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머니 커넥션 - 마지막 남은 성공투자의 나라 북한에 파고드는 중국의 치밀한 전략
이벌찬 지음 / 책들의정원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한은 어떻게 초강도 제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결국 답은 중국이었다. 중국이 북한에 돈줄을 대고 있었다. 북한 내부 발전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고, 밀무역과 북한 노동자 불법 체류를 눈 감아주며 외화를 수혈하고 있었다. 제재 예외 대상인 관광업에서는 북한과의 협력을 확대했다. 중국이 북한에 투자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순망치한, 상부상조, 한반도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체제 유지가 우선이고, 북한과 국경을 맞댄 중국 도시들이 발전하려면 북중 경제 협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중국은 어떻게 북한 경제를 독점하려 하는가?

 

책의 저자 이벌찬2014년 베이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조선일보〉 공채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미래기획부를 거쳐 현재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다. 학창 시절을 포함해 17년 동안 중국 지린성, 랴오닝성, 베이징 등지에서 거주한 중국통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당시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단독 인터뷰하는 등 북중 관계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록해왔다.

 

북한 경제는 수수께끼였다.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북한 내부 상황은 안정적이었다. 그렇다면 배급이 충분해서 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북한 정권의 배급은 통치자금의 감소로 인해 이미 끊긴지 오래 되었다. 오죽하면 그토록 자본주의 체제를 혐오하면서도 자본주의 경제체제인 '장마당'을 통한 장사로 인민들이 먹고살도록 허용했겠는가 말이다.

 

특히 충격적인 사실은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중 접경지에서 각종 신호들이 감지되었다. 즉 국경 다리와 북중 통상구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중국 대북사업의 주축이었던 조선족과 북한 화교가 중국의 주류인 한족으로 대체되고 있다. 개인 사업자 간의 거래는 줄고 정부 간의 거래는 늘어낫으며, 단일 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대북 사업 리스크는 줄어들었다.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은 속속 대북 사업 정책을 쏟아내면서 북중 경협 확대를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었다.

 

 

중국은 국제적 합의인 초강도 제재에 구멍을 내면서까지 북한과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겉으로는 대북제재에 동참한다고 밝히지만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오히려 제재를 느슨하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2016년 중국 상무부는 고시를 통해 북한의 주력 수출품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지만, 접경지역에선 양국 간의 밀거래를 오히려 방조함으로써 북한에 돈줄을 대고 있다. 이미 북한은 중국의 자원 공급처로 전락했으며 대중 의존도가 높아진 만큼 피와 살을 중국에 상납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 북한이 중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품목은 바로 피 같은 광물 자원이다. 저자는 2019년 7월 중국 지린성 옌지에서 옌볜延邊톈츠天池공사 장 경리를 만났다. 중국 영업부 책임자인 그는 50대 한족 남성으로, 대학 졸업 후 금속 가공 공장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2000년대 초반에 톈츠공사에 입사했다. 톈츠공사는 중국에서 대북 거래 규모가 가장 큰 기업 중 한 곳인데,  매년 약 100만 톤의 철광석을 북한 함경북도 무산철광에서 수입해 중국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에 팔고 있다.

 

"톈츠공사는 매년 120만 톤 정도의 철구(鐵球)를 생산하는데 원료 대부분을 북한산 철광에 의존해요. 북한에서 함량 66%인 철광석을 들여와 중국 지린성 허룽의 공장에서 함량 67.5%의 철구로 재가공하지요" - 톄츠공사의 장 경리

 

