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책은 총 4부 제12장에 걸쳐서 고대 그리스의 전술과 손자병법에서부터, 인공지능이 의사결정의 주축이 되는 미래의 경영 환경까지 폭넓게 다룬다. 그 사이사이, 경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경영 전략과 역사적 배경들을 섬세하게 배치했다. 1~2장에선 '경영 전략'의 정의를 살펴보고, 3장에선 경영 전략의 전문가 시대를, 4장에선 마이클 포토의 '5가지 힘 분석'을, 5장에선 기업 내부 환경을 중심으로 한 경영 전략을 소개한다.

 

6~7장에선 어떻게 사업 전략을 수립할지를, 8장에선 다양한 수치 관리법을, 9장에선 인간의 사고방식 관리를 다룬다. 이어서 10장에선 신규 기업들의 경영 전략을, 11장에선 전략의 개념을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어떻게 실현할지를, 마지막으로 12장에선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경영 전략의 상식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그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한다.  

 
경제 성장의 황금기에 등장했던 앤소프 매트릭스, 한때 포천 500 기업들의 절반이 이상이 사용하던 BCG매트릭스, 명쾌하고 실용적인 포터의 '다섯 가지 힘 분석', 기업의 내부 역량으로 시선을 돌린 자원기반관점, 현대의 린 스타트업오픈 이노베이션 등 중요한 경영 전략들을 하나의 거대한 맥락 안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그 흐름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어떤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통찰하게 된다.

 

 

 

 

앤소프 매트릭스

 

이고르 앤소프가 체계화한 경영 전략은 이후의 수많은 연구에 뿌리가 되었다. 특히 그가 정리한 전략적 의사결정의 네 가지 요소는 현대에도 중요한 힌트를 준다. 이를 보면 그가 이미 경영 전략의 논의에서 제품- 시장 영역, 성장 벡터, 경쟁우위, 시너지 등 기본적인 요소들을 모두 취급했음을 알 수 잇다.

 

제품-시장 영역~ 훗날 포지셔닝 전략

성장 벡터~ 성장을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경쟁우위~ 경쟁우위의 원천은?

시너지~ 사업 영역 간의 상승효과

 

 

BCG 매트릭스

 

이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세상에 널리 퍼뜨렸다. 병존하는 다수의 사업 중에서 어떤 사업에 추가로 투자하고 어떤 사업을 축소해야 하는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함으로써 주목받게 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는 미국의 매출액 상위 500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이 방법론을 채택했다. 이런 변화의 계기는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로 촉발되었다.

 

 

 

다섯 가지 힘 분석

 

마이클 포터는 1979년 <하버드 비즈니스리뷰><다섯 가지 환경 요인을 경쟁 전략에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했다. 여기에 포터의 '다섯 가지 힘 분석'이라는 프레임워크가 소개되었다. 이 논문은 맥킨지 상을 수상하면서 회사 실무자들에게 더욱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여세를 몰아 이듬해 출간된 마이클 포터의 <경쟁 전략>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 기업 간 경쟁

2. 공급자의 협상력

3. 구매자의 협상력

4. 신규 참가자의 위협

5. 대체 상품의 위협

 

 

 

자원기반관점

 

기업 내부 요인을 파악하고 이론화하려는 시도는 1980년 대 초엽이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를 총칭하여 '자원기반관점'이라고 한다. 이 이론도 포터의 5가지 힘 분석처럼 여러 연구자의 공헌이 거듭 축적되면서 형성된 발상이었다. 토대가 된 것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버거 워너펠트 교수가 1984년 발표한 <자원을 기반으로 기업을 파악하는 관점>이라는 논문이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은 C.K. 프라할라드게리 하멜이 발표한 논문 <핵심 역량 경영>(1990년)과 제이 바니가 발표한 논문 <기업의 자원과 지속적인 경쟁우위>(1991년)이다. 전자는 자원을 축으로 하는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후자는 연구자들을 위해 자원기반관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들이다. 