나아가 중국은 북한 광산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말이 좋아 개발 참여이지, 실상은 경제 식민지화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 치하의 한반도를 생각해보라. 그 당시가 연상되는 동일한 참상인 것이다. 북한의 경제난을 도와주는 척하지만, 중국은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북한산 광물을 수집하는 중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0~2015년 중국의 대북투자에서 60% 이상이 광업 분야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린성 옌지, 랴오닝성 단둥 등 가는 곳마다 북한 담배를 파는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담배는 주로 육상 운송로를 이용해 중국으로 유입된다. 다른 품목과 섞어서 통관 절차를 밟는다. 최근에는 중국 세관이 첨단 검색 장비를 설치하고 전수검사를 하자 중국 어선이 북한 인근까지 가서 받아온다. 어선 한 척이 나가면 5만 위안(약 840만 원) 어치의 담배를 싣고 돌아오는데 중국에서 2~3배 가격에 되팔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2018년 "북한의 담배 밀무역 순이익이 연간 10억 달러(약 1조 1,000억 원)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역사상 요즘같이 북한과 중국 양국을 이어주는 다리들이 많이 건설된 적이 없었다. 해방 이후 2010년까지 65년간 북중 국경에는 단 하나의 다리도 새로 건설되지 않았다. 양국이 서로를 경제 협력의 관점보다 안보적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0년 이후 북중 교역이 급증 추세를 보이고 중국이 '동북 지역진흥전략'을 본격 추진하면서 4개의 북중 국경대교가 착공됐다.

 

마치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여러 대형 다리가 연상될 정도이다.

 

랴오닝성 단둥의 신압록강대교(개통 예정), 지린성 지안의 지안―만포대교(임시 개통), 지린성 투먼의 투먼대교(투먼―남양, 건설 중), 지린성 훈춘의 신 두만강대교(훈춘―나선, 개통)가 새롭게 들어선 다리들이다. 이 4개의 다리는 북중 접경 1,334km의 시작과 끝에 걸쳐 있다. 단둥은 북중 접경의 서쪽 끝이자 압록강 하구이고, 지안은 압록강 중류, 투먼은 두만강 상류, 훈춘은 북중 접경의 동쪽 끝이자 두만강 하구에 있는 북중 교역 거점이다. 이는 양국의 관계가 가깝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며, 아울러 중국의 북한 침입이 우려되는 현실이기도 하다.

 

장사를 하다 보면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는 말처럼, 축적된 실패의 경험이 이젠 노하우로 작용한다. 돈 떼먹힌 경험도 노하우로 쌓여서 대북사업을 하는 중국 회사들이 오히려 노련해지고 있다. 앞서 살펴본 톈츠공사는 북한 광산에 투자할 때 '최소화' 전략을 구사한다. 직접적인 설비 투자는 최소로 줄이고, 거의 가공을 거치지 않은 광석 위주로 수입해 온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국 기업들은 북한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시설 장비를 대거 투입하고 제련 공장을 지었다. 그러나 북한 측에서 투자 회수 조건을 갑자기 변경하거나 도로 등 인프라 구축의 추가 요구 등으로 사업에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거액을 투자한 중국인 사업가가 투자 지분을 헐값에 다른 투자자에 넘기고 빠져 나오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톈츠공사는 설비 투자 규모를 줄였다. 

 

 

 

중국은 북한 경제의 좀벌레

 

중국의 대북 사업의 노하우는 갈수록 쌓여간다. 대북제재 등 국제적인 정세를 적극 이용한다. 대북사업에서 중국 회사의 입김이 세진 것이다. 제재가 강화될수록 중국측은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이를테면 갑질인 셈이다. 삼지연 건설과 갈마해안관광지구 조성 사업에서 중국인 투자자들이 독자 경영을 요구한 일도 있었다. 그렇다.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북한 경제는 중국이라는 좀벌레에 서서히 파먹히고 있다. 정작 통일되었을 때 북한은 빈 껍데기만 남아 있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제 사라마구, 작은 기억들
주제 사라마구 지음, 박정훈 옮김 / 해냄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마을은 아지냐가라고 불린다. 포르투갈의 여명기 이래 늘 그곳에 잇다. 하지만 찬란한 이력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잇지 않다. 오직 마을 옆을 지나는 강만 그대로다. 그 강은 수없이 둑을 넘어 범람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강줄기의 방향이 달라진 적은 없다. - '본문' 중에서

 

 

기억 속에 박혀 있는 작은 이야기

 

책의 저자 주제 사라마구포르투칼 작가로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22년 포르투칼 중부 지역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3세 때 수도 리스본으로 이주했다. 고등학교만 마치고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69년에 공산당에 입당반정부 공산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 1975년에 국외로 추방되었으며 그 후로는 생계를 위해 번역가 언론인 등으로 활동했다. 신사실주의 문예지 [세아라 노바]에서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79년부터 전업작가가 되어 소설, 시, 일기,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다.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1979년 희곡 <밤>으로 포르투칼 비평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희곡상을 받았다. 1982년에 포르투칼을 배경으로 한 환상적인 역사소설 <발타자르와 블리문다>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고 이후 같은 해에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포르투칼 펜클럽상과 리스본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포르투칼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화 되었다.

 

 

책의 무대는 자그마한 마을이며, 책의 내용은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자전적 이야기가 에세이 형식으로 펼쳐진다. 즉 아지냐가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사라마구는 18개월 때 리스본으로 이사를 한 후, 두 마을을 왕래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네 살 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형 프란시스쿠(폐렴으로 사망, 성탄절 전야에 매장됨)를 회상하면서 이른바 '가상기억'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겨울 새끼 돼지들이 추울까 봐 침대로 데려왔던 일을 떠올리며 그들에 대한 애정을 새삼 느낀다. 사라마구는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해독하며 문학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처녀적 어머니가 물을 길러 마을 분수에 갔다가 아버지가 사귀자고 한 말을 들은 뒤에 마음이 온통 어수선하고 요동치던 일이 있었다. 그날 물 항아리를 이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몸을 숙여야 한다는 것도 그만 잊고 말았다. 정신이 온통 딴 데 팔린 것이었다. 항아리와 상인방이 부딪치는 순간에 모든 것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항아리 파편, 흩어진 물, 할머니의 야단, 아마도 사건의 원인을 알았다면 웃음. 내 인생도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부서진 물 항아리와 함께"(168쪽)  

 

아지냐가와 리스본의 아름다운 풍경, 가족, 친지, 이웃과의 이야기, 자신의 성인 '사라마구'의 유래, 질투와 같은 감정, 성적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이야기 등이 담겨 있는데, 작가의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낸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단어와 이야기에 매료되어 세계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난 한 대문호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사마라구의 어머니

 

 

책은 저자의 회고록이다. 다른 점이 잇다면 단지 출생에서부터 16살 때까지의 기억만을 담고 잇다. 그리고 차별성이라면 연대 순으로 기록한 게 아니라 기억의 선착순으로 글을 써냐려간다는 점이다. 10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열 개의 집을 옮겨 다녔다. 그러다보니 책의 후반부에선 전반부의 일부 기억이 틀렸다고 교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가의 소년기 기억이 성인이되고 노인이 되어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준다.

 

"도미틸리아와의 일화가 벌어진 때를 열한 살 무렵이었다고 잘못 기록했다. 실제 내 나이는 여섯 살 무렵이었고, 그녀는 여덟 살 무렵이었다"(167~8쪽)  

 

작가의 픽션은 환상적인 서사, 대담한 사건 등으로 유명하다. 이를테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눈이 멀거나,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멈추면서 아무도 죽지 않는 일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다른 형식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즉 작가가 꾸며낸 픽션이 아니라 생생한 실제 이야기이자 작가의 삶 그 자체이며, 소년기의 에피소드 모음이다.

 

 초등학생 시절의 사마라구

 

"내가 작은 소년이었을 때의 작은 기억들. 단지 그것을 기록한 것이다"(50쪽) 

 

작가의 전체 인생을 다룬 전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년기의 작은 기억들을 통해 우리들은 작가와 매우 가까워졌음을 느끼게 된다. 소년 사마라구의 천진함, 어리석음, 기쁨, 고통, 두려움 등은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 그것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린 누구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마치 못을 박아 놓은 것처럼 떼어내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카발레이루스 길의 집은 악몽에 시달렸던 시기와 관계가 깊다. 꼭대기 층에 있는 집까지 가려면 늘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 시절 나는 잠들었을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늘 악몽으로 괴로워했다. 밤이 당도하는 것만으로 공포는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몰려들고, 어느 구석에 자리 잡은 괴물 하나가 발톱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 악마의 몸짓이 나를 공포의 늪으로 몰아넣곤 했다" (79쪽)

 

 

 

노작가가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지혜 

 