 

 

린 스타트업

 

신생 기업의 초기 경영 전략은 '전략'이라기보다 오히려 이노베이션이나 비즈니스 모델, 프로토타이핑 같은 말과 잘 어울린다. 이런 기업의 경우 경영 전략을 세운다는 것은 핵심 사업을 설계한다는 것과도 거의 마찬가지 의미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가설사고 계획법을 좀 더 사용하기 쉬운 프레임워크로 구체화한 '린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2011년, 에릭 리스<린 스타트업>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이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최소요건제품(시제품)으로 제조한 뒤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고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전략이다. 스티브 블랭크에 따르면, 린 스타트업 전략의 요점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 압축할 수 있다. 

 

1. 사업 모델로 연결되는 가설이나 전제 조건을 구조화한다

2. 창업 초기엔 그 가설이나 전제 조건을 검증하는 데 집중한다

3. 고객을 끌어들여 시장에서 검증한다

 

 

경영 전략은 지금도 진화중이다

 

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또 소비자들의 니즈 또한 계속 바뀌기 때문에 기업은 생존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자기 옷에 맞는 경영 전략을 수립,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경쟁자들에 맞서 나가야 한ㄹ 것이다. 우리 속담에 '고인 물이 썩는다'라는 말처럼, 경영 전략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문다면 당해 기업은 필망할 것이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한 기업 세계에서 이제 자신의 회사에 적합한 경영 전략이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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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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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위젤홀로코스트(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증언과 고백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때 겪은 참극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르침을 전파했다. - '머리말' 중에서 

 

홀로코스트 이야기, 우리 모두 목격자가 된다

 

이 책의 저자 아리엘 버거는 15세 때 처음 엘리 위젤을 만나서 20대를 그의 학생으로 보냈으며, 30대를 그의 조교로 보냈다. 작가이자 화가, 교사로서 영성과 창의성, 사회 변화를 위한 전략을 통합하는 연구를 계속해왔고, 엘리 위젤의 유대인 연구 및 분쟁 해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 <나의 기억을 보라>의 독자들이 엘리 위젤의 학생이자 목격자가 되도록 안내한다.

 

먼저 엘리 위젤(1928-2016)은 누구인지를 살펴보자. 그는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계 미국인 작가, 교수, 인권 활동가, 홀로코스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3월, 헝가리를 점령한 독일의 유대인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하여 가족들과 함께 게토로 이주했다가 다시 그해 5월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5세였다.

 

이때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 중 90%가 사망했으며,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세 명도 살해되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가 부헨발트 수용소로 옮겨져 가스실에서 죽게 될 운명이었으나, 1945년 4월 미군에 의해 부헨발트 수용소가 해방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해방 직전에 수용소에서 사망했고, 그의 왼팔에는 수감자 번호 A-7713이 문신으로 새겨졌다. 종전 후에는 프랑스의 고아원으로 보내진 뒤 1948년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여 문학,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전쟁 후 10여 년간 홀로코스트에 대해 언급하기를 거부했으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설득으로 1958년에 회고록 <밤LA NUIT>을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밤>은 1960년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 출간된 후 1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전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1963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1976년부터 보스턴 대학교 인문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세계 각지의 폭력과 억압, 인종 차별과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아내 메리언과 함께 '인류를 위한 엘리 위젤 재단'을 설립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 후로도 남아프리카, 니카라과, 코소보, 수단 등지에서 벌어진 폭력과 집단 학살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등 '강력한 인권 옹호자'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또한 미국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관 설립을 주도하고, 뉴욕 인권 재단의 창립 이사로 일하면서 전 세계 인권 증진을 위해 정치 지도자들과 교류했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이 생전에 보스턴 대학교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엘리 위젤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이나 인권 문제뿐 아니라 기억, 믿음과 의심, 광기와 저항, 말과 글을 넘어서는 예술 같은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하면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세상의 아픈 곳을 치유할 수 있을지 학생들과 자주 이야기했다.