이 책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우리들은 모두 소년 소녀가 될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푸른 도마뱀의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마치 초성능의 타임머신을 탑승한 것처럼. 책의 마지막은 "나는 두번 다시 푸른 도마뱀을보지 못했다"라는 문장으로 장식한다.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들은 팔십대의 노작가가 전하는 말, "너였던 소년이 이끄는 대로 내버려두거라"를 되새겨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서울대 글쓰기 특강'
박주용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는 지식이 많은 사람을, 토론은 준비된 사람을,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의 수필집에 수록된 〈학문론〉에 나오는 말이다. 베이컨의 말을 염두에 두고 우리 교육을 되돌아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많이 읽게 하고 강의로 많은 정보를 전달하지만, 토론과 글쓰기는 빠져 있다. 토론과 글쓰기가 빠진 독서나 정보 전달만으로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어렵다. 토론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비판하는 가운데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고, 글을 써야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된 생각을 담아낼 수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비판적으로 읽고, 내 주장이 담긴 글을 쓰라

 

책의 저자 박주용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UCLA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림대 심리학과, 세종대 교육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다. 그는 2010년대 초반부터 서울대에서 글쓰기와 토론을 중심으로 한 수업을 주도해왔는데, 그의 글쓰기 강의에서는 학생들이 각자 써온 글을 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토론하는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비판적으로 읽고, 생산적으로 토론하고, 생각을 글로 쓴다"

 

그의 글쓰기 수업은 어렵고 힘든 과정임에도 학생들 사이에서 성취감과 만족도가 높은 강의로 정평이 나 있다. 글쓰기와 토론이 우리나라의 입시 중심 교육과 대학의 강의 중심 교육에 변화를 가져다줄 돌파구라고 생각하며,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강연 "배운 만큼 생각하게 하는 교육"으로 대중에게 큰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우리들은 글쓰기를 잘못 배웠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도 이 점에 대해선 적극 공감한다. 대부분 배운 것이라곤 저학년 때 배운 받아쓰기가 전부 아닌가 말이다. 이는 분명히 수동적인 글쓰기 연습, 아니 맞춤법 연습일뿐 자발적인 글쓰기완 거리가 한참 멀다. 굳이 자발적인 글쓰기라면 일기장에 글을 쓰는 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검사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다분히 인위적인 조작이 가미되었으므로 순수한 의미의 글쓰기는 결코 아닌 것이다.

 

하버드 대학은 1872년 이래로 모든 학생들이 <탐구적 글쓰기>를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명문 MIT도 1990년대부터 4개 이상의 글쓰기 수업을 졸업 이수 요건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대학 입시는 물론 취업을 위한 평가도 논술보다는 선다형 내지는 단답식 문항으로 치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을 강화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일까? 대학생 대상의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학기 동안 10페이지 정도의 보고서를 5회 이상 쓰는 비율이 5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아무튼 평균적으로 1년에 대략 100페이지 정도를 쓴다. 반면에 미국 대학생은 1학년의 경우 1년에 평균 92페이지를 4학년엔 146페이지를 쓴다. 결과적으로 미국 대학생이 한국 대학생에 비해 평균 20퍼센트 정도를 더 쓴다. 

 

 

 

서울대학교 학생 2251명과 교수 304명이 참여한 한 설문에서 글쓰기를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했고, 그 중요성을 5점 만점에 각각 4.45점과 4.5점으로 높게 매겼음에도 글쓰기 교육의 실제 여부에 대해선 학생은 3.3점, 교수는 2.75점으로,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인 전공 지식(4.14점과 4.0점)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배운 지식을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평가할 때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담긴 글을 좀처럼 볼 수 없고, 심지어 틀린 곳이 너무 많아 어떻게 피드백을 주어야 할지 안스럽다고 자신의 심정을 밝힌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학생들과의 면담에서 보고서 상의 주장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내용을 알지만 이를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데, 바로 이것이 우리 교육의 문제이다.

 

"생각하게 하고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게 하기 위해 글쓰기 교육을 서둘러야 한다"

 

결국 좋은 글은 인정받기 마련이다. 물론 좋은 글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좋은 글을 금방 알아본다.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각광받을 때도 있지만, 좋은 글은 음악 혹은 맛있는 음식처럼  대중들에게 이내 포착된다. 다만 왜 좋은지를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많은 요소나 재료가 독특한 배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의 특징

 

제목이 중요하다, 제목에서부터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눈길을 끌 수 있다.
도입부에 흥미로운 이야기나 도전적인 질문, 예리한 분석 등을 제시해 관심을 끈다.
개인적 일화를 포함,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추상적인 개념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도표나 그래프도 적절히 활용

 

글쓰기에 있어서 자신만의 논리적인 주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박식함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서로 대립되는 주장을 비교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면, 관련 자료에 대해 사전에 어느 정도의 지식 축적이 필요하다. 사실은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비판적으로 꼼꼼하게 읽으면서 깊게 생각해야만 이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꾸준하게 이런 노력을 실천하다 보면, 욕조에 앉아 있든, 샤워를 하든, 산책을 하든, 꿈을 꾸든 간에 갑자기 의미있는 생각이 떠오르는 경험을 맞을 수도 있다. 만약 이런 통찰을 맞이하지 못할 경우는 떠오를 때까지 계속 기다리지 말고 오히려 끊임없이 의도적으로 아이디어를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이디어는 열심히 찾는 사람들에게만 접근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문제 해결이기도 하지만 '문제 발견'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작문 과제나 지정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경우라면 문제 해결이 적합하지만, 지적 탐구 과정에서 새로운 주장을 펼치려면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발견이 훨씬 더 의미가 있다. 특정 분야의 연구 현황을 숲을 보듯 조망하면서 그 전반적인 특성은 물론 빠진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 발견의 좋은 예이다. 노벨상이 어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 새로운 문제를 찾아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지적 탐구에서는 문제 발견이 중요하다. 따라서 글쓰기를 문제 해결로 특징짓는 대신 '문제 발견과 문제 해결'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글쓰기의 비유

 

문제 해결

요리하기

디자인 설계

 

디자인의 비유는 주장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지를 고민하는 단계, 특히 전체 구성이나 논의 전개 방식을 잘 부각시킨다. 단순한 논의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논의할 내용이 많아지고 그들 간의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는 마치 같은 내용을 잘 아는 전문가와 대가가 설명할 때의 차이에 비교할 수 있다. 대가는 더 많은 내용을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게 설명한다.

 

요리의 비유는 술술 잘 읽히면서도 이해도 쉽게 되는 문장이나 문장 간 연결 수준에 적용할 때 적합해 보인다. 요리사는 음식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음식의 색상과 그릇에 담긴 모양에도 신경을 쓴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세 가지 비유들은 실제 글쓰기 과정에서 각각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한다.

 

 

 

 

 

연습, 그리고 연습이 필요하다

 

이 책은 글쓰기 입문서이다. 책을 통해 글쓰기를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직접 쓰고 고쳐봐야 비로소 글쓰기의 맛을 경험할 수 있어서다. 첫 문장부터 완벽하게 쓰려는 욕심은 부리지 말자. 처음엔 대략적인 자기 주장만 담아도 충분하다. 항아리를 빈틈없이 채우려면 처음엔 큰돌을 넣고, 다음엔 조약돌을, 마지막엔 모래를 채워야 한다. 마찬가지다. 글의 전체 구조를 잡은 뒤 점차 세부적인 사항을 다듬어야 할 것이다. 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량을 맘껏 발휘하려면 연습량이 충분해야 하는 것처럼, 글쓰기 또한 연습 그리고 또 연습이 필요한 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센 세대, 낀 세대, 신세대 3세대 전쟁과 평화
김성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대 간 '다름'은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아니라 다양성 조화를 위한 천혜의 기회다. 필터와 프레임을 달리 하면 '이상하다'가 '신기하다'로 뒤집힌다. 이 책은 센 세대, 낀 세대, 신 세대 각자의 서사를 360도 다면경으로 풀어 이를 꾀하고자 한다. 강요도 읍소도 아닌 각자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이질성이 다양성으로 바뀌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시작하며' 중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자

 

책의 저자 김성회CEO리더십연구소장으로 국내 최고 리더십 스토리텔러로 알려진다. 베이비부머 세대, X세대, MZ세대, 직장 내 3세대가 조화롭게 일하도록 이끄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유수 기업의 리더들과 교류하고 일선 직원들을 밀착 인터뷰함으로써 세대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권위자다.