 

지식의 배반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실제 생활 사이의 괴리감에 대한 저자의 의문들은, 위젤이 이야기하는 규범적 교육에 대한 비판과 통하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일 위대한 문학적 개념이나 거창한 철학적 전통이 광신주의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없다면, 그리고 종교조차 (수많은 역사가 보여주듯 광적인 설교에 휘둘려 신앙의 이름으로 온갖 잔혹한 짓을 저지를 만큼) 쉽게 타락할 수 있다면, 도덕적 명확성을 지키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엘리 위젤은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이 세상을 광기로부터 구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교육이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 타락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뭔가 숨겨진 주요 요소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가르치는 교사로서 위젤 교수는 이제 이 숨겨진 요소를 찾아내는 연구에 평생 천착한다. 이 요소만 찾아낸다면 지식은 다시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고, 그 지식이 쌓여 증오가 아닌 공감과 동정의 행위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과학자처럼 자신의 글쓰기와 사색을 통해, 특히 강의를 통해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고 마침내 그 숨겨진 주요 요소를 찾아내 이름을 붙였다. 바로 기억이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이자 작가이기도 한 론다 핑크 위트먼이 2013년 아이비리그 대학교들을 방문해,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본적 질문들을 했다. 학생들의 대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에 무지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았을 때 아무렇게나 대답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홀로코스트가 언제 일어났는지 묻는 질문에 1800년이라고 대답한 학생도 있었다.

또한 유대인 희생자들의 숫자에 대해 처음에는 대충 300만 명이라고 했다가, 잠시 눈치를 보더니 3억 명이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사례는 비단 나치의 유대인 학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의 도덕성이 한없이 추락한 특별한 사건들, 예컨대 1970년대 캄보디아 학살, 1992년 유고슬라비아 분열과 인종 청소,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등 다른 수많은 학살과 인종 청소, 그리고 분쟁이 홀로코스트와 마찬가지로 잊혀가고 있다.

 

"우리는 그런 망각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어느 날 오후 위젤 교수의 연구실에서 저자는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특별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운동홀로코스트 부정 운동에 대해 최근 발표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보고서를 언급했다. 위젤 교수는 마치 자신도 마땅한 해결책을 알지 못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이내 말했다.

 

"역사란 좁다란 다리이며, 우리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계속 기억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실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또 실제로 어느 정도 잊어야 하는 일들도 있지요. 그저 기능적 측면에서 보더라도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정말로 그냥 잊어버리려 한다면 역사는 결국 되풀이되고 말 겁니다." 

 

우리도 이야기꾼이다

"우정이란 나에게 종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아주 좋은 종교지요. 누군가 우정에 열광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우정 극단주의자가 되는 경우도 없을 테니 그저 서로에게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위젤 교수는 또 말했다. "여러분이 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는 만큼 나 역시도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배워 나갑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꺼운 마음 한편으로 부담감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중에야 이 간단한 이야기가 학생들을 그저 수동적으로 배우기만 하는 위치에서 능동적 기여자로 바꿔주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젤 교수의 그 말은 모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내는 핵심 원칙인 셈이었다. 탈무드에도 "송아지가 젖을 먹고 싶어 하는 만큼이나 어미 소도 젖을 먹이고 싶어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런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질문이나 호기심이 없고 아예 뭘 알고 싶은 생각마저 없다면, 교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교사와 학생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며, 일종의 교육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 나간다.


"과거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가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아무도 알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공감과 갈등

2차 세계 대전 동안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했지만 엘리 위젤은 매일 자신의 갑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학생들에게 자신을 모두 열어 보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의 꿈과 희망에 귀 기울이고 신앙과 우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말했다.

 

"사랑도 가능하고, 희망도 가능합니다. 나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강의를 합니다. 도덕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먼저 마음을 열면 학생들이 마음을 여는 일이 가능해지거든요."

 

양심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는 법

 

다음 주 강의 시간, 위젤교수는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읽은 내용이나 강의 시간에서 다룬 문제에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함께 나눠보자고 제안했다. 먼저 키가 크고 두꺼운 안경에 금발의 레게 머리를 한 학부생 데이브가 질문했다. "교수님, 언제부터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시게 되었습니까?"