대기업을 비롯해 공공기관, 대학교에서 조직관리,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진행할 때 15년째 1순위로 섭외되는 인기강사다. 또한 멀티캠퍼스의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와 현대경제연구원, 휴넷 MBA, 중간관리자 대상 온라인교육 사이트 SERI PRO에서 강의하고 있다. 또한 <조선일보〉, 〈매일경제〉 등 다양한 매체에 리더십 칼럼을 기고하며, 방송에서 리더십 전문 패널리스트로 활약 중이다.

 

책표지에는 세 마리의 동물이 등장한다. 호랑이, 소, 시추(개) 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바로 각 세대를 형상화 것이다. 이를 통해 책은 각 세대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즉 회식이 퇴사 사유가 되기도 하는 MZ세대는 평소엔 순하지만 불공정한 일에 분노하는 시추를 닮았다. 단체 행동을 좋아하고 야망이 큰 센 세대는 거침없는 성격이 호랑이를 연상케 한다. 드센 상사와 개성 강한 후배 사이에 낀 X세대는 소처럼 홀로 우직하게 일만 한다.

 

저자는 이들 세대의 캐릭터와 행위의 동기를 알면 세대간의 유감은 오히려 세대간의 공감으로 이어지고, 나아가서 세대간의 차이는 오히려 다양성의 조화라는 천혜의 기회가 된다고 강조하면서 리더십 전문가답게 각 세대의 특성인 조직 충성심, 합리적 개인주의, 디지털 능력과 글로벌 마인드를 현장에서 함께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전수한다.

베이비부머 세대(센 세대)~ 조직 충성심,

X세대(낀 세대)~ 합리적 개인주의,

MZ세대(신세대)~ 디지털 능력과 글로벌 마인드

 

사실상 이와같은 각 세대별 특성은 그 어느 시대에도 한 지붕 아래 공존한 적 없었던 강점들이다. 그래서 책은 각 세대를 트렌드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조직에서 일하는 구성원으로서 접근함으로써 리더의 능력과 역량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지식을 곧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각 세대별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세대 구분의 시작점과 종착점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살피게 되는데 해석하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구분이 나올 수 있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정의에 따르고 있다. 즉 베이비부머 세대는 1950년대 중반~1965년 출생자, X세대는 1965~1970년대 중후반, 밀레니얼 세대는 197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 신세대인 Z세대는 그 이후에 탄생한 사람들로 구분한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표현은 세대별로 다르다. 평생직장의 개념을 가진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퇴사'란 용어는 그 자체가 낯설기에 고작 '퇴직'이란 말뿐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미덕은 '한 우물 파기'였기 때문이다. X세대는 첫 직장에 입사해 평균 2회 이상 이직하는 반면 MZ세대는 한 직장에서의 장기근무는 경력개발이 아니라 오히려 경력지체라고 생각한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는 것이 당당하다는 MZ세대가 툭하면 사표를 던지는 이유가 역설적이게도 일에 대한 열정이 강해서다. 이들은 일의 의미와 재미가 동시에 만족되거나, 적어도 한쪽이라도 만족해야만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 등이 이들에게 적용되기에 회사보다는 9급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한편으론 스타트업 창업에 직접 나서는 것이다. '더 높이', '더 오래', '더 빨리' 라는 화두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경영학과 교수가 '당신이 이 경우라면 포상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 라는 질문에 우연히 함께 참석했던 세대별의 답은 갈렸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주저 없이 회식을 골랐고, X세대는 똑같이 나누는 것을 가장 많이 택했다. 하지만 MZ세대는 공헌한 비율에 따라 차등을 두고 나눠야 한다는 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질문의 실제 사례로 포상금을 받은 대학생 팀은 밀레니얼 방식대로 배분했다.

 

공정성에 대한 인식도 세대별 차이가 분명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난 후 4강에 진출한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축구협회가 포상금의 차등 지급을 발표하자 주전 선수들은 동일한 포상금 지급을 주장했다. 경기의 출전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똑같이 훈련하고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그래서 실제로 당시에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선수당 3억 원씩 균등배분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이후에 발생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이 역사상 최초로 축구종목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선수들의 포상금 분배는 이전의 경우와 크게 달랐다. 기성용, 박주영 등 밀레니얼 세대가 주전이었는데, 이들의 활약도에 따라 4등급으로 차등 분배했다(7천만 원~4천만 원). 