 

"글쎄요, 일단 나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꽤 오랫동안 언론인 생활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디시어로 발행되는 신문의 기자로, 그다음은 이스라엘 계열의 신문사에서 일하며 기사 한 편당 원고료를 받았지요. 그렇게 일을 하며 가장 좋았던 건 개인적으로 가보기 힘든 곳들을 신문사 비용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여러 곳에서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분쟁과 압제, 그리고 어떤 비인간적 행위가 벌어지는지도 알게 되었고요. 인도의 빈민, 베트남의 난민,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1975년부터 5년간 캄보디아를 통치하며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급진 공산주의 혁명 단체) 희생자, 중앙아메리카에서 박해받은 혼혈 원주민까지. 이미 아는 사실들을 또다시 확인하고 한 번 본 일들을 연거푸 보면서,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낱 기자에 글이나 쓰는 사람일 뿐인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일단 내가 확인한 사실들을 기사로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글들은 훗날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고요. 더 나중에는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주요 매체에 필요할 때마다 특별 외부 기고자로 많은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나 작가처럼 도움을 원하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접촉해, 말과 글을 통해 현실을 바꾸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지요."



 

"때로는 가진 것이 말과 글뿐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이나 글이 일종의 증언이 되고, 단순히 추상적 관념에 그치지 않는다면 분명 그 안에 힘이 있지요. 비록 기자 생활을 그만둔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세계 여러 곳을 둘러보고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목격자는 확신을 가지고 세상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 메시지에는 분명 힘이 실리지요."

위젤 교수는 어떤 노력과 행동으로 도덕적 자격을 얻었는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당시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 <밤>을 출간한 그는 분명 고통과 생존이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일찌감치 얻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자격은 다른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얻은 것이기도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여러 분쟁 지역을 방문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자격은 비로소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저 말만 앞세우며 대중 앞에서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직접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목격자가 됨으로써 '권력 앞에 진실을 이야기하는' 자신의 행동에 도덕적 무게감을 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도구만 가지고 세상 앞에 나서고 또 나섰다. 그의 도구란 그의 눈과 그의 마음과 그의 글이었다. 1986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까지 그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학자이자 작가, 사회 활동가였으며 그 어떤 단체나 조직 혹은 후원자를 대표하지 않았다. 노벨상을 받은 후에는 엘리 위젤 인권 재단을 설립해 처음으로 실질적 후원 단체를 갖게 되었고, 주요 신문 지면에 광고를 실을 수 있는 자금도 확보했다. 또한 다른 노벨상 수상자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갖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완전한 자유와 자율적 책임 아래 독립적으로 활동한다는 원칙을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종종 언급하며 자신은 백악관이나 국제 연합에서 이야기할 때도 어느 작은 유대인 마을에서 온 예시바 학생이었을 때처럼, 어떤 단체나 위원회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오직 말과 글로 싸우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어와 그 한계 

"우리는 언어가 자유를 누리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원래 내보이고 싶었던 뜻을 그대로 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요. '굶주리는 어린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소득 불균형'이라고 돌려서 말합니까? 그냥 '죄 없는 가족이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세요. '인종 간 갈등'이라고 말하지 말고요. 정치에서도 문학에서도, 그리고 물론 교육에서도 이런 원칙이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 언어를 왜곡한다면 진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습니다."

위젤 교수에게 말이나 글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저자는 이해했다. 그가 강의 시간에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 것은 다음과 같은 중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으리라. '전하고자 하는 뜻을 잘 전달했습니까? 그러지 못했다고요? 그렇다면 말이나 글로써 할 수 없는 일을 노래 한 곡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나은 불꽃을 피워 올리자

 

정말로 열정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열정을 잃어버렸고, 더 이상 그런 열정을 찾지 않는 풍조마저 생겨났다. 그런 열정 대신 그저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오락거리를 찾게 되었다. 명심하라. 나치도 공산당도, 그리고 크메르루주도 모두 열정으로 가득 찬 집단이었다.

 

그들에게는 이상이 있었으며,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내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국민은 민족적 순수성, 계급 간 투쟁의 종결, 역사의 새로운 시작과 종교적 지배권 등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불꽃이 있었다. 그런 자들과 싸우는데 미적지근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들보다 더 나은, 더 뜨거운 불꽃을 피워 올려야만 한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

 

위젤은 당시 강의실에 앉아 있었던 학생들에게, 그리고 지금 책을 손에 쥔 독자에게 똑같이 강조한다. 역사의 참극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해 역사의 목격자가 되어 기억하고 또 증언하라고 말이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한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한결같다. 과거를 일깨워 미래를 위한 보호막으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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