 

세대별 시대적 배경은 근무태도에서도 차이가 난다. X세대는 고도 성장기에 자라 민주화 시대 이후에 대학을 다녔고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직격으로 맞은 세대다. 경제적인 면에서 시련이 많았다. 즉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졸업 땐 외환위기로 취업이 힘들었으며,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한 이들도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를 경험한 X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와는 달리 '성실한 직장인'을 버리고 '탁월한 직업인'을 선택했다. 몸값 높이기는 오직 '실력'으로 말해야 했다. 이들은 현재 회사 내에서의 위치가 빠르면 임원, 대부분은 중간관리자급에 해당한다. 베이비부머 상사(센 세대)와 밀레니얼 구성원(신세대)의 중간에 끼어서 마음고생이 크다. 권리와 혜택은 배제당하고 책임과 의무는 모두 짊어져야 하며, 위아래의 일이 자기에게 모두 모인다. 이것이 낀 세대의 비애이다.

 

이제 화제를 돌려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인 '혼밥, 혼술' 등을 살펴보자. 기성세대는 이를 매우 꺼려 한다. 이는 '혼자 즐기는 것'을 리더십 부족으로 판단하지 않을까란 그릇된 우려 때문이다. 혼밥은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자립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리더들은 권력과 직위에 적응되면 후배들에게 의지하게 된다. 달리 말해서 대접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리되면 점점 고독과 고립을 견디고 이겨낼 힘이 약해진다. 대우를 받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상은 점점 사회성이 약해지는 것이다. 혼자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성찰을 통해 스스로 고독에 대한 내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 시대를 앞서 간 현자賢者들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라고 주문하지 않는가 말이다. 후배에게 아쉬운 부탁을 않는 것만 해도 좋은 리더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다. 퇴직 준비도 마찬가지다. 퇴직 이후엔 혼자서 해결해야 할 게 무척 많아진다. 그렇다. 자생력, 자립력 모두 확보돼야 어디에 가도 꿀리지 않는다. 혼밥, 혼술을 즐겨도 된다.

 

마지막으로 회식에 대해 고민해보자. 나도 회사의 임원이나 대표이사 시절, 회식을 무척 즐겼다. '회사는 팀'이라는 믿음이 강했기에 자주 밀착 경영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밀레니얼 직원에게는 이 회식 문화가 퇴사 사유라고 말하므로 이젠 회식에 대해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아예 이를 없애자는 주장도 있지만, 밀레니얼의 속마음은 '횟수'가 아니라 '내용'임을 지적한다. 저자의 제안이 카페 소사이어티 분위기로 다가온다.


첫째, 가성비 높은 시간 절약 회식을 하자.

둘째, 회식의 목적(친목, 정보공유 등)을 분명히 하자.

셋째, 되도록 업무시간 내(점심시간, 오후 티타임)에 회식을 하자.

 

베이비부머 세대, X세대, MZ세대가 각각 들려주는 '동상삼몽'에 귀 기울여주면서 이를 바탕으로 상호간의 이해로써 직장 내의 진정한 평화를 도모해 보자. 직장 내의 화합과 팀웍 향상에 고민하는 경영자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어디에서 왔니 - 한국인 이야기 - 탄생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이 골백번 변해도 한국인에게는 꼬부랑 고개, 아리랑 고개 같은 이야기의 피가 가슴속에 흐르는 이유입니다. 천하루 밤을 지새우면 아라비아의 밤과 그 많던 이야기는 언젠가 끝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꼬부랑 할머니의 열두 고개는 끝이 없습니다. 밤마다 이불을 펴고 덮어주듯이 아이들의 잠자리에서 끝없이 되풀이될 것입니다. 그것은 망각이며 시작입니다.  - '이야기 속으로' 중에서

 

 

한국인 이야기, 꼬부랑 열두 고개

 

이 책의 저자 이어령1934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중앙일보 상임 고문 및 (재)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1967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석좌교수이다. 그는 1980년 객원연구원으로 초빙되어 일본 동경대학에서 연구했으며, 1989년에는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소의 객원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저서로는 <디지로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지성의 오솔길>,  <오늘을 사는 세대>, <차 한 잔의 사상> 등과 평론집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 <젊음의 탄생>, <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등이 있다.

 

 

 

 

아라비아에는 '천일야화千日夜話'가 있다. 천일 밤 동안 왕을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려 못한다면 불행하게도 화자는 죽임을 당한다. 심지어 재미 없다고 왕이 더 이상 듣기를 거부해도 죽어야 한다. 여기에서의 이야기는 바로 목숨이다. 이야기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다면 목숨도 끝이 나고 말기 때문에.

 

한국의 밤에도 이야기는 있었다. 그렇다. 어린 시절 들었던 꼬부랑 할머니의 이야기를 말한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더 해 달라고 조른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젯밤에 했던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한다. 내가 어린 시절 한여름 밤에 들었던 수박장수의 수박은 리어카에서 추락, 아직도 고갯길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 

 

이제 세상은 변했다.  꼬부랑 할머니를 볼 수 없다. 그 옛날의 '꼬부랑 길'은 이미 수많은 차량들이 휙휙 달리는 자동찻길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도 끝난 것이 아닐까? 아니다. 바위 고개 꼬부랑 언덕을 넘어가는 이야기는 지금도 들을 수 잇다. 왜냐하면, 누구나 나이가 들면 어렸을 때 들었던 그 이야기를 손자손녀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태명 고개~ 생명의 문을 여는 암호

배내 고개~ 어머니의 몸 안에 바다가 있었네

출산 고개~ 이 황홀한 고통

삼신 고개~ 생명의 손도장을 찍은 여신  

기저귀 고개~ 하나의 천이 만들어 낸 두 문명

어부바 고개~ 업고 업히는 세상 이야기

옹알이 고개~ 배냇말을 하는 우주인

돌잡이 고개~ 돌잡이는 꿈잡이

세 살 고개~  공자님의 삼 년 이야기

나들이 고개~ 집을 나가야 크는 아이

호미 고개~ 호미나 도끼냐 어디로 가나

이야기 고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는 한국 독자들에게 많이 사랑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엔 한국인 이야기는 없었다. 이에 대한민국의 이야기꾼 이어령 명예교수는 2009넌 4월 6일부터 총 50회에 걸쳐 중아일보에 '한국인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후 신문 연재와 TV 강연을 통해 이어간 작업이 결실을 맺어 총 12권의 책을 기획한 바 있다. 이 책 <너 어디에서 왔니>는 제1권이다.

 

모태의 세계를 향해 청진기처럼 귀를 대면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폭포수 같은 소리, 미세한 혈관을 타고 힘차게 흐르는 배내 아이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한때 우리가 자궁벽에 붙어 발아하던 최초의 땅, 신열 같은 생명 기억이 깨어난다. 한 번도 듣지 못한 옛이야기가, 그리고 아직 쓰여지지 않은 미래의 동화와 대서사시가 열릴 것이다. - '태명 고개' 중에서

열두 고개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인간, 한국인의 생애와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즉 어머니의 임신에 의한 태아로부터 시작하여 출산 후 기저귀를 찬 채 걷기 시작하고 포대기에 쌓여 업히기도 하면서 성장하다가 어느새 돌잔치를 맞이한다. 돌잡이를 통해 장래를 미리 점쳐보는 그런 생애 사이클이 연속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이야기 열두 고개에는 한국인의 문화가 담겨 있다. 너와 나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곡신불사,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결코 죽지 않고 살아온 이 신을 노자는 '현빈'이라고 불렀다. 현빈玄牝의 현玄은 신비한 것, 우리가 잘 모르는 신비한 것, 그리고 빈牝은 암수라고 할 때의 그 암이니, 현빈의 문門은 여성의 생식, 만물을 낳는 어머니의 자궁인 것이다. 그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미미하지만 절대로 끊기지 않는 것처럼 골짜기를 돌아 꼬불꼬불 이어지는 고갯길도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거기에서 많은 이야기가 태어나는 것이다. 이는 <도덕경>에서 말하는 '곡신불사 谷神不死'와 닮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